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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13화 (113/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13

장사의는 곧장 대주국으로 떠났다.

탐사대를 준비하는 것은 그동안 백문보가 대신해서 주관할 예정이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현재 조선되고 있는 탐사용 쾌선 다섯 척을 차질 없이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나머지 인적 요소는 건드릴 수 없었다.

그 부분은 전적으로 탐사대를 이끄는 이가 구성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장사의가 돌아와서 탐사대를 맡겠다는 확답을 주면 그에게 맡길 예정이다.

그건 잠시 그대로 놔두고,

나는 다른 곳에 신경 써야 했다.

탐사대를 보내는 것보다 지금 당장 급한 일은 고려의 수도를 이전하는 것이다.

가능하면 빠르게 서경 천도를 확정 짓고 마무리해야 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가능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내년 말에 홍건적의 난이 터진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걱정되진 않았다.

요동에 있는 병력이라면 모거경이 이끌고 올 4만여 명에 달하는 홍건적 정도는 문제없이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라 할 수 있다.

3년 뒤에 있을 홍건적의 2차 침략은 고려의 존망이 걸린 중요한 문제다.

무려 20만 명에 달하는 규모다.

그것만 무사히 넘겨도 고려에게 크게 위협이 될만한 일은 거의 사라진다.

당연히 모든 역량을 북부로 집중시켜야 하고 남부는 당분간 최소한의 병력으로 버텨야 했다. 그걸 위해서 탐라와 대마도를 정리해 놓은 것이기도 했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

쿰쿰한 냄새가 살며시 깃들어 있는 궁궐에 모든 문무백관이 모였다.

그들을 부른 이유는 공식적으로 서경 천도를 하겠다는 천명(闡明) 때문이다.

하지만 놀라는 이는 별로 없었다.

다들 어느 정도 눈치는 챘다.

수도를 이전하는 것은 이전부터 논의하던 문제였다. 처음에는 왕사인 보우가 주장한 한양 천도가 대세였다. 하지만 요동을 얻는 순간부터 서경 천도가 힘을 얻었다.

하지만 청개구리 같은 이들은 어딜 가나 한두 명씩은 있기 마련이다.

“태조께서 송악(개경)에 자리를 잡고 무려 400년 이상을 고려의 심장부였던 개경을 버릴 수는 없사옵니다.”

“새롭게 궁궐을 짓고 도당을 옮기게 된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옵니다.”

“매년 정벌을 떠나고 있기에 백성에게 노역을 강요하기 어렵사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다.

이 정도면 그나마 양호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말이 아예 틀린 것도 아니기에 시간을 들여 설득해야 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개경에서 서경으로 옮기는 일은 장애물이 꽤 많았다.

궁궐도 새롭게 다시 지어야 한다.

거기에 도당을 옮기면 따라서 이동해야 하는 관리와 그에 따른 식솔이 적지 않다.

최소 수만 명이 이동하게 되는 일이다.

하지만 서경 천도를 없던 일로 뒤집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가 신호를 보내자 백문보는 대신들을 천천히 설득했다.

“다들 알다시피 지금까지 개경은 고질병 같은 세 가지의 문제가 있소이다.”

개경은 여러 문제가 많았다.

화마의 위험성과 왜구의 침구 가능성.

그리고 더는 확장할 수 없는 과포화된 개경의 상태에 대한 것은 다들 인정했다.

실제로 지난달에 부조현 부근에서 불이 나서 십여 채의 저택이 전소되었다.

늦장마 기간이라 오천(烏川)에 수량이 많아서 다행이지 자칫 잘못했으면 개경 전체로 번질뻔한 순간이었다.

반면에 서경은 격자형의 도로가 있다.

크게 불이 나도 일종의 방화선 역할을 해줄 수 있었다.

“더구나 수년 전에 강화까지 왜구가 들어와서 벽란도가 위험하지 않았소.”

그때의 일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었다.

개경 코앞까지 왜구가 쳐들어온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고 당시 개경은 혼란에 빠져서 비상이 걸린 적이 있었다.

강화에서 강무 중이던 병력이 소탕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마지막에 언급한 확장성의 결여였다.

이제는 공을 세워도 하사할 땅이 없다.

그걸 해결할 방법은 토지 개혁밖에 없었으나 지금 건드릴 문제는 아니었다.

새롭게 뭔가 만들 때마다 터를 잡기 어려워서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요즘에는 공을 세워도 재물을 주지 땅을 주진 않았다.

아마도 도당의 관리들은 이게 가장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닿을 것이다.

“당장 모든 곳을 옮기자는 것은 아니오. 최소한의 준비만 마치고 서경 천도를 한 뒤에 나머지는 천천히 지어도 되지 않소.”

“무슨 이유 때문에 그렇게 급하게 진행해야 하는 것입니까?”

“요동을 잃지 않기 위함이오.”

그때부터는 이인복이 거들었다.

그는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요동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세력 중에 고려에게 가장 위협적인 곳은 요왕이다.

지금 상황에서 그가 언제 쳐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인복의 말에는 무게감이 있었다.

지금까지 감찰사를 이끌며 그가 얻어낸 정보로 수많은 일을 해결해냈다.

실제로 이번 요동 정벌도 감찰사가 아니었다면 실패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괜히 고려의 이인자로 불리는 게 아니다.

당연히 그 때문에 시샘과 견제도 꽤 많았으나 이인복은 선을 넘지 않았다.

권력을 쥔 이들의 집은 문턱이 닳도록 많은 이가 오가나 그가 사는 곳은 오히려 어떤 누구도 접근하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단숨에 결정될 일은 아니었다.

내가 서경 천도를 천명한 뒤로 거의 보름 가까이 타당성을 검토하느라 진을 뺐다.

조금 지지부진한 상태이기는 했다.

그러나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했다.

보통의 가정에서 이사할 때도 발품을 팔고 고심한 끝에 결정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건 최소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이 움직이게 되는 결정이었다.

면밀하게 살필 틈은 줘야 했다.

‘길게 보면 수백 년 동안 자리 잡을 곳을 하루아침에 정할 수는 없지.’

*

무술년(1358년) 10월.

고려는 서경 천도를 결정했다.

그 결정을 내리는데 석 달이나 걸렸다.

하지만 일단 확정하고 난 뒤에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역시 공부 상서 황석부였다.

그는 공부를 서경으로 곧장 옮기고 전국의 장인을 그곳으로 불러모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기존에 서경과 북부의 성들을 보수하고 축성한 터라 외성은 따로 손을 볼 필요는 없었다.

궁궐과 내성 그리고 관청 건물.

일단은 그것만 신경 쓰면 되었다.

궁궐도 당장은 나와 가진이 머물 어궁(御宮)과 업무를 볼 정전(正殿) 그리고 궁인이 머물 곳만 우선 짓기로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조금 욕심이 났다.

가능하다면 유럽처럼 휘황찬란한 궁궐을 지어서 후세에 물려주고 싶으나 거기에 들어가는 재물이 한두 푼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 시대에 왕에게 필요한 덕목은 검소함이고 조금이라도 사치라고 생각되면 상소문이 곧장 올라올 것이다.

그와 동시에 개경의 백성도 이주했다.

현재 옮겨가는 이들은 대부분 관리와 그들의 친인척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한 쪽은 상인들이었다.

새로 생기는 시전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서 그들은 서둘렀다.

시전이라고 모두가 같지는 않았다.

일단 한 번 자리를 잡으면 거의 변하지 않는다. 목이 좋은 자리를 잘 잡으면 자손 대대로 굶을 걱정이 없을 정도였다.

양인들 중에서도 이주를 희망하는 이들은 넘쳐날 정도였다. 나는 한동안 각종 문제를 살펴보다가 백문보에게 물었다.

“개경의 백성 중에 이주를 희망하는 이들은 얼마나 되는 것 같소?”

“대략 십만 명은 될 것 같습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이들이 옮기면 문제가 생길 것이 뻔하니 속도를 조절해야 하오.”

노숙자를 양성할 생각은 없었다.

분명 갑자기 사람이 몰리면 판자촌처럼 비위생적인 주거 시설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개경과 다를 게 없었다.

서경은 철저하게 도시 계획에 맞춰서 인허가를 내주고 집을 짓게 할 생각이다.

나도 당분간 개경에 있어야 했다.

서경의 궁궐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옮길 수 없었는데 내년 가을쯤으로 예상됐다.

한동안 백문보와 서경 천도에 관련된 내용을 살피던 중에 신소봉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더냐?”

“대주국으로 떠났던 첨의평리 강지연과 장사의가 돌아왔사옵니다.”

“소신은 이만 일어나 보겠사옵니다.”

백문보는 눈치 좋게 자리를 피해줬다.

어차피 그는 하루 중에 절반 가까이를 나와 함께 지낼 정도로 자주 보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대주국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신소봉에게 그들을 불러들이라고 지시 내리자 두 사람이 태평전에 들어섰다.

일단 강지연의 보고부터 들어야 했다.

그는 사신으로 가서 내가 원하던 바를 이루고 돌아왔다. 초석 광산은 한 곳에 불과했으나 매장량이 거대했다.

그리고 나머지 두 곳은 철과 동광산으로 받아냈다는 말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성과가 좋은 편이었다.

강지연은 그 공을 장사의에게 돌렸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 말할 정도였다.

“고생하셨소. 내일 도당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테니 오늘은 그만 돌아가서 쉬시오.”

나는 일단 강지연을 내보냈다.

그런 뒤에 장사의와 따로 자리를 가졌다.

탐사대를 맡기로 결정은 했으나 대주국에 가서 마음이 바뀌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만약에 그가 안 되겠다고 하면 다른 후보자를 찾으면 그만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의 결심은 생각보다 강했는지 결국에는 형들을 설득한 것 같았다.

“소인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전하가 바라던 바를 반드시 이뤄내겠사옵니다.”

장사의는 그와 동시에 서신을 건넸다.

그곳에는 자신의 동생을 잘 부탁한다는 장사성이 직접 쓴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걸로 탐사대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섰고 준비는 착실하게 진행됐다.

장사의를 중심으로 배에 올라탈 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적지 않았는데 대략 이백여 명에 달했다.

탐사용 쾌선은 한 척당 사십 명이 타게 되었는데 당연히 나도 최대한 도왔다.

내가 장사의에게 준 것은 세 가지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해류의 방향이었다.

북적도 해류와 북태평양 해류의 존재에 대해서 알려줬는데 바람과 해류만 잘 타도 일정이 대폭 줄어들 것이다.

괴혈병에 대한 해결책도 필요했다.

생과일은 생각보다 금방 상하기에 생각해낸 것이 백김치와 매실즙을 도수 높은 소주에 첨가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담금주와 비슷했는데 함량이 미미해도 안 먹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윤린의 발명품도 실렸다.

그는 장거리 항해에 필요한 것들은 2년 가까이 준비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침반은 더 정확해졌고 해수를 끓여 담수로 만드는 증발식 장치도 완성됐다.

육지만 발견한다면 어느 정도의 식수는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정말 급할 경우에는 배 위에서도 쓸 수 있게 만들기는 했으나 장작의 사용량과 화재의 위험성 때문에 권장하진 않았다.

솔직히 이 정도 준비면 콜럼버스 때보다 여건은 엄청나게 좋은 편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겨울이 다가왔다.

두 달 사이에 대부분의 준비는 끝냈고 장사의는 마침내 이백여 명의 선원과 함께 길고 긴 향해를 떠날 준비를 마쳤다.

솔직히 첫 항해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살아만 돌아와도 다행이라 여겼다.

나는 탐사대가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에게 다시 한번 신신당부를 했다.

“종자의 확보가 중요하오.”

혹시라도 그가 만에 하나라도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한다면 가져와야 할 것들을 책자로 정리해서 그림까지 그려줬다.

남미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것 같았기에 북아메리카에서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고추와 옥수수가 목표였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특정 작물을 찾아오라는 지시는 개연성이 전혀 없었으나 장사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충 아라비아의 책자를 봐서 알고 있다고 둘러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때 뿔고동 소리가 울렸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였다.

“소신은 이만 가보겠사옵니다.”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반드시 어명을 지키겠사옵니다.”

장사의는 내게 인사를 올린 뒤에 그는 곧장 접안된 대형 쾌선에 올라탔다.

그가 탄 쾌선을 선두로 하나둘 벽란도를 떠나기 시작했는데 좁은 해협을 빠져나가자 동시에 돛을 펴기 시작했다.

한 척당 열 개의 돛을 달고 있었다.

그런 덕분에 다섯 척의 배에서 돛이 동시에 펴지는 모습은 꽤 장관이었다.

동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모험가라 불리게 될 장사의 함대의 1차 항해가 고려의 벽란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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