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06
동명왕릉에서 북벌을 고한 뒤.
얼마 뒤에 행렬은 서경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서경을 가로지르는 대동강이었다.
오염 따위는 전혀 없는 맑은 물이었다.
도시는 강을 중심으로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 중간에는 사주가 쌓여 만들어진 양각도와 두루섬 등이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지켜보고 있었을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서경의 재개발을 맡았던 황석부가 다가왔다.
그는 내 곁에 서서 자신의 손으로 가꾼 서경의 곳곳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서경의 도시 계획에서 가장 중요시한 문제는 ‘연결’이었고 도시 전체에 깔린 격자 형태의 도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미 서경은 시멘트 콘크리트로 포장된 도로가 완벽하게 적용되어 있었다.
“서경을 지키는 성곽의 길이는 개경의 열 배가량 된다고 보시면 되옵니다.”
“아직은 비어있는 곳이 상당히 많으니 조금 휑한 느낌도 드는 것 같소.”
“전하께서 천도를 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사옵니다. 저곳이 소신이 염두에 두고 있는 궁궐의 자리이옵니다.”
그가 가리키는 곳은 보통강의 지류가 둘로 나뉘었다가 합쳐지는 곳이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성벽 앞에 흐르는 해자(垓子) 역할도 하고 있다.
우기가 되면 강물이 범람할지도 모르기에 우려가 되었으나 그럴 염려는 없었다.
성벽 자체가 물이 넘치지 않게 만드는 방벽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콘크리트도 사용되었다.
돌을 쌓아 올린 성벽 위로 콘크리트를 발라 놓은 탓에 벽면이 매끈하였다.
돌로 쌓아서 만든 일반 산성과 달리 기어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중간에는 화포와 화승총 등을 쏠 수 있도록 구멍도 곳곳에 뚫려 있었다.
완벽에 가까운 모습의 내성이었다.
더구나 그 넓이가 현재의 개경과 비슷할 정도로 상당히 넓었다. 당연히 그 넓은 곳을 나 혼자 다 쓸 생각은 없었다.
이곳으로 천도를 하게 되면 내성 안에 모든 관청과 군기감 등의 생산 시설도 들어설 예정이었다.
“내성 안에 궁궐과 여러 관청을 모두 집어넣어도 여유가 상당할 것 같소.”
“천년이 지나도 부족하지 않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서 소신이 조금 과욕을 부렸사옵니다.”
“그게 어찌 상서의 탓이겠소.”
모든 계획은 내 손을 거쳤다.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본 후에 최종 승인이 내려져 그가 실행한 것이다.
이미 서경의 지리와 구조는 알고 있기는 했으나 직접 보니 괴리감이 상당했다.
역시 직접 보는 것과는 달랐다.
그래도 실제로 직접 와서 서경의 전경을 보니 생각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비좁던 개경을 보다가 이렇게 탁 트인 보습을 보니 어서 빨리 서경으로 수도를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북쪽에 대로변은 개경처럼 시전을 설치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친 상태이옵니다.”
나는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살폈다.
그곳에는 서울 중심부에 있는 광화문 못지않게 넓은 대로가 보였다.
길이도 개경의 시전보다 훨씬 길었는데 중앙에는 개경의 명물인 수레 상점이 들어갈 자리도 마련되어 있었다.
내 눈에는 저게 다 돈으로 보였다.
시전은 나라에서 운영하는 시장이다.
허가를 내주면 받는 자리세와 매출에 따른 세금이 나오는데 그 비중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이었다.
저곳에 상점이 가득 차면 비좁다는 이유로 사설 시장이 세워질 필요가 없었다.
잠시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서서히 변안열이 이끄는 병사들의 행렬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들은 서경을 지나 계속 북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질서정연하게 걷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그러던 중에 한 무리의 관군이 다가왔다.
이번에 출정한 병사들과 옷차림이 달랐는데 자세히 보니 지난해 안무사에 제수하여 서북면으로 보낸 황상이었다.
모처럼 보는 그는 곧장 내게 다가와서 머리를 조아렸다.
“소신이 당분간 전하께서 머무실 거처를 서경에 마련하였사옵니다.”
*
북벌에 나선 변안열과 서달.
두 장군은 3만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서경을 지나서 흥화진으로 향했다.
신병의 비율이 3할을 살짝 넘고 나머지도 훈련 받은 지 1년이 넘지 않은 이들이지만, 그래도 사기 하나 만큼은 하늘을 찔렀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흥화진에 도달한 것은 예정일보다 이틀이나 빨랐다.
흥화진에는 이번 출정의 주축인 이방실 장군의 동북면 병력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변안열보다 더 먼저 도착한 병력이 있었다.
“하하! 이게 얼마 만이오.”
가별초를 이끌고 온 이자춘이었다.
현재 그의 휘하에 있는 가별초는 과거 개인적인 사병에서 고려의 유일한 기마대로 완전히 탈바꿈되어 있었다.
그들 외에 각 군에도 기마병이 있으나 일단 규모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이번 원정에 지원을 온 가별초는 천 단위를 넘어섰다. 지금까지 마두라이와 여진의 말을 그에게 몰아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동북면에 남은 절반의 기마대는 대마도 정벌을 마치고 돌아온 조인벽이 맡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어느 때보다 건강하니 걱정 마시오. 그토록 염원하던 북벌에 나선다는 생각만으로도 떨려서 잠이 안 오더이다.”
“모든 이들의 염원이지요.”
변안열과 서달도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그들 세 명의 입장은 모두 달랐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모두 고려에서 태어나 일반적인 과정을 통해 장수가 된 것은 아니었다.
서달은 원나라 출신의 농부였다.
변안열은 심지어 이번에 공략할 심양의 무관 출신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의 충성심을 의심하는 이들은 없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전공이 상당한 덕분인데 반면에 이자춘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쌍성총관부가 함락된 이후에 좀처럼 공을 세울 기회가 없었다. 두 아들이 대마도 정벌을 통해서 공을 세우기는 했지만, 그게 자신의 전공(戰功)은 아니었다.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이 있기도 했다.
북벌에서 기마병의 중요성은 상당했다.
워낙 방대한 영토이기에 걸어 다니는 보병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싸울 수 있는 기병이 무척 중요했다.
“최영 장군께서는 무탈하신지요?”
“이번에 강계를 수복하기 위해서 정신이 없으십니다.”
이번에 서북면만 움직이진 않았다.
동북면도 북벌의 또 다른 한 축이었다.
최영은 이번에 강계와 길주까지 국경을 끌어올리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이번에 심양을 차지하면 고려의 국경이 북서쪽으로 너무 깊게 들어가게 된다.
한 지역만 그렇게 돌출될 경우.
방어하는 데 상당히 힘들어진다.
당연히 동쪽 지역도 어느 정도 높이까지 국경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여진의 반발이 적지 않을 텐데요.”
“어차피 그 지역 대부분이 오래전부터 쌍성총관부의 입김이 강하던 곳이니 쉽게 난동을 부리지는 못할 것이오.”
동북면에서는 가별초를 제외한 1만의 병사를 지원군으로 서북면에 보냈다.
최영에게 남겨진 병력은 1만의 육군과 1천의 가별초가 전부였으나 어지간한 여진의 공세는 충분히 막아낼 것이다.
그의 휘하에 있는 병사들의 상당수가 여러 전투를 겪은 정예 중의 정예였다.
더구나 불패의 장수라 불리는 최영이 진다는 것은 쉽게 상상이 안 되었다.
잠시 이자춘과 이야기를 나누던 변안열은 양해를 구하고 움직여야 했다.
“이방실 장군님에게 도착했다는 보고부터 하러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차, 주책맞게도 너무 잡아뒀구려.”
“아닙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변안열과 서달은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에 흥화진의 중심부에 있는 지휘관 막사를 찾아서 걸어 들어갔다.
이방실 장군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가 있는 곳에는 항상 전하께서 직접 하사한 검은 곰을 형상화한 부대기가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그걸 본 서달은 너무 부러웠다.
바로 옆에 있는 변안열도 호랑이 문양의 부대기를 하사받았고 친우인 주덕유도 있는데 자신만 부대기가 없었다.
하지만 고려 전체를 따져도 전하에게 직접 깃발을 하사받은 이는 몇 명 되지 않기에 차별한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언젠가 자네도 받을 테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게.”
변안열은 쉽게 눈치를 챘다.
한동안 서달이 이방실 장군의 부대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으니 당연했다.
그제야 서달은 멋쩍게 웃으며 변안열을 따라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요동 지방의 지형도가 펼쳐져 있었고 이방실 장군은 그 앞에서 참모들과 함께 열띤 논의를 하고 있었다.
“어! 자네들 언제 왔는가?”
“방금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다행이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도강 일정이 이틀 앞당겨졌네. 방금 도착해서 힘들겠지만, 서둘러주게.”
이유는 날씨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다는 말에 변안열은 쉽게 수긍했다. 정벌의 시작은 압록강의 도강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강 하구에 있는 용주의 위화도 주변은 천오백 보나 되는 너비였으나 이 주변은 그나마 천 보 정도로 조금 좁은 편이었다.
하지만 쉽게 볼 너비는 아니었다.
강물이 불어나면 한동안 도강은 불가능해진다. 이번 작전은 한 곳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님을 다들 알고 있었다.
동북면과 대주국도 같이 움직이는 거라 어떻게든 시기를 맞춰야 했다.
“그나저나 서달 장군이 데리고 온 병사들은 어느 정도 훈련을 받은 건가?”
“아직 신병티를 벗지 못한 상태입니다.”
“한 명의 병사도 아쉬우나 제대로 칼을 쥐지도 못하는 이들을 앞세울 수는 없는 일이지.”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정벌에서 서달의 병사들은 후방에서 보급대를 운영하기로 이미 결정되었다.
가장 앞에 서서 돌격해야 하는 서달이 뒤에 있어야 한다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방실은 그게 아쉬웠으나 부하를 버리고 다른 병력을 이끌라고 할 수는 없었다.
“변 장군의 데리고 온 병사들은 일 년 전에 모병한 이들이라고 알고 있네.”
“맞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중군에 합류하면 되네.”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이방실은 간단하게 지원군의 배치를 마친 후에 쉬라고 지시를 내리고는 다시 참모들과 도강에 대해서 논의를 시작했다.
이번에 동원된 병력을 모두 합치면 대략 6만 명에 달했다. 동북면에서 오는 병사 1만과 서북면에 주둔 중이던 2만 그리고 방금 도착한 3만 명이 전부였다.
거기에 해군에서 지원을 왔다.
김휘남 함대 소속의 전선은 도강을 도운 뒤에 요동 반도를 견제할 예정이었다.
이번에 진행될 도강은 그들이 타고 온 전선을 이용해서 가교가 아닌 배다리를 만들어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병력의 차이가 제법 심합니다.”
참모 중의 하나가 우려를 표했다.
요동의 세력이 동시에 사방에서 달려들면 이길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더구나 도강을 한 이후에 요동 반도를 놔두고 무작정 심양으로 달려가는 것도 조금 애매했다. 뒤에 후환을 남기고 가면 뒤통수를 맞을 가능성이 너무 컸다.
“문제는 요동반도의 유익과 요양성의 고가노를 어떻게 처리하냐는 것입니다.”
“요동반도에 발이 묶이면 요양성에 도달하기 전에 완전히 방비를 마칠 것이 분명합니다.”
“적어도 요양성과 심양성 가운데 하나는 보름 이내에 차지하여야 합니다.”
“서북면이 텅텅 비어있는데 유익이 압록강을 넘어서면 어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서북면의 백성은 엄청난 고초를 당할 게 뻔했다.
결국에는 병력 중에 일부를 남겨서 견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럼 누굴 남기는 것이 좋겠소?”
“지금 상황에서 주력인 서북면과 동북면의 병사를 빼낼 수는 없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소.”
“차라리 서달 장군과 그가 이끌고 온 병사 중에 이천 명을 남기는 것이 어떻습니까?”
“모병 된 지 얼마 안 된 이들만 남겨서 뭘 어떻게 하란 이야기인가?”
이방실은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참모들은 의주에서 견제만 해도 충분하다며 입을 모았다. 거기에 해군의 병력이 삼천 명 정도가 있었다.
그들의 지원이 있다면 못 지킬 정도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번 정벌을 하는 목표 중의 하나가 산동성에 있는 차칸 테무르를 끌어내는 것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었다.
지금은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까지 달려갈 기세로 조금 과감하게 나가야 했다.
그러니 유익은 나중에 처치해도 늦지 않다는 말에 이방실은 설득당했다.
“알겠소. 서달 장군에게 이 내용을 전하고 이틀 후에 압록강을 도강할 테니 그리 알고 다들 철저하게 준비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