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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40화 (40/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40

정몽주와 정도전.

그리고 하륜 등의 인재까지.

앞으로 고려를 책임질 이들이 모였다.

이미 성균관부터 시작해서 교육의 개혁이 시작되었으니 더 미룰 이유가 없었다.

재미있게도 그들을 모아 놓고 보니 상당수가 훗날 이색의 아래에서 수학하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내가 할 일도 많아졌다.

내가 원하는 커리큘럼을 대신 만들어줄 사람은 없었기에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해야 했다.

아이들의 교육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오전에는 성리학을 배우고 오후에는 조금 특이한 활동을 주로 하고 있었다.

활동의 내용은 상당히 폭넓었다.

공을 가지고 노는 체육부터 시작해서 온갖 활동이 있었는데 그중에 아이들의 관심이 가장 많이 쏠린 것은 기초 과학 실습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실 전화기와 종이비행기 그리고 소형 도르래와 낙하산 실험 등이 있었다.

초등학교 교과 과정에 나오는 것이지만,

이 시대의 아이들은 마법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인지 다들 초롱초롱해질 정도였다.

보이지도 않은 곳에서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린다거나 한지를 접어서 하늘 위로 날리는 것과 같은 것은 놀이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졌다.

“하륜이 뛰어내려서 다리가 부러졌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왕후마마님의 공방 2층에서 낙하산을 자신이 직접 타보겠다고 보자기를 메고 뛰어내렸는데 돌 위쪽으로 잘못 떨어져서 부러졌다 하옵니다.”

“이 꼴통···”

욕이 나왔지만, 간신히 참았다.

현재 같이 수학하고 있는 이들 중에 가장 까불대더니 결국에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개구쟁이 수준을 넘어서 쉴 틈 없이 조잘대는 하륜은 항상 엉뚱하긴 했다. 평소에도 질문이 너무 많아 가르치는 이를 곤혹스럽게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기는 했다.

하륜의 아버지인 하윤린은 가까이 있었다.

현재 그는 궁궐의 연회 음식을 담당하는 선관서에서 종8품 승(丞)으로 일하는 중이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신소봉은 내가 바라보자 곧장 달려가 하윤린을 불러냈다.

갑자기 불려온 그는 혹시 자신이 실수를 한 게 있는 것은 아닌가 상당히 긴장한 표정이었다.

“과인이 그대를 보자고 한 것은 하륜에 대해서 할 말이 있기 때문이오.”

“소신의 장남이 전하께 실례되는 짓이라도 저지른 것이옵니까? 그렇다면 아이 대신에 저를 엄하게 벌하여 주시옵소서.”

“하륜이 평범하지 않은 것은 아시나 보오.”

“언행이 가볍고 종종 사고를 치는 편이나 그래도 마음은 착한 아이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피식 웃었다.

평소에 그의 아들인 하륜이 얼마나 사고를 치고 다녔으면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

실제로 하륜은 이번에 사고가 나기 전에도 동네 아이의 마빡에 상당히 큰 상처를 냈다. 투석질을 연습하겠다며 돌을 던지다가 생긴 일이었다.

내가 아직 아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윤린이 아들을 키우며 상당히 고생이 많다는 것은 알 것 같았다.

“하륜이 잘못한 것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은 것 외에는 없소.”

나는 조금 전에 들은 이야기를 해줬다.

다리가 부러졌다는 것을 들었음에도 하윤린은 그리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알고 보니 지난해 여름에도 나무를 타다가 떨어진 경험이 있었다.

이쯤 되면 하륜의 천직은 공수부대나 슈퍼 히어로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업혀서 의원에게 갔다고 하니 오늘은 그만 일을 정리하고 가보시오.”

“아니옵니다. 제가 간다고 부러진 다리가 곧장 붙는 것도 아니고 퇴궐한 후에 가보겠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소?”

계속 권해도 하윤린은 뜻을 꺾지 않았다.

나는 이왕에 그를 만난 김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평소 궁궐 내의 담당자들과 면담을 하기는 했지만, 선관서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워낙 관직을 잘게 쪼개 놓은 탓이었다.

그중에는 실체가 없이 이름만 남겨진 곳도 있었기에 하는 일도 없이 녹봉만 챙겨 먹던 이들도 상당히 많이 적발되었다.

갑작스러운 면담에 하윤린은 식은땀을 흘렸으나 언변이 어눌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하륜이 누굴 닮은 건지 알 수 있었다.

한 번 입이 열리니 정말 쉬지 않고 말했다.

아들이 요즘 공부 중인 교재를 내가 썼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거기에 담긴 내용을 묻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꽤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언제 그런 것까지 생각한 것이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소신은 글공부보다 그런 것들이 훨씬 더 궁금했사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보시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었다.

매미는 왜 여름만 되면 저렇게 울까?

강물과 달리 바닷물은 왜 저렇게 짤까?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것까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머릿속이 의문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그가 왜 과거 시험에서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는지 완전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람··· 생각보다 괴짜였다.

“선관서에서 업무는 만족하시오?”

“일을 가릴 처지는 아니옵니다. 뭐라도 제가 쓰임새가 있다면 최선을 다할 것이옵니다.”

하지만 아쉬움은 감출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음식을 만지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쯤 되자 나는 그에게 더 어울리는 관직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까지 공학에 지금 그가 보이는 수준만큼의 관심을 보이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볼 생각이 없소?”

당연히 하윤린은 뛸 듯이 기뻐하였다.

하지만 당장 그를 성균관으로 보내는 것은 무리였기에 당분간은 하륜 등이 공부하고 있는 10세 미만의 아이들부터 가르쳐야 했다.

어차피 다들 생소한 학문이라 가르치는 이들도 배우면서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입장이었다.

만약에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선관서에서 일하던 그를 옮길 생각조차 안 했을 것이다.

그래도 뒤늦게 적성을 찾은 걸까.

생각보다 하윤린은 그 자리에 잘 적응했다.

아이들과 함께 온갖 실험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에 상당히 만족하는 것 같았다.

훗날 공학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는 그는 조금씩 교육의 틀을 잡아갔고 시간은 흘러서 어느덧 여름이 되었다.

*

6개월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고려는 모처럼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바다 건너의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원나라는 여전히 홍건적과 싸우느라 바빴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안 좋았다.

그리고 내가 뒤흔들어 놓은 역사 때문에 원나라에서도 조금 다른 흐름이 생겼다.

가장 큰 변화는 곽자흥의 세력이었다.

주원장을 내가 데려오는 바람에 그를 대신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탕화였다.

주덕유의 친우이기도 한 그 역시 곽자흥의 애제자였는데 원래의 역사보다 더 빠르게 기세를 올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번에 상행을 떠난 이들이 걱정되오.”

곽충수가 그 소식을 내게 전달해주자.

가장 먼저 든 걱정은 동오와 심부의 안위였다.

동오는 팔관회가 끝난 뒤에 두 번이나 왕복을 하면서 고려의 물건을 계속해서 나르고 있었다.

다행히 가져가는 족족 대부분 완판을 하고 있는 터라 아직까지는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심지어 연필은 벌써 지난해 판매했던 양을 상반기에 뛰어넘은 상태였다.

적어도 올해 5만 자루는 팔 것 같았다.

고려에서 소비되는 것까지 합치면 대략 7만 자루는 될 것 같았는데 그로 인해 얻은 수익을 계산하면 6천 섬의 양곡을 버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적다고 여길 수도 있으나 연필을 제작하는 이들의 수가 백여 명에 불과했다.

더구나 이 시대의 쌀 생산량은 조선 시대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에 불과했기에 효율 면에서 보면 이보다 더 많이 남기는 물품은 없었다.

“심부가 태주를 차지한 장사성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니 염려치 마시옵서.”

나는 오히려 그게 더 걱정이었다.

장사성은 호탕한 성격이나 변덕이 많았다.

더구나 내년쯤에는 장사성을 토벌하기 위해서 고려의 군사와 장수를 보내라고 할 것이다.

만약에 역사대로 흘러가면 당장 장사성이 고려에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도 아니고 혹시나 뒤탈이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나마 최근에는 왜구가 잠잠하여 다행이오.”

“모두 전하의 현명하신 대비 덕분이옵니다. 그 누가 주덕유 장군이 그리 뛰어난 활약을 할 줄 알았겠습니까.”

“아직 멀었소이다.”

내가 거는 기대가 너무 높은지 모르겠지만,

아직 주덕유의 함대는 서른 척에 불과했다.

그 정도가 된 것도 몇 척 안 되는 규모의 왜구를 습격하여 계속 배를 빼앗은 덕분이었다.

그렇게 얻은 상당수의 배는 수리조차 불가능한 상태도 있었으나 새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제법 상태가 좋은 배도 많았다.

하지만 그걸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수백 척 단위로 쳐들어오는 왜구의 대규모 침략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김휘남의 함대에 지난해부터 제작 중인 판옥선과 누전선이 각각 다섯 척씩 추가되어 다행이었다.

두 함대를 합치면 아흔 척이고 화포까지 있으니 백 척 규모 내외의 왜구 함대와 싸워도 이제 충분히 상대를 해볼 만한 수준은 되었다.

“이미 왜국에도 소문이 퍼졌을 테니 이제는 소규모로 오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로 몰려올 가능성도 있소.”

최근 잠잠한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소규모로 오는 배는 상당히 높은 확률로 주덕유에게 당하고 있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와도 나갈 때는 대부분 놓치지 않았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김휘남과 함께 남쪽 바다를 둘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일단은 해군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다른 문제부터 해결을 해야 했다. 지난봄에 내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원자재의 부족을 막는 일이었다.

종이를 만드는 닥나무.

저화에 들어가는 황칠나무.

숯과 연필을 만드는 버드나무.

마지막으로 목화도 빼놓을 수 없었다.

적어도 네 가지의 나무는 최대한 많이 심어야 했는데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은 역시 목화였다.

일단은 지난해에 심어 놓은 목화가 수백 그루 살았다. 거기에 파종을 추가로 하여 올해는 적어도 수백 벌의 옷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이앙법에 대한 반응은 어떤 것 같소?”

“내수사의 땅은 모두 전환했으나 아직 널리 퍼지는 것까지는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문제가 도대체 뭐요? 지난해 우리가 경작한 결과를 보면 보리까지 합쳐 두 배가 넘는 효율을 직접 증명하지 않았소.”

“언제 가뭄이 들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라 생각되옵니다. 그래도 올해는 내장전(內莊田)은 물론이고 관청의 공해전(公廨田) 상당수가 이앙법을 시행했사옵니다.”

나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하고 있었지만,

더 많은 식량의 생산이 필요한 시기였다.

식량은 인구의 증가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먹고살 만해져야 사람들은 더 많은 아이를 낳게 되고 그것은 곧 국력의 증진으로 연결된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불현듯 최근에 가진이 회임을 하지 못해 걱정하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올해 들어서 나와 가진은 복령사 등의 사찰을 드나들며 후사를 얻게 해달라고 불공을 올리고 있었다. 심지어 지난달에는 칠석을 맞아 가진과 함께 견우성과 직녀성에 제사까지 올렸다.

‘그래서 더 안쓰러웠지.’

역사는 내가 바꿀 수 있다.

하지만 타고난 체질은 어쩔 수 없다.

한 차례의 유산과 난산 끝에 도달하는 죽음.

그걸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솔직하게 말하면 그녀를 잃을 바에는 아예 후사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가진에게는 상당히 가혹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평범한 인생이라면 모를까 나는 왕좌에 앉아 있고 제대로 된 후계자가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하다.

그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누군가 다급하게 뛰어오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귀를 기울여 보니 찬성사 이공수가 온 것 같았다. 지난해 그는 원나라에 가서 기 황후를 잘 설득한 공이 적지 않았다.

그녀의 분노를 잘 다스려준 덕분에 임진정변은 생각보다 마무리가 잘 되었다고 봐도 되었다.

나는 곽충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이공수가 내게 서신을 내밀었다.

“전하! 원나라에서 긴급하게 알려온 소식이 있사옵니다.”

대충 예상되는 바가 있기는 했다.

이 무렵 원나라에 큰 변화가 있었다.

무덤덤하게 서신을 받아서 펼쳐보자 아니나 다를까 원나라의 황태자에 대한 소식이 있었다.

기황후의 소생인 아이유시리다라가 황태자에 책봉되었다는 내용이었는데 한숨이 터져 나오는 것은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같은 아이유라도 이쪽은 완전 극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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