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28
이 세계는 조금 이상했다.
전체적인 역사는 그대로 흘러갔지만,
종종 기후가 예상을 빗나갈 때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올해에 있었어야 할 극심했던 기근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대로 여름에는 기록에도 없던 폭우가 내려서 홍수가 터져 고려를 괴롭혔다.
나비 효과라는 것이 진짜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일이 생각보다 빈번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입장에서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은 정말 골치 아픈 일이었다.
평양도 약간의 피해가 있었다.
내성은 인위적으로 지대를 높인 탓에 괜찮았으나 대동강 일대에 있는 주택가 일부는 침수됐다.
그래도 해결책은 찾아야 했다.
매년 재해가 반복될 수 있는데 그냥 놔둔다면 그건 인재(人災)라 봐야 했다.
둑을 쌓아서 물이 범람하는 것을 막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었다. 경치는 조금 헤칠지 몰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북부에 유입된 유민의 수는 20만 명을 돌파했다.
전년 대비 2% 증가였다.
반년도 안 되는 사이에 고려 전체 인구가 유의미할 정도로 늘어난 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던 출산율이 지난해 가을부터 잠시 주춤했던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대충 850만 명 이상은 될 것 같은데.’
현재 고려의 연령 분포는 이상적이었다.
아직 정확한 인구 통계가 나오지는 않고 있으나 피라미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즉위한 해에 태어난 아이들은 이제 열 살이 되었고 몇 년만 더 지나면 경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다.
10년 사이의 변화치고 큰 폭이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고 백 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인구의 수가 천만 명을 찍은 것을 생각하면 매우 빨랐다.
내 예상으로는 적어도 몇 년 이내에 천만 명의 인구를 달성할 것으로 보였다.
인구가 곧 국력이다.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었다.
아무리 소수의 천재가 미친 듯이 활약을 해도 밑바탕이 없으면 의미가 없었다.
새로운 땅을 얻어서 개간을 하며 사람들을 북부로 밀어 올리는 이유도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점차 유민의 수가 줄어들었다.
뒤늦게 고가노가 지휘하는 군대가 요서의 국경 지대를 완전히 틀어막은 탓이 컸다.
요동에서 크게 패하고 도망친 탓에 고가노와 요익이 이끄는 세력은 요서 지역의 지배력이 강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 덕분에 진행이 가능한 일이었다.
뒤늦게 그들이 눈치를 챘을 때는 요서 곳곳의 마을이 통째로 비워진 후였다.
백성들을 소홀히 여기고 자기들 살 궁리만 하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아무래도 이제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이인복도 끝물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이제는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서 얻는 것이 거의 없어진 상태라 보면 되었다.
요즘에는 여진족의 일부가 소규모 부족 단위로 내투하는 것을 제외하면 백 명 이상 되는 유민의 무리는 찾을 수 없었다.
이제 넘어올 만한 이들은 다 왔다는 뜻이었다.
“현지에 있는 감찰사 소속의 인력은 이동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안 그래도 요즘 배후를 파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탓에 잠시 발을 빼야 할 것 같다고 연락이 왔사옵니다.”
“그렇다고 요서 지역에 대한 주의를 늦춰서는 안 되는 것을 잊지 마시오.”
이제는 숨어서 지켜봐야 할 때였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일 년 후에 들이닥칠 최소 10만 명이 넘어가는 홍건적의 공세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습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적어도 그들이 요서 지역을 통과할 무렵에는 우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야 준비할 시간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 활동을 잠시 멈추고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사오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요서에 나가 있는 정도전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소?”
“한방신과 함께 김첨수의 밑에서 차근차근 일을 배우고 있사옵니다.”
한방신은 참 애매한 존재였다.
처음에 그는 문과로 급제했으나 무관이 되어 상사의 계급까지 오른 이였다.
원래의 역사대로면 올해 동북면 병마사를 제수받을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감찰사로 옮긴 것은 이인복의 추천 때문이었다.
감찰사도 이제 물갈이를 할 때였다.
김첨수와 일부 감찰사 소속의 관리들은 무려 십 년 가까이 원나라와 요동을 오가며 외지에서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현재 구상은 김첨수의 자리를 한방신이 맡고 정도전을 아래에 두는 것이었다.
아직 정도전은 약관에 불과했다.
수년 정도는 더 경험을 쌓아야 한다.
워낙 중요한 자리이니 어쩔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인 이후에 한방신의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와 더불어 고려 내에서 활동 중인 어사들도 교체하고 있었다.
고인물은 언젠가 썩기 마련이다.
이미 오래전에 황상은 안렴사 등을 거쳐서 전리사로 갔고 전녹생과 서호도 이번에 관직을 받아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이보림과 임박 그리고 박상충 등이 새롭게 들어와서 초창기부터 활동한 어사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 슬슬 김첨수도 한방신에게 자리를 넘기고 돌아오게 할 준비를 하시오.”
“그렇게 준비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새롭게 임명된 어사들은 어떤 것 같소?”
“젊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다들 의욕이 넘쳐서 오히려 큰일이옵니다.”
이인복은 기분 좋은 미소를 보여줬다.
새로 들어온 관리가 의욕을 보이는데 싫어할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 열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으나 워낙 혹독한 수준으로 업무를 하는 감찰사에게는 가장 필요한 덕목이었다.
“김첨수가 돌아오는 대로 감찰사를 그에게 넘기고 영공은 슬슬 영의정에 오를 준비를 하시오.”
최근 도당에도 약간의 개편이 있었다.
기존에 문하시중과 수시중 등을 조선과 같이 삼정승 체제로 바뀌었다.
영의정은 총리와 비교할 수 있는 위치로 모든 정치와 행정을 총괄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좌의정과 우의정은 조선 시대와 조금 업무 영역이 달랐다.
약간 복잡한 부분이 있었지만,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랬다.
좌의정은 도당에 소속된 관청 대부분을 관리한다고 보면 되었다. 반면에 우의정은 법률과 군사에 관련된 일을 담당했다.
한마디로 문관과 무관의 대표였다.
당연히 위세는 좌의정이 더 강했다.
도당에 소속된 대부분이 그의 아래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우의정을 무시할 수 있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고려 전체의 병력과 함께 범죄를 다스리고 형법을 관리하는 전법사 등이 그의 손 아래 들어가 있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한 안배였다.
하지만 모든 권력 기관을 삼정승에게 쥐여준 것은 아니었다. 우의정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감찰사는 내가 관리했다.
그 외에도 내수사를 비롯해 내시부(內侍府)와 근위병에 속하는 홀치와 응양군도 삼정승이 손댈 수 없는 부분이었다.
“화보(和父)는 어찌하고 제가 그 자리에 올라간단 말입니까.”
“백문보도 조금 쉬어야 하지 않겠소.”
“하긴··· 요즘 화보의 몰골이 말이 아닌 것 같아 보였사옵니다.”
요즘 백문보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가 문하시중으로 올라간 뒤로 고려는 수많은 일을 거의 매년마다 겪었다.
그의 손을 거쳐서 진행된 정벌만 여러 차례였고 홍건적의 침입도 있었다.
백문보는 쌍성총관부를 수복할 무렵부터 그 자리에 있었으니 오래되기는 했다.
당연히 과부하가 걸릴 만 했다.
최근에는 살이 부쩍 빠진 모습이었다.
안색은 창백하고 피부가 푸석한 것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러다가 정말 사람을 잡을 것 같았다.
고려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이 그의 손을 거쳐서 내게 오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니 그를 위해서라도 더는 마다치 마시오.”
다시 한번 권유하자 이인복은 침착하게 내게 머리를 조아리며 받아들였다.
이미 몇 차례 언질을 줬던 내용이었다.
갑작스러운 일도 아니기에 오히려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감찰사에서 노력한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보일 수 있는 반응이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
고려가 빠르게 정비하고 있을 무렵.
기다리고 있던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지난 수년 동안 애타게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그건 바로 장사의가 가져온 고추가 처음으로 재배되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올해는 그리 기대하진 않았다.
고추의 씨앗은 다른 품종에 비해 보관이 용이한 편이라 내년에 심어볼 생각이었다.
만약에 그가 가져온 씨앗 중에 일부가 보관상의 실수로 싹이 트지 않았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왕에 생긴 일이었다.
최대한 살려보려고 애를 쓴 결과 그중의 일부가 살아남아 결실을 만들어 냈다.
과정이 쉽진 않았는데 어떤 방식으로 재배해야 하는 건지 아는 이들이 없었다.
다들 처음 보는 작물이니 당연했다.
그나마 내가 대학교에 다닐 당시에 농활을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지주를 세우고 고랑을 파서 심은 덕분에 그나마 일부나마 재배가 가능했었다.
하지만 어떤 품종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평소에 즐겨 먹던 수준의 고추를 바라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었다.
수백 년간 땅에 적응한 시간을 메꿀 기술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각국의 고추만 하더라도 상당히 다양했고 일부 고추는 독약이라고 주장해도 믿을 정도로 매웠다.
외형만 보자면 우리나라에서 자라던 고추와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였다.
먹어보기 전까지는 장사의가 뭘 가져온 건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수확한 고추는 한 바구니도 안 되었는데 씨앗은 내년을 위해 모두 거둬서 가져갔고 나머지는 내가 먹기로 했다.
당연히 그 정도의 양을 가지고 고추장을 담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말리는 과정이 없었기에 당연히 고춧가루도 아직은 바랄 수 없었다.
지금은 잘라 넣어서 맛을 내는 것 정도로 만족해야 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신소봉을 비롯한 대부분의 환관이 온갖 이유를 대며 시식을 만류한 탓이었다.
먼 곳에서 가져온 정체불명의 작물을 먹고 탈이 날지 모른다는 이유였다.
“전하, 정녕 잡수실 생각이시옵니까? 다시 생각해보시는 것이 어떠시옵니까.”
“이걸 먹고 누가 죽기라도 했느냐?”
“그건 아니오나 기미 상궁이 배앓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혹시··· 독이라도 든 것이 아닌지 우려되옵니다.”
기미 상궁에게는 미안한 일이었다.
후추 같은 향신료 외에는 평생 매운 음식이라고는 먹어 보지 못한 그녀에게는 고문이나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내가 먹기 전에 기미를 하다가 너무 매워서 그런지 화장실을 빈번하게 오가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죽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일부 품종의 경우에는 청양고추에 비해서 백 배나 매울 정도로 상당히 위험했다.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았다.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고추는 영영 수라상 위에 올라오지 못할 것이다.
대충 느낌상으로 보자면 풋고추와 청양고추의 중간쯤 되는 것 같았다.
결국에는 기미 상궁이 회복하는 것을 지켜본 이후에나 다시 상이 차려졌다.
이번에는 내가 요청한 대로 다른 기미 상궁이 들어왔는데 그녀는 긴장했는지 기미를 하는 손이 바들거렸다.
이미 동료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지켜본 탓에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추가 많지 않았기에 떨리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냉장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금방 시들어 버리기 때문에 마음이 다급했다.
지금은 고추 하나가 금쪽보다 귀했다.
하지만 예상외의 일이 벌어졌다.
“아무 이상이 없사옵니다.”
생각외로 그녀는 매운맛에 강했다.
매운맛에 놀라 안색이 살짝 붉게 달아올랐으나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어쩌면 기대감이 가득한 내 눈빛 때문에 억지로 참은 건지도 몰랐다.
기미 상궁이 잘 버텨준 덕분에 드디어 통과되어 수라상 위에 고추가 올라왔다.
설렁탕처럼 뽀얗게 우려낸 사골 국물에 송송 썰어낸 고추를 올린 뒤에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수저를 들었다.
그런 뒤에 천천히 한 숟갈을 먹었다.
그러자 모처럼 혀와 목청을 자극하는 칼칼한 맛이 식도 너머까지 느껴졌다.
가슴이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거의 10년 만에 먹는 매운맛이기에 맵찔이가 다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때부터 체통도 잠시 잊었다.
정말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는데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보이는 식탐이었다.
뚝배기 하나쯤 비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한 차례 닦아낸 나는 크게 만족하며 웃었다.
지금껏 잊고 있던 짜릿한 맛이었다.
“캬앗! 그래 이 맛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