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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37화 (37/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37

역시 나라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눈먼 돈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그가 내게 준 쪽지는 현재까지 고려에서 백성을 위하여 구휼하기 위해 양곡을 대여해주었으나 회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추정치가 적혀 있었다.

전국 단위도 아니고 개경만 계산한 것인데도 거의 5만 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이 무렵에 고려에서 걷는 조세 등을 고려하면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는 양이었다.

“이게 사실이오?”

“최근 10년 동안 누적된 양이옵니다.”

“도대체 삼사는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이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10년 사이에 바뀐 삼사의 수만 수십 명에 달하옵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자라 하더라도 일 년도 안 되는 사이에 모든 일을 다 살필 수는 없사옵니다.”

확실히 이인복의 말이 맞기는 했다.

나도 그래서 초창기에 관직을 제수한 것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특별히 재능을 보이는 자가 아니면 가능한 말단 관직의 이동도 줄이고 있었다.

이 시대는 거의 12개월에서 18개월만 되면 자리를 바꿔대니 전문성이 결여되기 쉬웠다.

매일 사서삼경만 읊고 있으니 애초에 기술과 관련된 잡직 외에는 전문성이란 것도 없었다.

일단 그건 나중에 바꾼다고 치더라도 어디서 이렇게 새어나간 건지 궁금했다.

“도대체 어디서 양곡이 풀려나간 것이오?”

고려에는 여러 구휼 기관이 있다.

백성의 질병을 치료해주는 혜민국(惠民局)과 기아로 허덕이는 이를 구휼하는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 같은 곳이 대표적이었다.

그렇다고 의창과 상평창은 아닐 것이다.

원래는 그곳에서도 백성을 위해서 양곡을 빌려주는 일도 겸했으나 재정이 바닥나서 유명무실한 상태가 된 지 오래되었다.

“제위보(濟危寶)이옵니다.”

“그곳에 그렇게 많은 양곡이 있었단 말이오?”

“거의 제구실을 못하고 있으나 수년 전에 흉년이 들었을 때 선왕께서 비축되어 있던 양곡을 굶주린 이들에게 대여해주셨사옵니다.”

“그런데 아직도 안 갚았다는 것이오?”

이 정도면 악성채무자에 가까웠다.

당연히 그중에는 사정이 정말 좋지 않아 갚지 못하는 이도 있겠지만, 일부러 갚지 않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았다. 이인복도 그런 나의 추측에 전적으로 동의를 해주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어찌 알아낸 것이오?”

“권력을 이용하여 강제로 고리대를 놓았던 자를 추적하다가 그와 관련된 자들이 제위보의 곡식을 이용해 이자로 내길 종용했다 하옵니다.”

“문제가 많구려, 어찌하면 좋겠소?”

“사사로이 고리대금을 업으로 하는 이들을 이번 기회에 금지하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옵니다.”

이인복의 말이 맞기는 하다.

하지만 그게 생각보다 쉽진 않았다.

이 시대에는 사찰에서도 고리대를 놓고 연리를 거의 33%나 받고 있다. 그래도 시전 상인이나 권문세족보다는 그나마 인간적이기는 했다.

이자가 원금을 넘어서면 그때부터 자모정식법(字母偵息法)이라 하여 원금만 갚으면 되었다.

연 50%의 이자가 붙었던 조선 시대의 장리(長利)에 비하면 비교적 아직 상태가 양호했다.

“그걸 이뤄내려면 불교까지 모두 손봐야 하는 거는 알고 하는 소리인가?”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옵니다.”

“그것은 천천히 고민해봅시다. 일단 제위보에서 새어나간 양곡부터 회수하는 것을 목표로 하시오.”

“그렇다면 쇄권도감을 설치하는 것은 어떠시옵니까?”

그러고 보니 이걸 잊고 있었구나.

원래의 역사에서도 이 무렵에 쇄권도감(刷卷都監)이 설치되기는 했다. 나라에서 관전(官錢) 을 빌려 쓰고 갚지 않은 일이 많아서 생긴 도감이다.

쇄권이란 말 자체가 관청의 재물이 출납을 적은 장부를 검사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좋소이다. 그렇게 진행하시오.”

나는 당연히 설치에 동의했다.

한 푼이라도 회수할 수 있다면 해야 했다.

현재 전라도의 부안과 경상도의 영덕에서 각각 누전선과 판옥선을 나눠서 만들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들어가는 재물이 적지 않았다.

밑이 뚫린 항아리에 돈을 쏟아 붓는 것 같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진도는 빨랐다.

초반에는 시행착오가 많아 지지부진했지만,

조금씩 경험이 쌓일수록 한 척을 건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조선 기술이 있는 자들을 고용해서 다른 일은 시키지 않고 배만 만들게 한 덕분이다.

당연히 그에 대한 삯은 충분히 주었다.

농사를 짓지 않아도 먹고 살 정도는 되어야 했는데 매달 백여섬의 쌀이 들어가고 있었다.

“하오면 쇄권도감은 누구에게 맡기실 것이옵니까?”

“당연히 판도 총랑 김득배가 맡고 감찰사와 어사들이 최대한 뒤에서 받쳐줘야 하지 않겠소.”

“그리하겠사옵니다.”

“그리고 갚을 능력이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갚지 않고 있던 이들은 전법판서 이달충과 함께 처분을 논의하시오.”

그런 자들은 봐줄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고혈을 쥐어짜라는 뜻은 아니었다.

양곡을 갚지 못한다고 친척이나 같은 마을에 사는 이들의 재물을 빼앗지는 말아야 했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런 이유 때문에 쇄권도감이 일 년도 못 가서 폐지됐기 때문이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이들은 어찌하옵니까?”

“노역에 동원해서 일한 기간만큼의 빚을 제하시오. 허나 몸을 상하게 하거나 매질을 하는 일이 생겨서는 아니 될 것이오.”

“명심하겠사옵니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다.

노역을 할 사람이 부족하지 일거리는 많았다.

인력만 된다면 가뭄을 대비해 저수지도 만들고 역도(驛道)도 정비해야 했다. 길을 내놓았으나 관리가 안 되어 쓸 수 없는 곳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 막 정월이었다.

땅은 모두 단단하게 얼어있었다.

지금 그런 작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농사를 지어야 하는 농번기에 일을 시킬 수도 없기에 가늘고 길게 봐야 할 문제였다.

이인복도 그걸 알기에 쉽게 수긍했다.

“농번기라 하더라도 열흘에 한 번쯤은 노역을 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옵니다.”

그 정도면 적당할 것 같았다.

쇄권도감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었다.

지난해가 관리들의 부패와 비리를 척결하는 시작점이라면 올해는 백성에게 시선을 돌리는 과정이라고 봐도 되었다.

이제는 도당 밖에 널리 퍼져있는 사회 전반적으로 썩어있는 곳을 도려낼 차례였다.

불교와 상인의 부도덕한 행위 그리고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들이 대상이었다.

“그대들을 향한 원성이 매우 클 것이오.”

“소신을 비롯한 모두 어사들은 이미 각오하고 있던 일이옵니다.”

“부패한 관리를 잡는 것과는 다를 거요.”

“감찰사는 증좌를 찾아내는 것까지가 소임이고 판결을 내리는 곳은 전법사이옵니다. 아마 제정(霽亭)의 고생이 많을 것이옵니다.”

그가 말하는 제정은 이달충의 호였다.

두 사람이 예전부터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내가 돌아온 후부터 감찰사와 전법사가 엮이는 일이 잦아지니 상당히 친분이 쌓인 것 같았다.

거기에 이방실까지 합쳐서 세 명의 위상은 이제현이나 유숙보다 관직은 낮아도 발언권은 더 높게 쳐주고 있는 요즘이었다.

조일신이 사라진 뒤에 생긴 새로운 측근 세력이라 할 수 있었다.

“힘들겠지만, 이번에 싹 쓸어내야 하오.”

*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정월이지만,

전법사는 다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걸 본 이들은 곧장 지난해 여름을 떠올렸다.

당시에 전법사에서 죽거나 가산을 몰수당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때는 현직 관리와 과거에 관직에 있었던 이들로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전법사에 줄지어 서 있는 이들은 옷차림이 허름한 양인이 대부분이었다.

무슨 일인지 지켜보는 사람들 사이.

유심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도령이 있었다.

수염이 살짝 나고 있는 걸로 봐서는 십 대 중반쯤 되는 것 같았다. 그때 전법사 안에서 장형을 치는지 찰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때마다 고통을 간신히 참는 신음이 담 너머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걸 들은 도령은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개경은 고통을 호소하는 신음과 피 냄새가 가득하구나.”

“도련님, 듣는 이가 많습니다.”

“내가 못 할 이야기라도 한 것이더냐. 너는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거라.”

도령이 노복에게 지시를 내리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노복이 전법사 주변에서 서성이는 이들에게 슬쩍 다가갔다.

잠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온 그는 목소리를 낮춰서 무슨 일인지 설명해줬다.

“저들 모두 나라에서 관전(官錢)과 쌀을 빌리고도 몇 년씩이나 갚지 않았다고 합니다.”

“각자 사정이 있을 것 아니냐.”

“장형에 처한 이들은 갚을 여력이 있는데도 지금까지 미뤘던 이들이랍니다. 정말 갚을 처지가 안 되는 이들은 노역으로 값을 치르면 저렇게 장형까지는 안 맞는답니다.”

그때 전법사 안에서 비단옷을 입은 풍채 좋은 남자가 한 명이 부축을 받고 걸어나왔다.

얼굴에 기름기가 가득하고 볼살이 두툼한 것은 물론이고 상당히 비싼 옷감을 걸치고 있기에 누가 봐도 부유한 상인이나 권문세족 같았다.

“아이고 나 죽네.”

그는 엉덩이를 부여잡고 있었다.

아무래도 장형을 제대로 맞은 것 같았다.

실제로 엉덩이 부근이 붉게 물들어 있었는데 장형을 맞고 살이 터지는 일은 매우 빈번했다.

그는 엉덩이를 부여잡은 채로 깡마른 몸매의 노비에게 기대어 있었는데 누가 봐도 상당히 체격 차이가 나서 힘들어 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만 그게 안 느껴지는 건지 거의 깔린 상태로 낑낑대는 노비에게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버러지 같은 녀석! 제대로 부축도 하지 못하는 것이냐.”

그의 욕설은 꽤 더러웠다.

귀에 오물을 쑤셔 넣는 기분이었다.

누가 봐도 화풀이에 불과한 폭언이었다.

어쩌면 자신에게 장형을 내린 전법사의 관리를 향해 하는 욕일지도 몰랐다. 그런 그를 향해 혀를 차는 이들은 있었지만, 정작 그를 말리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노비에게 손찌검까지 할 기세라 도령이 나서려고 하자 노복이 잽싸게 앞을 막아섰다.

“도련님, 아니되옵니다.”

“하는 짓이 너무 속되지 않은가. 옷차림을 보아하니 시전 상인 같은데 아무리 노비라 하더라도 어찌 저렇게 막 대한단 말인가.”

“어르신과 스승님께 사고 치지 않겠다고 약조하신 것을 벌써 잊으신 겁니까. 스승님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제기랄···”

도령은 답답하단 표정을 지었지만,

더는 나설 생각은 없어 보였기에 노복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도령은 전법사 앞에 있는 사람들을 헤치며 걸었다.

그가 향하는 곳은 전법사와 마주보고 있는 판도사였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닌데 도령의 얼굴을 모르는 이는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그를 발견한 젊은 관리 몇 명이 재빨리 다가와서 살갑게 웃었다.

“고향에는 잘 다녀왔는가?”

“사형들 덕분에 무탈하게 다녀왔습니다.”

“스승님이 가장 총애하는 네가 없으니 상당히 무료해하시더구나.”

“송구하옵니다.”

그들의 정체는 도령의 사형들이었다.

모두 같은 스승 아래에서 동문수학하던 사이였기에 격의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도령은 그들 사이에서 가장 막내였으나 오히려 스승에게 가장 큰 기대를 받고 있었다.

“우선 가서 스승님에게 인사부터 드려라.”

“알겠습니다. 큰 사형.”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우리도 어서 가서 일을 봅시다.”

“나중에 따로 보자꾸나. 갑시다.”

“수고하십시오.”

허리를 숙이며 도령이 인사하자.

그들은 어서 급제하여 일이나 도우라는 농을 하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도령은 지체했던 발걸음을 옮겨 판도사의 가장 안쪽으로 향했다.

그곳은 판도사의 수장이자 도령의 스승인 판도총랑 김득배가 업무를 보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분위기가 이상했다.

평소보다 판도사를 지키고 있는 병사의 수가 많았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을 무시하고 스승님을 뵈러 안으로 들어서자 곧장 그를 막아서는 이들이 있었다.

“어딜 가시는 것이오?”

“스승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오시오. 지금은 만나뵐 수 없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서 슬쩍 안을 보자 값비싼 흑피화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상당히 중요한 손님이 오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나중에 다시 찾아봬야겠다며 등을 돌리려던 순간에 문이 열리며 김득배가 나와서 그를 향해 다가오라며 손짓했다.

“몽주 왔느냐, 안 그래도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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