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15화 (115/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15

그런데 홍건적은 왜 고려로 올까.

최근에 백련교도 일부를 잡기는 했지만, 원래의 역사에서도 그들의 선택은 같았다.

고려에 있는 재물 때문은 아닐 것이다..

최근에 고려가 부유해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도 원나라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

원나라의 황궁은 정말 장난 아니다.

그곳에는 세계에서 모은 온갖 진귀한 보물이 황궁을 가득 채우고 있을 정도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칭기스칸의 후예들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벌과 오르탁 무역을 통해 원나라로 들어온 재물이 얼마일까.

도저히 셀 수 없을 정도다.

대도에서 머물 무렵에 종종 황궁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거의 박물관 수준의 물건이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이 제대로 마음먹었다면 대영제국의 박물관과 견줄 수 있을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모거경은 그쪽을 택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쫓겨오는 주제에 허세는···.’

그들은 원나라에게 밀리고 있었다.

아무리 사방에서 얻어맞고 있더라도 아직 원나라가 만만한 곳은 아니다.

어설프게 요양 지역에 발을 디뎠다가 두들겨 맞고 후퇴할 곳을 찾고자 고려로 왔다는 것이 사료를 통한 추측이었다.

정말 어처구니없으나 그 이유가 아니면 고려로 올 이유가 없었다.

감히 요왕에게는 비벼볼 엄두가 나지 않으니 만만한 고려로 왔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의 역사에서 고려가 직접 증명했던 것처럼 겨우 4만 정도의 홍건적을 못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이 요하를 건너는 순간에 지옥문이 열린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고려는 들썩거렸다.

홍건적의 이름값은 생각보다 컸다.

엄청난 위세를 자랑하던 원나라를 저 지경까지 만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권문세족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애썼고 백성은 모처럼 살기 좋아지고 있는 현재를 잃을까 싶어서 두려워했다.

“백련교도 아새끼들을 완전히 고려에서 뿌리를 뽑아야지! 수상한 이들이 있으면 관가에 고하게. 무슨 말인지 알겠지?”

“하모예! 말해 뭐합니까.”

“사이비 놈들이 온갖 감언이설을 지껄여도 홀라당 넘어가지 말라고.”

오죽하면 백성들이 나섰다.

그들은 안 그래도 불교의 사상에서 어긋난 백련교도의 교리가 못마땅했다.

홍건적이 태평성대를 이뤄줄 거라 믿는 이들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 탓인지 최근에는 의심되는 이웃을 관가에 고하는 이들이 무척 많았다.

덕분에 감찰사만 바빴다.

퇴청은 꿈도 못 꿀 정도였다.

그러나 확실히 보람은 있었다.

대부분 오해인 경우가 많았으나 종종 생각지도 못한 결정적인 단서가 나왔다.

그 덕분에 음지에 숨어있던 백련교도 상당수가 잡혔다.

하지만 몸통은 잡지 못했다.

사도라 불리는 이는 찾을 수 없었다.

그의 목에 거액의 포상금까지 걸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종적이 묘연한 것이 고려를 떠났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다.

일단 그 문제는 감찰사에게 맡기고 지금 당장 해야 할 예비군 편성을 서둘렀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렸다.

예비군에 대한 안건을 반대하는 이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몇 명 있기는 했으나 백성들이 힘들어 할 것이라며 걱정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아무리 내 사람으로 도당을 채웠다고 하더라도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대부분 개혁에 힘을 실어주고 있으나 정말 아닌 것 같으면 말하는 이들이다.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각 지역에 보낼 이들은 어떻게 선발하고 있는 중이오?”

나는 훈련도감을 맡고 있는 파평군 윤해를 불러서 준비 상황에 대해 물었다.

훈련도감은 원래 변안열이 맡고 있던 곳이었으나 탐라와 요동 정벌에 나서며 외지에 머물고 있어서 윤해가 맡았다.

그는 응양군을 지휘함과 동시에 훈련도감과 성균관에서 군사학도 강의할 정도로 상당히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주요 장군들이 각지에 배치된 탓에 수도인 개경은 정세운과 이원림 그리고 윤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홍귀가 키워낸 각 군의 조교 중에 일부를 선발할 예정이옵니다.”

“그걸로 충분한 것이오?”

“최근 몇 년 동안 수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모병하고 훈련시킨터라 숙련된 이들이 꽤 많이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이번에 윤해가 차출하는 이들은 오백 호 이상 되는 마을에 배치가 될 예정이다.

인근 마을은 불러들여서 같이 훈련을 하겠지만, 거리가 멀리 떨어진 산간오지 같은 곳들은 이번에 제외되었다.

효율의 문제였다.

훈련은 이틀에 불과하다.

그런데 반나절 이상 걸어오게 만들면 사실상 사나흘을 빼앗는 것이다.

대부분 그런 곳들은 향, 소, 부곡과 같은 소규모 특수 행정 지역이기도 했다.

안 그래도 삶이 고된 이들이다.

그들은 단지 그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하층민 취급을 받고 다른 양민보다 훨씬 과한 공물을 착취당한다.

당연히 도망치는 이들이 허다해서 이제는 대다수의 마을이 사라졌을 정도다.

훗날 토지 개혁과 함께 행정 구역의 개편도 있을 텐데 조금 더 버텨줘야 했다.

“기존에 제안한 54일에서 40일로 줄었는데 그걸로 충분할 것 같소?”

나는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

과연 그걸로 성과가 나오기는 할까.

모거경은 이방실 장군이 요동에서 알아서 막겠지만, 2차 침략까지는 3년이 조금 안 되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대충 남은 날을 계산해보면 그리 많지가 않았다.

그걸로는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다.

“처음에 전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정병의 수준까지는 바라지 않으신다면 어느 정도 효과는 있을 것이옵니다.”

너무 큰 기대는 말라는 의미였다.

생각보면 윤해의 말이 맞기는 했다.

신병교육대에서 백일 동안 훈련을 받아도 군인처럼 안 보이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인 이들이 있다.

“훈련 중에 우수한 장정들을 선발해서 고려군으로 편입하는 방안은 어찌 준비되고 있소?”

요동에서 많은 희생이 있었다.

만 명이 넘는 이들이 사망하거나 크게 다친 탓에 보충해야 했다. 앞으로 고려는 최소 10만의 병력을 유지할 예정이다.

탐라와 대마도에 상주시키는 병력과 해군을 빼면 실제 동원이 가능한 이들은 7만 정도이기에 그 정도는 되어야 했다.

하지만 모병은 지양하기로 했다.

요동을 정벌한 이후에 분위기가 달라지긴 했지만, 수년째 연달아 모병한 탓에 한 해 정도는 쉬어갈 필요가 있기는 했다.

대신 그 자리는 추천제로 바꿀 생각이다.

여러 사정 때문에 모병에 참가하지 못한 이들이 많았는데 그들을 끌어와야 했다.

관노와 가노가 대표적인 예였다.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그들이 기존에 진행된 모병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만약에 어느 정도 기준을 넘어서고 본인도 원하면 모두 사들일 생각이었다.

사람을 사고파는 일은 아직도 탐탁지 않으나 그들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다.

10년간의 복무를 마친 뒤.

그들에게 자유를 줄 생각이다.

그때까지 살아남아야 가능하겠지만, 고려는 최대한 노비를 줄여야 한다.

이 시대의 노비는 세금도 내지 않는다.

가능하면 많은 이들이 농사나 생산에 종사해야 고려가 풍족해진다.

“하오나 초기에 들어가는 재물이 상당해서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판도 총랑이 꽤 난감해하고 있사옵니다.”

“길게 보면 모병하는 것보다 오히려 이쪽이 더 이득이오.”

당장은 더 많은 재물이 들어가겠지만, 모병 된 이들처럼 녹봉을 주진 않는다.

나가는 비용은 유지비가 전부였다.

가능하면 기간을 줄여주고 싶었으나 현재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조교들은 언제 출발할 수 있는 것이오?”

“가까운 곳부터 배치하겠사옵니다.”

“관아에 미리 연락해 놓았으니 협조를 해줄 것이오. 만약에 제대로 훈련이 되지 않는 곳이 있다면 곧장 내게 보고하시오.”

“어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윤해는 내게 인사를 한 뒤.

태평전을 나갔고 곧이어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오가 안으로 들어왔다. 밖이 얼마나 추웠던 건지 코가 얼어 있었다.

붉게 물든 그의 얼굴이 꽤 안쓰러웠다.

“사양치 말고 여기 화로 앞으로 다가와서 몸이라도 조금 녹이시오.”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말과 달리 얼굴은 그렇게 보이지 않소.”

몸도 바들거리고 있었다.

이가 덜덜 떨리는 소리 때문에 대화가 안 될 정도라 재차 자리를 권하자 동오는 마지못해서 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태평전은 웃풍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겨울마다 꽤 고생스러웠다.

고려의 궁궐은 조선 시대와 달리 온돌이 놓여있지 않은 곳이 상당히 많았다.

궁궐에 온돌이 모두 적용된 것은 한양 천도 이후인 16세기 무렵이다.

여름이면 에어컨, 겨울이면 보일러.

이렇게 두 가지는 정말 너무 절실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너무 두려울 정도다.

그나마 어궁은 온돌이 있어서 다행인데 가끔 불 조절이 잘못되면 냉골일 때도 있고 종종 불지옥 같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방에 가두고 쪄 죽이는 증살(蒸殺)을 당한 영창대군의 마음이 조금 이해될 정도다.

“도로 공사는 어찌 진행되고 있소?”

담소를 나누며 동오의 얼은 몸이 녹길 기다리던 나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원래는 공부 상서인 황석부나 공부의 관리에게 물어야 할 말이었으나 서경에서 천도를 준비 중이라 부르기 애매했다.

“개경에서 한양을 거쳐 적산군까지는 연결되었고 나주까지는 적어도 1년 이상 더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사옵니다.”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는 것 같소.”

“워낙 많은 인력이 투입되어 있기에 속도가 상당히 붙었사옵니다.”

노역을 하는 이들의 수는 적지 않았다.

정당하게 대가를 받고 일하는 이도 있으나 기존에 반역죄로 노역 형을 받은 이들과 왜국과 요동의 포로도 많았다.

과거에 절강 등에서 데리고 들어온 유민까지 모두 합치면 수만 명인데 그들은 이제 3년 후면 약속대로 자유의 몸이다.

하지만 거주의 자유는 없었다.

이미 그들이 살 곳은 정해져 있었다.

자유를 얻은 유민들은 새롭게 얻은 요동에서 살 게 될 것이다. 워낙 넓은 땅인데 인구수가 작아서 어쩔 수 없었다.

반면에 개간해야 할 땅은 넘쳐나기에 당분간 북부 개발에 활용해야 했다.

“적산군에서 나주까지 남은 구간은 탁도경에게 넘기고 이제 손을 떼시오.”

“송구하오나 소신이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이옵니까?”

“하하, 그건 아니고 따로 시킬 일이 있소.”

“하명하시면 따르겠사옵니다.”

동오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나는 그에게 도로 건설의 자재 운송을 맡겨야 했다. 그 말을 꺼내자 동오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 손을 떼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구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서경과 개경을 이을 도로를 말한 것이다.

그제야 동오는 이해했다.

잠시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던 중.

얼추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동오는 슬쩍 마두라이 술탄국에 대해서 언급했다.

처음에는 심부에게 들은 걱정 때문에 그 이야기를 꺼내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최근에 들어온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혹시 마두라이 술탄국이나 탄야에게 변고라도 생긴 것이오?”

“그건 아니옵니다.”

동오는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마두라이의 기세는 대단했다.

정휘와 임견미 장군을 내세워 본격적인 반격에 나선 그들은 요즘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 전까지 이러다 멸망하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일이었다.

거기까지 설명한 그는 원자와 혼약을 맺은 탄야의 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마두라이에서 조만간 공주를 고려로 보낼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우리 원자와 나이가 같은 거로 알고 있는데 여섯 살이면 타향살이를 하기에는 너무 어린 것이 아니오?”

“오히려 어린 시절에 와야 적응이 빠르지 않겠냐는 말도 일리가 있지 않사옵니까.”

일종의 조기 유학인 것인가.

그렇다면 일리가 있기는 했다.

어린 시절에 와서 고려말을 배우면 나중에 고생을 조금 덜 하게 될 것이다.

가진도 처음에 고려에 와서 그것 때문에 몇 년 동안 상당히 고생을 했다.

하지만 조금 걱정되었다.

마두라이와는 모든 것이 다를 것이다.

물과 음식 그리고 사람들의 풍습도 달라서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편으로는 기분이 조금 묘했다.

‘이 나이에 며느리를 보다니···.’

올해 겨우 서른이 되었다.

빨라도 너무 빠른 것 같았다.

물론, 혼례는 몇 년 후에 치를 예정이다.

아무리 조혼이 성행하는 고려라도 너무 빨랐다. 우선은 이 사실은 가진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았다.

“일단은 그리 알고 있겠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