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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91화 (91/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91

고려를 대표하는 최영과 이방실.

북부를 지키고 있는 두 장군 못지않게 유명한 명장이 응양 상장군 안우다.

몇 해 전에 원나라 원정에 함께 했다가 돌아온 그는 지난해 쌍성총관부 전투에서 상당히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지금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김휘남과 함께 탐라의 반란을 평정한 변안열도 있으나 대마도 정벌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엄연히 고려의 땅인 탐라와 달리 그곳의 원주민은 적대적으로 나올 것이 뻔했다.

그러니 경험 많은 이가 필요했다.

그때 안우가 선정전(宣政殿) 안으로 들어왔다. 용호군을 담당하는 만큼 궁궐 부근에서 항상 상주하고 있는 그였다.

지금까지 궁궐 숙위는 응양군이 독차지할 정도로 용호군의 위상은 바닥이었다.

유명무실해졌다고 할 정도로 편제조차 정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안우가 맡은 이후부터.

어느 정도 옛 위상을 되찾고 있었다.

아직은 응양군 수준은 아니었으나 병력 충원도 이뤄지고 있었고 꾸준히 훈련도 진행하며 정예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소신을 부르셨사옵니까?”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불렀소.”

“뭐든 하명만 하시옵소서.”

내가 신호를 보내자 이인복이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해줬다.

궁궐 숙위를 맡고 있기에 왜국의 사신이 들어왔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고려를 괴롭히던 왜구를 보낸 이가 누군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안우는 노기를 감추지 못하고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과인은 그들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소장에게 병사를 주시면 당장 쇼니라는 그 놈의 머리를 잘라와서 전하께 바치겠사옵니다.”

“안 그래도 대마도를 정벌할 생각이오. 정벌군을 장군에게 맡기려 하는데 어찌 생각하시오?”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꺼낸 정벌 이야기였으나 곁을 지키고 있던 이인복과 백문보는 그다지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왜구의 정체를 알고 있는 두 사람은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마도는 우리 고려의 땅이다]

그런 말을 자주 했던 탓도 있었다.

대마도는 전략적인 요충지인 것은 다들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해상에서 왜구를 막아내는 방식이 통한 덕분이었다.

그곳만 차지할 수 있다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왜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대마도 정벌군을 맡기겠다는 말을 꺼내자 안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머리를 조아렸다.

“맡겨만 주신다면 대마도를 전하의 통치 아래에 놓을 수 있도록 소장이 최선을 다하겠사옵니다.”

안우는 망설이지 않고 받아들였다.

장수가 되어서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리가 없었다. 덕분에 북부에 있는 최영과 이방실을 부를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현재 방어선을 만들기 바빴다.

내가 두 장군에게 내린 명령은 수십만 대군이 밀려와도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하온데 정벌군의 주축이 될 병사들은 어떻게 구성하실 것이옵니까?”

“이번 정벌의 주축은 변안열 장군이 이끌고 있는 병사들이 될 것이오.”

지난해 모병한 병사들은 모두 북부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개경의 병사를 빼서 그쪽으로 돌리자니 부담이 됐다.

애초에 변안열은 왜구를 막기 위해 남해안에 배치됐으니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병력 중에 그가 가장 적당했다.

더구나 그가 이끄는 병사는 탐라의 반란을 평정하고 돌아온 경험도 있었다.

“소신이 거느린 용호군의 일부를 추려서 함께 가도 되옵니까?”

“응양군과 홀치도 있으니 궁궐 숙위에 영향이 없을 정도면 상관없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리고 이번 정벌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대마도는 안 장군이 맡으시오.”

대마도는 최전방이었다.

탐라는 문신인 이공수가 맡고 있지만, 대마도는 언제 다시 규슈에서 탈환하기 위해서 처들어올 지 모르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안우도 쉽게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소신은 싸우는 재주만 있사옵니다.”

“대마도는 일종의 요새라 생각하고 관리되어야 할 곳이오. 당연히 일을 도와줄 이들도 보낼 테니 걱정 마시오.”

안우의 걱정이 뭔지는 안다.

내가 즉위한 이후부터 문무의 경계를 확실하게 나누고 있는 탓이다.

당연히 문신 대부분이 이번 조치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대마도를 절대 무너지지 않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관보다는 무관의 관점에서 대마도를 통치해야 했다.

그만큼 안우를 믿는다는 뜻이었다.

“혹시 누구를 염두에 두고 계신지 여쭤봐도 되겠사옵니까?”

“변옥란과 정몽주를 비롯해서 문관 몇 명을 이번 정벌에 같이 보낼 생각이오.”

“정몽주라면 얼마 전에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해서 공을 세운 이가 맞사옵니까?”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몽주와 진방회(眞訪會)는 그 공을 인정받아서 공식적으로 포상을 받았다.

개개인이 받은 재물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성공적인 데뷔라 할 수 있었다.

고려 전역에 배포된 해례본에 이름 석 자가 찍혀 나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보낼 생각은 없었다.

대마도로 보내는 파견은 다음 단계로 올라서기 위한 경력을 위한 것이다.

그러니 길어봐야 1~2년에 불과했다.

당연히 거기에는 새롭게 고려에 합류한 무장들도 몇 명 포함시킬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이원계와 이성계 그리고 조인벽도 보내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하오.”

동북면에서 온 그들 세 명은 이제 거의 모든 훈련 과정을 끝낸 상황이었다.

성균관에서 진행된 군사학의 기초도 매우 훌륭한 성적으로 무사히 수료했다.

이제는 실전 경험이 필요한 시기였다.

더구나 해군과 함께 싸우는 전투는 경험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당연히 안우도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후배들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많았다.

훗날 고려를 지킬 창과 방패가 될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이성계에 대한 기대는 상당히 컸다.

확실히 남다른 인물이기는 했다.

귀신 같은 활 솜씨와 격구 실력은 이미 개경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모든 면에서 또래의 무관들에 비해 압도적일 정도였다.

그런데 생각 외로 그의 형인 이원계와 조인벽도 상당히 준수한 성적을 냈다.

이원계는 이성계와 달리 문무 양면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고 조인벽은 종종 기가 막힌 전술을 내놓을 때가 많았다.

그때 잠자코 듣고만 있던 백문보가 슬쩍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이번 정벌군은 어느 정도의 규모로 예상하고 계시옵니까?”

“용호군의 일부를 보낼 테니 김휘남과 주덕유의 해군 전부와 변안열이 이끌고 있는 5천 명의 병사면 충분할 것이오.

솔직히 그 정도면 과할 정도였다.

대마도 1차 정벌 당시에 박위 장군이 이끌고 간 병력은 1만 명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군만 1만 5천 명이고 거기에 육상 병력만 5천 명을 더하게 되면 최소 2만 명을 넘길 것이다.

“하오면 그들 전부를 대마도 방어를 위해 주둔시키실 생각이시옵니까?”

백문보는 그게 걱정됐다.

주둔군의 규모가 클수록 보급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탐라도 비슷한 문제가 생겨서 골치가 아팠다.

섬의 식량 생산량은 그리 높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일정량의 식량을 계속 운송을 해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변안열의 병사 중에 절반을 남겨서 상장군이 맡으시면 되오.”

대충 3천 명 정도에 불과했다.

대마도를 방어하기에는 부족한 병력인 것은 알지만, 애초에 해상 전력이 압도적이라 불가능하진 않았다.

현재 기성현(거제)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주덕유의 함대를 대마도로 옮기면 된다.

두 병력을 합치면 1만 명에 달한다.

더구나 지금 주덕유의 함대를 꺾을 수 있는 해상 전력은 없다고 보면 되었다.

왜국에는 그가 탄 배를 따라잡을 수도 없고 화포를 기가 막히게 쏘는 덕분이다.

그들을 잡으려면 두 배 이상의 왜선으로도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건 내 생각에 불과했다.

정벌을 떠나기 전에 고려해야 할 사항은 상당히 많았다. 조금 더 상세한 내용은 안우와 도당에서 정리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안우는 내게 한 가지 질문을 더 했다. 지금 계획하고 있는 대마도 정벌을 언제로 생각하고 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의 고민도 없이 대답을 해줬다.

“날이 풀리는 봄이 되면 곧장 출정할 수 있도록 차질 없이 준비하시오.”

*

대마도의 정벌이 선언된 뒤.

준비는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백문보를 비롯한 모든 재추가 앞장서서 출정에 대한 일을 처리해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당해온 것이 워낙 많았다.

그걸 갚아줄 때가 온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주덕유의 사략 함대가 돌아다니며 왜국에게 복수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아는 이는 극히 적었다.

공식적인 문서에는 그들의 활약은 전혀 기록조차 되지 않고 있을 정도였다.

굳이 그런 걸 기록할 필요는 없었다.

안우는 곧장 병사들을 데리고 남해안 지역으로 내려가서 변안열을 비롯해서 해군을 지휘하는 김휘남 등과 합류했다.

현재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서 대마도 정벌을 위한 상륙 작전을 훈련했다.

그러는 사이 정유년이 밝아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1357년이 된 것이다.

쏜살같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원자인 왕현의 폭풍 성장만 봐도 실감 되었다.

올해로 원자는 네 살이 되었다.

덕분에 요즘 시간이 될 때마다.

원자와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있었다.

그나마 지금이 조금 덜 바쁠 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년 정도만 더 흘러도 정신없어질 것이 분명했다. 원자가 크는 것을 지켜볼 시간은 지금밖에 없었다.

“옛날 옛적에 작은 마을에 아기 돼지 삼 형제가 살았어요.”

곁에 앉아서 동화책을 읽어주자.

원자는 눈을 반짝이며 듣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왕현은 옛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애정하는 이야기가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였다.

수많은 이야기 중에 왜 그걸 좋아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내가 직접 그려서 넣어준 삽화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원자는 훌륭한 귀를 가졌다.

새롭게 동화가 쓰일 때마다 들려주면 원자의 반응을 보고 흥행을 점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감이 좋은 편이었다.

얼마나 동화책을 읽었을까.

슬슬 피곤함이 밀려와서 살짝 고개를 돌리니 반쯤 눈을 감은 왕현이 보였다.

잠들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이제 슬슬 잔업을 하기 위해서 일어서려 하자 발버둥을 치며 칭얼거렸다.

‘도대체 누굴 닮은 건지···.’

원자의 고집은 생각 이상이었다.

평소에는 순둥순둥한 아이였지만,

일단 한 번 뭔가에 꽂히면 남다른 집념을 보일 정도였다. 요즘 동화책 외에 가장 관심을 보이는 것은 장난감 칼이었다.

일단 손에 쥐면 절대 놓지 않으려 했다.

그걸 보고 왕자가 아니었다면 장군감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잠시의 실랑이를 한 뒤.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오자 신소봉이 눈을 맞으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면포로 만든 옷을 입고 있다지만, 꽁꽁 언 채 떨고 있는 게 안쓰러웠다.

내게 전할 말이 있어서 왔다가 원자가 잠자리에 들 시간대라 묵묵히 기다린 것 같았다.

“쯧쯧, 미련한 사람 같으니 어디 들어가서 기다린다고 누가 뭐라고 하던가.”

“꼴이 좀 사나워 보여도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 기다린 것은 아닙니다.”

“무슨 일 때문에 여기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가?”

“아차! 하윤린 공학박사가 드릴 말씀이 있다고 태평전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윤린이?”

그가 나를 찾아올 이유는 뻔했다.

단번에 무슨 일 때문인지 알아차린 나는 곧장 태평전을 향해 빠르게 걷었다.

잠시 후에 소매에 쌓인 눈을 털면서 태평전 안으로 들어서자 하윤린이 보였다.

그는 뭐가 그리 즐거운 것인지 싱글거리는 표정이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간 준비하던 것을 마친 것으로 보이는 데 끝난 것이 맞소?”

지난해부터 하윤린은 한글의 인쇄를 위해서 압착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아마 그와 관련된 개발이 끝난 것이 아닌가 예상되었다. 내 질문에 하윤린은 품에서 곱게 접은 종이 몇 장을 꺼냈다.

그런 뒤에 신소봉을 통해 그걸 나한테 전달해주었다.

“드디어 인쇄하기 위한 준비가 모두 끝났사옵니다. 이것이 방금 인쇄한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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