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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18화 (118/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18

소 쓰네시게는 가족애가 깊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집착에 가까웠다.

지금까지 피를 흘리며 싸워온 이유도 가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건 아버지인 소 모리쿠니부터 시작된 소씨 가문의 사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집안은 쓰시마 토박이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에 소씨 가문은 당시에 가장 강성했던 아비루 씨를 멸하고 쓰시마 섬 전체를 손아귀에 넣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빌어먹을 섬에서 벗어나야 했다.

규슈 본토에 본거지를 마련하는 것.

쓰네시게는 그게 인생의 목표였고 그 꿈을 이뤄내기 위해서 상당히 애를 썼다.

적어도 자신의 아들에게는 섬 출신의 촌놈 소리를 듣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로지 그 꿈 하나만 좇아왔다.

그리고 거의 다 이뤘다고 생각될 무렵에 하필이면 가족이 있는 쓰시마가 털렸다.

아내는 언제든 다시 얻을 수 있으나 아들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정말 어렵게 얻은 아이였다.

규슈에서도 여러 명의 첩을 두고 있었으나 아직 회임을 한 이가 없었다.

일이 잘못되면 아내는 버리더라도 아들만은 규슈로 데리고 돌아갈 생각이다.

“지금부터 흩어져서 섬 전체를 찾아본 뒤에 다시 이곳으로 보인다. 적어도 이틀 이내에는 돌아와야 하는 것은 잊지 마라.”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어떻게든 흔적을 찾아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에 데리고 온 이들 중에는 쓰시마 출신도 많이 있었다.

그들이라면 고려군에게 들키지 않고 섬 곳곳을 둘러보고 돌아올 것이다.

당연히 쓰네시게도 움직였다.

그는 다람쥐처럼 산을 넘어 다니며 섬의 북부를 중심으로 샅샅이 살피면서 다녔다.

다행히 마을마다 쓰시마 사람이 있어서 그들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다.

하지만 백성들의 반응은 쓰네시게의 입맛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도주(島主)님! 드디어 오셨군요.”

“쉿! 조용하게.”

“언젠가는 오실 줄 알았습니다. 다들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고려 놈들에게서 쓰시마를 탈환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십니까?”

도저히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조금 더 기다리라는 말에 실망하는 얼굴을 보니 자괴감이 밀려올 정도였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고려에게 매수당했는지 밀고할 것 같은 낌새가 있어서 죽여야 했다.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다.

이렇게 섬을 돌아다닐수록 잡힐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누군가 밀고를 할 수도 있고 시체가 발견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향했던 북부에서는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약속했던 이틀이 지났다.

흩어졌던 자리로 다시 돌아온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부하를 기다렸다.

하지만 다들 소득이 전혀 없었다.

하나둘 모일 때마다 쓰네시게는 이번 일이 실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모든 일은 끝까지 가봐야 했다.

마지막으로 온 이들은 마침내 쓰네시게의 가족이 감금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 대한 흔적을 찾아서 돌아왔다.

“지금 어디에 있다고 하더냐?”

“은어의 강이 흐르는 아유모도시 근처에 있는 작은 신사에 갇혀있다고 합니다.”

“이 망할 놈들!”

그곳이라면 쓰네시게도 아는 곳이다.

주변에 민가도 없는 곳이라 누군가를 감춰 놓기에 적당한 장소이기는 했다.

그래서 쉽게 찾을 수 없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그곳에서 직접 확인하고 온 것이냐?”

“잠시 그 주변을 뒤졌는데 시간이 빠듯해서 확인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병사들이 있어서···.”

“일단 그쪽으로 이동한다.”

잘하면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사 주변에서 확인된 경비의 수가 적지 않으나 그 정도는 충분히 처치할 수 있다.

그가 데리고 온 50명은 각자 서너 명 정도는 쉽게 처치할 정도의 실력은 있다.

괜히 치쿠젠의 수호대가 규슈에서 명성이 높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곧장 은어의 강으로 향했다.

아유모도시란 말 자체가 은어가 돌아온다는 뜻인데 이 무렵이면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은어가 상당히 많았다.

쓰네시게도 강을 거슬러 올라갔는데 반나절 만에 그들은 부하가 말했던 신사 부근에 도달할 수 있었다.

“대략··· 오십 명 정도 되는 건가?”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대충 그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밖에 서른 명가량의 보초가 서 있는 것이 확실히 뭔가 숨기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저런 허름한 신사에 병사들이 머물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신사가 작아서 그 안에 있는 이들까지 합쳐도 아무리 많아 봐야 오십 명이 넘지 않을 거란 예상되었다.

딸랑~!

그때 작은 종소리가 났다.

혹시 들킨 건가 싶어서 몸을 낮췄으나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잠시 지켜보니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는 신호였다.

주변을 경계하던 이들 중에 상당수가 식사를 하기 위해서 신사 쪽으로 모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쓰네시게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발견했다.

“찾았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분통 터지게 했다.

두 사람은 마치 시종이라도 된 것처럼 병사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억장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문제는 그런 하찮은 일을 하면서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에게도 좀처럼 보여주지 않던 미소였다.

“어떻게 할까요?”

“음식을 먹으면 몸이 무거워질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렸다가 치자.”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칠 무렵쯤.

슬슬 움직일 생각에 쓰네시게는 부하들을 향해 신호를 주고 그 역시 칼을 뽑았다.

오십 명 정도의 일반 병사를 제압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수적인 차이도 없었기에 자신 있었다.

쓰네시게는 소리 없이 달려가서 정신 차리기 전에 단숨에 쓸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신사에 도달하기도 전에 갑자기 효시(嚆矢)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고음을 내지르는 화살을 보는 순간에 쓰네시게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실제로 기다렸다는 듯이 식사하는 척을 하고 있던 병사들은 무기를 집어 들고 돌아서서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들 외에도 신사 안에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병사들이 튀어나왔다.

도망치려고 해도 어디서 나온 지 알 수 없는 고려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빌어먹을 함정이다!”

그러는 사이에 쓰네시게의 아내와 아들은 신사 안쪽으로 끌려서 들어갔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조차 못 했는지 상당히 당황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틈은 없었다.

당장 죽고 사는 문제에 직면했다.

쓰네시게는 그때부터 가족의 구출보다 탈출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누굴 구출할 상황은 아니었다.

일단 이 자리에서 벗어나서 살아남는 것이 쓰네시게의 목표였다.

하지만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누구보다 부하들을 믿는 그였지만,

막상 신사에 있던 병사들과 붙어보니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곳에 있던 이들은 병사의 옷차림을 하고 있을 뿐이지 고려를 대표하는 홀치 출신의 무관이었다.

“너희들은 포위되었으니 순순히 손에 쥐고 있는 무기를 모두 버리거라!”

그때 대마도를 책임지고 있는 안우 장군이 이원계를 비롯해서 이성계 그리고 조인벽과 정몽주 등을 데리고 나타났다.

하지만 쓰네시게는 안우의 항복 제안을 무시하고 발악하듯 칼을 휘둘렀다.

어차피 살려둘 생각이 없기는 했다.

이 순간을 위해 들인 노력이 상당했다.

안우가 신호를 보내자 조인벽 등은 칼을 뽑아 들고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신기에 가까운 이성계의 활 솜씨였다. 시위를 당길 때마다 반드시 한 명이 쓰러졌다.

철저하게 상대방 시야의 사각지대만 노리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오니 교부(鬼刑部)라 불리는 쓰네시게라도 홀치 출신에게는 밀렸다.

철저하게 5인 1조로 움직이는 조직력에 완전히 말려들었다고 봐도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쓰네시게의 부하들은 어떻게든 그를 보호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에 상처가 가득 생긴 쓰네시게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그의 발 앞에 쓰러졌다.

“크아아아! 다 죽여버리겠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자신을 믿고 따라온 부하들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이들이 아니었다.

온갖 전장을 함께하면서 수많은 시련을 이겨냈는데 오늘로 모든 것이 끝났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쓰네시게는 그게 너무나 궁금했다.

그의 질문에 답을 해준 것은 정몽주였다.

이 모든 일은 그의 머리에서 나온 책략을 따라 움직인 것이었다.

“당신이 가진 가족에 대한 집착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해주었지.”

애당초 대마도를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쓰네시게에게 달려간 대마도 주민도 포섭된 이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쓰네시게는 정몽주가 깔아 놓은 판 위에서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규슈에 있는 감찰 어사가 소 쓰네시게가 가진 고려에 대한 원한이 심각할 정도라 하기에 제법 공들여 계획한 계책이었다.

이번 일을 위해서 주덕유 장군은 해군을 이끌고 일부러 규슈 남부를 급습해서 틈을 만들어 주었다. 쓰네시게 하나를 잡기 위해 움직인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대마도의 도주였던 그가 사라져야 반역의 구심점도 없어진다. 아직도 일부 원주민은 그가 언젠가 돌아와서 해방시켜 줄 거라 믿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는 눈을 희번들하게 뜨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치사한 놈들!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언젠가 주군께서 이 원한을 몇 배로 갚아주실 것이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당신이 대마도로 온 것을 쇼니 요리히사가 정말 모르고 있을 것 같은가?”

“그게 무슨 소리인가?”

“쇼니 요리히사는 당신을 넘기는 대신에 우리 고려와 거래를 했지.”

쇼니 요리히사가 직접 그를 팔아먹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가 부하를 데리고 대마도로 향하는 것을 모른 척해줬다.

그리고 그 정보를 미리 넘겨주었다.

대신 고려는 그에게 병장기 일부를 제공해주기로 협상이 된 상태였다.

요리히사의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없었다. 안 그래도 요즘 쓰네시게가 자신의 통제에서 자주 벗어나고 있었다.

반면에 고려는 북조를 지원해야 했다.

나중에는 북조가 우위에 오르며 남북조 시대를 끝내겠지만, 당장은 남조가 우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었다.

10년쯤 후에는 남조로 갈아타서 북조를 견제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계속해서 싸우게 만들어야 고려에게 이득이었다.

정몽주는 가능하면 오랫동안 남북조가 계속해서 싸우는 상황을 유지하길 바랐고 그걸 위해서 쇼니 씨까지 엮은 것이었다.

거기까지 들은 쓰네시게는 허탈하게 웃었다.

“주군께 내 인생을 바쳤는데 이런 결과라니 너무 허무하구나···!”

하늘을 향해 탄식을 내뱉은 뒤.

그는 별안간 정몽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번 일의 원흉인 그만큼은 저승길이 외롭지 않게 데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조인벽이 있었다.

이미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예상했기에 쓰네시게의 앞을 가로막았으나 그보다 이 씨 형제의 화살이 조금 더 빨랐다.

이원계와 이성계는 거의 동시에 시위를 당겨서 쓰네시게를 향해 화살을 쐈다.

조금 먼저 날아간 이원계의 화살은 그가 쓰고 있던 투구를 정통으로 맞췄다.

그 탓에 쓰네시게의 머리는 순간적으로 젖혀졌다. 그 덕분에 드러난 갑주의 틈을 노리고 이성계의 화살이 뚫고 들어가 쓰네시게의 목젖에 틀어박혔다.

“커···어억!”

그걸로 쓰네시게는 숨을 거뒀다.

안우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는 서둘러 주변을 정리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쓰네시게가 자신만만할 정도의 정예만 골라서 데려온 터라 고려 쪽에서도 여러 명의 부상자도 발생했다.

그때 정몽주가 다가와서 조언을 했다.

“쓰네시게가 죽었다는 소식을 요동에 알려서 그곳에서 노역 중인 왜인들의 의지를 꺾어놔야 합니다.”

“가족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저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개경을 보내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전하께 상소문을 올릴 생각입니다.”

괜히 후환을 남기는 것이 아닌가 안우는 걱정되었지만, 이번 일을 계획한 정몽주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어차피 최종 결정은 전하께서 내리실 것이다.

안우는 두 명의 무관 불러서 주덕유 장군에게 회군할 것을 전달하고 개경에 소식을 알릴 전령을 준비시켰다.

“어서 가서 이 소식을 전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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