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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90화 (90/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90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은 사신이 올 시기는 아니다.

얼마 전에도 중동팔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왜국에서 보낸 사신이 왔었다.

그게 아주 오래된 것도 아니었다.

불과 두어 달 전의 일이었고 당시에는 별다른 이야기도 전혀 없이 돌아갔다.

그런데 사신을 보내다니 이상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보냈냐는 것이었다. 지금의 왜국은 남조와 북조로 나눠진 무로마치 시대다.

심지어 천황이라 불리는 자마저 남북조에 한 명씩 따로 세워놨을 정도였다.

북조의 고코곤 천황.

남조의 고무라카미 천황.

훗날, 일본의 역사에서는 남조의 천황을 전통으로 인정했으나 지금은 서로 자신이 진정한 천황이라 주장하고 있다.

당연히 사신도 따로 보내는 이들이다.

일단은 어느 쪽에서 보낸 건지 물었다.

“남조와 북조 중에 어느 쪽에 소속된 사신이라더냐?”

“소신이 전달받기로는 막부와 왕이 보낸 게 아니라 북조의 쇼니 요리히사가 보낸 이라고 하옵니다.”

“흥! 쇼니 요리히사면 다자이후(大宰府)의 슈고(守護) 아니더냐.”

저절로 콧방귀가 나왔다.

솔직히 조금 어이가 없었다.

슈고라는 직위는 막부 시대의 지방관이라 보면 되었다. 고려의 안무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영주처럼 자치권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엄연히 월권에 가까웠다.

“주덕유 때문인 것 같사옵니다.”

이인복은 조심스레 예측했다.

내 예상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쇼니 요리히사는 규슈를 지배하는 이였는데 대마도를 지배하고 있는 소 쓰네시게 형제를 밑에 두고 있다.

최근에 주덕유가 조금 과하긴 했다.

현재까지 그는 대마도와 규슈의 마을 몇 개를 아예 지워버렸다. 그렇다고 대마도의 병사들과 전면전을 벌이지는 않았다.

곰처럼 생긴 외모와 달리 여우 같이 움직이고 있는 주덕유의 함대였다.

“대마도의 인구 중에 1할 가까이 끌고 왔으니 뿔이 날 만도 하지 않소.”

“지금까지 쌓은 그들의 업보이옵니다.”

“사신은 어떻게 하옵니까?”

신소봉은 아직 내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식으로 온 사신의 경우에는 영빈관(迎賓館)이나 그와 동등한 시설에 머물 곳을 내주는 것이 보통의 관례였다.

하지만 일개 영주가 보낸 사신은 처우를 정하기 상당히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정식 사신으로 대우를 해주시오. 다만, 과인이 부르기 전까지는 영빈관에서 알아서 둘러대며 최대한 묶어 두시오.”

당장 그들을 볼 생각은 없었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의 사신을 맞이했으나 한 번도 갑질을 한 경우는 없었다. 애초에 고려보다 약소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게 시간을 내줄 생각은 없었다.

만약, 남조였다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현재 고려와 무역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남조에 소속된 이들이었다. 그렇다고 북조를 아예 배척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상단과 영지에서 개별로 맺은 거래가 많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쇼니 요리히사였다.

경인년 왜구라 불리는 이들을 보낸 것이 그였기 때문에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모든 왜구를 그가 조종하는 것은 아니지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공교롭게도 너무 의심되는 게 많았다.

규슈가 전쟁에 휘말릴 때마다.

공교롭게도 왜구의 침입이 잦아진다.

역사와 통계를 통해서 이미 증명된 사실이었고 그로 인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병량미 확보’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들이 왜구의 몸통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왜구의 전부라 할 수는 없다.

수백 척에 달하는 대규모 선단은 그들 외에 다른 세력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쇼니 씨가 위세 등등하더라도 그 정도의 왜선을 운영할 수준은 아니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직 나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충 보름 정도 애간장을 태워볼까.’

*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뒤.

쇼니 요리히사가 보낸 모가미 쿠스레는 드디어 사신 자격으로 입궐할 수 있었다.

모가미는 매일마다 알현 요청을 했으나 궁궐 담당자는 온갖 핑계로 미뤘다.

그렇다고 대놓고 불만을 드러낼 수 없었는데 천황도 아니고 일개 영주가 보낸 사신인 탓에 갑과 을은 이미 확실했다.

그래도 꼴에 사신인 터라 나는 정전의 옥좌에 앉아서 모가미를 맞이했다.

“다자이후의 슈고인 쇼니가 보낸 사신이라고 들었소.”

“그렇사옵니다.”

“언제부터 왜국을 지배하는 막부나 왕도 아니고 지방을 다스리는 슈고에 불과한 이가 사신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천황을 일부러 왕이라고 칭하자.

모가미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었다.

모욕이라도 당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왜국을 다스리는 왕이 감히 하늘을 운운하는 것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것이오?”

괜히 시간을 끌기 싫었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었다.

어서 본론으로 들어가라고 운을 떼자 모가미는 자신이 고려에 온 이유를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대로 그는 최근에 대마도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약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 힘없는 백성을 약탈하고 납치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사옵니다. 그런 탓에 해안가에 사는 이들의 공포가 극심하오니 전하의 아량을 부탁드리옵니다.”

“그걸 왜 과인에게 말하는 것이오?”

“고려의 수군이 저지른 일이 아닙니까.”

모가미는 꽤 직설적이었다.

목숨이 아홉 개쯤은 되는 것 같았다.

그건 용기가 아니라 자만에 가까웠다.

지금까지 사신의 목을 자른 적은 없으나 못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화를 낼 틈도 없이 이인복이 먼저 나서서 호통을 쳤다.

“감히 그딴 말도 안 되는 말을 입에 담고도 살아 돌아갈 수 있을 성싶으냐!”

그가 이렇게 분기탱천한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것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인복은 왜구의 정체가 누군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고려의 백성을 유린하던 이들이다.

그런 자들이 이제 와서 앓는 소리를 하니 도저히 참기 어려운 일이기는 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왜구의 배후인 쇼니가 할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참으로 안쓰러운 일이오. 하지만 오해가 있는가 본데 그들은 고려에 소속된 이들이 아니오.”

주덕유의 사략함대.

그들은 고려군의 소속이 아니다.

공식적으로는 거기에 속한 이들은 모두 파면을 당한 상태였다. 명예를 잠시 내려놓고 고려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에 대한 보상은 약탈한 재물을 나눠주는 것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 때문에 손해가 극심한 상태라 참으로 난감하오.”

“하오나···.”

“오히려 나는 다자이후의 슈고가 여러 차례 보낸 왜구로 인해 고려가 본 손해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싶소.”

“그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사옵니다.”

내로남불은 이 시대에도 있었다.

당한 것만 기억하는 편리한 뇌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이건 DNA에 깊숙하게 새겨 놓은 일본인들의 특징인 것 같았다.

하여간 상대하지 못할 족속들이었다.

괜히 이순신 장군님이 교활한 짐승이라 말씀하신 게 아니었다.

“정말 모르겠다고 발뺌하는 것이오!”

나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물었다.

노기가 가득한 얼굴로 호통을 치자 그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넙죽 엎드렸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이기는 했다.

여기서 입을 잘못 놀렸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쓰시마가 당하고 있는 침구를 규탄하기 위해 온 것인데 오히려 고려를 침구한 왜구들에 대해 추궁을 받고 있었다.

확실히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

팔관회에 참가한 왜국의 사신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하지만 왜구에 대해 이렇게 고려가 직접적으로 따지진 않았다.

보통 규슈를 통해 사신이 떠나고 돌아오기에 사신들을 통해 들은 확실한 정보였다.

하지만 모가미가 모르는 게 있었다.

고려는 이미 왜구의 배후에 누가 있는 건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감찰사가 원나라에 집중되어 있고 워낙 폐쇄적인 곳이라 밀정을 심기도 쉽지 않아서 왜구에 대한 정보력은 낮았다.

‘하지만 나를 속일 수는 없지.’

왜구의 배후가 쇼니라는 사실을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사료에 의한 합리적인 의심이었으나 이젠 확실했다.

기존에 고려를 침입한 이들 중에 사로잡힌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정전 한쪽 편에 기다리고 있던 이원림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가서 그놈들을 데리고 오시오!”

이럴 줄 알고 준비한 게 있었다.

보름이란 기간은 그들을 개경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이었다.

이원림은 잠시 후에 포박이 된 왜인 몇 명을 데리고 와서 무릎을 꿇렸다.

그들을 본 모가미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미간을 찡그렸는데 잠시 후에 그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사색이 되었다.

포박된 채로 무릎이 꿇려진 이들은 대부분 왜구를 지휘하던 이들이었다.

죽거나 실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던 이들이 살아서 나타난 것이었다.

그중에는 모가미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이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즉위 원년에 강화에서 잡힌 우키다였다.

우키다는 쇼니 가문의 가신이었다.

당연히 모가미와 개인적인 친분도 상당히 깊었다. 규슈에서는 우키다가 죽은 거로 알려진 탓에 모가미는 귀신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몸이 된 우키다였다.

당시 그는 변안열의 칼을 어깨를 길게 베이며 쓰러졌지만, 치료를 잘해준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그는 노역을 하고 있었다.

동료 대부분이 광산에서 죽은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명줄이 긴 편이었다.

“과인에게 했던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다시 해보거라.”

우키다는 아주 잠시 머뭇거렸다.

과거의 동료 앞에서 배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자괴감에 몸부림치며 우키다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원림과 홀치가 눈을 부라리며 허리춤에 걸린 검에 손을 올리자 우키다는 숨을 쉴 틈도 없이 모든 것을 실토했다.

지금까지 당한 것이 있기에 자동으로 나오는 반응에 가까웠다.

“당시에 저희들은 쇼니 요리히사가 고려에 가서 병량미를 확보하라는 지시를 받고 온 것이옵니다.”

“이 배신자! 닥치지 못하겠느냐.”

“병사들 대부분이 쇼니와 쓰시마를 다스리고 있는 소 씨 형제의 정규 병사였고 저 역시 그들의 아래에서 소속되어 있던 무장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우키다의 증언은 이어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그쯤 되니 모가미도 더는 참지 못하고 우키다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두어 걸음도 떼지 못하고 홀치에 의해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볼품없이 바닥에 쓰러진 그를 잠시 바라보던 나는 홀치를 이끌고 있는 이원림에게 다시 지시를 내렸다.

당장 죽일 생각은 없으나 그냥 돌려보낼 생각도 없었다. 갈 때 가더라도 고려의 매운맛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여봐라. 이자는 왜구가 보낸 간자가 분명하니 당장 하옥시키고 죄를 묻거라!”

그길로 곧장 모가미는 끌려나갔다.

마지막까지 발버둥을 쳤으나 조그마한 체구인 그가 홀치를 이길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다.

덕분에 잠시 소란스러웠으나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지금 대마도를 먹어버릴까?’

안 될 이유가 없었다.

원래 대마도는 후순위에 불과했기에 따로 장기 계획을 세워 놓은 상태였다.

일단은 홍건적과 여진의 공격을 받는 1359년부터 1364년까지 어떻게든 버티고 그 이후에 도모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 외의 변수가 생겼다.

원나라에서 유입된 유민의 수가 상당히 많았고 상업도 빠르게 발전 중이다.

원래의 계산보다 병력의 증강도 목표보다 높게 재설정 되었기에 대마도가 사정권 내에 들어왔다.

만약에 대마도를 장악할 경우.

왜구들의 항해는 꽤 고달파진다.

중간을 거치지 않고 고려까지 도달해야 하는데 이키섬에 대규모 함대를 수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항해 거리가 길어지는 만큼 위험도와 피로도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김휘남과 주덕유가 이끄는 함대가 각각 탐라와 대마도에 머물면 고려의 땅에 도달하기 전에 요격하는 것이 가능하다.

잠시 고민하던 끝에 현재 용호군을 맡고 있는 안우에게 이 일을 맡기기로 했다.

“당장 용호 상장군을 불러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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