#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49
칭제건원(稱帝建元).
그건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일이다.
삼정승만 그 욕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도당의 참상관 대부분이 삼정승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지금까지 세뇌당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고려에 가득했던 패배주의.
그걸 어떻게든 없애려 노력했다.
내가 즉위할 무렵의 고려는 뭘 해도 안 된다는 자포자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때까지 백 년이란 시간 동안 원나라의 간섭을 받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정반대가 되었다.
삼정승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관리가 더 강한 고려를 만들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했다.
그리고 그만큼 자부심이 가득했다.
지금까지 고려는 개혁을 거듭했고 삼강 평원까지 영향력을 넓힌 상태라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다 같은 생각은 아니었다.
반대의 목소리가 아예 없진 않았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주변국의 극렬한 반발 내지는 견제가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중의 원나라가 가장 심할 것이다.
장사성의 대주국과 탕화의 오국도 동아시아 권력 개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들이 인정하든 말든 상관은 없었다.
고려가 제국이 된다고 중원을 노리는 것도 아니고 그들을 발밑에 둘 생각도 없다.
우리가 만드는 체제에 소속될 이들은 여진과 연주를 포함한 극동 지역의 자치구가 될 거다.
내가 생각한 구상은 연주로 끝나진 않는다.
사할린과 홋카이도.
그곳도 고려의 땅이 될 것이다.
연주로 향하는 길목이기에 그냥 놔두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 내 그림의 완성은 오호츠크해 전체를 안마당 삼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제국은 고리타분한 극동 지역을 벗어나 영국과 같은 해양 제국이었다.
“후우··· 이것도 두 번 하라면 못하겠군.”
시간이 흘러 여름이 다가올 무렵.
나는 마침내 황제 자리에 올라섰다.
반원 정책을 쓰며 사용하던 연호가 있었으나 새롭게 고려 독자적인 연호을 만들어 영흥(永興)이라 개원하였다.
영원히 흥하라는 의미로 지은 것이다.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복장을 황룡포로 바꿔입고 9가닥이던 면류관(冕旒冠)은 통천관으로 바뀌었다.
옷의 색이나 면류관의 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나는 그런 것에 크게 의미를 두고 있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무거워지고 힘만 들었다.
그나마 내 의견이 많이 반영되어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간소화되었다.
형식상 문서 체계는 바뀌었지만,
관제까지 그대로 따라 할 생각은 없었다.
그와 관련된 원칙을 도대체 누가 세웠단 말인가. 황제란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것도 사대주의라 생각되었다.
고려는 고려만의 방식이 있다.
그 규칙을 세우는 것은 나였다.
그리고 이번 일을 하나의 기회로 삼았다.
지금까지 미뤄오던 6부의 개편이 이번 기회에 진행되었다. 가장 중점으로 둔 것은 세분화와 효율성이었다.
커다란 틀은 그대로 유지했지만,
이번에 새롭게 생긴 부처가 여럿 있었다.
교육부와 농림부 그리고 보건부가 대표적이라 볼 수 있었다.
어의인 설주는 보건부를 맡았고 성균관 대사성이던 강중경은 교육부 그리고 전주 목사 정운경이 농림부를 맡았다.
반대로 없어진 곳도 있었다.
중서문하성과 도평의사사는 의정부로 합쳐지고 참상관과 함께 삼정승이 정사를 논의할 수 있는 자문 기관이 되었다.
그 외에도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로 인해 약간의 혼잡함은 있었으나 효율은 높아졌다.
“옥사에 갇혀 있던 이들이 폐하께서 내리신 특별 사면으로 오늘 풀려났다고 하옵니다.”
통천관을 벗어 놓고 땀을 식히고 있자 신소봉이 방금 들어온 소식을 전해줬다.
옥사의 죄인을 풀어주며 사면의 은전(恩典)을 베푸는 것은 일종의 관례였다.
“안우경 장군도 풀려났다고 하더냐?”
“그러하옵니다. 지금쯤이면 평양에 마련한 저택에 도달했을 것입니다.”
“상태는 어떻다고 하더냐?”
“몸이 조금 쇠약해진 것 같으나 어의의 말에 의하면 당분간 쉬면 금방 쾌차할 것이라 했습니다.”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호군을 이끌던 안우경은 지난해 내가 피습당한 미천사의 변으로 인해 지금껏 옥사에 감금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은전을 베푸는 명단에 포함된 것이다.
당연히 미천사의 변을 일으킨 광신도들은 이번에 단 한 명도 사면되지 않았다.
반면에 지금까지 노역에 동원되던 상당수의 노비들이 이번에 면천되어 양민이 되었다.
이번에 면천된 이들은 대부분 불교를 혁파할 당시에 관비가 된 이들이다.
그간 노역에 동원된 공로를 인정한 것인데 공짜로 그들에게 새로운 신분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하나의 조건이 달려 있었다.
그건 바로 현재 최영이 점령한 삼강 평원 부근으로 이주해서 농사를 짓는 것이다.
피를 흘려가면 얻은 땅인데 그냥 놔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개간부터 시작해서 본격적인 농사를 지을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식량 생산이 시작되면 송화강은 고려의 젖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곳은 최전방인 지역이다.
여진족이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른다.
아무리 빈틈없이 감시한다고 하더라도 몰래 들어와서 약탈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그곳에서 살겠다고 자청하는 이는 거의 없기에 지금은 반쯤 강제적이라도 이주시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밀직사에서 올라온 보고는 없더냐?”
“폐하께서 승인하셨던 칙서는 준비를 마쳤고 며칠 이내에 각국을 향해 사신이 출발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제 각국에 이 사실을 알릴 때가 되었다.
당연히 적지 않은 반향이 일어날 것이다.
가장 격렬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역시 원황실이었다. 과연 그들은 동등한 지위에 스스로 오른 내 칙서를 어떻게 볼까.
나는 그게 가장 궁금했다.
“그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해서 아쉽구나.”
*
그로부터 며칠 후.
각국으로 고려의 사신이 떠났다.
이번에 동원된 배가 수십 척에 달했다.
왜국부터 시작해서 중원을 차지한 여러 나라와 멀리 마두라이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고려와 교역만 하는 나라인 동남아 쪽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축하의 사절을 따로 보내왔다.
굳이 딴지를 걸 필요도 없었고 여전히 고려와의 관계를 유지하길 바랐다.
반면에 탕화와 장사성은 미온적이었다.
그들은 내심 고려를 동급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조금 떨떠름한 느낌이었다.
그런 탓인지 대주국와 오국도 스스로를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감찰사의 보고가 있었다.
오히려 가장 격렬하게 반긴 이는 진우량의 대한국이었다.
하지만 그게 공짜는 아니었다.
옥새의 효과라고 보아도 되었다.
지재 상인 고지렴을 통해 옥새의 값으로 이번 일에 사용하였다. 당연히 고작 그 한마디를 듣겠다고 넘긴 것은 아니다.
이번에 대한국과는 여러 협정을 맺었고 그중의 하나가 해남성의 소유권이다.
파라셀 제도에 있는 해남성.
그곳은 베트남과 홍콩의 중간에 있는 섬으로 백 년 동안 고려의 것이 되었다.
당연히 진우량이 이끄는 대한국이 그만큼 버텨줄지는 미지수였지만, 어차피 내게는 의미 없는 옥새이기에 상관없었다.
그곳을 받아온 이유가 있었다.
마두라이로 향하는 상선의 기항(寄港)지이자 재배지로 사용될 용도였다.
신대륙에서 가져온 것 중에 도저히 고려에서는 키울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무나무다.
아직 고려에 들어오지 않은 상태이고 가지고 오더라도 마두라이에서 재배할 예정이나 선택지를 늘릴 필요가 있었다.
더구나 커피의 재배도 가능한 땅이다.
지금도 아라비아 상인을 통해서 아주 소량이나마 들어오고 있으나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더구나 해남성은 가까웠다.
마두라이로 가는 시간의 절반이다.
탐라는 동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절강과 왜국을 이어주는 역할 이상은 어려웠다.
반면에 해남성은 고려의 물건을 교역할 수 있는 허브로 삼기 충분했다.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그곳에 고려의 해군이 주둔하면 동남아 바다 전체를 통으로 먹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 곳을 진우량이 내놓은 이유는 어차피 바다 쪽에 관심이 없기도 했고 해적질을 일삼는 방국진 때문이기도 했다.
반면에 원황실은 발칵 뒤집혔다.
감히 고려가 동급으로 올라설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고려의 사신이 가져온 것은 칙서 양식이었다.
하지만 사신의 목을 벨 생각는 못 했다.
원황실도 스스로의 처지가 어느 정도인지 이제 대충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발칙한 놈들!”
하지만 단 한 명만큼은 달랐다.
이번에 고려에서 온 사신을 죽이자는 주장을 하는 그녀는 기황후였다.
고려에서 온 소식을 들은 기황후는 거의 발작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감히 황실을 우롱하는 저들을 그냥 놔두실 거란 말이오? 폐하께서 노하시기 전에 어서 빨리 목을 베어야 하오.”
기황후는 채하중에게 고함을 쳤다.
남들이 들으면 귀곡성이라 여길 정도로 거칠고 거북할 정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궁궐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채하중은 이미 이런 일을 흔하게 겪은 것인지 얼굴색 하나 안 변한 채 고개를 저었다.
“소신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사옵니다.”
“도대체 승상은 내가 부르는데 왜 얼굴도 안 비춘단 말이오. 감히 황후의 부름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오?”
서늘 퍼런 눈으로 노려봤지만,
그녀의 말을 귀담아듣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은 조롱거리에 가까웠다. 이미 기황후는 끈 떨어진 연에 비유되고 있는 중이었다.
“또 광증이 도진 것 같군.”
“쉿! 아무리 황후의 자리에서 쫓겨날 위기라고 하더라도 아직은 황태자의 모친이니 말조심하게.”
“요즘 황태자도 쫓겨나기 직전인데 뭣이 겁난단 말인가. 오히려 나는 여전히 저들을 궁궐에 남아있는 게 신기하네.”
궁인들은 기황후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괴성에 혀를 차며 그 앞을 지나쳤다.
채하중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쩌면 일부러 들으라고 말하는 건지도 몰랐다. 요즘 들어 채하중은 슬슬 황실을 떠나 살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황후의 광증은 상당히 심각했다.
횡설수설하는 그녀의 말을 더는 듣고 있기 괴로울 정도였다. 정신 좀 차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지금 그녀의 상황이 이럴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바람과 달리 기황후의 상태는 나날이 안 좋아지고 있었다.
일종의 편집증 같은 상태라고 할까.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심지어 덕흥군을 고려의 왕으로 추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원황실에 그런 힘은 없었다.
군대를 일으켜서 강제로 추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차칸 테무르가 없었다면 이미 무너졌을 황실이었다. 지금은 살아남는 것에 모든 힘을 모아도 부족했다.
그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오직 기황후만 모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도 알고 있으나 인정할 생각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녀는 고려라는 단어만 들어도 발작에 가까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조금 이해가 되기는 했다.
채하중이 보기에는 그럴 만 했다.
황후의 가족 전체가 자신의 손으로 왕에 올려놓은 이에게 죽임을 당했다.
표면적으로는 고려의 왕이 한 것은 아니었으나 다들 누구 짓인지 알고 있다.
그때 승상인 차스간이 들어왔다.
하지만 평소답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의 뒤에는 수십 명의 병사가 서 있었다.
채하중은 그들의 모습을 보자마자 마침내 올 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쯧쯧! 어찌하다 이런 지경까지···.”
차스간은 혀를 차며 기황후를 바라봤다.
한때는 황후가 되어 온갖 권세를 누리고 아들을 황태자로 만든 여자였다.
하지만 당시의 권세는 온데간데없었다.
이미 황제의 총애는 다른 후궁에게 향하고 있었고 황태자의 자질도 상당히 의심받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본녀에게 말하는 것이오?”
“그만 하고 내려오십시오.”
“그게 무슨 말이오?”
기황후가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차스간도 지금까지의 온화한 표정을 지우고 호통을 치듯이 외쳤다.
“황명이오! 오늘부로 '보현숙성황후 기씨(普顯淑聖皇后 奇氏)’의 황태후 자리를 박탈하노라. 뭣들 하느냐 당장 저들을 궁궐에서 끌어내거라.”
당연히 기황후는 반발했다.
온갖 수모를 겪으며 올라온 자리였다.
황태자를 생각해서라도 쉽게 내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소식이 차스간의 입을 통해서 전달되었다.
그건 황태자 역시 폐위되었다는 것이다.
그쯤 되자 기황후는 눈이 뒤집혀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병사들의 힘을 이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그 모습이 너무 추해 보일 지경이었다.
어쩌면 고려에 대한 분노를 대신 뒤집어쓴 것일지도 모른다.
인정하기 싫어도 다른 이의 눈에는 여전히 그녀는 고려인이었다.
거기에 과거 차칸 테무르를 독단적인 판단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가 산동성을 빼앗긴 과오도 분명히 있었다.
대륙 전체를 좌지우지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상당히 비참한 말년이었다.
“이 찢어 죽일 놈들아! 이것 놓거라. 내가 이 나라의 황태후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