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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63화 (63/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63

선동의 효과는 꽤 컸다.

나라를 지키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 덕분에 모병은 순식간에 끝났다.

오천 명을 뽑는데 전국 각지에서 무려 삼만 명이 넘는 장정(壯丁)이 지원했다.

그중에서 개경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4할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충분히 이해가 되기는 했다.

올해 개경에 승전보가 연달아 울렸다.

김휘남의 해군이 조운선을 지켜냈고 이방실도 원나라에서 무사히 돌아왔다.

개선장군의 모습을 직접 본 이들은 쉽게 그 모습을 뇌리에서 지워내기 힘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품고 싶었다.

자진해서 병사가 되겠다고 온 이들이다.

삼만 명이면 고려 전체의 병사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숫자였다.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모집할 수 없었다.

군대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생각 이상으로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모집하는 이들은 징집병과 달리 직업 군인 범주에 들어가는 이들이다.

매달 일정량의 녹봉을 줘야 한다.

숙식까지 제공하는 것을 고려할 때.

아무리 계산해도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지금은 병사들을 무장시키기 위한 무기도 생산하고 있기에 등골이 휘청거렸다.

주덕유가 성과를 내기 전까지 고려가 감당할 수 있는 병력은 최대 삼만 명이다.

그런 이유로 선별 과정이 필요했다.

삼만 명의 지원자를 모두 개경으로 불러들일 수는 없기에 각지의 관아에서 일차적으로 선별을 해서 보내고 있었다.

그 덕분에 문제가 곳곳에서 생겼다.

관아끼리 경쟁이 붙어 버렸다.

그래서 병이 들었거나 몸이 불편한 자와 같이 기준 미달의 이들도 제법 많았다.

덕분에 개경에서도 한 차례 걸렀다.

홍귀가 그걸 맡았는데 체력과 근력 등이 부족한 이들은 가차 없이 떨어뜨렸다.

“1321번, 1392번 탈락!”

그들이 입을 한 번 뗄 때마다.

떨어진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중의 일부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천출(賤出)인 것 같았다.

밑바닥 신분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은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것이다.

그런 사례가 없지는 않았다.

원나라에서 징집된 천출의 예가 있다.

그들은 고려군과 함께 싸우며 여러 차례 공을 세워서 양민으로 면천(免賤)됐다.

죽기 전에 공을 세운 몇 명은 가족이 면천된 예도 있기에 목숨을 걸만 했다.

그렇게 5천의 병사가 모병 되었고 그들을 맡게 될 이는 최영과 변안열이었다.

개경 인근에 마련된 병영.

그곳에서 그들은 꽤 혹독한 훈련을 받게 될 예정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속성으로 병사를 단련시켜야 했다.

그 말은 홍귀와 함께 지옥을 찍고 돌아와야 한다는 말이나 다를 게 없었다.

녹봉을 받는 만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게 해줄 생각은 없었다.

최영과 변안열이 그들을 이끌 무렵.

이방실과 서달 그리고 안우와 홍언박도 각자의 부대를 이끌고 영원군으로 향했다.

그들 여섯 명이 앞으로 북부 공략에 앞장설 예정이었다. 그동안 개경은 정세운과 윤해 그리고 이원림 등이 지키기로 했다.

그게 7월 무렵의 이야기였다.

*

1355년 8월 영원진.

쌍성총관부를 도모할 최전방에 세워진 게르에서 동북면 병마사가 되어 총지휘를 맡은 이방실은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원나라에서 함께 싸웠던 고려 유민은 지금까지 몇 명이나 돌아왔소?”

이방실이 마침내 고개를 들어 묻자.

감찰사를 대표하여 이번 정벌에 참가한 서호가 답을 해주었다.

“어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약 6천 5백 명이 고려로 들어왔습니다.”

“처음에 감찰사가 내놓았던 예상보다 부족하지 않소?”

“가을이 오기 전까지 기한을 주었으니 조금 기다려보시지요.”

이방실이 조급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예정된 작전에서 공성 경험이 많은 병사가 더 많이 필요했다.

그들과 홀치와 같이 출정에서 돌아온 이들 외에 일반 병사 중에 공성 경험을 해본 이는 아예 없다고 보면 되었다.

하지만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감찰사에서 쌍성총관부를 정탐한 결과.

그들이 보유한 병사의 수는 고려군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더구나 전투 경험도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오직 하나 조심해야 할 게 있다면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가별초라는 정예 기병이 유일했다.

“어제 개경에서 보낸 계급장 견본이 왔는데 확인해보시지요.”

“어서 줘보시오.”

“좌측에 놓인 일(一)이라 적힌 것이 하사고 중사와 상사는 각각 이(二)와 삼(三)이라 표시되어 있습니다.”

아직 군대를 개혁하진 못했지만,

이번 출정부터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병사의 계급 문제였다.

전쟁 경험이 많은 병사를 이제 막 징병 된 이들과 동급으로 취급할 수는 없었다.

쌀 한 홉이라도 더 줘야 한다고 봤는데 대부분의 장군들이 동의했다.

그래서 세 분류로 나눴다.

열 명부터 시작해서 오십 명, 이백오십 명 단위로 통솔하는 병사와 말단 무관을 두고 하사부터 상사까지 계급을 줬다.

다른 이름도 고려해봤으나 새로 만드는 것보다 미래의 계급을 차용하기로 했다.

기존에 있던 종9품의 최하급 지휘관인 대정(隊正) 같은 이들과 겹쳤는데 그들은 모두 중사나 상사로 편입됐다.

그 이상의 구분은 필요 없었다.

천 명 단위부터는 장수들이 이끄는 규모였고 일단 그 정도면 갑주를 입는다.

따로 계급장 같은 것이 없어도 그들을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이방실은 서호가 내민 계급장을 흡족한 표정으로 살피다가 내려놨다.

“보급은 언제 되는 것이오?”

“익월부터 차례대로 보급될 것이라 들었습니다. 상사 계급까지는 장군에게 인사 권한이 있으니 준비하셔야 합니다.”

“이미 어느 정도 끝내놨소이다.”

갑자기 맡게 된 병사도 아니었다.

이미 출중한 실력을 갖춘 이들은 어느 정도 장수들 사이에도 알려져 있었다.

일단 상사 계급을 수여 한 후에 중사와 하사는 시간을 두고 논의할 예정이었다.

아마 대부분 홀치나 응양군 출신이 맡게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키웠다.

문제는 오히려 무관 쪽에 있었다.

중간 지휘자급이 요즘 너무 부족했다.

쓸만한 이들은 대부분 성균관에 마련된 군사학을 수료하고 있었다.

이번부터 바뀐 정책 때문이었다.

6개월의 속성 교육을 마친 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여 수료를 못 하게 되는 이들은 이곳에 복귀할 수 없었다.

자격 없는 이들을 솎아내겠다는 의도였고 한편으로는 성리학만 공부하던 문관에게 귀중한 병사를 맡기지 않겠다는 엄포였다.

그때 막사 안으로 최무선이 들어왔다.

“장군, 화통방사군(火筒放射軍)의 사격 훈련 준비를 마쳤습니다.”

화통방사군은 화포병 부대였다.

전문적으로 화포만 쏘는 이들을 모아서 새롭게 창설된 그곳은 최무선이 맡았다.

화포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그가 적격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화약의 개량은 끝났고 화포의 개발도 새롭게 배출되기 시작한 예비 공학 박사들이 맡았다.

이방실 장군을 필두로 밖으로 나서자.

무수히 많은 이들이 북적거리는 영원진의 모습이 보였다. 이미 이곳에 모인 이들의 수만 거의 사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병사의 수는 절반 정도이나 궁시와 갑주 등을 만드는 장인과 고려로 돌아온 이들의 가족이 상주해 있기 때문이었다.

화살을 만드는 아낙네.

갑주를 꿰고 있는 장인들.

심지어 아이들까지 일손을 도왔다.

아직 정확한 시기는 나오지 않았으나 북방의 전초 기지인 영원진은 내일 당장 출정하더라도 상관없을 정도였다.

“전체 차렷, 경례!”

이방실과 최무선이 다가서자.

화통방사군이 정렬해서 경례를 올렸다.

그들의 앞에는 여러 종류의 화포가 놓여 있었는데 주력 화포는 <총통 2호>였다.

초창기에 만든 화포였으나 그때와 똑같은 것은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개량형 총통 2호라 불리는 게 정확하긴 했다.

화포 옆에는 다섯 명씩 서 있었다.

총통 2호를 운영하는 최소 단위였다.

두 명은 화포를 들고 나머지 세 명이 밑을 받치는 작은 수레와 화약을 짊어진다.

납을 씌운 수철연의환의 보급은 따로 보급대가 담당해야 했다.

“오늘 진행할 훈련은 이동 중 화포 발사입니다.”

최무선은 훈련에 대해 설명했다.

한두 차례 쏘는 것이 아닌 화통방사군 전체가 동시에 방포 할 경우는 반드시 이방실과 다른 무관도 참관해야 했다.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하기 앞서서 이방실은 화약의 보유량부터 확인했다.

“남은 화약은 얼마나 됩니까?”

“영원진에 있는 양은 5천 근 정도인데 조만간 개경에서 염초와 유황이 올 예정이니 부족하진 않을 겁니다.”

“다행이군요.”

이방실은 최무선을 꽤 존중했다.

그가 이끄는 화통방사군은 이방실 아래 소속된 부대였으나 독립적으로 움직였다.

더구나 지금 이 자리까지 오는 과정에서 최무선의 노력과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뒤따랐다는 것을 이방실도 알고 있었다.

화약을 만드는 작업 중에 사망하거나 불구가 된 이들의 수가 수십 명에 달했다.

“그와 더불어 마두라이 술탄국에서 매년 두 차례 이상 염초를 가득 싣고 오니 화약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이인임은 꾸준히 염초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화약과 화포 등을 싣고 떠났는데 최근에 그들의 나라도 상당히 긴장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언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물건을 싣고 오는 건지도 모른다. 요즘은 오히려 유황이 부족해서 생산이 지연되고 있었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인임이 보낸 염초는 30만 근이 넘어갈 정도였다.

덕분에 고려는 항상 5만 근이 넘는 화약을 비축해 놓을 수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한 겁니까?”

“충분하다 못해서 넘칩니다. 화포가 버틸 수 있다면 쌍성총관부가 문제가 아니라 동녕부까지도 도모할 수 있습니다.”

“화포의 내구성이 문제이구려.”

“그래도 철환에 납이란 광물을 입힌 후부터 내구성이 떨어지는 속도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한 번 화포가 터질 때마다 힘들게 키운 화포병이 떼거리로 죽어 나갔다.

그것만큼 보기 힘든 게 없었다.

동료가 처참하게 죽는 것을 보고 화포병은 죽어도 못하겠다고 도망치는 이도 많았다. 어지간한 담력이 없으면 버티기 어려웠다.

“준비되었으면 시작합시다.”

이방실이 시작하자고 재촉하자 최무선은 기다리고 있던 화포장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화포장은 목청껏 소리쳤다.

“방포 준비!”

화포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줄을 지어 서 있던 화포병이 달렸다.

그들의 등에는 화포와 분해한 받침대 등이 있었는데 목표한 지점에 도착하자 순식간에 조립을 하고 화포를 얹었다.

서른 문에 달하는 화포 간의 간격은 최소 수십 보 이상씩 떨어져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목표까지 거리는 오백 보! 장전을 마친 조부터 보고하라.”

거리를 전달받은 화포병은 받침대의 높이를 조절했다. 모두 합쳐서 10단계로 조절 가능했는데 오백 보면 근거리였다.

그런 뒤에 화약과 철환까지 넣어서 준비를 마친 선임 화포병이 하나둘 손을 들었다.

“3번 화포 준비 끝!”

“12번 화포 준비 끝!”

그렇게 모든 화포가 준비를 끝낸 것을 확인한 화포장은 붉은 깃발을 휘둘렀다.

그가 손을 내리며 방포하라는 지시를 내리자 곧 서른 문의 화포가 거의 동시에 철환을 쏘아 올렸다.

콰앙! 쾅쾅쾅!

서른 발의 철환은 목표에 적중했다.

오백 보 떨어진 곳에 세워진 백여 개의 허수아비는 처참하게 박살 났다.

고각 사격이 아닌 탓에 뒤로 몇 번이나 튕기며 휩쓸어 버린 철환도 있었다.

빗나간 것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초창기에 비해 정확도가 상당했다.

이 모든 것이 거리에 따른 각도를 조절하는 받침대 덕분이었다.

이방실과 최무선이 화포병을 격려해주고 있을 무렵에 산등성이의 수풀 뒤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제길! 도대체 저게 뭡니까?”

“저걸 어떻게 상대한단 말입니까.”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본 건가?”

모두가 경악하고 있었다.

이런 장면은 다들 처음 보는 것이다.

화포가 쏘아지며 터지는 굉음과 파괴력을 보고 몸서리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화포의 존재를 듣기는 했다.

그러나 이렇게 무서운 건지 몰랐다.

사람이 저걸 정통으로 맞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맙소사! 어서 가서 아버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괴한들 중의 한 명이 일어났다.

기골이 장대한 젊은 청년이었는데 등 뒤에는 커다란 장궁을 하나 메고 있었다.

신분도 낮지 않은 건지 남자들 사이에서 우두머리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이성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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