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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81화 (81/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81

원융부에서 소란이 있을 무렵.

개경은 도로 공사로 정신이 없었다.

가장 먼저 길을 뚫어야 하는 곳은 역시 벽란도와 개경을 잇는 구간이었다.

워낙 많은 물자가 그 길을 통해서 개경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에 대한 이견은 없었다.

더구나 각지로 흩어지기 전에 공사 담당자들이 요령을 익힐 필요가 있었다.

지역마다 다른 형태의 길을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기존의 길과 동일한 코스로 도로가 놓이지는 않았다.

산속으로 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경사가 가팔라서 수레가 올라가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결국에는 일부 구간은 새로 길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마 서경에서 나주까지 길을 이으려면 이런 일이 허다하게 생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농지가 길이 되거나,

집을 헐고 지나가야 하는 일도 생겼다.

당연히 최대한 그런 일을 피하고 있으나 어쩔 수 없을 때는 보상을 해줘야 했다.

거기에 쓰는 재물은 이번에 사찰에서 확보한 게 많아서 부족하진 않았다.

불교계의 역량은 생각 이상이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축재한 재물은 모두의 예상을 깰 정도였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서너 배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덕분에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공사의 범위가 상당히 넓어졌는데 공부 상서 황석부는 그 탓에 상당히 부담을 느꼈다.

지금까지 수백 명 단위는 맡아본 적이 있으나 이건 거의 만 명 단위에 육박했다.

서경의 복구와 북부에서 축성을 하고 있는 인원까지 모두 합친 숫자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오히려 공사의 규모를 줄이기 위해서 애를 썼다.

“도로의 폭이 너무 넓은 것이 아닌가 생각되옵니다. 지금이라도 조금 줄이는 것은 어떠하시옵니까?”

“그건 아니 되오. 수레 두 대가 나란히 지나다닐 정도의 넓이여야 하오.”

“그렇다면 옆에 인마(人馬)가 다니는 길이라도 없애시는 편이···.”

“반쪽짜리 도로를 만들 생각이오?”

시찰을 나온 나는 고개를 저었다.

수레나 마차만 다니는 길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포장은 못 해주더라도 사람과 말이 다닐 길 정도는 준비해줘야 한다.

인도를 따로 만들지 않으면 분명히 도로가 혼잡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고의 위험도 있었다.

가능하면 말과 사람이 걷는 길을 따로 만들어야 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말굽과 편자의 보호 때문이었다.

마차를 끄는 말은 어쩔 수 없으나 가능한 콘크리트 위로 다니지 않게 해야 했다.

그래도 공사 속도는 느리지 않았다.

개경 코앞에서 진행되는 일이기에 병사들을 동원하기도 매우 쉬웠다.

워낙 훈련을 빡세게 하는 탓에 오히려 공사를 나가는 것을 더 반길 정도였다.

거기에 부식과 밥도 무척 푸짐하게 나가니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도 시공은 시킨 대로 잘하네.’

도로는 말끔하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바닥에 자갈 등을 깔아서 기초를 다진 후에 그 위에 콘크리트를 깔고 있었다.

다만 중심부를 조금 높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안쪽의 높이가 주변보다 낮으면 우기에 비가 고이기 때문이었다.

“개경의 시전부터 벽란도까지 잇는 것은 얼마나 걸릴 것 같소?”

“처음에 예상했던 대로 최소 서너 달 정도는 걸릴 것 같사옵니다.”

“이 정도의 인력으로도 그 정도 걸린다면 서경과 나주를 잇는 것은 쉽지 않겠구려.”

“적어도 몇 년간 진행될 일이니 길게 보셔야 하옵니다.”

콘크리트가 굳는 시간과 날씨.

두 가지 모두 시간을 지연시켰다.

결국에는 공사 할 수 있는 날이 제한적인 상태였고 겨울도 제외해야 했다.

그러니 실제로 일을 할 수 있는 날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 시대에 중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라 모든 일을 사람의 손으로 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나 상황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만큼 일자리 창출이 많이 된다는 장점도 있었다.

“중간 지점은 어디로 선정하였소?”

“벽란도 공사가 끝나면 개경과 나주 그리고 그 중간 지점인 직산군에서 양쪽으로 뻗어 나갈 예정입니다.”

“그러면 네 곳에서 동시에 공사가 진행되는 것이오?”

“현재 동원된 인력으로는 그 이상은 조금 무리라 판단해서 결정하였사옵니다.”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장 경험이 많은 황석부가 그렇다고 말하면 믿어야 했다.

아마 그가 적절하게 분배해놨을 것이다.

잠시 도로 공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궁궐 방향에서 정세운이 급하게 말을 타고 달려왔다.

“원융부에 있어야 할 이가 여긴 또 왜 온 것이지?”

“이곳도 순군만호부가 통제하고 있으니 살펴보러 온 것일 수도 있사옵니다.”

황석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포장이 마를 때까지는 사람의 출입을 통제해야 한다. 실제로 밤에는 멧돼지며 노루가 발자국을 내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병사들을 시켜서 밤새도록 횃불을 켜고 지킬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상당히 급박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정세운은 말에서 뛰어내려서 곧장 내게 다가왔다.

그가 달려와서 다급하게 전해준 소식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전하! 반란이옵니다.”

반란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순식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는 역시 동북면과 최근에 불만이 많은 승려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탐라에서 가을치와 투크타치라는 자가 도순문사 윤시우와 목사 장천년 그리고 판관 이양길을 살해했다 하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이게 뭔지 단숨에 알아챘다.

20년간 진행되는 ‘목호의 난’이 지금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원래의 시기보다 몇 개월 정도 더 빨라졌다.

그 원인이 어찌 되었든 지금은 이 문제를 해결부터 해야 했다.

탐라가 조금 애매하긴 했다.

백 년 전에 삼별초가 탐라에 들어간 후부터 원나라의 지배를 받다가 고려의 소속으로 돌아온 게 오래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지난해까지 정동행성 소속이었기에 탐라만호부가 사라진 것도 몇 개월 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제주라는 이름은 아직 많이 사용하지는 않는구나.’

오십 년 전에 제주란 이름이 붙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탐라라는 말을 썼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 남 탓을 할 수도 없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탐라는 고려에 대한 소속감이 전혀 없었다.

윤시우와 장천년이 보내졌지만,

여전히 탐라는 성주가 있는 곳이다.

더구나 긴 시간 탐라에 정착한 목호(하치)도 통제가 거의 되지 않고 있었다.

지금 이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미리 좀 신경을 쓸 걸 그랬나.’

솔직히 지금껏 탐라는 후순위였다.

당장은 손댈 수 있을 여유가 없었다.

내 모든 신경은 원나라와 쌍성총관부에 쏠려 있었고 불교계의 정화 작업과 마두라이의 생존이 더 시급했었다.

하지만 그냥 놔두기도 애매해졌다.

목호의 난이 발생한 탓에 탐라목장의 목마양육은 황폐화되어 쇠퇴하게 된다.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막고 싶었다.

“지금 당장 전령을 보내 김휘남 해군 원수와 변안열 장군을 불러오시오.”

*

그로부터 이레가 지난 후.

변안열과 김휘남이 입궐했다.

원래 목호의 난은 20년쯤 후에 최영 장군이 토벌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그를 불러낼 수는 없었다.

현재 최영은 동북면을 맡고 있기에 탐라까지 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두 장군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전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이공수였는데 이번 일은 피를 흘리는 것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수백 년간 쌓인 여러 울분이 쌓여서 목호의 난으로 터진 것이다.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이가 필요했다.

“과인은 그대를 탐라로 보낼 생각이오.”

“어떤 자리라도 최선을 다하겠사옵니다.”

“중요한 일이라 가장 믿는 이를 보내는 것이니 좌천이라 여기진 마시오.”

“그렇게 생각하지 않사오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이공수는 지금껏 쌓은 공이 있었다.

백문보와 함께 문하시중의 후보에 올랐던 이에게 탐라로 가라는 것은 좌천으로 비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고려를 위해 그가 해줘야 할 일은 여전히 많았다.

더구나 그는 기황후의 외종 오라비였기에 목호들을 다루기 쉽다는 장점도 있었다.

“일단 이것부터 보시오.”

내가 그에게 건넨 것은 지도였다.

그곳에는 축소된 한반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당연히 대마도부터 시작해서 북쪽으로는 심양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새로운 행정 편제가 그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탐라까지 포함하여 고려를 아홉 개의 도로 나누실 생각이시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었소.”

이공수는 그제야 어떤 자리를 맡은 것인지 정확하게 알아차렸다.

한반도 최남단에 있는 동떨어진 섬이나 대마도와 그 부속 도서까지 모두 합치면 작다고 하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이미 고위 대신 대부분이 대마도의 정벌은 당연한 일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 대신 탐라의 현지 사정에 맞춰서 자치권은 어느 정도 인정해 주고 당분간 안정이 될 때까지 조세도 받지 않겠소.”

“전하의 뜻대로 하겠사옵니다.”

“대신 이번 기회에 탐라의 백성을 잘 품어서 고려의 품으로 안겨주어야 하오.”

괜히 반란이 일어나겠는가.

탐라가 고려로 소속된 이후부터.

지난 수백 년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다.

삼별초가 탐라에서 항쟁을 하며 수많은 피를 흘렸고 한때는 원나라에 소속되어 목호들의 행패를 감내해야 했다.

그렇다고 고려는 잘했을까.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육지에서 온 관리들은 여전히 그들을 무시하고 수탈하며 못살게 굴었다.

더구나 이번에 보낸 이들은 기철 일가와 목호의 관계를 수사하다가 죽은 것이다.

아마 중간에 덜미가 잡힌 것이겠지.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있었다.

윤시우에게 수사 명령을 내린 것이 감찰사였고 나 역시 거기에 동의했다.

아마도 목호 중의 일부는 이번 기회에 추방하거나 아예 처단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이공수를 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맡아야 할 일은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들어오는 각국의 말을 탐라로 보낼 터이니 그 준비도 철저하게 해주시오.”

이번 기회에 목장도 준비해야 했다.

괜히 멀리 떨어진 탐라에 목장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었다. 겨울에도 춥지 않고 곳곳에 초지가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더구나 말을 해치는 호랑이나 곰과 같은 맹수도 없었다.

“맡겨만 주시옵소서.”

이공수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안 그래도 고려로 들어오는 새로운 품종의 말이 적지 않았다. 새롭게 목장을 만들고 운영할 필요가 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무엇보다 탐라 성주가 가진 지위와 목호들의 위세를 꺾는 것이 중요하오.”

“명심하겠사옵니다. 하온데 이번에 출정하는 병사들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시옵니까?”

“김휘남 해군 원수가 이끄는 육천 명과 변안열 장군의 직속 병사 사천 명까지 모두 합쳐서 만 명이오.”

그 정도면 충분하다가 못해서 남을 것이다. 이 시절의 탐라 인구는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사료에 남은 기록을 보면 많아야 2만 명 안쪽이다.

그중에서 싸울 수 있는 연령대는 아무리 많아 봐야 오천 명을 넘길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목호의 위세가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의 숫자로는 고려군을 이길 수는 없다. 나는 그쯤에서 이공수와 함께 떠날 김휘남과 변안열을 불러들였다.

“이번 토벌에 대한 모든 책임은 도순문사가 맡을 것이오. 대신 전투에 관련된 것은 장군들이 주도하시오.”

나는 정확하게 권한을 나눠줬다.

문관과 무관이 함께 나서면 괜한 기세 싸움으로 문제가 생기는 일이 많았다.

더구나 이번처럼 해당 지역을 맡을 이와 함께 원정을 떠나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들은 각자가 지닌 권한에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불필요한 살상은 자제하시오.”

이건 꼭 말해주고 싶었다.

목호의 난은 학살의 역사이기도 했다.

괜히 4.3 사태와 비교되는 게 아니다.

누가 목호에게 협조했는지 알 수 없기에 상당히 많은 민간인이 죽임을 당했다.

그걸 누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지금은 목호와 탐라인의 경계가 상당히 희미해진 상황이다. 백 년이 지나는 동안에 혼혈도 많이 생겼다. 당연히 의도치 않게 억울한 이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 희생은 최대한 줄이고 싶었다.

그렇게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더는 할 말이 없기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들을 배웅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탐라로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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