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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61화 (61/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61

1355년 5월 말.

마침내 고려군이 돌아왔다.

지난해 이 무렵에 떠났던 이들이다.

그들은 1년 동안 수많은 전투에서 승전을 거듭하여 큰 명성을 쌓고 돌아왔다.

몇 배나 되는 병사를 상대로 겨우 3천의 정예병과 2만의 징집병으로 이뤄낸 성과이기에 더 믿기 어려웠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움직인 결과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인 요인은 따로 있었다.

원나라의 요청으로 인해 병력에 비해 과다할 정도로 많은 장군이 동행했다.

하급 무관이 할 일을 장수들이 하고 있으니 통솔력 하나 만큼은 어느 부대와 비교해도 뒤처지진 않았다.

이번 출정을 지휘한 이방실부터.

최영과 변안열 등의 장수가 줄지어서 개경 안으로 말을 타고 들어오자 고려 백성들의 환호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런 장수들 뒤로는 병사들이 환대에 보답이라도 하듯 절도 있게 발맞춰서 걷고 있었다.

착, 착, 착!

하나가 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동시에 발을 내디디며 내는 소리는 묘하게 사람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4년 전부터 홍귀에게 제식 훈련을 받은 이들이 절반 이상이라 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외모도 완벽했다.

흠집조차 없는 갑주.

햇빛에 반짝이는 창날까지.

방금 전쟁터에서 돌아온 것 같지 않았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개경 인근에서 모든 장비를 새로 보급받은 덕분이다.

며칠 전에 개경부에 들어왔는데 이제야 성안으로 들어온 이유이기도 했다.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당장 군대에 지원하러 가겠어.”

“안 말려. 내 기억으로는 몇 년 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말을 한 것 같은데···”

“그때는 홀치에 지원하려고 했던 거잖아. 거기 들어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이번에도 쉽지 않을 거야. 선발 과정에서 기준 미만이면 돌려보낸다고 하더라.”

“지금까지 놀고 있지는 않았다.”

다들 모병에 관심을 보였지만,

원한다고 모두 들어올 수는 없었다.

일단 모병을 마치면 녹봉이 계속 지출되기에 최대한 가려서 받아야 했다.

이번 기회를 잡지 못한 이들은 나중에 징집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컸는데 그때가 되면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탓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는 그런 개념도 없었다.

부역을 시키며 노동에 대한 대가조차 없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절이다.

오히려 자신이 쓸 무기도 직접 챙겨가야 할 정도이니 말할 것도 없었다.

개선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사람이 운집해 있는 시전을 지나서 그들이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궁궐이다.

그 앞에는 단상이 올려져 있었고 문무백관이 나열해서 그들을 반겨주었다.

궁궐 안이 좁아서 그들 전부가 들어올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었다.

“충(忠)!”

병사들이 오와 열을 맞춘 뒤.

이방실이 대표로 내게 경례를 올렸다.

그런 뒤에 병사들이 다 같이 복창을 하자 궁궐 너머 시전까지 들릴 정도였다.

심약한 몇 명의 문관이 깜짝 놀랐지만, 나는 경례를 받은 뒤에 그들을 살펴봤다.

홀치와 응양군이었던 이들이다.

이름을 모두 외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갑주를 입고 있는 탓에 상흔이 보이는 이들은 많지 않으나 몸 어딘가 상처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심지어 한쪽 팔이 없는 이도 있었다.

다리를 다쳤거나 거동이 불편한 이들은 배편으로 돌아오는 중이라 이 정도였다.

그래도 살아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 없었다.

일 년 사이에 고려가 변한 것만큼이나 그들도 상당히 많이 변해 있었다.

수십만 단위의 전쟁을 치른 탓일까.

뭔가 날카로운 칼을 보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수백 명 단위의 왜구를 잡아서 얻을 수 있었던 경험과는 질과 양적인 면에서 차원이 다른 경험을 했을 것이다.

‘확실히 경험은 무시할 수 없구나.’

나열해 있는 병사들을 향해.

나는 치하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고려의 힘이 미약하여 생긴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 사람씩 손을 잡고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원나라에서 고려까지 몇 개월에 걸쳐서 걸어온 이들을 오래 잡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살아서 다시 보자는 약조를 지켜주어 고맙소.”

*

그날 병사는 잠시 해산되었다.

이미 홀치와 응양군 등의 보직은 충원된 탓에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는 없었다.

그들이 배치될 곳은 북부이기에 다시 먼 길을 떠나기 전까지는 휴식이 주어졌다.

소속에 따라 휴가가 조금 다르기는 했으나 보름에서 달포 정도는 됐다.

잠시 병장기를 내려놓고 기쁜 마음으로 가족에게 돌아간 병사와 달리 이인복과 이방실은 궁궐에 남아야 했다.

그들도 쉬어야 하지만,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출정을 떠난 뒤에도 서신을 몇 차례 주고 받았으나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더구나 서달이 회안성을 다녀온 이후로 전혀 보고 받은 것이 없었다.

“출정을 다녀오느라 고생하셨소.”

“전하께서 손을 써주신 덕분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사옵니다.”

“만약에 회안성에 묶여 있었다면 고려군의 손실은 매우 컸을 것이옵니다. 시기적절한 때에 그들이 물러나서 다행이었사옵니다.”

이인복도 이방실의 말을 거들었다.

실제로 그 무렵에 고려군은 위태로웠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만약에 시기적절하게 장사성이 패퇴하는 척을 하며 물러나지 않았다면 큰 손해가 생겼을 것이다.

‘내가 아니었어도 잘 막았을 거외다.’

수천 명의 병사가 더 죽었겠지만,

최영 등의 장수와 병사들이 고군분투한 덕분에 어쨌든 고려군이 이겼을 것이다.

낯 뜨거운 소리를 들으려고 두 사람을 남긴 것은 아니었기에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을 먼저 물었다.

“유민 출신의 고려군은 어떻게 되었소?”

“고려로 다시 돌아오기로 한 이들은 전에 말씀해주신 대로 영원군(寧遠郡)에 집결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개경까지 올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다시 북부로 올라갈 이들이다.

개경은 더 이상 사람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비대해진 상태였다.

고려의 인구 상당수가 개경에 몰려 있는 탓에 훗날 강남 못지않게 땅이며 가옥의 값이 치솟고 있는 요즘이었다.

그래서 말단 관리 중에 일부는 개경 밖에 거처를 마련하고 입궐할 정도였다.

당연히 유민이 들어올 틈은 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들과 가족들은 영원군에 정착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미 그곳에는 서달이 자리 잡고 있으니 정착하는 것이 어렵진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수가 얼마냐는 것이다.

“이번에 돌아온 이들은 몇 명이오?”

“소신과 함께 국경을 넘은 이들은 대략 천여 명이옵니다.”

생각보다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벌써 실망하기는 조금 일렀다.

원나라에서는 귀국길에 유민을 데리고 돌아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가족이 없어서 곧장 고려군을 따라나설 수 있는 이들만 함께 왔다.

원래 고려에서 출정을 떠났던 이들로 눈속임을 한 것이었다.

“나머지도 무사히 와야 할 텐데···”

“심려치 마시옵소서. 소신이 오는 길에 유심히 살펴보니 심양을 비롯하여 요동 등의 경계가 무척 허술해졌사옵니다.”

“소신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하옵니다.”

이인복도 이방실의 말에 동의했다.

강남 등에서 연이어 반란이 일어나면서 병력이 많이 차출된 탓이라 여겨졌다.

장사성에게 대패를 당한 후에 모았던 원나라 군사의 상당수가 흩어져 버렸다.

그 탓에 고려의 북부 지역은 병력의 공백이 상당수 생겼고 지배력도 많이 약해진 것 같다고 했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더구나 고려로 귀국하는 경로가 육로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동오의 상단을 통해서 해로로 들어오는 이들도 있었다.

바닷길을 이용하는 이들은 대부분 먼 여정을 감당하기 어려운 가족 단위였다.

그렇다고 아무나 받기는 어려웠다.

영원군으로 보내질 고려군과 일반 유민의 구분은 반드시 해야 했다. 최근 들어서 고려로 돌아오는 유민의 수가 꽤 많았다.

당연히 고려인은 환영하고 있지만,

그중에는 여진족과 한족도 꽤 많았다.

굶주림과 전쟁을 피하기 위한 도피였다.

몰래 국경을 넘어오다가 잡히는 이들만 합쳐도 달마다 수백 명은 되었다.

“그 문제는 이것으로 해결했사옵니다.”

이인복은 품에서 직인을 꺼냈다.

그걸 받아서 살펴보니 ‘돌아올 환(還)’이란 글씨가 조각되어 있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듣지 못했기에 뭘 어쩌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걸로 어떻게 해결한단 말이오?”

“국경을 넘어올 무렵에 해당 지역에 있는 관아에 사람을 하나씩 남겨두었습니다. 직인이 찍힌 쪽지를 지닌 이가 오면 곧장 영원군으로 안내될 것이옵니다.”

“그것참 좋은 방법이오.”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도 되었다.

만약에 직인이 찍힌 쪽지를 다른 이가 습득해서 잠입할 가능성도 있었다.

내가 그걸 지적하자 이인복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자신했다.

“출정 중에 함께한 이들을 보냈기에 충분히 분별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고토 수복의 날이 머지않았소. 그러니 이제부터가 중요하오.”

“명심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지금까지는 준비 과정에 불과했다.

고려가 잃어버린 고토를 수복하는 일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다음 목표는 당연히 쌍성총관부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번 거사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뀔 것이란 사실은 두 사람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급할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최소한의 준비는 해야 했다.

화가 난다고 칼을 쥔 자를 상대로 맨주먹을 쥐고 싸울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출정을 떠났던 고려군이 돌아오길 무작정 기다리고 있진 않았다.

이미 군기감은 전시 상황이었다.

일부 장인은 영원군으로 보내 서달 아래서 무기를 생산하고 있는 중이다.

궁궐 주변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았고 계정골은 포화 상태라 더는 들어갈 자리도 없는 상태였다.

당연히 최무선도 그쪽에 있었다.

그의 아래에 있는 염초장을 비롯해서 화포를 만들 장인 역시 보낸 상태다.

인력도 상당히 많이 필요한 탓에 동오를 통해 돌아왔던 유민도 그쪽에 보내졌다.

그들과 맺은 10년의 계약도 이제 6년에서 7년 정도 남아 있었다.

서달은 그들을 지키는 일도 겸하고 있었는데 벌써 그의 휘하에 모인 병사가 이천 명을 살짝 넘어서고 있었다.

그때 이방실이 이번에 느낀 점을 내게 토로했다.

“이번에 전쟁을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화살의 소모가 상당했사옵니다.”

“어느 정도면 될 것 같소?”

“전쟁이 어느 정도 길어지냐와 활을 쏘는 병사의 수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사옵니다.”

나도 솔직히 그게 고민이었다.

갑주와 칼 그리고 창 같은 것은 대충 어느 정도 필요한지 예측이 가능하다.

병사의 수를 헤아리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화살의 경우는 가늠할 수 없었다.

무턱대고 많이 만들 수도 없는 것이 깃털도 문제지만, 화살촉을 만들 철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는 게 문제였다.

철광산의 개발이 시급했다.

주덕유가 데리고 올 왜국 사람들은 모조리 그곳에 투입되어야 할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있다면 심부를 통해 절강 지역의 철광석이 소량이나마 고려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머지 이야기는 나중에 모두 모였을 때 다시 하면 되니 그만 가서 쉬시오.”

“그리하겠사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레 동안은 궁궐과 감찰사의 출입을 금할 테니 혹시라도 일할 생각은 마시오.”

병사들에게는 휴가를 줬지만,

아마 두 사람은 쉬지 않을 게 뻔했다.

나이도 적지 않은 것이 이방실은 이미 환갑을 넘겼고 이인복도 지천명을 앞뒀다.

억지로라도 막지 않으면 당장 내일부터 출정 후의 처리해야 할 일부터 시작해서 감찰사 업무를 볼 사람들이었다.

“병사들과 달리 소신은 말을 타고 왔기에 괜찮사옵니다.”

“저 역시 하루 이틀만 쉬어도 충분하옵니다. 밀린 일이 너무 많사오니 이레는 너무 길다고 생각되옵니다.”

이방실과 이인복은 동시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너무하다고 입을 맞췄다.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열정 하나 만큼은 젊은이들 못지않은 둘이었다.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만든 걸까.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모두의 목표는 같았다.

[고려의 부흥]

그것이 모두의 목표였다.

암울한 시기를 살던 때는 몰랐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희망이 조금씩 보였다.

그래서인지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릴 기세였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활시위는 당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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