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05
원자가 태어났을 때와 비교하면,
온도 차이가 상당히 심한 편이었다.
후계자가 절실했던 시기였던 것을 고려해도 생각 이상으로 차가웠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차라리 딸은 숨기고 아들만 태어났다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거지 같은 조언도 해줬다.
당연히 나는 그걸 거절했다.
아이가 무슨 죄가 있기에 그런 수모를 겪는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가진도 그런 내 결정을 듣고 지지했다.
애초에 그녀가 살던 곳에서는 이런 식의 편견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하만 믿고 있겠습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닐 것이오. 긴 시간 동안 자리 잡은 편견은 잘 지워지지 않소.”
“그래도 꼭 해야 할 일입니다.”
가진은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원나라에게 반기를 들겠다고 말했던 때도 이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가 가진 가족애는 상당히 컸다.
세상에 모든 엄마가 다들 그렇겠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사람이다.
“이 일은 내게 맡겨주시오.”
아이들이 크기 전에 쌍둥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작업을 마칠 생각이었다.
지금은 인구가 국력인 시대였다.
그런 면에서 쌍둥이는 오히려 나라에서 축하해줘야 할 일이다. 그와 더불어 출산 장려 정책도 손볼 필요가 있었다.
고려의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각지에서 보내오는 숫자를 합치면 내가 즉위하기 전과 비교해도 최소 50만 명은 늘어났다.
하지만 그 상승세가 요즘들어 조금씩 꺾이고 있는 추세였다.
한계치에 어느 정도 도달한 것이다.
상업이 활성화되며 먹고 사는 문제는 어느 정도 개선되었으나 식량 생산이 뒤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앙법을 계속해서 보급하고 있으나 아직 전국적으로 퍼진 상태는 아니었다.
적극적인 출산 장려 정책이 필요했다.
고려가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많은 영토와 인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그런 정책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기에 벤치 마킹하기로 했다.
다행히 참고할 만한 분이 계셨다.
세종대왕님은 그저 빛이었다.
그분은 이미 조선 시대에 한 달 가까이 출산 휴가를 도입하셨고 심지어 셋째를 출산하면 5~10석의 양곡을 지원했다.
반면에 고려는 특이한 케이스가 있으면 간헐적으로 챙겨주는 것에 불과했다.
내가 앞으로 진행될 출산 장려 정책을 밝히자 가진은 모처럼 웃었다.
“저도 양곡을 받을 수 있는 건가요?”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소.”
“그보다 전하께서 먼저 출산 휴가를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백성과 관리들도 눈치를 보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심양 정벌이 끝나면 그리하겠소.”
“약속하신 겁니다. 그런데 정말 이번 정벌에 친정(親征)하실 것입니까?”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확하게 따지고 보면 전장에 왕이 직접 나서는 친정은 아니었다.
전쟁터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정책은 문관이 세우고 싸움은 무관이 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었다.
괜히 내가 미주알고주알 따져봐야 배는 산으로 올라갈 것이 분명했다.
이번의 목적지는 서경이었다.
그 이상 올라갈 생각은 없었다.
지금까지 공부 상서 황석부가 서경의 재건 공사를 했는데 얼추 마무리되었다.
나는 그걸 직접 확인하러 가는 것이다.
당연히 가진도 그걸 알기에 굳이 다시 한번 설명해줄 필요는 없었다.
“여기서 백 번 듣는 것보다 직접 한 번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니 어쩔 수 없소.”
“혹시 고려의 수도를 서경으로 천도하실 생각이신 건가요?”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심양 정벌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논의해 볼 생각이오.”
북부를 개발하는 이유가 있었다.
현재 한반도의 국경을 보면 개경이나 한양이 수도로 적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로 확장되면 수도를 조금 더 올릴 필요가 있었다.
더구나 현재의 개경은 확장성이 턱없이 부족하기에 여러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최대한 버텨보려 했지만,
이미 개경은 포화 상태였다.
수용 가능한 적정 인구는 넘어선 지 오래됐고 아무리 애를 써도 개경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개경 내부에 위치한 산지를 깎아내는 것보다 서경 천도가 쉬울 것 같았다.
더구나 서경은 재건 중이다.
도시 계획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기에 유럽식 격자 도로도 적용됐다.
현재의 고려와 훗날 조선의 수도는 무계획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난개발 그 자체라 골목은 복잡하고 수레가 다닐 수 있는 길은 거의 존재하지 않다고 봐야 했다.
“가실 때 가시더라도 그전에 아이들 이름부터 지어 놓고 가시죠.”
“아직 고민 중이오.”
“그럼 제가 지어도 되겠습니까?”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어서 말해 보시오.”
가진은 붓을 들었다.
그러더니 이름 두 개를 썼다.
두 아이 중에 먼저 태어난 딸은 왕혜(王蕙), 아들에게는 왕곤(王滾)이라 적었다.
나는 흔쾌히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도당을 통해서 공표하겠다고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심양 정벌에 정신이 팔려있어서 진지하게 고민할 틈조차 없는 요즘이었다.
“전하께서 북벌에 나서는 군사들과 함께 서경으로 떠나신다고 하면 아마 다들 펄쩍 뛸 것이 분명합니다.”
“보지 않아도 그려질 정도요. 문하시중 백문보와 이인복 등과 함께 내가 없는 동안 개경을 잘 지켜주시오.”
출산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다.
아직 몸을 풀고 있는 가진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 개경을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은 그녀밖에 없다고 생각되었다.
누구보다 내 의중을 잘 아는 그녀가 중심만 잘 잡아주면 나머지는 이달충과 같은 도당의 관리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거기에 이인복도 있었다.
이번 출정에서 그는 제외했다.
국경 너머에 있는 김첨수가 합류할 예정인 것도 있었고 출정에 나선 틈을 노리고 움직일 백련교를 견제해야 했다.
지금 가장 위협적인 것은 그림자처럼 은밀하게 움직이는 광신도들이었다.
당연히 왕실의 안전도 신경 써야 했다.
평소에 궁궐 숙위를 책임지던 홀치와 응양군은 나를 따라 서경으로 이동한다.
가진과 아이들이 남아 있는 개경은 당분간 파평군 윤해와 정세운이 이끄는 용호군과 순군만호부가 지킬 것이다.
“이곳은 제가 맡아서 최선을 다할 테니 무탈하게 다녀만 오세요.”
가진은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황실의 일원으로 태어난 그녀는 권력의 생리와 구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옆에서 도와주는 이들이 있다면 충분히 고려를 맡아줄 능력이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다짐했다.
“무사히 돌아올 거라 약조하리다.”
*
4월이 시작될 무렵.
드디어 고려는 심양 정벌을 떠났다.
불과 이레 전에 도당에 알렸는데 그때까지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극비로 취급했었다.
그래도 눈치 빠른 이들은 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병력과 물자의 이동 때문이었다.
새로 모병 된 이들과 온갖 전략 물자가 상단을 통해서 북부로 옮겨졌다.
당연히 가장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이번 기회를 잡기 위한 중소 상단이었다.
그들은 제2의 동오와 지경탁이 되기 위해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예상 못 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병력과 함께 서경 행차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와 관련되어 반발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미 결정된 일이고 도당의 대부분이 내 사람으로 채워진 상태다.
격렬하게 반대하는 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이제 나를 견제할 세력은 없었다.
부원배와 모략꾼은 대부분 축출되었고 이제현과 이색 같은 성리학자도 더는 도당에 발 딛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은밀하게 왕따를 당하는 중이랄까.
지금의 도당에는 기껏해야 이제현의 문하에서 배운 몇 명이 있을 뿐이었다.
물론, 가만히 있을 이들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아이돌 팬레터 수준으로 상소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그걸 펼쳐볼 틈도 없이 나는 개경을 떠나서 서경으로 향했다.
정확하게는 볼 생각조차 없었다.
“서경은 멀은 것이오?”
서경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아직 도로가 깔리지 않는 길이었다.
수레가 다닐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원나라에서 개경으로 향하던 길을 경험했던 터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당연히 행렬 중에 가장 체력이 뒤처지는 것은 나였다. 아무리 틈틈이 운동을 했어도 병사들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걷는 이들보다 말을 타고 가는 내가 더 지쳐 보였기에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그 탓에 쉬자는 말도 쉽게 못 꺼냈다.
그런 내 뒤로는 서경에서 숙위를 맡기로 한 이원림이 그림자처럼 뒤따르고 있었다.
행렬에는 서달과 변안열도 있지만, 그들은 곧장 집결지인 흥화진까지 계속 북진할 예정이었다. 거란족의 침입을 막았던 최전선인 그곳에서 북벌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의미 있었다.
“조만간 제령산과 동명왕릉이 나오니 이제 곧 도착할 것이옵니다.”
“오! 그게 이 부근이었소?”
“병사들도 상당히 지친 기색이 역력하니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가는 것은 어떠시옵니까?”
이원림은 눈치 좋게 제안을 해왔다.
괜히 행군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렇게 하자며 흔쾌히 이원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 시진 늦는다고 바뀌는 것은 없었다.
조금 여유 있게 출발한 터라 어차피 흥화진에서 동북면의 지원 병력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었다.
동명왕릉은 꼭 한번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동명왕은 고구려를 건국한 시조인 주몽이다.
국호에도 나타나듯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기에 태조 왕건 못지않게 동명왕에 대한 경외심이 상당히 컸다.
하지만 거길 가볼 수가 있어야지.
역사를 공부하며 조선의 왕릉은 대부분 가봤다. 수도권과 대도시 부근에 있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북쪽에 있는 고구려의 왕릉은 찾아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통일이 되기 전에는 꿈도 못 꾸던 곳이 코앞에 있다니 저절로 흥분됐다.
사기를 올리기에도 참 좋았다.
역사적 정당성은 우리에게 있었다.
과거 고구려의 땅이었던 곳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는 입장이니 고구려의 시조에게 보고할 필요가 있었다.
안 그래도 출정식도 하지 않았다.
심양에서 대응하기 전에 빠르게 공격하는 것이 핵심인데 개경에서 행사까지 하며 떠들썩하게 나올 수는 없었다.
이원림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그는 홀치 몇 명을 불러서 먼저 서경으로 보냈다.
“어딜 보내는 것이오?”
“이왕에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기(祭器)는 왕릉에 있을 테니 서경에 가서 제단에 올릴 음식을 간단하게 챙겨서 오라고 하였습니다.”
“맨손으로 가는 것이 조금 그렇기는 하였는데 잘하였소.”
이원림은 배려심이 깊었다.
그의 여동생이자 주덕유의 처인 이연도 마찬가지인 것을 보면 가정교육을 참 잘 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선두에 선 서달과 후방에 있는 변안열에게도 방금 정해진 내용을 전달해주었다.
그로부터 한동안 더 걷자,
마침내 동명왕릉에 도달했다.
잠시 경로를 살짝 이탈했으나 그리 많이 벗어나지는 않았다. 제단을 차리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다.
서경으로 보냈던 홀치가 과일과 간단한 음식 등을 챙겨와 제기 위에 올렸다.
조금 허접해 보이기는 했지만,
갑자기 정해진 거라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술 한 잔을 따라서 올려놓고 향초를 피웠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는 심호흡을 한 차례 한 뒤에 고개를 들며 크게 외쳤다.
“고구려의 시조께 비오니, 우리의 피와 땀 그리고 혼이 베어져 있는 북방의 영토를 되찾아 올 수 있게 도와주소서.”
내 목소리가 과연 어디까지 들릴까.
며칠 동안 목이 쉰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최대한 멀리까지 내 진심이 닿길 바랄 뿐이었다. 거기까지 외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변안열과 서달을 비롯해 수만 명의 병사들이 오직 나만을 지켜보며 서 있었다.
나는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황금빛이 감도는 장식용에 가까운 보검에는 온갖 보석이 박혀 반짝였다.
실용적인 면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검인데 이럴 때 쓰라고 만든 것이다.
이걸로 적을 베어야 할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이미 고려는 망한 것이다.
그걸 높이 치켜들고 외쳤다.
“과인의 수명이 다하기 전까지 반드시 대업을 이뤄낼 것임을 영면에 드신 고려와 고구려의 시조께 맹세하였노라!”
나름 훌륭한 퍼포먼스였던 것 같았다.
개경에서 출정한 3만여 명의 병사들은 그 모습을 보고 두 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효과가 훨씬 좋았던 것 같았다. 그들은 어느 때보다 우렁찬 목소리로 천세가 아닌 만세를 부르짖었다.
“우와아아! 고구려 만세! 대고려 만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