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57화 (57/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57

그로부터 달포가 지난 뒤.

서달과 심부는 회원성에서 돌아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무척 빠른 귀국이었다.

바람의 방향이 잘 맞기도 했으나 동오 상단에 삼각돛이 달린 쾌선이 배치된 덕분이기도 했다.

절강과 고려를 오가며 소식을 전할 때.

기존에 쓰던 상단의 운송용 배는 느렸다.

그래도 쾌선이 도입된 후부터는 기존에 비해 적어도 며칠 이상은 소식이 더 빨리 전달되었다.

개경에 돌아온 그들은 곧장 입궐부터 했다.

여러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했다.

한시라도 빨리 결과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원나라에 반역을 한 이들과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상당히 민감한 문제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궁궐이 아닌 후원 깊숙한 곳에 있는 산호정(山呼亭)으로 안내되었다.

산호정의 주변은 탁 트여 있었다.

말이 새어나갈 수 없는 구조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그곳만 한 곳이 없었다.

상당히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니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나는 곧장 결과부터 물었다.

“회안성은 어떻게 되었소?”

“대주(大周)국의 성왕(誠王)이 전하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패한 것처럼 꾸며서 군사를 뒤로 물렸사옵니다. 그 덕분에 고려군도 소인이 출발할 당시에 귀국길에 올라섰습니다.”

심부의 이야기를 듣자 안심이 됐다.

이번 일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고려의 병사를 최대한 많이 살린 상태로 전쟁을 끝내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했다.

대주국의 성왕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심부를 통해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아마 그들도 고려가 원나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내가 보낸 서신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걸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다.

‘적의 적은 나의 아군이다.’

성왕도 내 의견에 동의한 것이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두 나라였다.

괜히 아까운 병력을 소모해가며 우리끼리 피 터지게 싸우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일단 고려군이 귀국하기 위해서 빠졌으니 조만간 대주국은 회안성을 공략할 것이다.

이제 그곳을 누가 소유하던지 우리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대주국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오래 버틸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최대한 원나라 내부에서 혼란이 계속 이어져야 고려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었다.

현재 그를 제외하면 마땅한 이가 없었다.

해적 출신인 방국진은 귀순과 배신을 반복하는 믿지 못할 이였다. 그렇다고 홍건적을 이끄는 곽자흥이나 서수휘와 손을 잡을 수도 없었다.

“그대들의 공이 무척 컸소. 수많은 고려군의 가족이 이 사실을 알면 기뻐할 것이오.”

“소인은 그저 전하가 세우신 책략과 서신을 전했을 뿐입니다.”

심부는 겸손하게 대답을 했지만,

이번 일에 심부의 덕을 무척 많이 봤다.

만약에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성왕을 설득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고려의 사신을 보낼 수 없었고 보내서도 안 됐다.

성왕은 원나라와 피 터지게 싸우는 중이다.

대주국 곳곳에 세작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괜히 고려의 고관대작을 사신으로 보냈다가 걸리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어질 것이다.

반면에 심부는 그럴 걱정이 없었다.

원나라 출신의 상인인데다가 성왕과 친분도 어느 정도 있으니 그보다 더 적당한 이는 없었다.

더구나 그의 입장에서도 이번 만남이 손해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심부의 상단이 절강 부근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현재 절강은 방국진의 영향력이 가장 컸지만, 고우성에서 대승을 거둔 대주국이 머지않아서 절강 지역을 차지할 것이 분명했다.

성왕의 손을 잡아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지금까지 원나라에 수출하는 물품이 별다른 문제가 없이 계속 지속되어야 한다.

현재 대주국에 바라는 것은 그 정도였다.

고려의 경제에서 심부가 차지하는 비율이 이제는 작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최근에 장강 중심으로 유통망을 만들고 있다고 들었는데 잘 되어가고 있소?”

“장강을 따라 동정호부터 상해현(上海縣)까지 고려에서 들여온 물건을 팔 수 있도록 준비 중이옵니다.

“도와줄 것이 있으면 뭐든 말하시오.”

“그리하겠사옵니다.”

우리가 심부에게 의지하는 만큼.

심부도 고려의 덕을 많이 보고 있었다.

연필을 비롯해서 고려에서 경쟁력이 있을만한 것들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서 판매 중이었다.

역사에 기록되는 거부답게 심부는 시장을 예측하는 능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생산량이 늘었다.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동오가 운송해주는 것들을 짧은 시간 내에 다 팔아버리니 관청에 소속된 공방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생산량을 맞출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덕분에 민간 생산량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민간 수공업자가 계속 생기고 있었다.

집에서 만드는 가내수공업이 아니었다.

거의 기업형에 가까운 형태의 모습이었다.

이미 고려에서는 사찰에서 비슷한 생산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그게 민간 영역으로 퍼진 것이었다.

예를 들어 고려지를 만드는 이들 같은 경우에 닥나무를 관리하는 내수사 같은 관청이나 시전에서 재료를 사서 완제품으로 납품했다.

당연히 그만큼 징수하는 세금도 늘어났다.

그보다 더 고무적인 일은 따로 있었다.

최근에 장인 몇 명이 모여서 자신들이 만드는 제품을 명품화시키고 있는 예가 생겼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나씨 형제의 도자기였다.

나씨 공방이라 불리는 그곳은 도자기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만들었는데 모든 제품에는 그들의 공방을 의미하는 낙인(烙印)이 찍혀 있었다.

“요즘 나씨 공방의 제품이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절강 지역에서 인기가 상당합니다.”

나도 그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심부의 말처럼 정말 부르는 게 값이었다.

궁궐에서도 몇 점 사들이려다가 너무 비싸서 포기했을 정도였다. 보통 그들이 만드는 것은 권문세족이나 원나라에서 거의 다 사들였다.

생산량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기에 더 애태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나씨 공방 이야기는 들어보았소.”

“전하께서 허락을 해주신다면 소인이 그런 공방들에게 투자를 하여도 괜찮겠사옵니까?”

“투자라···”

심부가 투자하려는 이유는 뻔했다.

생산량을 더 늘리고 그중의 일부를 고정적으로 원나라로 가져갈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자본주의 아래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거절할 리가 없었다.

대규모의 투자만큼 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유권을 줄 수는 없었다.

그가 소유한 공방에서 원래의 가치보다 값싸게 원나라로 향해는 배에 싣게 되면 고려가 걷는 세금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심부가 그런 꼼수를 부리진 않겠지만,

선례를 남겨서 좋을 것은 없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심부도 그리 큰 욕심을 부리진 않았다.

모처럼 대담을 하는 터라 이야기는 상당히 길어졌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심부를 먼저 내보내고 서달만 따로 남겨두었다.

아직 그에게 볼 일이 남아 있었다.

“감찰 대부가 보낸 서신이 있다고?”

내가 물어보자 서달은 서신을 꺼냈다.

비단 주머니에서 꺼낸 서신에는 이번 출정에 대한 최종 보고가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역시 사망자의 수였다.

귀국하는 길에 상처가 심한 이들이 추가로 사망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가 적은 수치에서 크게 변동될 가능성은 없었다.

-고려군 사망자 : 총 3,021 명.

전투 불능이 된 병력까지 합칠 경우.

약 4천 명 정도의 손실이 생겼다고 했다.

싸우지 못할 수준의 부상은 대부분 팔과 다리를 하나쯤 못 쓰게 되었다는 말과 같았다.

고우성의 전투를 끝내고 받았던 내용과 비교하면 약 1천 명 정도를 더 잃은 것이었다.

엄청난 격전을 치렀던 것을 생각하면 사망자가 많이 늘지는 않았다.

반면에 정예병의 사망자가 많아졌다.

회의성에서만 삼백 명이 넘게 사망했다.

이인복은 그 이유를 설명했는데 수성을 할 때 위기의 상황이 닥치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용맹하게 싸운 탓이라고 했다.

‘3천 명을 보냈는데 5백 명이 사망이라···’

뼈아픈 손실이었다.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공성과 수성을 거듭한 결과치고는 생각보다 사망자의 수가 적었다. 원래의 역사에서는 6천 명에서 7천 명 정도는 죽었다고 보기도 했다.

그런데 전체 사망자가 3천이면 어느 정도 선방한 것이고 최영과 변안열 같은 명장의 반열에 오르는 장군이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감찰사에서 고려 유민을 회유하는 것은 어찌 되고 있다고 하더냐?”

“현재 2할 이상은 확답을 주었다고 합니다.”

“감찰 대부는 어느 정도로 예상하던가?”

“아무리 많아야 4할은 넘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었사옵니다.”

대략 7천 명 정도인 것 같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 같았다.

원나라에서 유민의 이동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에 개별적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포기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그들 중에는 권문세족과 탐관오리의 횡포에 의해 도망치듯 원나라에 귀의한 이들도 제법 많다고 들었다

‘고려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과연 믿어줄까?’

부정부패는 뿌리 뽑기 어려웠다.

고개만 살짝 돌려도 곰팡이처럼 음지 속에서 자라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즉위 원년과 비교하면 많이 달라지기는 했다.

이인복의 서신을 마지막까지 읽은 뒤에 나는 서달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이번에 심부를 호위해서 위험하고 먼 길을 다녀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과찬이시옵니다.“

“지난가을에 홍언박과 함께 왜구를 격퇴한 공도 있고 하니 조만간 중랑장 직위를 제수할 생각이니 그리 알고 있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서달은 곧장 부복하며 머리를 숙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라 생소했다.

대주국을 방문했을 당시에 성왕의 아우인 장사덕을 만났다더니 자극을 받은 것일까.

원래의 역사에서 주원장 아래에 있었던 서달은 왕위에 스스로 오른 장사성보다 그의 아우인 장사덕을 훨씬 더 높게 쳤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두려운 것은 장사덕뿐이라고 대놓고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그런 두 사람이 이번에 만났다.

서로 목숨 걸고 싸우는 적수가 아닌 상황에서 만났으니 과연 어땠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두 사람의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게 아니면 주덕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현재 주덕유는 해군의 이인자가 되었다.

왜구와의 싸움에서 여러 차례 공을 세운 덕분에 어느 사이에 관직도 만호(萬戶)까지 올랐다.

아직 김휘남에 비해서 관직이나 발언권이 조금 뒤처져도 해군에서는 그를 따르는 이가 많았다.

조금 괴팍하고 때로는 무모한 감이 있어도 지금껏 해전에서 한 번도 지지 않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은 없었다.

“홍언박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놓을 테니 네가 이끌던 병사 중에 오백 명과 지난해부터 훈련 중인 응양군에서 쓸만한 자들을 백 명 차출하여 영원진(寧遠鎭)으로 가거라.”

“그곳에서 소신이 무엇을 하면 되옵니까?”

“영원진 인근의 산성을 재건하고 병사를 모집하여 앞으로의 일을 대비하거라.”

왜 그래야 하는 건지 서달은 묻지 않았다.

내 곁에서 여러 가지 일을 대신하며 현재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건지 대충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태조께서 세운 영원진의 위치는 현재 고려의 최북방이자 국경선 부근에 있어서 동쪽으로는 쌍성총독부와 접해있는 지역이었다.

칼날이 어느 쪽으로 향할지는 뻔했다.

이자춘과 쌍성총관부.

그곳을 압박하기 위한 장소였다.

지리적인 위치상 영원진이 가장 적당했다.

당연히 귀국 중인 고려군도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에 영원진 부근으로 보내질 예정이었다.

적어도 늦은 여름 정도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서달은 그때를 위해 미리 준비하러 가는 것이다.

원래의 역사에서는 올해 12월에 이자춘이 개경까지 직접 찾아와서 나와 만남을 갖는데 가능하다면 조금 더 일찍 결단을 내리길 바랐다.

서달도 그쯤에서 가보라고 내보냈다.

긴 여정을 마친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오매불망하며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오래 붙잡고 있는 것도 민폐였다.

그가 나간 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문득 순천부에서 월척을 낚을 준비를 하고 있는 김휘남과 주덕유를 떠올렸다.

‘다들 잘 준비하고 있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