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80화 (80/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80

승려 영욱은 곧장 하옥됐다.

따로 지시를 내릴 필요도 없었다.

죄를 짓고도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는 그에게 아량을 베풀 이유는 없었다.

영욱은 자신이 어떤 일에 연루된 지도 몰랐다. 이 무렵의 승려들은 죄를 짓고 벌을 받아도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처벌이 관대하진 않았다.

승계를 가진 승려가 구족계(具足戒)를 어기는 죄를 지으면 불교계에서 영원히 파계(破戒)되고 개경에서는 추방됐다.

하지만 그리 효과가 좋진 않았다.

승려들은 파계되더라도 지역을 옮겨서 다시 사찰로 몰래 기어들어 간다.

나는 그걸 끊어버릴 생각이었다.

이달충의 최종 판결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15년간의 강제 노역이 선고했다.

당분간 영욱은 석회암 광산에서 왜구들과 함께 일하며 그 죄를 씻게 될 것이다.

솔직히 이것도 많이 참은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얼굴에 그들의 죄를 문신처럼 새겨서 영원히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냉혈한이라 소문이 날 정도로 엄하게 죄를 다스리는 이달충도 그 생각에 동의하진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도당에서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란 의미였다.

대신 나는 그의 종파를 박살 냈다.

영욱의 말은 거의 예언처럼 들어맞았다.

자은종은 범죄자의 소굴 같았는데 죄를 짓지 않은 승려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당연히 주지승이 범죄에 연루된 경우도 많았는데 그런 사찰은 모조리 폐쇄됐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승려 영욱의 사건이 벌어진 뒤부터.

감찰사의 어사들이 나서서 살인과 간통 그리고 사기와 구타 등의 죄를 지은 승려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부원배를 잡기 전부터 거의 수년째 불교계를 눈여겨보고 있던 이들이었다.

다들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어사들은 대부분 성리학을 공부한다.

당연히 부패한 불교에 대한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참은 이유는 속도를 제한하기 위해서 내가 고삐를 잡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걸 놓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공소시효 같은 것도 없었다.

덕분에 전법사는 다시 들썩였다.

각지에서 잡힌 승려들 덕분에 옥사는 모처럼 가득 채워졌고 심지어 강간마로 유명한 주지(住持)도 이번에 잡혀 왔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내가 쓴 교서가 전국 각지로 내려갔다. 내용은 이 나라에 진실된 승려가 없다는 개탄이었다.

“임금님의 말이 맞기는 하지! 아무리 우리가 불교를 믿는다지만, 너무 방만한 삶을 사는 스님들이 한둘이던가.”

“내가 아는 땡중이 하나둘이 아니야.”

“심지어 어느 주지 스님은 첩까지 들여 앉혀 놓고 살림집을 몇 채나 뒀더구먼.”

“쯧쯧.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백성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불교를 탄압한다는 우려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하려는 일에 호응을 해주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보여준 일들을 통해 쌓은 신뢰 덕분이었다. 더구나 백성들도 눈과 귀가 있기에 보고 들은 게 너무 많았다.

승려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개경만 보더라도 열의 하나는 승려였는데 집집이 돌아다니며 쌀을 구걸하는 탁발승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문 앞을 서성이니 그것 나름대로 고충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선교 양종의 주도하에 전국에 퍼져있는 사찰의 수가 제한되었다. 그 외의 사찰에서 보유한 토지와 재물 그리고 노비는 모조리 국유(國有)로 몰수됐다.

그러다 보니 불교계 전체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터라 반발하기 시작했다.

“불교계를 대표한다는 왕사께서는 원융부에 앉아서 무엇을 하고 계셨소.”

“원융부도 이번 일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어찌하여 전하께 이번 일에 대하여 아무 말씀도 안 해주고 계십니까?”

“왕실에서 사찰의 수를 제한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뭐라 말이라도 하십시오!”

광명사에 있는 원융부.

수많은 승려가 그곳으로 몰려왔다.

이번 조치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자은종은 물론이고 각지에서 올라온 주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다들 선교 양종에 소속되지 않은 종파에서 온 이들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정작 왕사인 보우를 만나지 못했다. 현재 보우는 광명사에 들어앉아서 꿈쩍도 안 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동자승 달자(達孜)는 초조했다.

개경의 경룡사(敬龍寺)에 머물 때부터 함께하던 아이는 이번에 광명사로 옮길 때 보우를 따라서 옮겨오게 되었다.

항상 똑 부러지는 모습을 보이던 동자승은 최근 들어 더 심해지는 승려들의 언성 때문에 조금 겁에 질려 있었다.

진짜 승려가 맞기는 한 것일까.

정말 험악해 보이는 이들이었다.

시정잡배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런 달자의 모습을 보며 보우는 웃으며 인자한 표정을 지었다.

“두려운 것이냐?”

“그렇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주지 자리를 얻겠다며 그렇게 아부를 떨던 이들이 이제는 완전히 돌아섰습니다.”

“헛된 욕망에 불과한 것을···.”

보우가 왕사가 제수된 후부터.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종문(宗門)에 소속된 사찰 주지는 왕사(王師)의 추천을 받아 임명할 것이라 공표한 탓이었다.

왕사의 의견에 따라 전하의 임명장이 내려오니 며칠 전까지는 서로 다투어 보우의 문도가 되려고 애쓰던 이들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저들은 수양이 부족하여 삼독(三毒)이란 번뇌에 빠져있는 것이니라.”

보우는 삼독에 대해 설명했다.

탐욕과 진에 그리고 우치는 중생을 해롭게 만드는 번뇌인데 독약과 같은 것이라 보기에 삼독이라고 부른다.

그중에 진에는 분노와 시기 그리고 질투를 포함한다고 말하자 달자는 미간을 찡그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저들은 우리를 절대 해칠 수 없을 것이다.”

“어찌 그렇게 자신하십니까?”

“그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기 때문이지.”

보우는 착잡한 표정을 보였다.

동자승 달자는 알지 못했으나 이미 원융부 주변에는 정세운이 직접 나와서 순군만호부를 곳곳에 배치됐다.

온갖 항의와 협박이 있을 거란 사실은 보우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만약, 저들이 불온한 행동을 할 경우.

전하께서는 그걸 핑계로 삼아서 당장 병사들을 동원하여 불교계를 깔끔하게 밀어버리실 것이다. 지금까지 알고 지낸 세월이 적지 않으나 매번 볼 때마다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번의 일도 그러했다.

승려 영욱의 사건을 이렇게 활용하실 줄은 생각조차 못 했던 그였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누구보다 백성을 아끼시는 분이다.

부패하거나 고려에 해악이 된다면 망설이지 않고 제거할 분이 바로 전하였다.

‘어쩌면 훨씬 이전부터 준비하셨을지도 모르지.’

불과 몇 개월 전에 원융부가 세워졌다.

하지만 감찰사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상당히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아 보였다.

거의 십여 년 전의 일도 끄집어내서 처벌하니 다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가 전하께서 약조하신 삼백 개의 사찰도 남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만큼 많은 승려들이 초심이 잃었다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면 전하께서는 불교를 멀리하시려는 것 같아 보입니다.”

달자는 그게 너무 두려웠다.

이미 불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그였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면 불교의 미래는 상당히 어두워 보이는 요즘이었다.

동자승이 할 걱정은 아니었으나 보우 곁에 있으니 듣고 보는 게 적지 않았다.

“그런 것이라면 어찌하여 전하께서 고찰(古刹)을 보수하라고 재물을 내주고 불경까지 찍어서 배포하시겠느냐.”

“그러면 박해가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지금의 상황이 단순하게 한쪽 면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죄를 지은 승려를 잡아들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불교에 많은 지원을 해주시고 계셨다. 상당히 모순적인 이야기이기는 했으나 그런 일이 실제 벌어지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불경 등을 찍기 위해 금속 활자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선교 양종에서 지정한 사찰에서 고려 최고의 장인이 투입되어 대형 불상과 탱화도 제작 중이다.

심지어 전하께서도 붓을 들었다.

탱화 작업에 한 몫을 보태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물론, 보우도 전하께서 왜 그런 일을 하고 계신지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불자와 백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시겠지.’

하지만 많이 걱정되진 않았다.

이런 일을 당했다고 백성들의 신앙이 단숨에 무너져서 돌아서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개혁에 찬성한 것이었다.

썩어버린 부위를 도려내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금방 원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까지 다른 승려들의 원망을 받아도 상관없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다들 안으로 들어갑시다. 도대체 뭐가 무서워서 이러고 계신 것이오!”

그때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지금껏 넘지 못했던 선을 넘어서자며 주지승 하나가 앞으로 나서서 외쳤다.

그는 어찌나 화가 났는지 정수리까지 붉게 물들어 있을 정도였다. 모든 재산을 빼앗겼으니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한 발자국도 떼지 못했다.

“거길 넘어서면 그 이후의 일은 어찌 될 지 장담할 수 없으니 자중하시오.”

어디선가 갑자기 병사들이 나타났다.

순군만호부의 소속된 이들과 함께 정세운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심지어 그의 뒤에는 전법사와 감찰사에서 나온 관리들도 나란히 동행하고 있었다.

개경의 치안을 담당하는 순군만호부의 이들이 이곳에 나타난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나서서 무력을 써서 승려들을 강제로 내쫓아도 할 말은 없었다. 엄연히 이곳은 전하께서 왕사를 위해 마련한 거처였다.

그때 보다 못한 보우가 나왔다.

계속 지켜보고만 있자니 승려들과 순군만호부의 병사들이 충돌할 것 같았다.

그렇게 충돌이 일어나면 당연히 피해를 보는 것은 승려들일 것이다.

보우가 나오자 지금까지 난리를 피우던 승려들은 입을 함부로 놀리지 못했다.

그게 다 도첩제 때문이었다.

보우의 선택에 따라서 앞으로 승려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 없을지 정해진다. 그건 승려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종의 생살여탈권 같은 것이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부디 다들 초심을 되찾길 바라오.”

“지금까지 불자로 살아온 우리들을 사찰에서 쫓아내면 어쩌란 말입니까?”

“불경을 외우는 곳이 곧 사찰입니다. 부처님은 불상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찰에서만 불경을 공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음만 있다면 속세에 몸을 담고 있어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모든 믿음은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장소가 중요한가. 그렇다면 그대들은 왜 천축국이 아닌 고려에서 세존의 가르침을 이어가는 것인가!]

보우는 얼마 전에 전하가 호통치던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조금 과하게 비약한 말이었으나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는 앞으로 나서며 불교에서 5욕(五慾)이라 불리는 식욕(食慾)·색욕(色慾)·재욕(財慾)·명예욕·수면욕을 경계해야 한다며 승려들을 다독였다.

한 차례 훈계가 이어지자.

승려들은 하나둘 등을 돌렸다.

보우의 말에 감화(感化)된 것은 아니고 사고 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법사 관리와 병사들 앞에서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건 스스로 자멸하는 행동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세운은 하나둘 떠나는 승려들의 등에 대고 외쳤다.

“요즘 공부에서 도로를 만들 일꾼을 모으던데 할 일이 없으면 굶지 말고 거기라도 가보시오!”

그걸 듣고 병사들은 다들 웃었다.

과연 배에 기름기가 가득한 저들이 그런 수고를 할까 싶었다. 하지만 정세운은 배고픔에는 장사가 없다고 여겼다.

슬슬 상황도 정리되었기에 병사들에게 왕사의 호위를 맡기고 돌아가려 했다.

그때 멀리서 몇 필의 말이 달려왔다.

성내에서 저렇게 달리는 일은 정말 드물었기에 당연히 시선을 끌었다.

전령으로 보이는 이의 등 뒤에 걸린 깃발을 본 정세운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긴급을 알리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그게 의미하는 것은 왜구의 침구 외에는 반란밖에 없었다. 하지만 왜구일 것란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정세운은 다급하게 말 위에 올라타서 궁궐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감히 어떤 놈들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