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42
그날 고지렴은 떠났지만,
손에 옥새를 쥐여주진 않았다.
아직 믿고 맡길 정도의 신뢰는 없었다.
그가 어떤 결과물을 가져오냐에 따라서 옥새를 내어줄 생각이었다. 마음에 드는 제안이 없으면 그만두어도 된다.
하지만 고지렴은 그냥 떠나진 않았다.
내가 직접 쓴 보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마저도 없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거라는 말은 내가 들어도 일리가 있었다.
어떻게 그게 홍건적 손에 들어간 걸까.
나도 아직 그게 의문이다.
분명 대도에서 싸움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궁궐이 함락될 정도는 아니었다.
반성이 이끄는 홍건적은 그 근처에 발도 딛지 못하고 요서로 쫓겨났다.
학생이었을 당시에 사료를 읽을 때도 꽤 궁금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김첨수에게 알아보라 시켰다.
중요한 일은 아니었으나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에 참을 수 없었다.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이럴 때는 장점이었다.
역사 속에 기록된 인물과 만나고 은밀하게 전해지는 여러 야사들을 직접 보고 겪는 것은 상당히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가장 큰 기쁨은 따로 있었다.
원자와 쌍둥이가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도 요동을 차지하고 고려를 키우는 것 못지않게 뿌듯했다.
내가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원자의 나이는 여덟 살이 되었다.
다음 달이 생일이니 곧 아홉 살이다.
걸음마를 떼던 것이 엊그제 같았다.
그런데 벌써 조숙한 모습을 보이는 원자를 보니 시간이 너무나도 야속했다.
그런 아쉬움은 쌍둥이들이 풀어줬다.
쌍둥이는 이제 다섯 살이다.
볼 때마다 부쩍 자라고 있었다.
두 아이는 항상 같이 지냈고 홀로 지내던 원자와 달리 서로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래서인지 아주 깨발랄했다.
원자가 장군감이라고 한다면,
쌍둥이들은 글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유모 역할을 하는 궁녀들은 동화책을 읽어주느라 목이 상할 정도였다.
심지어 역할까지 나눠서 아이들을 위한 작은 공연까지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원자에게도 단짝이 있었다.
장래에 혼인을 약속한 탄야의 딸인 채윤 공주와 원자는 매일 만나는 사이가 됐다.
명목상으로는 스승인 김광재 아래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었지만, 두 아이는 이미 영혼의 단짝이 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외모는 상당히 이국적이지만,
채윤의 고려 말은 아주 능숙해졌다.
눈감고 들으면 채윤이 마두라이 출신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요즘에는 오히려 마두라이의 말보다 고려의 말이 더 편해 보일 정도였다.
탄야가 어린 딸을 일찍 고려로 보낸 게 확실히 적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이제 슬슬 저 아이들도 혼례를 올릴 준비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가진이 있었다.
그녀는 어느덧 서른이 넘어서 성숙미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슬며시 짓는 자애로운 미소가 가장 아름다웠다.
나는 그늘막 아래에 놓여 있는 의자를 권하며 그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줬다.
“적어도 열다섯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소? 백성들에게도 그리 권하고 있는데 더 빨리하는 것은 계면쩍소.”
“하지만 채윤 저 아이가 고려에 온 지 벌써 삼 년입니다. 십 년이나 기다리라는 것도 너무한 일입니다.”
가진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마두라이 술탄은 여전히 전쟁 중이다.
아마 한동안 그런 상황은 이어질 것이다.
그들의 싸움에는 종교적인 문제가 끼어 있기에 누군가가 대륙 전체를 평정하기 전에는 쉽게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저 아이도 내심 불안할 것이다.
만약에 전쟁에서 마두라이가 질 경우.
자신의 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어린 나이였으나 원자보다 훨씬 조숙한 아이라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원자가 열 살이 되는 내년 이 무렵에 약혼식을 하고 정식 혼례는 열세 살에 했으면 하오.”
사도세자도 열 살에 결혼했다.
조선 왕조의 역사상 가장 최연소였다.
그걸 뛰어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이차 성징은 넘겨야 할 것 아닌가.
대신에 혼례를 약속하는 약혼식 개념의 절차는 밟기로 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나저나 평양에 새로 지은 공방에 요즘 출입한다고 하던데 마음에 드시오?”
“개성에 있던 곳에 비해서 상당히 깔끔하고 좋습니다. 더구나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것도 마음에 듭니다.”
가진은 출산을 한 이후.
공방에서 거의 손을 뗐다.
그래도 여전히 관심이 꽤 많았다.
원자가 태어나고 쌍둥이까지 출산하며 자연스레 점점 더 멀어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들도 꽤 컸다.
이제는 그녀에게도 여유가 생겼다.
그런 탓인지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에 기존의 공방을 상당히 그리워했다.
하지만 면포 공방은 개성에 남겨놨다.
그 지역에 사는 이들의 생계 수단을 빼앗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예 새로 건물을 올렸다.
땅은 남아돌고 인력도 있으니 제법 커다란 건물을 지었는데 그곳에서 만드는 것은 민간에 파는 용도는 아니었다.
일종의 군수 물자라 보면 되었다.
병사들이 입는 옷부터.
잠을 자는 막사와 신발까지.
거의 모든 것을 만들고 있었다.
백성들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고려는 그들에게 적당히 저화를 나눠줬다.
이제 저화는 완전히 안착했다.
시전과 상인들만 쓰는 것이 아니다.
일반 백성도 요즘에는 저화를 어느 정도는 다들 보유하고 있는 중이었다.
몇 해 전에 가뭄이 심해지며 잠시 휘청였던 때도 있었으나 간신히 고비를 넘겼다.
그렇게 물물교환 시대가 저물었다.
이제는 저화 몇 장만 들고 시전에 가도 원하는 대부분의 물건을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게 되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백성들이 생산하는 것을 사들이는 상단들의 경쟁 덕분이다.
고려 최고의 상단이 된 동오.
그리고 서서히 저물어가는 지경탁.
그 외에도 여러 상단이 급부상하고 있는 요즘인데 가장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다.
나주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상단이다.
그들은 평양까지 이어진 도로를 따라 수레로 물건을 유통하며 부를 쌓았다.
“하지만 워낙 지출이 많다 보니 내수 전수인 곽충수의 고민이 상당합니다.”
“쓰는 만큼 충분히 벌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고려는 현재 호황기에 접어들었다.
생산에 효율이라는 개념이 접목되었다.
무엇을 하나 하더라도 더 빠르고 많은 수확을 할 수 있도록 여러 발상이 고안되고 있는 중이었다.
이른바 ‘빨리빨리’ 신드롬이었다.
해야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었다.
도당에서 아래로 전파된 그 분위기는 고려 전역으로 퍼지고 있었다.
이 시대 특유의 여유로움과 낭만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다가오는 초하루에 진혼제가 열린다고 하던데 그날이 맞습니까?”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열리는 진혼제는 홍건적을 상대로 싸우다가 죽은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아무리 압승을 거뒀다고 하더라도 수백 명이나 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니 영혼을 위로해주는 의식이 필요했다.
영혼이나 내세를 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괜히 현충원을 만들고 6월을 호국의 달로 지정한 것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친 이들에게 훈장을 수여 해서 명예를 살려주기 위한 날이었다.
“그러하오. 그쯤이면 전사한 병사들의 유골을 가지고 이원림과 응양군이 평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소.”
“하필이면 왜 그날인가요. 저와 약속했던 것을 잊으신 것은 아니지요?”
“···.”
내가 무슨 약속을 했더라.
갑자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말을 잘못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가능한 태연한 척을 하면서 신소봉을 바라보자 그는 뭔가 열심히 말해주려 했다.
입만 벙긋거리는 것이 상당히 우스운 모습이었으나 나는 상당히 절실했다.
하지만 고요 속의 외침도 아니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가진은 나를 살짝 흘겨봤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미안하오. 최근에 홍건적부터 시작해서 요서와 여진까지 신경 쓸 일이 워낙 많아서 정신이 없었소.”
“그날은 저와 함께 미천사에서 불공을 드리기로 약조한 날입니다.”
아차! 이제야 기억이 났다.
그날은 가진의 아버지인 위왕(魏王) 베이르 테뮈르의 기일이었다.
위왕이 죽은 날짜는 명확하진 않다.
그런데 그날로 잡은 이유는 가진이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었다.
위왕의 기일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가진의 생일을 잊은 것이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기에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하지만 가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불과 달포 전에 홍건적이 쳐들어왔으니 이해를 해줬다.
홍건적이 침입한 후부터.
내가 잠드는 시간은 줄었다.
요즘에는 고작 두어 시진 자나?
그 이상은 잠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가진이었다.
하지만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잊었구려.”
“괜찮습니다. 그날 저녁에 시간이 되십니까?”
“없던 시간이라도 만들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런데 아버님의 신주(神主)을 모시기에는 미천사가 너무 작지 않소?”
평양에도 사찰이 여럿 있다.
천도를 하며 궁궐 같은 사찰도 지었다.
수도로 지정되면서 사람이 늘어나니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여러 차례 개혁을 했으나 여전히 고려와 불교는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나마 개혁의 효과가 있기는 했다.
사찰과 승려가 가진 이권과 권리를 빼앗고 강제로 수를 줄이니 은연중에 벌어지던 부패도 급감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자 위기를 느낀 고려의 불교는 백성에게 불심을 전하고자 하는 불심종(佛心宗, 선종)이 득세 중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거기에는 왕사인 보우의 영향도 컸다.
선종의 종파를 통일시킨 그는 불교계 전체의 수장이 되었다고 봐도 되었다.
최근에는 나옹혜근과 함께 선종과 교종을 통합하려고 애를 쓰고 있으나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커다란 사찰은 사람이 많이 몰려서 번잡합니다. 게다가 제가 방문할 때마다 호위 때문에 불자들이 올리는 불공에 방해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아무리 미복 잠행을 나가더라도,
나와 가진에게는 많은 이들이 붙는다.
적어도 수십 명이 움직이는 데다가 가진이 불공을 드리면 그 안으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을 것이 분명했다.
“알겠소. 그럼 그날은 진혼제를 마치고 함께 미천사로 갑시다.”
*
가진과 대화를 나눌 무렵.
평양의 외진 곳에 있는 움막촌.
그곳은 평양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제법 많이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평양에서 일을 하지만, 그곳에 집을 구하지 못한 하층민이 살았다.
그들이 하는 일은 다양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다른 이들이 하기 꺼려하는 힘든 일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수도 상당히 많아서 천여 명이 넘어설 정도였다. 하지만 워낙 많은 이들이 매일 들어왔다가 나가는 터라 서로의 얼굴도 잘 몰랐다.
그런 움막촌에 한 남자가 들어섰다.
이곳이 익숙한 건지 그는 미로와 같은 움막 사이를 걸어서 순식간에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거기에는 주변의 움막보다 훨씬 큰 움막이 지어져 있었다.
그는 안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경의를 표했다.
“사도를 뵈옵니다.”
움막의 주인은 편조였다.
지금껏 감찰사에게 계속 쫓기던 그가 평양 인근에 나타난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절대 자신은 잡히지 않을 거라 믿었다.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백련교도들의 헌신 덕분이었다.
매번 위기의 순간이 있을 때마다.
백련교도들은 목숨을 걸고 사도인 편조를 탈출시키는데 온 힘을 다했다. 스스로 미끼가 되어 잡혀간 이도 있었다.
그만큼 백련교도에게 그의 존재는 거의 신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찌 되었소?”
“예상대로 초하루에 불공을 드리러 작년과 같은 사찰로 간다고 합니다.”
“미천사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그날은 제가 숙위를 맡는 날이니 걱정 마십시오. 수하 중에 절반 이상은 이미 포섭된 자들로 채웠습니다.”
상당히 자신 있는 얼굴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일 년 가까이 노심초사 이 기회를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고려의 왕을 지키는 이들을 뚫어내기 쉽지 않았다. 특히, 이원림 때문에 허사가 된 적이 많았다.
그가 가진 신중한 성격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현재 그는 숙위를 담당하던 홀치 중의 일부와 응양군을 이끌고 요동으로 떠나서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평소에 비해서 호위하는 수준이 절반 가까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간 수없이 많은 탄압이 있었다.
백련교도로 의심되면 일단 감찰사에 잡혀 들어가는 것은 기본이었고 상당히 많은 교도가 잡혀서 강제 노역 중이었다.
편조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임금을 잡을 생각이었다.
그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어떻게든 없애야 하는 이였다.
임금이 살아 있으면 백련교도가 바라는 세상이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생각보다 임금은 높은 산이었고 그걸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백성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탓에 포교 활동도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곁을 지키는 이들은 홀치인데 자타공인 고려 최고의 무사들이었다.
혼자서도 수십 명의 백련교도를 상대할 수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편조에게도 지금까지 준비한 것이 있었다.
승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 우리 교단의 모든 것을 걸었으니 절대 실패하면 아니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