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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39화 (139/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39

사방에서 날아온 전서구.

거기에 담긴 내용은 요양성에 곧바로 전달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감찰사에서도 동일한 첩보를 받았다. 여전히 홍건적에 대한 그들의 정보망은 살아 있었다.

대도에서 펼쳐진 전투에서 감찰사의 정보원 중의 상당수가 죽었다.

그러나 수뇌부에 심은 이는 살았다.

거기에 잠입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는데 현재 그는 반성의 밑에 있는 참모 중의 하나로 꽤 신임을 받았다.

그는 최후까지 반성의 곁에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탈출할 예정이었다.

어쨌든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홍건적 내부의 불화는 예견된 일이다.

오히려 해당 작전을 펼친 한방신은 너무 늦게 효과가 나온 것이라 생각했다.

정도전을 제외하면 다들 대도 공략에 실패함과 동시에 흩어질 거라 여겼었다.

그래서 여러 첩보를 일부러 이사제를 통해서 흘려준 것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조금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했다.

홍건적 무리에 바보만 모여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름 머리를 쓰는 이도 있었다.

그전에도 내부에 숨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간자를 잡기 위해서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린 적도 있었다.

혹시라도 기만 작전일지 몰랐다.

만주로 향하던 이들이 언제 뒤돌아서 요동을 향해서 달려올지 모르는 일이다.

마지막까지 주의 깊게 봐야 했다.

감찰사는 그들이 함께 몰려와도 고려가 충분히 막아낼 거라 믿고 있으나 뒤통수를 맞는 것은 정말 기분 나쁜 일이다.

당연히 손을 놓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만주쪽으로 향한 사류와 관선생에게도 정찰대와 감찰사의 정보원을 붙여놨다.

혹시라도 그들이 중간에 마음을 바꿔서 요동으로 향하면 곧장 알게될 것이다.

그런 여러 조치가 취해질 무렵.

요동으로 향하던 반성이 이끄는 홍건적은 과거에 모거경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도 비슷한 일은 당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었다.

가장 큰 차이는 습격의 규모였다.

당시에는 십여 명부터 시작해서 요하강 부근에 도달할 때까지 아무리 많아야 수백 명이 전부였다. 습격으로 인해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제외하면 크게 타격을 줄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지금은 조금 달랐다.

처음부터 수천 명 단위로 움직였다.

요서 지역을 헤집고 다니는 그들의 정체는 이원계가 이끄는 서별초와 정찰대 그리고 응양군이 합쳐진 부대다.

그렇게 모으니 병사들의 숫자만 오천 명에 달할 정도였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말을 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럇! 단숨에 홍건적을 돌파하라.”

이원계가 앞장서자 그 뒤로 서별초가 칼을 뽑아 들고 맹렬한 기세로 뒤따랐다.

그와 별개로 정찰병과 응양군은 뒤에 머물고 있었다. 대부분의 병사가 화승총과 활을 쥐고 있었다. 돌격 신호와 동시에 천여 자루의 화승총이 불을 뿜었다.

지금까지 고려가 온힘을 다해 만든 화승총의 대부분이 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

타아앙! 탕! 탕!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홍건적의 행렬은 가늘고 길었다.

아무리 6만 명이 있더라도 정작 고려군을 상대하는 것은 수천 명 단위에 불과했다.

사람이란 습관적으로 길을 따라 걷는데 요서 지역의 길이 넓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 탓에 행렬은 많아 봐야 4열도 안 되었다. 그들이 기마병의 돌파를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서별초가 말을 타고 돌파하자,

순식간에 와해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은 서별초가 휘두르는 언월도에 베였으나 말에 치여서 쓰러지기도 했다.

그 이전에 쏘아진 천여 자루에 달하는 화승총의 화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화포에 비해 탄환은 작지만,

천 발이란 물량 공세는 대단했다.

첫 사격만으로 쓰러진 홍건적이 이백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그로 인해 생기는 심리적인 영향이 적다고 할 수 없었다.

최근에 만든 화승총은 총열이 훨씬 더 길어진 덕분에 사거리도 비약적으로 늘었다.

더구나 다들 말을 타고 있었다.

홍건적이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움직이면서 총을 장전할 수는 없으나, 다가오면 회피 기동을 했다.

한 차례 사격을 한 후에 재장전을 하자 활을 들고 있는 나머지 병사들은 서별초를 향해 양옆에서 달려오는 홍건적을 막았다.

“준비되는 대로 쏘아라!”

응양군은 이원림이 이끌었다.

윤해가 자리를 양보한 덕분이다.

평소에 그는 이원림이 고민을 많다며 전하께 여러 차례 간청을 올렸다.

그게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잠시 둘의 역할은 바뀌었다.

윤해가 궁궐의 숙위를 맡았고,

이원림은 응양군과 함께 차출됐다.

애초에 홀치와 응양군은 대부분의 훈련을 함께했기에 위화감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지원 사격이 이어지자,

이원계는 서별초를 이끌고 반원을 그리며 다시 다른 행렬 쪽으로 쇄도했다.

S자를 그리며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상당히 많은 훈련을 한 덕분에 그들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상당히 유려했다.

“조금만 더 버텨!”

“지원군이 오고 있으니 포기하지 마라.”

“뭣들 하는 것이냐, 어서 화살을 쏘아라!”

홍건적도 마냥 당하지는 않았다.

그들도 지난 1년 가까이 온갖 전투를 겪은 숙련된 병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심지어 대도에서 그들을 아껴놨다.

반성의 무장들은 반격을 준비했다.

서별초 중에도 화살에 맞거나 갇혀서 죽는 이들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때 멀리서 나팔 소리가 들렸다.

자칫 포위 당할 수 있다는 신호였다.

후퇴를 알리는 북소리까지 울리자 이원계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물러났다.

서별초도 흐트러짐 없이 그를 따랐다.

지난해 이자춘이 죽은 뒤로 서별초는 이원계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그렇게 첫 번째 습격은 끝났다.

하지만 홍건적은 그 상황에서 쫓아갈 방법도 없었다. 그들이 보유한 말의 숫자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더구나 어설프게 보내면 그나마 있는 것도 모두 잃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말을 타고 있다고 기마병이 아니다.

대부분 말 위에서 싸우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간신히 타고 있는 수준이었다.

만약에 만주로 떠난 관선생의 철기가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날부터 홍건적은 갈려 나갔다.

이동하자니 서별초가 그 틈을 노리고 돌격을 하고 뭉쳐서 기다리면 멀리서 응양군과 정찰대가 화승총을 쏘고 빠졌다.

한곳에 밀집되어 있는 병력은 살아있는 거대한 과녁에 불과했다.

후위의 보급 부대도 위협당했다.

약간의 틈만 보이면 고려군으로 의심되는 이들이 불을 놓고 도망가고 있었다.

그 외에도 기묘한 일이 자주 벌어졌다.

어느 날에는 대장기를 도난당해서 사기가 떨어졌고 뭘 먹은 건지 배앓이를 하거나 죽는 이들도 제법 많이 발생하고 있었다.

심지어 저주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렇게 한 번 습격을 당할 때마다.

수천 명씩 죽어 나가니 병사들의 사기는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6만 명이던 병력이 4만 명까지 줄어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러다가 요동에 들어서기도 전에 완전히 산산이 조각나서 분해될 것 같았다.

반성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해보려 애를 썼으나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고려군은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정면으로 붙으면 당연히 이길 수 있다.

아무리 잘 싸우는 이들이라도 숫자의 차이를 극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고려의 기마병들은 철저하게 치고 빠지는 작전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굳이 무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쯤 되자 반성도 인정했다.

요동이 아닌 만주로 가야 했다.

아니 병력을 나누는 것부터 잘못됐다.

하지만 지금 후회한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고려군은 쉽게 홍건적을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주원수의 생각은 달랐다.

아직 4만 명이 넘는 병사가 건재하니 더 늦기 전에 뭉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만주로 가서 사류와 관선생의 병사들과 합류해야 합니다.”

주원수는 간절하게 애원했다.

더 버텨봐야 병사만 잃을 뿐이다.

하지만 반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류에게 고개 숙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단순하게 한번 창피당하면 될 일이라 볼 수는 없었다. 사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을 아래에 놓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주원수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이대로 더 버텨봐야 남은 병사만 계속 잃게 될 것이다. 그쯤 되자 차라리 반성은 생각을 조금 달리하기로 했다.

굳이 요동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그는 자신의 생각이 맞는 것인지 주원수에게 물었다.

최근 들어 계속된 실패 때문에 점점 더 판단하는 것에 신중하게 된 그였다.

적어도 자신보다 머리가 좋은 주원수라면 어느 정도 믿을 수 있었다.

“차라리 요서 지역을 차지하고 재기의 기회를 노리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좋은 생각입니다. 괴력난신 같은 고려군과 싸울 바에는 고가노가 훨씬 쉬운 상대이기는 합니다.”

“바로 움직일 수 있게 준비하시오.”

결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반성도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고려군은 그냥 놔주지 않았다.

발길을 되돌려 요서의 부신성(阜新城)으로 향하는 중에는 계속 추격을 당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자.

고려군이 나타나지 않기 시작했다.

그제야 반성과 주원수는 안도했고 모처럼 마음을 놓고 쉰 후에 고가노가 지키는 부신성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홍건적의 공성 능력은 생각보다 좋았다.

그중에서도 반성의 병사가 출중했는데 지금까지 산서성을 비롯해서 여러 성을 함락시킨 경험이 있는 이들이었다.

반면에 부신성에 있는 고가노의 병력은 2만 명에 불과했다.

요서를 둘로 나눈 탓이었다.

유익과 고가노는 손을 잡았지만,

같은 곳에서 머물지는 않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요서 지역의 효율적인 방어를 위함이라 말했으나 둘 사이에 상하 관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고가노는 유익을 믿었다.

그의 됨됨이를 믿는다는 뜻은 아니다.

홍건적이 요서 지역을 지나갈 무렵에 둘은 요서를 지키기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한다고 이미 약속되어 있었다.

황실에서 보낸 칙서도 있었기에 당연히 지원군을 보내줄 것이라 생각했다.

유익이 병사를 데리고 저들의 뒤를 치면 병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승산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유익의 지원군은 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유익이 손절했다는 뜻이었다.

결국, 부신성은 보름 만에 함락됐다.

고가노가 최대한 버텨보려 했으나 성문은 모두 부서졌고 한 번 뚫리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홍건적이 밀려 들어왔다.

예전에 고려군에게서 도망쳤듯이 이번에도 어떻게든 도망치려 했으나 고가노는 결국에 부신성에서 목이 잘렸다.

그와 동시에 홍건적들은 그간 고려에게 시달렸던 분풀이를 부신성에 했다.

약탈과 강간은 기본이었고 심지어 어떤 미친놈은 앞으로 자리 잡아야 할 성인데 방화까지 해서 아주 난장판이 됐다.

하지만 반성은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모처럼 사기를 올릴 기회였다.

“동쪽에서 대규모 병사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때 성문 위에서 누군가 외쳤다.

처음에는 사류의 병사들인 줄 알았다.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만주의 요왕에게 쫓겨서 이쪽으로 왔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조금씩 다가올수록 뭔가 이상했다.

일단 휘날리고 있는 깃발이 생소했다.

다급하게 성문 위로 올라간 반성은 너무 멀어서 그걸 알아보지 못했으나 눈이 좋은 병사 몇 명이 뭘 봤는지 경악했다.

“저 깃발은··· 고려군의 것입니다!”

“제대로 본 것이 맞느냐?”

“고려군이 맞습니다. 요동 출신 병사들이 하는 말이니 확실합니다.”

병사들의 눈이 틀리지는 않았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에서 휘날리고 있는 깃발은 곰과 멧돼지 그리고 호랑이를 형상화한 고려 특유의 대장기들이었다.

그게 휘날린다는 것은 이방실과 서달 그리고 변안열 등이 직접 이곳까지 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반성은 아직도 이해가 안 되었다.

요동에 있어야 할 그들이 왜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한동안 어떤 말도 못 하고 점점 더 많아지는 고려군을 바라만 봤다.

아무리 못해도 5만 명은 넘어서는 것 같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보름 가까이 쉬지 않고 공성전을 치른 탓에 피해가 컸다. 거의 1만 명 가까이 사망했고 다친 이들이 워낙 많았다.

현재 고려군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이들은 2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더구나 공성 과정 중에 성문도 모두 박살 나서 이곳에서 수성전을 펼치는 것은 무리였다.

그제야 고려군이 갑자기 추격이 멈춘 건지 이해가 되었다. 애초에 이럴 목적으로 순순히 놔준 것이 아니었을까.

고려군은 어부지리를 노린 것이다.

반성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쓰고 있던 투구를 내던졌다. 이미 그는 고려군에 대항해서 싸우겠다는 의지조차 없었다.

“완전히 당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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