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71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원나라는 생각보다 꽤 조용했다.
말로는 80만 대군을 일으켜 당장 고려로 쳐들어오겠다고 했지만, 아무리 살펴도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음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원래의 역사와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항상 만약의 사태는 대비하고 있어야 했다.
덕분에 감찰사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원나라에서 들어오는 첩보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에 압록강 쪽을 통해 원나라의 사신인 중서성단사관 사데이칸이 황제의 조서를 가지고 왔다.
“그래서 이것만 주고 압록강 인근에서 넘어오지 않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사데이칸은 개경에 오지 않았다.
압록강 너머에서 발걸음을 멈춘 후에 사람을 통해 조서를 보내왔을 뿐이었다.
정말 듣도 보도 못한 행보였다.
사신이 이렇게 몸을 사리는 것은 처음 보았다.
“저들이 우리 쪽에서 보낸 사신을 요양성에 가뒀으니 그런 것 같사옵니다.”
백문보는 그 이유를 추측해봤다.
나도 그의 의견과 그리 다르진 않았다.
현재 그들은 절일사 김구년을 감금하고 있는 중이었다. 더구나 고려의 상황을 알 수 없으니 몸을 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상황 판단조차 안 될 것이다.
쌍성총관부로 출정을 떠난 후부터 정보 통제를 철저하게 하고 있었다.
우리가 원나라에 김첨수를 심어 놨듯이 그들도 우리 쪽에 심은 이들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모르는 척 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기에 대부분 쥐도 새도 모르게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잡아낸 이들만 수십 명에 달했다.
“그런데 황제가 보냈다는 조서의 내용이 참으로 해괴하옵니다.”
가져와 보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백문보는 금빛 비단 위에 쓰인 조서를 공손하게 내밀었다. 황제가 보낸 내용을 살피던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대충 그 내용을 정리하면 이랬다.
[원 세조가 천하를 통일한 후 고려가 신하로 복속하고 서로 혼인 관계를 맺어온 세월이 백 년이다.
근래에 너희 백성이라 사칭하여 병란을 일으킨 자들이 우리의 오랜 우호관계를 이간질하려는 것 같다.
만약 우리가 병사를 일으키면 옥석의 구분 없이 모두 섬멸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고려의 왕은 딴마음을 먹지 말고 군대를 보내 ‘변란을 일으킨 자’들을 섬멸하라.]
고려사의 내용과는 살짝 달랐다.
아마도 이번에는 압록강 너머의 8 참을 공격하지 않은 탓인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어감이 부드러웠다.
저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동쪽 끝에 위치한 쌍성총관부는 고려에 넘겨도 생각보다 그리 큰 타격은 없었다.
아주 작은 변두리 땅에 불과했다.
그런 곳쯤은 그냥 줘도 된다.
그렇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긴 생각해보면 쌍성총관부의 면적이 중원이나 강남의 일개 성보다도 작다.
지금 그보다 몇십 배나 되는 영토를 잃어가고 있으니 그런 곳쯤은 그냥 줘버리는 게 속이 편하기는 할 것이다.
‘여기서 고려마저 완전히 등을 돌리면 상당히 골치 아프긴 하겠지.’
반란군과 여진 그리고 왜구.
거기에 고려까지 더해지는 것이다.
여진은 그나마 아직은 잠잠했지만,
왜구들의 준동은 점점 심상치 않았다.
고려로 향하던 왜구들마저 필사적으로 서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요즘이다.
주덕유의 악명과 고려로 향했던 이들의 최후가 깊게 각인된 덕분이었다.
“이건 완전 답정너 수준이군···”
“그게 무슨 말이옵니까?”
“아무것도 아니오. 이쪽에서도 표문을 써서 보내야 하는데 문하시중께서 대필을 해주시오.”
팔자에도 없는 펜팔을 하게 생겼다.
글씨라면 나도 꽤 쓰지만, 직접 쓰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다.
“엄연히 예문춘추관의 관원이 있사온데 소신이 어찌 대신할 수 있겠사옵니까.”
“그대만한 달필(達筆)이 없지 않소. 중차대한 일이니 이번 기회에 실력 발휘 좀 해보시오.”
왜냐하면 이제부터 써야 하는 글에는 온갖 기만과 거짓말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 덤벼!’ 이런 식으로 나가면 될 일도 안 된다. 지금은 살살 구슬려가면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놔야 했다.
황제가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사신이 가지고 온 조서의 내용에서도 대놓고 그렇게 유도하고 있지 않은가.
정해진 답이 있으니 안 쓸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백문보의 받아쓰기는 긴 시간 계속되었다.
역시 시작은 미사여구로 가득했다.
고려의 사정을 헤아려달라는 말로 시작된 표문에는 온갖 하소연과 구구절절한 말이 가득 채워졌다. 그중에는 지금까지 못 했던 말들도 제법 많았는데 기씨 가문에 대한 성토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흠··· 이 정도면 되겠소.”
마지막으로 만수무강을 축원한 뒤.
백문보가 쓴 표문을 본 나는 만족했다.
비록 소설에 가까운 내용도 많았으나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글이었다.
말속에 담긴 뼈도 곳곳에 살짝 드러나 있기에 날카로운 느낌도 있었다.
과연 내가 말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상당히 잘 정리되었다. 역시 백문보의 문장 실력은 익히 알려진 대로 상당했다.
훗날 우왕의 스승이 괜히 되는 것이 아니었다.
“전하, 책임자를 문책하라는 조서의 내용은 어찌하실 겁니까?”
“설마 내가 이방실 장군을 버릴 것 같아서 하는 소리인 것이오?”
“아니옵니다.”
“책임자를 따로 문책할 필요는 없소.”
공식적으로 고려는 쌍성총관부로 도망친 역적 무리를 토벌한 것에 불과했다.
사실 여부가 어찌 되었든 상관없었다.
황제도 그곳을 내놓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니 괜히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이방실을 병마사로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래의 역사에선 인당이 죽는다.
서북면 병마사로 파사부까지 점령했던 그는 공을 세웠지만, 공민왕은 그를 희생 시켜 고려가 살아남는 것을 택했다.
인당도 출정 중에 강중경을 죽였으니 자업자득이기는 했다.
어쨌든 인당은 잘 살고 있었다.
지금은 한직에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그는 내가 목숨을 살려준 것도 모르고 이번에 출정해서 공을 세운 다른 장수를 향해 질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이대로 보내면 되겠사옵니까?”
“그래도 절차는 지켜야 하니 예문춘추관의 문한관에게 보내어 마지막으로 검토하게 하시오.”
“어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백문보도 그제야 부담을 덜었다.
적어도 고려 내에서 문장으로 따지면 최고라 일컬어지는 이들이 문한관이다.
그들이 손을 보면 실수가 있었더라도 잘 정리해줄 것이 분명했다.
“제가 전달하겠습니다.”
신소봉이 나서서 손을 내밀자.
지금까지 쓴 표문을 그에게 건넸다.
그가 잠시 예문춘추관으로 향한 사이에 나는 백문보에게 다과를 권했다.
꽤 긴 시간 집중해서 붓을 놀린 탓인지 왠지 당이 떨어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잠시 기분 전환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에게 해주려 했던 말을 꺼냈다.
조만간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지금이 적당할 것 같았다.
“다른 이들을 놔두고 과인이 문하시중 자리를 그대에게 제수한 이유를 알고 있으시오?”
“소신도 그것이 궁금하옵니다.”
이번에 후보자는 꽤 많았다.
유숙과 이공수 그리고 염제신까지.
모두 문하시중에 앉혀도 이상하지 않은 이들이었다. 염제신의 경우에는 원래의 역사에서 이제현의 후임이었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은 깨졌다.
후보에 오르기는 했으나 백문보가 될 거라 생각한 이는 그리 많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는 관운(官運)이 좋은 편은 아니었는지 죽을 때까지 문하시중의 자리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였다.
“앞으로 그대에게 몇 가지 과업을 줄 것이오. 쉽지는 않겠지만, 해보시겠소?”
“하명만 하시면 소신이 신명(身命)을 바쳐서 받들겠사옵니다.”
“과인이 바라는 것은 불교, 교육, 과거 시험을 전면 개편하는 것이오.”
세 가지 모두 상당히 중요했다.
하지만 나 혼자 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백문보였다.
그는 얼마 전에 10과(十科)로 과거 제도를 세분화하여 전문적인 관원을 선발하자고 상소문을 올린 적이 있었다.
불교 개혁도 그만한 이가 없었다.
최해(崔瀣)의 척불론을 계승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적절하게 속도만 조절해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그는 유학에 바탕을 두고 불교 숭상의 폐단을 혁신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교육 개혁.
그것은 향후 10년을 보고 진행하는 장기 계획 중의 하나였다. 국가 주도하에 어린 시절부터 집중적으로 원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미 즉위 원년에 학당 시설의 복구를 명하였으니 이제는 제대로 활용을 할 때였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세 가지를 아주 간략하게 설명한 뒤.
지금껏 듣고만 있던 백문보에게 앞으로 책임지고 진행할 수 있겠냐며 물었다.
하지만 물어볼 필요는 없어 보였다.
백문보의 표정을 보니 화색이 도는 것이 자신을 지목했다는 것만으로 기뻐 보였다.
남자가 되어서 자신의 뜻을 세우고 그걸 관철한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아쉽게도 시간은 그리 많이 줄 수 없소.”
“소신의 밤잠을 줄이더라도 전하의 뜻대로 해내겠사옵니다.”
“과인도 계속해서 지켜볼 것이오.”
옆에서 계속 도와주겠지만,
상당히 고된 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나마 문하시중의 자리는 모든 관원을 관리하는 최고위급이기에 사람이 부족한 경우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결과물을 바라진 않았다.
교육 개혁은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했다.
학당이 마련되어 있어도 그걸 가르칠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적어도 각 지역으로 보낼 교사부터 양성해야 했다.
‘그래도 이건 쉬운 편이지.’
몇 년 전부터 하륜 등을 교육 중이다.
그들을 가르치던 것을 바탕으로 정리를 해두고 있기에 그걸 활용하면 되었다.
당연히 현재 성균관 산하에 있는 아이들은 역사에 기록되는 영재급이다.
모두가 그들과 같을 수는 없기에 평범한 아이들을 위해서 어느 정도 난이도는 조절해야 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불교 개혁이었다.
다른 것과 달리 이것은 손을 대는 순간부터 당장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을 제대로 한 번 털어주면 부수적으로 얻을 것들도 제법 많았다.
사찰이 지니고 있는 재물과 도망치듯 출가한 수많은 승려는 모두 고려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요소들이었다.
“문하시중은 불교를 정화시키기 위해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영리를 추구하는 풍토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옵니다.”
“예를 들면 무엇이 있겠소?”
“사찰에서 소유한 노비와 토지 그리고 승려의 수를 제한하여야 하옵니다.”
백문보는 인적 자원의 유출을 우려했다.
너무 많은 백성이 승려가 되려 하기에 군역과 부역을 할 이들이 줄어들고 있다.
그가 말하는 것은 결국에 중국 남북조 시대에 시행되었던 도첩제(度牒制)였다.
국내에서는 충숙왕 무렵에 이미 시행된 적이 있었기에 낯선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 도첩을 받을 경우.
50필에 달하는 포를 내야 했다.
상당히 비싼 수수료인데 훗날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는 훨씬 더 높아졌다.
양반은 100필의 포를 양인은 150필 그리고 천인은 200필을 내놓아야 했다.
당연히 그 정도의 재물을 가지고 있는 이는 흔하지 않았고 음지에서 불법으로 몰래 출가하는 이가 상당히 많았다.
“그렇다면 선행되어야 할 것이 무엇이겠소?”
“전국에 산적해 있는 사찰의 현황부터 자세하게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과인도 같은 생각이오.”
일단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 어떻게 해결할지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불교는 무턱대고 건드릴 수 없었다.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를 하는 이들은 종교계의 눈치를 봐야 했다.
백성들의 민심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설득력이 어느 정도 있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력자가 필요했다.
누구보다 불교에 대해 잘 알고 영향력이 상당한 승려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곧바로 가장 적당한 이가 떠올랐다. 고려에 대한 충심이 깊고 변질되어 가는 불교를 개탄하며 개혁을 원하는 이가 있었다.
더구나 원나라까지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질 정도로 영향력도 컸다.
일단 그를 우리 쪽으로 포섭하면 반쯤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나는 곧장 내관을 불러서 지시를 내렸다.
“보우 대사에게 가서 입궐하라 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