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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48화 (148/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48

본격적인 북벌이 시작할 무렵.

나도 오랫동안의 휴식을 끝마쳤다.

생각보다 오래 쉬었는데 원래는 이렇게 길게 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문제는 한 번 쉬니 그간 쌓인 피로가 한 번에 확 밀려왔다.

길게 이어지던 습관이 무너진 탓이었다.

어쩌면 번아웃된 것일 수도 있다.

십 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렸으니 그럴 만도 했는데 그래도 푹 쉰 덕분에 상처는 완쾌됐다.

애초에 그리 깊게 박힌 것도 아니었다.

당연히 팔을 움직이는 것이 불편하거나 그런 후유증은 남지 않았다.

그와 더불어 얻은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소중한 아이들과의 관계가 상당히 많이 개선되었다. 그게 그냥 가능했던 것은 아니고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쉬는 기간 동안 거의 매일 원자와 쌍둥이 그리고 가진과 시간을 보낸 덕분이다.

그 탓에 아버지인 나를 은근히 낯설어하던 아이들과도 친해졌고 지금까지 모르던 몇 가지 소소한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쌍둥이 중의 아들인 왕곤(王滾)은 나를 닮아서인지 손재주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그림 실력이 또래와 비교할 수 없었다.

원자는 가진을 닮아 호탕하고 똑 부러진 면이 있는데 두 아들의 성향 차이가 제법 컸다.

그래도 쌍둥이들이 원자를 무척 잘 따른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반면에 딸인 왕혜(王蕙)는 음악 쪽에 관심이 많았다. 시도 때도 없이 악기를 튕기고 불어대는 터라 상당히 시끄러울 정도였다.

내가 원래 살던 시대였다면 아이돌을 권유하고 싶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다.

‘이게 다 삼정승 덕분이지.’

영의정 이인복과 좌의정 염제신.

그리고 우의정에 제수된 이방실은 내가 해야 할 일들 대부분을 맡아서 정리해줬다.

세 명이 밤잠을 설쳐가며 몇 달 동안 노력해준 덕분에 그나마 쉴 수 있었다.

하지만 마냥 놀 수는 없었다.

임금으로서는 본분은 잊지 않았다.

삼정승은 최대한 나를 쉴 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 주었으나 반드시 나의 허가가 필요한 안건은 있기 마련이라 틈틈이 나를 찾아왔다.

그 덕분에 쉬는 중에도 하루에 두어 시진 정도는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살폈다.

당연히 그중에는 여진 정벌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최근에 온 전령에 의하면 현재 최영 장군은 백두산에서 다른 장군과 합류하여 송화강을 따라 북진을 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이방실은 뿌듯한 얼굴로 소식을 전했다.

그의 표정만 봐서는 당장 말을 타고 그를 상징하는 흑곰의 부대기를 휘날리며 그들과 함께 북진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현장에서 뼈가 굵은 장군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우의정이 된 이후에 이방실은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고 언젠가 내게 말했다.

‘후방에서 병력을 지원하는 일이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건지 처음 알았사옵니다.’

지금까지 최전방에서 싸우던 이였다.

당연히 행정 쪽은 조금 낯선 분야다.

그래도 현장 경험이 많기에 군사에 관련된 분야는 무리 없이 적응하고 있었다.

확실히 기존에 그 자리에 앉아있던 정세운과 비교 할 수는 없었다. 그와 비교하면 일 처리가 상당히 합리적이고 빠른 편이었다.

더구나 삼정승의 합도 좋았다.

서로 존중하는 사이라 그런 것 같았다.

염제신을 비롯한 세 명 모두 고려에서 관직에 올라 지금까지 쌓은 공이 적지 않았다.

그들 모두 내가 믿고 온전히 일을 맡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이들이었다.

“보급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오.”

파죽지세로 올라가는 것은 좋다.

하지만 고립되는 일은 피해야 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이 보급 라인이었다.

깊숙하게 들어갈수록 중간에 여진족에게 보급품을 습격당할 가능성이 상당히 컸다.

당연히 이방실도 그 부분에 대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였으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이번 정벌은 언제 끝날 것 같소?”

“커다란 변수가 없다면 가을 무렵에는 송화강 인근 지역의 대부분을 점령할 것이옵니다.”

“혹시 요왕의 움직임은 없소?”

“아직 특별히 보고된 바는 없사옵니다.”

이번 북벌의 가장 큰 변수가 요왕이다.

여진을 공격하고 있으나 요왕의 영토가 어디까지인지 경계선이 매우 애매했다.

옷치긴 왕가가 차지한 영토는 송화강 언저리까지 닿아 있었고 이 시대의 국경선은 정확하게 선을 그어놓지도 않았다.

“괜히 빌미를 주지 않게 주의해야 하오.”

요왕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다.

가능하면 그와의 결전은 미루고 싶었다.

지금 붙어도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려는 더 성장할 테고 그만큼 피해가 줄어들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왕의 상태였다.

아마 그들은 쉽게 밖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할 것이다. 요왕과 그의 왕국이 어떤 상황인지 당연히 나도 들은 바가 있었다.

병상에 누워있는 요왕이 죽기 전까지는 그들 내부의 일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 일이 이렇게 풀릴 줄이야···.’

요왕의 독살 시도에 고려의 책임도 있었다.

과거에 만주 지역에 대한 정보망을 확보하기 위해서 왕가의 시종으로 몇 명을 들여보냈다.

대부분 요왕에 대한 반감이 가득한 이들이 섭외됐는데 그중의 하나가 독살을 시도할 줄은 전혀 생각조차 못 했다.

감찰사의 몇 안 되는 오점이었다.

어쨌든 그로 인해 옷치긴 왕가는 완전히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요왕의 병환이 깊어질수록 왕자들의 사이는 더 벌어졌다.

온갖 음해가 판을 치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걸 보고 웃을 수만은 없었다.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려에서도 훗날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내가 지금 아무리 많은 업적을 쌓아도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다.

아주 먼 훗날은 몰라도 적어도 원자인 왕현과 둘째인 왕곤은 그런 사이가 되지 않길 바랐다.

“혹시 모르니 요동과 요서에도 만주 지역을 주의 깊게 지켜보라고 하시오.”

나는 이방실의 옆에 앉아 있는 이인복을 바라보며 말했다. 감찰사는 왕실의 직속이라 좌의정인 염제신이 아닌 영의정이 관리했다.

김첨수의 직속 상관이자 과거에 감찰사를 이끌던 이인복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만주 지역은 감찰 어사 정도전이 맡아서 지켜보고 있으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그와 관련된 보고를 받기는 했다.

현재 원나라는 한방신이 맡고 있었고 만주는 정도전이 맡고 있다고 했다. 아직 그의 나이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나 머리가 좋은 이였다.

충분히 자신의 역할은 다 할 것이다.

그 외에도 삼정승이 가져온 사항은 많았다.

남부 지역에서 대단위 생산을 하고 있는 목화부터 올해 본격적으로 수확될 거라 예상되는 고추와 감자도 거기에 포함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내가 기대하는 것은 고추였다.

재배가 그리 쉬운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씨앗 확보가 가장 많이 되었다.

지난해 수확한 고추 덕분에 올해 내가 먹을 정도의 고춧가루는 확보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 덕분에 요즘 나오는 수라상의 요리는 기존보다 무척 다양해지고 있었다.

떡볶이와 김치찌개까지.

내가 그토록 바라던 음식이었다.

MSG가 없어서 그런지 아직은 기억 속의 그 맛이 나오진 않고 있었다. 천연 조미료만으로 그 맛을 내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았다.

더구나 시행착오도 적지 않게 있었다.

자취생이었던 나는 요리와 거리가 멀었다.

편의점 도시락과 레토르트 그리고 라면 같은 것들로 대충 때우는 날이 무척이나 잦았다.

당연히 요리 같은 것에 대한 지식도 거의 없었고 죽기 전까지 먹어본 음식의 종류도 그리 많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결국에는 수라상을 차리는 사선서(司膳署)가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수준이었다.

내가 말하는 것만 듣고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탓에 실패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당연히 그때마다 가장 고생하는 것은 기미 상궁이었다. 그래도 여러 시도 끝에 완성된 음식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다.

확실히 사선서 사람들의 손맛은 일품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 없었다.

언제 흉작이 나거나 병충해가 생길지 모른다.

고려 전체에서 안정적으로 수확량이 나올 때까지 계속 주의 깊게 지켜봐야 했다.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다시 신대륙에서 다른 품종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아직 장사의와 배유형이 타고 간 탐사선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없는 것이오?”

지금쯤이면 돌아올 때가 되기는 했다.

벌써 그들이 떠난 지 18개월 정도가 지났다.

왕복으로 오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지금쯤 적어도 연주에 도달했어야 하는 시기였다.

늦어지는 만큼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새롭게 가져오는 작물이 있더라도 곧바로 경작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내년을 기대하자니 고추와 달리 씨감자 같은 것은 보관하기 쉽지 않았다.

처음에 장사의가 가져온 것도 대부분 심어 보기도 전에 썩어서 버려야 했다.

그것만 아니었더라도 더 빨리 고려 전체에 보급이 되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연주에서 보급선이 돌아왔는데 아직 그들에 대한 소식은 없다고 하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염제신이 했다.

현재 연주에 대한 보급은 그가 관리했다.

매년 서너 차례씩 떠나는 보급선은 식량 등을 가득 싣고 떠났고 다시 돌아올 때는 유황과 철광석 등으로 선창을 채웠다.

지난해부터 채광하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아직은 투자한 비용에 비해서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으나 조금 길게 봐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지난해 연주 안렴사 왕수가 노력한 덕분에 본거지로 삼을 연주성이 지어졌다.

아직 성이라 부르기는 조금 민망했다.

집도 그리 많지 않았고 성곽도 올리지 않은 상태였다.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연주에 그들을 위협할 원주민은 없었다.

이미 반도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원주민은 연주의 백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덕분에 인구도 늘어났다.

처음에 오백 명의 인구로 시작된 연주는 추가로 보내진 장인들까지 포함해서 벌써 삼천 명이 넘어갈 정도로 성장했다.

그만큼 개발도 빨라지고 있었다.

광산 개발과 별개로 연주성 인근의 땅에 대한 개간도 폭넓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가장 시급한 것이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올해부터는 어느 정도는 자급할 수 있을 거라 기대 중이었다.

“적어도 둘 중의 하나라도 돌아왔어야 하는 것이 아니오. 혹시라도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소.”

“지난번에도 한동안 무소식이었으나 무사히 돌아왔으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우의정의 말이 맞사옵니다.”

염제신도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한동안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마친 후.

가지고 온 안건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는데 삼정승은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뭔가 평소와 다른 분위기였다.

“아직 보고할 것이 남은 것이오?”

내가 묻자 그들은 서로 눈빛을 나누더니 영의정인 이인복이 대표하여 입을 뗐다.

뭔가 중요한 말을 하려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번의 북벌로 인하여 상당수의 여진족을 통치하게 되었으니 고려도 다시 칭제건원(稱帝建元) 하시는 것은 어떠하시옵니까?”

칭제건원이라···.

나보고 황제가 되라는 말이었다.

최근 분위기를 보면 놀라운 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나를 향해 광종의 재림이라 불렀다.

광종의 북방 정책과 칭제건원을 했던 시기와 지금의 고려는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여진족 계통의 북방 민족을 발아래 두려면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기는 했다.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기 전부터 독자적인 천자국이었고 고려의 국왕은 해동천자(海東天子)라 불렀다.

역사로 보나, 영향력을 보나.

고려는 현재 제국이 되기 충분했다.

오히려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멀리는 마두라이부터 연주 그리고 왜국을 비롯해서 동남아의 국가들까지 고려의 영향력이 상당히 강해지고 있는 요즘이다.

팔관회의 규모도 매년 커지고 있다.

유구(오키나와)와 교지국(베트남) 그리고 섬라곡국(태국) 등에서는 매년 고려에 사신단을 보내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시아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규모로 무역을 하고 있는 고려였다.

원나라의 황실도 유명무실해졌다.

황량한 몽골의 사막 지대를 제외하면 황제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원나라의 영토는 쪼그라든 상태였다. 고려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이상할 것도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황제 자리에 오르지 못할 것도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까짓거···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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