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53
고우성의 소식은 내게도 곧 전해졌다.
인안이 귀국하면서 가지고 온 이인복의 서찰에는 그 과정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원나라의 군대는 정말 처참하게 깨졌다.
이미 이럴 거란 것을 알고 있기는 했으나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려 팔십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대군이었다.
그런데 장사성의 역습에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지고 말았다니 이걸 소설로 쓰면 개연성 폭망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것 같았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걸까.
생각보다 원나라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토크토아 승상은 삭직을 당하기 전에 고우성 부근에 있는 육합성을 공략하기 위해 병사 중에 일부를 떼서 그쪽으로 보냈다.
그의 판단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전략적 가치가 높은 성은 아니었지만,
그곳을 차지하면 저주 방면을 견제할 수 있었다.
당연히 육합성은 쉽게 함락되었다.
하지만 지휘관의 의욕 과다가 문제였다.
육합성을 너머 저주성까지 쉬지 않고 진군한 원나라의 군대는 주원장의 빈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탕화에게 대패를 당했다.
후퇴하는 척을 하다가 완벽하게 함정에 몰아넣고 공격하니 그날 잃은 원나라의 병사만 수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여기까지는 역사와 거의 흡사했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하며 탈취한 말을 돌려주는 대가로 원나라와 화친을 성사시킨 주원장과는 달리 탕화는 장사성과 손을 잡았다.
스스로 성왕(誠王)이라 칭한 장사성도 그쯤 되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곽자흥에게 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토크토아 승상이 실각하자.
장사성은 병사를 몰고 맹공을 취했다.
계속되는 공성전에 지쳐있던 고우성의 병사들은 분노를 쏟아냈고 원나라의 병사들은 생각지도 못한 기습에 반격조차 못 하고 도망쳤다.
그 모습은 이빨 빠진 늙은 호랑이가 들개에게 쫓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인안이 설명했다.
“정확한 수는 아니지만, 당시 원나라가 잃은 병사의 수만 이십만 명을 넘어선다고 하옵니다.”
“허! 그게 말이 되는 것이오?”
“고우성의 병사들이 성문을 열고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방심한 탓도 크옵니다.”
이 정도면 오랫동안 회자할 실책이었다.
반면교사 삼기 위해서 훈련도감에서도 전술 교육을 할 때 써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는 우리 군사의 손실이 어느 정도인지가 더 궁금했다.
“우리 손실은 얼마나 되는 것이오?”
“고우성을 공략하면서 죽거나 전투에 더는 참여할 수 없는 병사가 3천 명 정도였으나 퇴각하면서 입은 손실은 없습니다.”
“천만다행이구려.”
“운 좋게 후방에 배치되었던 것도 있으나 이방실 장군이 시기적절하게 지시를 잘 내렸사옵니다.”
원나라에서 모집한 고려 유민까지.
모두 합쳐서 2만 3천 명이었던 고려군이다.
그중에서 3천 명이 죽거나 전투가 불가능한 상태이니 적은 수라 말하긴 어려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려에서 출정한 정예의 사망자는 이백 명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현지에서 합류한 고려 유민은 훈련이 되어있지 않기도 하고 방어구도 부실한 편이라 사망하는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려군은 공성에 대해서 잘 아는 이가 전혀 없었다. 나이 많은 노쇠한 장군 몇 명만 성을 지키는 수성(守城)을 경험해 봤을 뿐이다.
그것도 대부분 왜구의 침구를 상대로 작은 산성 같은 규모에 불과했기에 제대로 된 경험이라 보기에도 조금 어려웠다.
당연히 공성 병기도 전혀 있지 않았다.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화약 무기에 의해 점차 사라질 무기인 것은 알지만, 모든 상황에서 화약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비 오는 날에는 화포를 쏘지 못할뿐더러 한 번 쏠 때마다 들어가는 철환의 소모도 무시 못 한다.
반면에 원나라는 몽골 제국 시절부터 공성에 특화된 투석기 등이 무척 발달되어 있었다.
초원에서 출발하여 중국 전역을 휩쓸고 인더스강부터 흑해까지 도달하며 적국의 성을 함락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우습게도 지금은 고우성 하나 점령하지 못하고 있으나 그건 공성 병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거지 성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 출정에서 투석기와 공성 병기에 대해 알아보라고 시킨 것은 어찌 되었소?”
“정확한 수치를 알아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구조 같은 것은 모두 그려왔습니다.”
인안은 앞에 쌓인 서책 가운데 하나를 펼쳤다.
그것은 이인복이 귀국하는 그에게 맡긴 것인데 이번 출정 중에 얻은 정보를 정리한 것이었다.
아주 작은 글씨로 썼는데도 워낙 방대해서 두툼한 서책이 십여 권이 넘을 정도였다.
이걸 가져오는 과정도 쉽진 않았다.
이번에 인안이 귀국하면서 수행하기 위해서 함께 온 이들에 배와 등에 한 권씩 꽂아 왔다.
서책을 뺏겨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보겠지만, 애써 얻은 정보 모두가 사라질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 이번에 돌아올 때는 동오의 상단이 이끄는 배를 타서 조금 수월했다고 했다.
찌이익···
서책의 앞장을 살짝 뜯어내자.
몇 장의 얇은 종이가 안에 들어있었다.
투석기도 국가에서 기밀로 다루는 무기였기에 대놓고 들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종이에는 공성 무기와 관련된 것이 그림과 함께 재질과 사용하는 방법까지 정리되어 있었다.
이런 거는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건지 궁금할 정도였다. 당연히 이것은 더 개량할 방법을 찾아본 이후에 실제로 제작해서 쓸 것이다.
그렇다면 이걸 과연 누구에게 맡길까.
적임자는 곧바로 떠올랐다.
하륜의 아버지이자 공학박사 하윤린.
그라면 문제없이 이걸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성균관에서 공학을 책임진 이후에 하윤린은 열정적으로 새로운 학문을 파고들었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한번 등청하면 사나흘 정도는 퇴청도 안 하고 온갖 연구를 할 정도였다.
요즘 그의 별명이 성균관 거지라고 붙을 정도였다. 그 때문에 하륜이 창피하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부렸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하지만 나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그의 밤을 환하게 비춰주는 등잔에게 하는 것이 옳았다.
‘면실유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지.’
등잔의 기름은 쉽게 구하기 어렵다.
이 무렵에 주로 쓰던 것은 참기름 등의 식물성 기름과 어유를 비롯한 동물성 기름이었다.
먹는 것도 부족한데 그런 기름을 쓰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목화의 재배가 대규모로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목화씨에서 짜낸 면실유가 등잔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어차피 면실유는 식용이 불가능했다.
고시폴이란 성분 때문이었는데 나중에는 정제하여 식용으로 쓴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만들어진 면실유가 가장 먼저 보급되는 곳은 궁궐과 성균관이었다.
“그래서 지금 고려군은 어디에 있는 것이오?”
“현재는 회안성에 도달했을 것이옵니다.”
“회안성이라···”
그곳의 이름을 듣는 순간.
착잡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장사성이 본격적으로 반격을 하는 장소가 바로 회안성이기 때문이었다. 사주와 화주의 군사와 8천 척의 배까지 동원하여 포위할 것이다.
최영과 같은 장수가 몇 차례나 창에 찔려가며 분전한 끝에 결국에는 이기겠지만, 적지 않은 수의 병사가 죽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이방실을 믿었다.
역사 속의 고려군과 지금은 완전히 달랐다.
병사들이 지금까지 받은 훈련과 장수들의 전술 습득 덕분에 처음에 내가 고려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가 날 정도였다.
회안성에서만 잘 버티면 그걸 끝으로 귀국을 한다는 것도 아주 작은 위안이 되어주었다.
“고생하셨소. 이것은 과인이 내리는 포상이오.”
전장을 따라나섰다가 돌아온 이였다.
작은 것이라도 뭔가 내려줘야 하기에 나는 면포로 지은 옷과 함께 저화를 챙겨서 주었다.
올해 가뭄이 심해서 양곡의 생산은 조금 타격이 있기는 했으나 남부 지역에서 키운 면화는 전년 대비 서너 배 정도 더 많이 수확할 수 있었다.
다년생인 데다가 계속해서 매년 목화 나무를 심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인안도 상당히 만족한 것 같았다.
그냥 면포만 기워서 만든 것이 아니라 누빔으로 두툼하게 들어가 있었고 가슴팍에는 정교한 자수로 대나무가 작게 그려져 있었다.
이 무렵도 매난국죽의 인기가 상당했는데 남송 시대에 몽골의 지배하에 있던 한족 문인에게는 지조와 절개 그리고 충성심의 표현이기도 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덕분에 올겨울은 따뜻하게 보낼 것 같사옵니다.”
“출정을 떠난 병사들에게 더 많은 방한복을 마련해주지 못하여 미안할 뿐이오.”
“고려보다는 따뜻한 지역이니 그리 심려치 않으셔도 될 것이옵니다.”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뒤.
인안에게 먼 길을 와서 피곤할 테니 어서 가서 쉬라며 그를 내보냈다. 그런 뒤에 김속명을 불러서 이인복이 가져온 서책을 건네주었다.
본격적인 정보의 취합은 국내에 머물고 있는 감찰사의 나머지 이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 뒤에 신소봉을 시켜 하윤린을 불렀다.
잠시 후에 들어온 그는 도대체 뭘 한 건지 머리카락이 그을려 있었다.
“오늘은 도대체 뭘 하였길래 몰골이 그러하오?”
“지난번에 알려주신 분진 폭발을 직접 보고 싶어서 석묵가루로 시도해보았사옵니다.”
“그래서 궁금한 점은 풀렸소?”
“아직 멀었습니다. 왜 그런 폭발이 일어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옵니다.”
“그건 일단 뒤로 미뤄두고 이것부터 보시오.”
나는 원나라에서 가져온 투석기 그림을 신소봉을 통해 하윤린에게 건네주었다.
하윤린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림을 뜯어보기 시작했는데 마치 신기한 장난감을 손에 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내 앞에 있다는 것도 완전히 잊은 것 같았다.
“흠흠! 다 보았으면 이야기 좀 합시다.”
“송구하옵니다.”
“관심이 있어 보이는데 한번 만들어 보겠소?”
“맡겨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보겠사옵니다.”
하윤린은 덥석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인력은 따로 배치해줄 필요는 없었다.
현재 그의 아래에서 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성균관 학생이면 충분했다. 당연히 처음부터 공성전에 쓸 정도의 대형 투석기는 필요 없었다.
소형부터 시작해서 형태를 잡고 성공한 후에 대형을 만들어도 늦지는 않았다.
“제작에 필요한 재료는 내수 전수에게 연락하면 뭐든지 구해다 줄 것이오.”
“혹시 비밀리에 진행하여야 하옵니까?”
“아니오. 그럴 필요는 없소.”
그 정도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공학을 가르치며 온갖 실험을 하고 있었다.
요즘 하윤린과 학생들은 기중기와 도르래 같은 곳에 심취해 있었는데 조별 과제처럼 경쟁을 시켜서 아주 작게나마 성취를 내고 있었다.
개경에서는 그들을 괴짜라 부르고 있기에 아마 투석기도 하나의 장난쯤으로 여길 것이다.
“투석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 것 같소?”
“무거운 돌을 멀리 보낼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사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거기에 정확도와 내구도 역시 상당히 중요하오.”
하윤린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멀리 쏘아 올릴 수 있어도 정작 그게 맞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어느 정도 비슷하게라도 날아가야 한다.
더구나 한두 번 쏘고 부서지는 것이라면 힘들게 만들 이유도 없었다. 하윤린은 내가 말하는 것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명심하겠사옵니다.”
그 뒤로 나는 성균관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제 곧 해가 바뀌는데 올해는 신입생을 얼마나 더 뽑아야 할지 의논을 하던 중에 다급하게 환관 안도치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신소봉이 그를 질책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안도치는 그런 것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뭔가 급박한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무슨 일이길래 그러는 것이냐?”
“산실(産室)에 가보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산실이란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가진의 출산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지내고 있던 방을 산실로 미리 꾸며놨는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그런 것은 아니옵고 왕후마마께서 산통이 오신 것이 조만간 해복(解腹)하실 것 같아옵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나중에···”
“소신은 신경 쓰지 마시고 어서 가시옵소서.”
하윤린은 손을 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에게도 하륜이 태어났을 때의 경험이 있기에 지금 심정이 얼마나 황망할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는 미소를 지어준 뒤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서 신소봉에게 어서 가자며 재촉했다.
“어서 앞장서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