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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34화 (134/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34

산서성의 홍건적.

그들은 네 무리로 나뉘었다.

반성과 사류 그리고 주원수와 관선생의 규모는 생각보다 그리 차이가 없었다.

거의 비슷한 수준의 병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다들 반성의 말은 암묵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이곳이 산서성이기 때문이다.

장사성과 탕화가 각각 산동성 등을 공략할 때 시기적절하게 반성이 이곳을 치고 들어온 덕분에 산서성을 얻었다.

그런 뒤에 북계 홍건적의 새로운 세력 결성을 위해 그가 들인 노력은 상당했다.

이미 중원은 장사성과 탕화 그리고 진우량 등의 걸출한 영웅들이 차지했다.

대부분의 홍건적은 그들의 밑에 모이고 있는 형세였다. 하지만 모두가 그 위세에 굴복할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곳에 모인 이들이 대표적인 예였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를 수장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는 또 아니었다. 같은 자리에 앉아서 동상이몽(同床異夢) 중이었다.

다들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길 바랐다.

그들은 호시탐탐 수좌(首座)를 차지하기 위해 기회만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당연히 수괴들이 거느린 병사들도 현재 상황을 알기에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매번 별거 아닌 거로 신경전을 펼쳤는데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너무 심했다.

“이런 썅! 배식을 이따위로 할래?”

난동을 부리는 것은 네 명의 수괴 중에 사류에게 소속되어 있는 병사들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줄을 서서 음식을 받았는데 사람이 먹을 수준이 아니었다. 건더기는 하나도 없는 허여멀건 한 국물만 있을 뿐이었다.

밥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굶주리지 않기 위해서 홍건적에 들어온 이들이 대부분이라 배식에 민감했다.

지난 가뭄에 가족 전체가 굶어서 죽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수준의 배식이라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열 받는 것은 조금 전에 반성의 병사들이 받은 배식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너무 큰 차이가 있었다.

“다 똑같이 주는데 왜 시비야?”

“장난해? 우리가 눈깔이 삔 것도 아니고 아까 너희들 먹는 거 못 본 줄 알아?”

“귀찮게 하지 말고 안 먹을 거면 꺼져. 뒤에 줄 서 있는 거 안 보여?”

배식을 담당하는 병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꼬리를 올리며 배식에 항의하는 사류의 병사를 세게 밀쳤다.

각각의 무리 중에 반성과 사류의 병사는 유독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과거에 그들은 서로 칼을 겨누고 싸운 적이 있었다.

지금은 평화 협정을 했지만,

그때 죽은 동료가 적지 않았다.

당시의 승자가 사류인데 지금은 반성이 득세하고 있으니 문제였다. 당연히 두 무리는 항상 다투고 주먹다짐도 했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퍼어억!

참다못한 사류의 병사가 홧김에 배식을 담당하던 병사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때부터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서 주먹질을 시작했다.

뒤엉켜서 주먹질을 하는 수십 명에 달하는 병사들을 보고 주원수와 관선생의 병사들은 오히려 환호를 보냈다.

심지어 내기까지 걸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고 싸우는 터라 다들 오히려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여러 구경거리 중에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힘 좀 써봐. 놈들에게 매번 당하는 거 창피하지도 않냐!”

“휘이익! 돈 걸 사람은 나한테 와.”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당연히 반성 장군님 쪽이 이기겠지.”

“인생은 한 방이야. 나는 사류 장군님 쪽에 건다!”

그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갑자기 터져 나온 비명 때문이었다.

모두가 그쪽을 바라보자 팔뚝이 잘린 반성의 병사가 보였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다들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는 선혈로 젖은 어린 병사가 서 있었다.

소년의 상태도 좋지는 않았다.

상당히 많이 맞았는지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는데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핏물이 흐르는 검을 꼭 쥐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반성의 병사들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전혀 없었다.

“이런 미친! 저 새끼 잡아.”

당연히 다들 눈이 뒤집혔다.

싸움에도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절대 병기는 사용하지 않았는데 그걸 어기는 순간에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이곳에도 엄연히 군법이란 게 있었다.

그런데 그걸 어긴 것이었다.

사류의 병사들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이대로라면 연루된 자들은 군법에 의해 교수형에 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누군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뭣들하고 있는 거야? 벌을 받을 때 받더라도 우리 대장한테 받아야지. 저놈들한테는 절대 넘겨주지 마!”

그제야 다들 정신을 차렸다.

칼을 쥔 어린 병사를 잡으려고 달려오는 이들을 막기 위해서 사력을 다했다.

이미 극도로 흥분한 병사 중의 일부는 칼을 뽑기까지 했는데 결국에는 선혈이 낭자한 싸움으로 번졌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급하게 달려온 각 세력의 무관들이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에 연루된 이들은 잡히지 않기 위해서 도망쳤는데 그 짧은 사이에 죽거나 다친 이들만 수십여 명에 달했다.

그걸 본 무관들은 노한 얼굴로 외쳤다.

“샅샅이 뒤져서 반드시 찾아내거라!”

그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산서성 곳곳에서 다툼이 벌어졌다.

원한은 점점 더 쌓여만 갔고 그 와중에 주원수와 관선생의 병사들도 휘말렸다.

그쯤 되자 산서성의 상황은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되고 있었다.

당연히 반성은 분노했다.

지금까지 애써서 세운 탑이 무너졌다.

어떻게든 하나로 뭉치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양보한 그였다. 그가 마음이 넓어서 불러들인 것이 아니었다.

반성은 조금 더 높은 곳을 바라봤다.

탕화와 장사성처럼 되길 바랐다.

한 나라의 왕이 되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중인데 그게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여기저기서 발생했고 각 세력의 수장은 오히려 그의 탓만 하고 있었다.

결국에는 배급부터 숙영지까지.

지역을 나눠서 각자 관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번 냉각된 분위기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작은 일만 터져도 서로를 탓했다.

심지어 관선생은 자신이 데리고 합류한 병사와 철기를 데리고 북쪽으로 떠나려고 마음먹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당연히 이번 일에는 배후가 있었다.

그냥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역시 예상대로 네 명의 수괴들이 서로를 탓하며 헐뜯기 시작했습니다.”

정도전은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이번 일을 진행하면 한방신과 함께 그는 온갖 계책을 냈고 대부분이 성공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생각보다 단순한 탓에 예측에서 어긋난 경우가 없었다.

탐욕이란 것이 살살 긁어대면 곧장 발현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유혈사태도 그가 계획했다.

배식을 하는 이와 받았던 자들 역시 감찰사에 소속된 이들이 연기한 것이다.

당연히 팔이 잘린 이까지 미리 섭외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린 소년은 감찰사 소속으로 홀치 출신의 무사들의 제자였다.

다들 연기력 하나는 인정해야 했다.

감찰사가 아니라면 최근 평양에서 유행한다는 원형 극장에서 일했을 것이다.

더구나 이런 종류의 공작에 특화된 이들답게 선동에는 다들 일가견이 있었다.

“제각각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이지. 머지않아 저들은 누군가 등을 보이면 곧장 칼을 찔러 넣을 것이다.”

“하지만 꼬리를 잡히기 전에 저희도 슬슬 빠져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정도전의 말에 한방신도 수긍했다.

슬슬 의심의 눈빛이 곳곳에서 보였다.

분위기가 흉흉해지면서 경계하는 이들이 많아진 탓이다. 실제로 처음에 사류의 병사로 위장해 있던 감찰사 소속 중에 몇 명이 잡힐뻔한 위기 상황도 있었다.

괜히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었다.

꼬리가 잡히면 판이 뒤집힐 수 있다.

이미 홍건적 내부의 균열은 시작되었다.

어떻게 봉합하더라도 언젠가는 곪아서 터질 것이 분명했기에 더는 공작을 펼칠 필요가 없었다.

“최소한의 정보원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퇴출할 준비를 하거라.”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우리는 창주(창저우)시로 간다.”

“그곳은 현재 차칸 테무르가 주둔하는 곳이지 않습니까?”

창주시는 원나라의 최전선이다.

상당히 잠입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은연중에 원나라 전역에 퍼져있는 백련교도들이 활동하고 있는 탓이었다.

그들은 원나라의 병사들과 주민을 현혹시키는데 앞장섰고 때로는 파괴 공작과 암살도 서슴지 않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과격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들 때문에 감찰사도 종종 발각될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정도전을 바라보며 한방신은 되물었다.

“이곳에서 얻은 정보가 얼마의 값어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

산서성의 소식은 내게도 전달됐다.

이인복의 후임으로 감찰사를 이끌고 있는 김첨수가 가져온 서신을 한 차례 읽던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산서성의 홍건적 사이로 잠입한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다른 감찰사의 인원도 걱정이었지만, 한방신과 정도전 모두 수십 년 동안 고려를 책임질 인재였다. 그들을 혹시라도 잃게 되면 타격이 상당히 컸다.

그러나 정작 김첨수는 냉담했다.

“그곳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이미 죽을 각오를 하고 있는 이들이옵니다. 그러니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김첨수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상당히 냉철하고 매사에 진심인 편이었다. 감정이라고는 없는 사람처럼 말하는 탓에 오해도 많이 샀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꽤 매력이 있었다.

이인복과는 완전히 달랐다.

일단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다.

말동무로서는 최악이나 같이 일할 때는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모든 보고를 요약해서 전달하니 시간도 절약되었다.

나는 서신의 마지막 부분에 적혀 있는 창주시로 갈 거라는 말이 이해가 안 되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 물어야 했다.

“그곳에서 무얼 하겠다는 뜻인가?”

“지재 상인으로 위장하여 이사제에게 접근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이사제에게?”

“지금까지 산서성에 머물며 얻어낸 홍건적의 정보를 그들에게 팔고자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꽤 재미있는 생각을 해냈기 때문이다.

활동 자금을 채운다는 의미도 있었으나 원나라를 움직여서 서로 견제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사제가 쉽게 넘어올 것 같소?”

“의심이 많은 차칸 테무르보다는 수월할 것이옵니다. 이미 이사제에게는 수년 전부터 지재 상인으로 위장한 정보원이 접근해 있사옵니다.”

“그와 관련된 보고는 받은 적이 있소.”

“지금까지 이사제에게 뿌린 고급 정보가 적지 않으니 의심받진 않을 것이옵니다.”

9할 진실에 숨긴 1할의 거짓.

그 비중을 지금까지 지킨 덕분이었다.

심지어 그 지재 상인은 장사성과 탕화를 비롯해서 명옥진에게도 접근해서 고려와 상관없는 정보 등을 팔고 있었다.

고려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대륙에서는 꽤 유명한 존재였다.

“그 지재 상인의 고려식 이름이 고지렴이라고 기억하는데 믿을 수 있는 자인 것이 확실하오?”

“물론이옵니다. 믿을 수 없는 자였다면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맡기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고지렴의 모친이 강제로 끌려간 공녀 출신이라고 했는데 고려에 대한 원한이 있을 것 같아서 염려되오.”

당시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수없이 벌어지고는 했다. 내가 그의 입장이라면 고려에 좋은 감정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재 상인 고지렴에 대한 김첨수의 신뢰는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왜 그런지 이유를 물어보았다.

“고려보다 원나라 황실에 가지고 있는 원한이 훨씬 깊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 봐야 기분 좋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구구절절한 내용일 것이다.

그 뒤로 이런저런 보고 사항을 전달한 후에 김첨수는 곧장 다른 업무를 보기 위해서 만춘전을 나갔다.

그쯤에서 나는 잠시 등을 기댔다.

곧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온기를 느끼며 이번 일에 대해서 천천히 곱씹어 봤다.

이번에 한방신과 정도전이 펼친 공작 때문에 어쩌면 역사가 바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나라를 이용해 산서성의 홍건적을 분열시키면 고려에 쳐들어오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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