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27
그날 넘어온 유민은 적지 않았다.
대충 숫자를 헤아려 보니 적어도 6만 명은 넘어서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구분하자면 유민이라 하기보다는 난민에 가까웠다.
살아남기 위해서 먼 길을 온 이들이다.
출신도 생각보다 다양했다.
고려 출신의 유민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절반 이상이 몽골인과 한족 그리고 고려인의 혼혈이라고 보면 된다.
그들이 고향을 저버리고 먼 길을 떠나 요동으로 온 이유는 지금까지 고려가 유민을 마다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영토가 갑자기 늘어난 상태다.
그만큼 백성의 수도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인구의 밀도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는데 요동만 하더라도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여기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고 싶어도 영토를 유지할 인구가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백두산과 두만강 부근까지 국경선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애꿎은 병사들의 목숨까지 버려가며 영토를 얻어도 관리가 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유민이 그 해결책 중의 하나였다.
아이가 태어나서 자기 몫을 할 때까지.
적어도 십 년 이상은 걸리는데 유민은 가족 단위로 움직이기에 노인부터 성인 그리고 아이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돈을 들여가며 인구 부양 정책을 펼치지 않아도 단숨에 생산 인구가 늘어나니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전하께서 천만 인구를 달성하시길 그토록 바라고 계시지만, 이건 너무 부담될 정도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다들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이방실은 저들의 상황이 안타까우나 요즘 고려에서도 귀한 곡식을 풀어주고 있는 이 상황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지금 선심 쓰듯이 베풀어주고 있는 양곡은 지난해 겨우내 병사들이 아끼고 아껴서 남겨 놓은 것이었다.
고려가 강성해지는 만큼이나,
병사에게 들어가는 재원이 적지 않다.
활과 칼 그리고 갑주를 비롯해서 화포 등의 무기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과 별개로 유지비가 적다고 할 수 없었다.
대부분 모병 된 병력이기 때문이다.
녹봉도 지급하고 먹이고 재우는 비용이 적지 않아서 도당에서는 병력 유지에 드는 비용에 대해서 매번 지적이 많이 나왔다.
필요성까지 부정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껴야 한다는 말에는 동감했기에 대부분의 장군들은 어떻게든 아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심지어 병사들을 동원해서 자급하기 위한 농토까지 마련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대규모 난민이 요양에 들어와서 성 앞에 자리를 잡고 고려의 백성으로 받아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저들이 한 끼의 식사를 할 때마다 요양성의 곡식이 뭉텅이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안렴사 김광재의 생각은 달랐다.
“유민의 수가 많아서 조금 부담이 되기는 해도 못 받아줄 정도는 아닙니다. 지난해 요동 곳곳을 개간(開墾)해서 만든 공전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머지않아 상황이 나아질 것입니다.”
조금 놀랐을지언정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할 거라 여기지는 않는 느낌이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진행해야 하는 절차도 이미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그 절차대로 유민을 받았는데 이번에 유독 그 수가 많을 뿐이었다.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식량이 없을 텐데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올봄에 보리가 꽤 많이 수확되어서 어느 정도 부양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전하께서 내리신 어명도 있으니 저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습니다.”
“무슨 지시를 내리셨길래 그럽니까?”
“제 발로 고려에 오는 유민은 절대 막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이방실은 한숨을 내뱉었다.
전하의 어명이라면 어쩔 수 없었다.
더구나 유민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그 역시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다들 얼마나 굶주린 것인지 뼈만 앙살하게 남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린아이들도 다를 게 없었다.
정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곳에 도착한 이후에 긴 여정의 여파 때문에 진이 빠진 건지 잠든 사이에 죽는 이들이 꽤 많았다. 이러다가 전염병이라도 퍼지는 게 아닌가 우려될 정도였다.
이게 다 지난해의 가뭄 때문이었다.
강남과 중원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역이 흉작인 데다가 일을 해야 하는 장정은 징집되고 올해 심을 종자까지 쓸어갔다.
유난히도 혹독했던 지난겨울은 어떻게든 버텼지만, 봄이 되어 아사자가 속출하자 다들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저들 중에 세작(細作)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닙니까.”
이방실은 그게 가장 마음에 걸렸다.
수많은 유민 사이에 세작 몇 명 넣는 것쯤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혹시라도 홍건적이나 백련교도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당연히 김광재도 동의했다.
“마침 영공(令公)께서 지금 이곳에 와 있으니 그분을 모셔서 직접 의견을 물어보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옆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안렴부사 변옥란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여기서 말하는 영공은 이인복을 의미하는 것인데 얼마 전에 지금까지 세운 공을 치하하기 위해 봉작을 받았다.
전하가 즉위한 이후로 지금까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봉작이 내려지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명예로운 자리였다.
이인복이 이곳에 온 이유도 세작을 보내는 요왕과 원나라 그리고 홍건적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합시다.”
이방실과 김광재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둘이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있어봤자 이 문제는 감찰사와 논의해야 했다.
잠시 후에 변옥란이 직접 가서 이인복을 모셔오자 그들은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그들에게 위아래 개념은 없었다.
이 자리에 모인 세 명의 품계는 모두 똑같았다. 안렴사가 임시가 아닌 고정으로 바뀌며 품계가 오른 덕분이었다.
이인복은 곧장 본론으로 들었다.
“두 분께서 나를 찾으셨다고 하는데 유민 때문인 게 맞습니까?”
시간 낭비는 죄악이라 여기는 평소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그의 질문에 이방실과 김광재는 동시에 그렇다며 대답하며 지금까지 둘이 나눴던 대화에 대해서 그에게 전달을 했다.
그때부터 이인복은 듣기만 했다.
오히려 애가 타는 것은 두 사람이었다.
이인복은 특별한 반응도 없이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고 한참 이후에 자신의 의견을 아주 간단하게 정리해줬다.
“모두 다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대규모 유민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이 한두 개가 아니니 그러는 것 아닙니까.”
“방금 말씀하신 문제는 관찰사에서 책임지고 처리하면 되는 것이고 식량도 조만간 양곡을 실은 배가 올 겁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처음 듣는 소리였다.
김광재가 되묻자 이인복은 이번에 올 예정인 조운선의 규모를 말해주었다.
거의 수십 척에 달하는 배가 쌀과 보리를 가득 싣고 온다는 말에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려라고 여유가 넉넉하진 않았다.
아무리 올봄에 보리 수확을 했다지만, 지난해 가을부터 지금까지 다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으나 이인복은 확실한 대답 한 가지는 했다.
“아마 이게 끝은 아닐 겁니다.”
*
요동의 소식은 내게도 곧 전해졌다.
하지만 그리 놀라운 소식은 아니었다.
이미 그와 관련된 정보를 감찰사를 통해서 받아 본 상태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이 요서 지역을 떠나기도 전에 소식을 전해 들었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그냥 벌어지진 않는다.
당연히 유민들도 저절로 온 것이 아니다.
상당히 많은 이들이 공을 들여서 만든 결과물인데 모든 일은 김첨수의 조직과 정도전의 머리에서 나온 책략이었다.
이번 일의 시작은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되었다.
‘고려에 가면 굶어 죽진 않는다.’
당시에 이런 소문이 요서에 자자했다.
지난해 가뭄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돌기 시작한 이야기였는데 그 무렵에는 다들 귓등으로 흘려듣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며 아사(餓死)하는 이가 급속도로 늘어나자 저절로 그 이야기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다들 먹고 살기 풍족하면 누가 정든 고향을 떠나서 고려로 돌아오겠는가.
잠시 이 일로 여러 가지 혼란이 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이득을 생각하면 감수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규모가 꽤 컸다.
이번에 넘어온 6만여 명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여진 쪽도 비슷한 상황이라 함경도 방향에서도 넘어오는 유민의 수가 적지는 않았다.
올해만 하더라도 내투한 이들의 수를 합치면 거의 10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너무 많은 것은 아닌지 걱정되옵니다.”
백문보는 이 상황을 우려했다.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유입될 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계속되면 수십만 명의 유민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워낙 인구가 많은 원나라이기에 규모가 남다른 터라 안심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사람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감찰사도 이번 일을 위해서 모든 인력을 동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먹여 살릴 계획도 있었다.
이번에 넘어온 유민들은 요동의 황무지를 개간해서 공전으로 만들고 내년부터 그곳을 맡겨서 경작시킬 생각이었다.
수년 전부터 북부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나 아직도 놀고 있는 땅이 너무나도 많았다.
새로운 경작지가 늘어나면 그만큼 나라에서 걷는 세금도 늘어나니 꼭 필요한 일이었다.
“이번 여름의 장마 기간만 잘 넘기면 수확 시기가 곧 다가오니 걱정 마시오.”
“농사라는 것이 수확하기 전까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사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대마도에서 보낸 양곡이 적지 않으니 걱정마시오.”
주덕유가 보낸 양곡은 상당히 많았다.
대마도에서 농사를 크게 짓는 것도 아닌데 그게 가능한 이유는 요즘 그는 다시 규슈를 들쑤시며 다니고 있었다.
그곳에서 완전히 싹 쓸어오는 탓에 해안가에 있는 어지간한 마을치고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요즘에는 내륙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고 있었는데 성과가 적지 않았다.
오죽하면 내가 적당히 하라고 교서까지 내려야 했을 정도였다. 모든 일에는 적당히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적어도 뿌리는 남겨놔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필요할 때 다시 찾아가서 수확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규슈 너머는 손대지 않았다.
다른 곳은 여러 관계가 맞물려 있어서 함부로 건드리기는 조금 어려웠다.
왜국의 상인들은 여전히 고려와 탐라에서 상인들과 거래하고 있었고 남북조의 막부와도 여러 전략 물자를 거래 중이다.
그중에는 화약에 들어가는 유황도 있었기에 적어도 그 선을 넘을 수 없었다.
“그나저나 인구 조사와 사전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소?”
“현재 경기도와 황해도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는 중이옵니다. 머지않아 충청도와 강원도 확대할 예정이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훗날 유용하게 쓸 테니 빠르고 정확하게 조사해야 하오.”
적어도 그 두 가지는 확실하게 해야 했다.
인구를 파악하는 것은 세금과 징병에 관련된 중요한 문제였고 토지는 조만간에 있을 개혁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지금까지 고려는 여러 개혁을 통해서 토지 겸병 같은 일은 많이 사라졌으나 아직 고쳐야 할 문제가 산더미 같았다.
이번 개혁의 최종 목표는 개인에게 나눠준 사전을 혁파하고 관리에게 수조권 대신에 녹봉만 지급하는 것이다.
복잡하게 땅을 나눠주고 되돌려 받고 하는 과정은 이제 없애고 싶었다.
최근에 평양으로 천도하며 숨통이 조금 트였으나 그걸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과전의 세습과 과도한 수조권.
두 가지는 여기서 끊고 가야 한다.
이게 계속 이어지면 나중에 돌이킬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언제 가능할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어느 시기보다 왕권이 강화된 지금이 적기였다.
하지만 당장 진행될 문제는 아니었다.
많은 준비와 논의를 거쳐서 천천히 그리고 치밀하게 진행해야 한다.
어설프게 진행하면 결국에는 백성들만 피해를 볼 것이고 그만큼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아무리 일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