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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37화 (137/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37

9월이 끝나갈 무렵.

연주에서 소식을 전해왔다.

전령이 가져온 지도에는 내년부터 만들게 될 도시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이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부족한 땅이라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기는 했다.

그곳이 어느 정도 완성된 후.

만들어 놓은 비석을 보낼 예정이다.

거기에 새겨진 내용은 지금부터 그곳이 고려의 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하기 위한 것이기에 빼놓을 수 없다.

혹시라도 연주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실패해도 그게 증거가 될 것이다.

별개로 기록도 많이 남겼다.

모든 역사는 증명이 필요하다.

그게 없다면 뇌피셜에 불과한 것이다.

당연히 내가 지금까지 내린 지시와 연주에서 보내는 서신을 모두 모아서 꼼꼼하게 정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년에는 지도도 만들 예정이다.

고려와 함께 독도부터 대마도 그리고 요동과 연주까지 모두 고려가 소유하고 있는 땅이라고 확실하게 표기해야 했다.

얼추 고려의 지도 작업이 마무리되고 있기에 서운관(書雲觀)의 관리 몇 명과 진서운관사 진영서가 작업할 예정이다.

“이번에 연주에서 곰 가죽을 보내왔는데 그 크기가 실로 엄청납니다.”

평소 이인복은 감정 기복이 없다.

그런 그마저도 거대한 곰의 가죽을 보더니 놀랐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마두라이에 있다는 코끼리보다는 작아도 고려에 서식하는 일반적인 반달무늬를 가진 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것들이 있는 연주에 자리 잡은 이들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동물원 같은 곳에서 어린 시절부터 봤던 거라 그다지 감흥이 없다.

오히려 혐오스러운 느낌이었다.

그걸 곁에 놔둘 생각은 없었다.

“그건 가져가서 미술관에 전시하시오.”

“하오나 전하께 진상하기 위해서 특별히 가죽에 손상 없이 잡아서 무두질을 한 것이라 들었사옵니다.”

“괜히 이런 것들을 구하기 위해서 병사들을 데리고 엉뚱한 짓을 할까 싶어서 더 가까이 놓기 두려운 물건이오.”

잘 보이기 위해서 뭔들 못할까.

아마 내가 이런 것들을 아끼는 모습을 보이면 호랑이와 표범 같은 것을 잡기 위해서 서로 경쟁할 것이 뻔히 보였다.

가죽을 상하지 않게 잡으려다 병사들만 다치고 고생할 것이다. 영의정인 이인복도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곧장 알아차렸다.

두말없이 지시대로 하겠다며 대답했다.

안 그래도 요즘 그것 때문에 골치가 아픈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호랑이의 수를 줄여야 할 필요성이 있사옵니다. 최근에 각지에서 올라온 피해 사례가 꽤 되옵니다.”

“우의정 정세운과 논의하여 화승총에 능하고 실력 좋은 이들을 착호군(捉虎軍)으로 선발하여 보내시오.”

“어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호랑이를 잡는 착호군은 조선 시대에 만들어지는 부대지만, 고려에서 이미 어느 정도 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정식 부대는 아니었다.

일종의 명예직으로 보아도 되었다.

필요할 때마다 홀치와 응양군 등에서 능력이 뛰어난 이들을 차출하여 반년에서 일 년 정도 복무하는 형식이었다.

그에 따른 특혜도 분명히 있었다.

목숨을 걸고 호랑이를 잡으니 챙겨줄 거는 챙겨줘야 했다. 일단 승진에 상당히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호랑이 가죽을 팔아서 나오는 저화는 그들이 나눠서 가져갔다.

호랑이 가죽은 상당히 비싼 값에 팔리는 터라 제법 큰 저화를 만질 수 있었다.

한동안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던 중에 김첨수가 만춘전 안으로 들어왔다.

보고할 게 있다고 왔는데 들어보니 그리 중요한 내용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고작 수십 호에 달하는 여진의 유민이 조인벽을 통해 내투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런 일까진 내게 고할 필요는 없소.”

여진족이 내투하는 일은 흔했다.

달포에 서너 번은 넘어오는 편이다.

수십 호 정도면 많아야 삼백 명 단위를 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도는 함경도의 안렴사가 알아서 처리할 수준이었다.

그러나 김첨수의 표정을 보니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알아야 할 게 더 있는 것이오?”

“예전에 함경도로 파견한 감찰 어사에게 지시 내리신 것이 있다고 들었사옵니다.”

그게 뭐더라···.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리는 지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매달 내가 말하는 것만 모아도 서책 몇 권 정도씩 기록되고 있을 정도였다.

범위가 워낙 넓었다.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자 김첨수는 퉁두란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시켰던 일을 상기 시켜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번에 내투한 여진의 부족 중에 퉁두란이 있는 것이오?”

“함경도에 파견된 감찰 어사 임박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러하옵니다.”

솔직히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내투하는 것은 거의 십 년 후이기 때문이었다. 내투하기 전에도 의형제였던 이성계와 몰려다니긴 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이 될 줄은 몰랐다.

더구나 이성계는 여전히 대마도에 머물고 있는 터라 계기가 없었을 텐데 이상했다.

“그의 부족은 안전한 곳으로 정착지를 지정해주고 퉁두란은 궁궐로 부르시오.”

*

그로부터 얼마 뒤.

퉁두란은 평양으로 불러졌다.

그의 첫인상은 동안이라는 것이다.

나보다 겨우 한 살 어린데 액면가를 보면 거의 열 살쯤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노안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고 그가 특별한 것이었다.

더구나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그의 초상화를 많이 본 덕분이다.

나는 그에게 자리를 권한 뒤에 평양에 온 기분에 대해서 물었다. 여진족이 사는 북부와 이곳은 많은 것이 다를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아시아에서 평양만큼 발전한 곳은 없을 것이라 자신했다.

“소인이 살던 곳을 생각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는 기분이옵니다.”

아무리 유목민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화주 같은 성은 가본 적이 있다.

하지만 평양은 그런 곳과는 달랐다.

길쭉하게 뻗은 길은 포장되어 있어서 비 내리는 날에도 진흙이 묻지 않았고 수없이 많은 수레가 오가는 시전도 번화했다.

그곳에는 신기한 게 많았다.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을 팔고 있었다.

마두라이에서 넘어온 설당은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물건을 모아 놓은 것 같았다.

덕분에 시골 촌놈이 된 것처럼 구경을 하느라 바빴다는 말에 나는 크게 웃었다.

하지만 그를 놀리려는 의미는 없었다.

“그 말을 들으니 뿌듯하구나.”

지금까지 들인 노력이 헛되진 않았다.

아직 농업에서 상업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바꾸는 과정에 불과했으나 확실히 예전과는 비교가 불가능했다.

생산도 중요하나 그걸 유통하고 판매가 되어야 더 의미가 있기 마련이다.

기분이 좋아진 탓일까.

나도 모르게 그걸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퉁두란은 그런 내 말을 아주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짤막하게 탄식을 뱉었다.

“왜 그러느냐?”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빨리 고려로 내투할 걸 그랬사옵니다.”

“아직 늦진 않았다. 지금이라도 다른 여진의 부족에게 가서 고려의 품으로 들어올 수 있게 설득하거라.”

여진족은 흡수할 대상이다.

그냥 그들을 놔둘 생각은 없었다.

이 무렵이면 대충 여진의 인구는 30만에서 40만 명 정도로 추정되었다.

생각보다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신 워낙 넓게 퍼져 있었다.

그들이 고려로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그리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낙농업에 종사시킬 일꾼이다.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그들을 한곳에 정착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분주하게 돌아다녀야 한다.

북부 지역을 고려가 차지하더라도 지배력을 확장하려면 여진의 목동이 오가며 땅을 관리해주어야 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북부에 더 많은 도시가 생기기 전에는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정착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땅을 내줄 생각이었다. 당연히 그냥 주는 것은 아니고 경작권을 대여하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감추지 않고 말해주자 퉁두란은 감탄한 표정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소인이 여진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나 전하께서 저희 부족을 이렇게 생각해주시다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앞으로 그대가 해줄 일이 많을 것이다.”

“분골쇄신하는 마음으로 충성을 바치겠사옵니다. 소인이 감히 전하께 한 가지 청을 드려도 되옵니까?”

“말해 보거라.”

아직 어떤 공도 세우지 않았지만,

앞으로 중요한 일을 하게 될 이였다.

퉁두란은 조인벽과 함께 나를 대신하여 여진족의 흡수를 주도해야 할 이였다.

이성계의 역할이 대폭 줄었으니 누군가 그 자리를 채워야 했다.

여진족의 땅은 무척 중요했다.

그들이 여전히 씨족 부락에 머물며 대부분 농사를 짓지 않아서 그렇지 그들이 현재 차지하고 있는 삼강 평원은 무척이나 비옥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심지어 삼강 평원은 넓이도 엄청나서 거의 한반도 절반만 한 규모였다.

솔직히 말하면 한반도를 내줘도 그곳을 가지면 남는 장사라고 봐도 되었다.

그곳만 잘 개간해서 끝까지 지켜내도 인구 증가는 순식간에 이뤄낼 것이다.

홍건적의 공격을 막아낸 후에 가장 먼저 노릴 곳이 바로 그곳이다. 그런데 퉁두란의 부탁은 생각보다 소소했다.

“언제가 되었든 나중에 김삼선과 그의 형제들을 제 손으로 처단할 수 있게 해주시면 평생의 은혜로 알겠사옵니다.”

김삼선과 김삼개.

둘은 어차피 처단할 이들이다.

이성계의 외종형제이기도 한 그들은 조금의 틈을 보이면 곧장 여진족을 이끌고 고려를 쳐들어올 이들이었다.

나는 흔쾌히 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들이 마을을 습격해서 꽤 많은 이들이 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그때가 되면 당연히 선봉에 서서 싸울 기회를 주겠소.”

퉁두란은 상당히 기뻐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부족의 남자들을 모두 데리고 고려군에 들어오겠다며 약조했다.

현재 그의 아래 있는 부족민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나 아버지를 설득시켜서 나머지 부족민도 데려올 생각인 것 같았다.

그들만 합쳐도 최소 수백 명이다.

더구나 여진족을 대표하는 얼굴이 필요했다. 현재의 고려는 차별 없는 유민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중이었다.

민간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나 적어도 관직은 출신을 가리지 않고 등용 중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서달과 주덕유였다.

그리고 왜국의 막부 출신의 지방관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 충성심을 증명하고 고려를 위해 일할 능력만 있으면 되었다.

마두라이와 회회인 출신도 있기에 다국적 정부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당장 그를 최전선에 내보낼 수는 없었다. 다른 모든 무관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훈련은 받아야 했다.

“퉁두란에게 중사 계급을 주고 그가 데리고 오는 병사들과 함께 훈련부터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오.”

그쯤에서 퉁두란을 내보낸 뒤.

나는 곁에서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이인복에게 그를 맡겼다.

직접 관리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어차피 이인복도 우의정인 정세운에게 그를 넘길 것이다. 처음부터 하급 무관 대우를 해주는 이유는 그가 데리고 오는 병사의 수를 감안한 것이었다.

“그리하겠사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한방신이 보낸 전령이 들어왔사옵니다. 상당히 급한 안건이라 지금 확인하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뭔가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내가 손을 내밀자 그는 서신을 건넸다.

그걸 펼쳐서 읽은 나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던 일이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거기에는 대도에서 반성이 이끄는 홍건적이 패퇴하여 요서 방면으로 이동 중이라고 적혀 있었다.

역사는 끝내 바뀌지 않았다.

지금쯤 요서 부근까지 도달했을 텐데 결국에는 요동까지 오게 될 것 같았다.

일단은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서 미리 움직여야 했다.

“요동에도 이 소식이 전해졌소?”

“전령의 말에 의하면 비사성으로도 전령이 탄 배가 떠났다고 하옵니다.”

“혹시 모르니 추가로 사람을 보내시오.”

가던 길에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내가 그 부분을 지적하자 이인복은 김첨수에게 지시를 내리겠다며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고려의 모든 병력을 관리하는 우의정을 불러들였다.

고려에 닥친 마지막 고비였다.

이것만 잘 넘어서면 앞으로 브레이크 없는 질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지난 10년간 이 순간을 대비해왔기에 불안한 마음 같은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들인 노력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자신감이었다.

“전군에 전투태세를 갖추라 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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