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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35화 (135/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35

날이 따뜻해질 무렵.

연주를 향해 왕수가 떠났다.

지난 겨우내 이주 준비를 했다.

오직 이날만을 기다린 그의 곁에는 이백 명의 병사와 삼백 명의 노예가 함께했다.

그런데 배의 숫자가 상당히 많았다.

적어도 마흔 척은 넘어갔다.

보급품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 안에는 오백 명이 반년 이상 버틸 수 있는 수준의 식량 등이 채워져 있었다.

분기별로 보급을 받게 될 것을 생각하면 조금 과했으나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더구나 새로운 거주지를 만들어야 한다.

가능하면 넉넉하게 가져가야 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것인가?”

왕수의 얼굴은 상당히 초췌했다.

지금까지 육지에서만 살았던 그였다.

이번에 생전 처음으로 배를 타는 터라 상당히 심한 멀미에 고통스러워했다.

차라리 풍랑이 심하면 잠시나마 육지에 상륙할 텐데 애매한 수준이 계속되었다.

윤송과 정찰대도 상황은 비슷했다.

대부분 북부 출신이라 말을 타는 것에 익숙한 이들이다. 배를 탄 이들 중에는 해군과 왜구 출신의 노예만 멀쩡했다.

그렇게 며칠 더 바다를 가로질렀다.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서 점차 서늘한 지역에 도착하자 목적지로 보이는 땅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이 맞는 것 같습니다.”

지도를 쥔 수석 항해사가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배의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항해에 지친 이들에게는 천금 같은 희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왕수는 생각보다 신중했다.

“혹시 모르니 다시 한번 확인해 보거라. 확실히 이곳이 맞느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엉뚱한 곳일 수도 있었다.

그들이 가진 지도라고는 대략적으로 해안선이 그려진 것이 전부였다.

자칫 목적지가 아닌 엉뚱한 곳에 정착해서 전하의 어명을 지키는 못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실제로 남포항을 떠날 때.

이점에 대해서 주의하라고 전하께서 신신당부하신 터라 조심스러웠다.

당연히 그가 하는 말을 무시할 수 없기에 각 배에 탄 항해사들이 모두 모였다.

그래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훗날 쿠릴 열도라 불리는 길게 이어진 섬의 끝에 있는 마지막 섬이기 때문이다.

헷갈릴 것도 없으나 그들은 한동안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더니 극심한 부담감 때문인지 잠시 결정을 미뤘다.

“더 정확하게 확인하려면 주변 지리를 살필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주면 되겠는가?”

“이틀 정도만 주시면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거라. 탐색에 나서는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 섬에서 잠시 정비하며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왕수는 윤송을 바라보며 말했다.

계속 바다 위에서 대기할 수 없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나 출발 전에 ‘연도(連島)’라 이름 붙인 섬이라 추측되는 곳에서 재정비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연도는 신대륙과 연결해준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었다.

윤송은 곧장 상륙을 준비했다.

해군을 통솔하는 무관도 있기는 했다.

사지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였다.

그러나 직책상으로 보면 윤송이 더 위에 있었는데 연주로 한정 지어서 보면 윤송이 안렴사 다음으로 권력자라고 봐도 되었다.

그리고 이틀이 더 지난 뒤.

항해사들은 이곳을 연주라 확신했다.

장사의 함대에 타고 있던 화공이 그린 한 장의 그림 덕분이었다. 그곳에 그려진 우뚝 솟은 설산을 이곳에서도 발견했다.

완벽하게 똑같은 형태였다.

“그렇다면 이 섬이 전초 기지가 세워질 연도가 확실하군. 다들 보급품을 내리고 숙영지를 세우거라!”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수십 척에 달하는 배들이 물자를 내려놓기 시작했고 숙영지가 세워졌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나무로 방책을 세우고 간단한 수준의 건물도 세웠다.

“거기 무너지지 않게 잘 올려!”

“하나~ 둘 셋!”

“읏차! 조금 더 당겨 봐.”

우선은 창고부터 지어야 했다.

식량을 아무 데나 놔둘 수 없었다.

당연히 대부분의 병사들이 집을 지어본 경험이 없었는데 공부에서 파견한 관리가 모든 공사를 책임지고 지휘했다.

눈이 많이 오는 북부 지역이다.

대충 집을 지었다가 무너지기 쉬웠다.

생각보다 눈이 쌓이면 무척 무겁다.

북부에 맞는 건축 양식은 따로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말 그대로 전초 기지에 불과한 곳이라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다.

이 섬을 중심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어차피 반도 전체를 차지하기 위해서 온 것이기에 섬이 아닌 육지에 본거지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지리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어디가 적당한지 알 수 없었기에 임시로 정착할 곳을 마련할 무렵에 사지경과 윤송은 탐색 준비를 했다.

“출발 전에 논의했듯이 일단은 식수가 나오는 곳이어야 하오.”

왕수는 꼼꼼하게 지시를 내렸다.

병사들을 보내기 전에 다시 한번 보고 와야 할 것들을 짚어 주었다. 새로운 도시를 만들 때는 여러 조건이 필요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식수였다.

그리고 경작지도 염두에 둬야 했다.

머무는 지역과 경작지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효율이 안 나온다. 그와 더불어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지형이어야 한다.

자급자족이 되기 전까지는 보급에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아무리 부교를 만든다고 하지만,

물이 너무 얕으면 배가 못 들어온다.

그것 외에도 여러 조건이 있었는데 아예 목록으로 만든 것이 있기에 왕수는 그걸 두 사람에게 나눠주었다.

“명심하시오. 토착민과는 최대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되 저쪽이 먼저 공격을 하면 병사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시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몸 조심히 다녀오시오.”

연주에는 여섯 척의 배가 있었다.

보급을 마친 대부분의 배는 돌아갔으나 적어도 움직일 수 있게 남겨 놓은 것이다.

섬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세 척씩 해안선을 따라 올라갈 예정이었다.

그렇게 두 무리로 나눠진 그들은 몇 개월에 걸쳐서 연주의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

그로부터 3개월 뒤.

윤송과 사지경이 돌아왔다.

그들은 연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개척할 땅을 살펴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발이 닿을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높게 치솟은 설산이었다.

반도의 중심부에 치솟은 산맥.

그 높은 곳은 쓸모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곳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그곳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면 해안선 부근밖에 없었다.

더구나 탐사 과정도 쉽지 않았다.

모처럼 다시 한자리에 모이자,

병사들은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낭만은 없더라도 모험의 땅이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만난 것은 연주에 살고 있는 여러 부족의 토착민들이었다.

숫자는 그리 많지는 않으나 사람이 살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그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고려군은 침략자였다.

하지만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었다.

토착민은 화승총의 위력과 굉음에 깜짝 놀라서 굴복했다. 지금까지 발견한 가장 큰 마을이 수백 명 단위였다.

대부분은 어렵지 않게 점령했고 왕수와 고려의 통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더 큰 문제는 거대한 곰이었다.

처음에는 총소리에 놀라서 도망갔지만,

번식기가 된 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전까지는 멀리서 지켜만 보던 녀석들이 이제는 눈에 띄면 일단 달려들고 보았다.

덩치가 산처럼 거대한 야수인데 속도도 빨라서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와··· 덩치가 이따만한 것이 자칫 잘못하면 그냥 당할 뻔했다니까.”

“에이! 무슨 곰이 그렇게 커?”

“이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우리가 화승총으로 분명히 서너 발이나 맞췄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니까.”

그 때문에 병사도 꽤 잃었다.

지금까지 사망한 이만 수십 명이다.

일부는 먹어서는 안 될 것을 주워 먹어서 죽었고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기도 했다.

심지어 왜구 중의 일부는 탈주하다가 죽기도 했다.

당연히 탈출은 모두 실패했다.

아주 운 좋게 몇 명이 배에 올라타도 그들만 가지고 배를 몰 수도 없었고 연도에서 도망쳐봤자 갈 곳이 없다.

대부분의 왜구는 규슈 출신인데 그곳까지 가기도 전에 굶어 죽을 것이 뻔했다.

“이 동네는 가지어(可支漁, 바다사자)도 어마어마하게 크더라.”

“그렇게 커?”

“나도 봤는데 몇 마리만 잡아도 우리 모두가 포식할 정도였어.”

“에이, 그걸 어떻게 먹어.”

“여기에 사는 토착민들은 즐겨 먹는 것 같던데 그리고 가죽도 남기잖아.”

한동안 병사들은 토론을 이어갔다.

그렇게 서서히 그들은 연주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사이에 보급 물자와 함께 추가로 개척단이 왔다.

추가로 수백 명이 온 덕분에 연도는 활기찬 느낌이 가득했다.

이번에 온 개척단은 쓸모가 많았다.

각자 적어도 하나 이상의 특기를 가지고 있는 덕분이었다. 그들 덕분에 도기와 기와 등의 자체 제작이 가능해졌다.

광산 개발의 타당성을 살펴볼 수 있는 이들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와 더불어 상당히 다양한 고려의 종자를 가지고 왔는데 신대륙에서 가져온 감자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어떤 것이 이곳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 알 수 없기게 조금 무식하더라도 꾸준하게 계속 심어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느덧 날이 서서히 추워지고 있기에 왕수의 마음은 다급했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소.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으니 이제 지금까지 살핀 곳 중에 선택해야 할 때가 되었소.”

잠시 수고를 치하해준 뒤.

곧장 연주의 중심지로 삼을 후보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까지 그들이 찾아낸 후보지는 모두 합쳐서 세 곳이다.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충족되었으나 저마다 장단점이 확실히 있었다.

어느 곳은 곰이 많았고,

어느 곳은 토착민이 존재했다.

농사를 지을 곳이 부족한 후보지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척박한 땅이기에 선택의 여지는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저는 동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나오는 둥근 만(灣) 안에 있는 지역이 좋을 것 같습니다.”

윤송은 자신의 의견을 내놨다.

그곳에는 수백 명의 토착민이 살고 있으나 강도 있고 평지도 상당히 넓었다.

경작을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더구나 지형적인 특성 덕분에 폭풍을 피할 항구를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그 주변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이 있다고 들었는데 괜찮은지 모르겠소.”

“그런 것까지 고려한다면 이 땅에 마땅한 곳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척박한 것 같소.”

지금까지 부지런히 다녔지만,

사람이 살만한 곳은 찾기 어려웠다.

솔직히 말하면 왕수는 그리 낙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고려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명을 받고 여기까지 먼 길을 왔다.

아무런 성과 없이 되돌아갈 수 없다.

무능력함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연히 왕수는 그런 수치스러운 일을 감당할 생각은 없기에 지도를 바라보며 윤송이 추천한 곳을 잠시 고민했다.

“일단은 내가 직접 보고 결정하겠소.”

지도만 보고 정할 수는 없었다.

결국에는 자신이 직접 가서 봐야 했다.

윤송도 그럴 줄 알았는지 사지경과 함께 출항할 준비를 했다. 그들은 곧장 윤송이 추천한 곳을 향해 떠났다.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반나절 정도 해안선을 타고 올라가자,

윤송이 추천한 곳이 나타났는데 안으로 들어서자 잔잔한 호수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칼날 같이 느껴지던 매서운 바람도 조금 잠잠해졌다.

이곳은 여름도 선선했다.

앞으로 다가올 겨울이 두려울 정도다.

그때가 되면 바다까지 꽁꽁 얼어버린다고 하는데 칼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였다.

윤송은 그의 옆에 서서 미리 정찰한 정보를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저쪽 지역에 토착민이 사는 마을이 몇 곳이 있기는 하지만, 금방 정리할 수 있을 테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가 해주는 설명을 들으며 왕수는 주변을 살폈다. 이 정도면 아무리 거친 태풍이 와도 큰 피해가 없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그런 탓인지 왕수는 곧장 연주에 처음으로 들어설 도시로 그곳을 낙점했다.

솔직히 대안이 없었다.

더 높이 올라갈 여력이 없었다.

현재 머물고 있는 연도가 신대륙을 향해 떠나는 탐사대의 등대 역할을 할 것이다.

그곳과 멀리 떨어질 수는 없었다.

연주를 세우는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가 그들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년에 이곳을 연주의 본거지로 삼을 테니 옮길 준비를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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