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35
초석이 필요한 이유.
설명할 필요도 없이 화약 때문이다.
인도는 그리 큰 노력 없이 초석을 정제하여 염초를 구할 수 있는 축복 받은 땅이다.
최무선이 노력해준 덕분에 화약의 제조 방법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으나 화포를 마음껏 쏠 화약은 없었다. 현재 고려에 비축된 화약은 고작 10근(6kg)도 되지 않았다.
만드는 족족 사용하는 탓이었다.
화포의 개량을 할 때도 필요하고 김휘남과 주덕유의 함대에서도 사용량이 꽤 많았다.
심지어 최근에는 변안열이 이끌고 있는 훈련도감에서도 화포 전술을 세우겠다며 화약을 가져다가 인적이 드문 곳에서 쏘고 있었다.
그렇다고 화포를 쏘는 연습을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염초자취지법(焰硝煮取之法)
염초를 대량으로 만드는 그 방법만 있어도 상황이 이 정도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전에 그와 관련된 논문은 읽어봤지만,
자세한 부분까지 기억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시도는 계속되고 있었는데 최무선 아래에 염초장(焰硝匠)과 취토장(取土匠)을 두었으나 성공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원나라에서 사 올 수도 없지.’
당연히 염초는 금과 은같이 나라에서 교역을 금지하는 품목이었다. 지금 염초를 얻는 방법은 오래된 가옥의 흙을 채취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최근에 흙을 먹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곳곳에서 소문이 나고 있을 정도였다.
숙련되지 않은 취토장 가운데 일부가 검은 흙을 발견하면 혀로 핥아서 맛을 보고 염초를 구분하고 있는 탓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있다.
인도에서 초석을 대량으로 가지고 된다.
그러면 단번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지구에서 초석을 가장 많이 지닌 땅이 칠레와 인도인데 원나라에서 나오는 양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장량이 상당히 많다.
칠레는 너무 먼 곳이라 제외하면 인도에서 구해서 오는 것이 가장 바람직했고 더구나 초석은 훌륭한 천연 비료이기도 하다.
‘문제는 탄야가 그걸 받아들일 것이냐인데···’
그러나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생각보다 쉽게 그는 내 조건을 받아들였다.
초석이 얼마나 중요한 자원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았다.
하긴 12세기에 중국에서 화포가 처음으로 사용된 이후에 이 무렵에는 유럽까지 전파된 시기이나 아직 제대로 써먹지는 못하고 있었다.
염초가 뭔지도 모르는 이들한테.
어떻게 구분해서 가져오라고 해야 할까.
해결책은 무척 간단했는데 우리 사람을 탄야와 함께 보내면 되는 일이었다. 초석에서 염초를 정제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구분하고 정제하는 방법을 아는 염초장이나 취토장이면 충분했기에 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 곧장 계정골에 있는 최무선을 불러냈다.
그가 입궐하자 나는 곧장 탄야와 나눴던 이야기를 그에게 해주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적임자를 선발해 주시오.”
최무선은 잠시 머뭇거렸다.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가까운 지역으로 파견을 보내는 것도 아니다.
천축국에 다녀왔다는 스님의 이야기는 꽤 많이 들어보기는 했지만, 좀처럼 상상조차 되지 않는 머나먼 여정이다.
더구나 탄야를 따라가면 적어도 5년 정도는 그곳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나도 쉽지 않은 결정이란 것을 알기에 잠시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며 기다려줬다.
그러자 최무선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아래서 일하는 장인 하나를 천거했다.
“현재 염초를 채취하고 정제하는 기술을 가진 염초장은 모두 다섯인데 그중에서 성혼하지 않은 이가 한 명이 있기는 하옵니다.”
“아무래도 가족이 있는 이는 배제하는 것이 과인도 옳다고 생각하오. 혹시 화약의 제조 방법도 알고 있는 자인가?”
“아니옵니다. 원래는 취토장이었다가 얼마 전에 염초장이 된 이라 화약을 제조하는 것은 아직 배우지 못했사옵니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초장은 화약 제조를 맡는 이들이다.
가능하면 화약 기술의 유출은 막고 싶었다.
아직은 그들의 술탄이 어떤 인물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기에 주의해야 했다. 나는 최무선에게 그를 잘 설득해 달라고 당부했다.
내가 어명을 내리면 당연히 따르겠지만,
이번 일은 본인의 결심도 상당히 중요했다.
막상 그곳까지 가서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최무선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아듣고 최선을 다해 보겠다며 내게 대답을 했다.
“하온데 만약에 탄야라는 자가 염초를 배에 가득 온다면 오히려 유황이 부족할 것이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이미 팔관회에 참석한 왜국의 상인을 통해 유황을 사들이기로 했소.”
“국내에도 유황이 있는 곳은 없나 자체적으로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사옵니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의 양을 캐낼 수 있는 유황 광산이 있다는 것도 못 들어봤고 있더라도 우리 사람을 쓰기는 싫었다. 유황을 캘 때는 필연적으로 유독 가스가 나오니 많은 이들이 상할 것이다.
더구나 매장량이 많은 석탄이나 석회 같은 것을 제외하면 가능하면 손을 대고 싶진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탄야를 고국으로 돌려보내려면 서둘러야 하기에 최무선을 그쯤에서 내보내고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신소봉이 내가 놓친 부분을 짚어줬다.
“술탄이라 불리는 천축국의 왕이 사절단을 보내왔으니 전하께서도 그와 걸맞은 이를 보내시는 것이 어떠시옵니까.”
“격식을 차리라는 말이지?”
“전하와 거래를 할 상대는 탄야가 아니라 상대국의 왕이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모처럼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는구나.”
신소봉이 해준 말이 맞기는 했다.
내가 잠시 초석에 눈이 멀었던 것 같았다.
앞으로 지속 가능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가장 위에 있는 이를 공략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문제는 사절단으로 누굴 보내냐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가장 처음 떠올린 것은 이색이었다.
‘이보다 더 멀리 가는 유배는 없겠지.’
차라리 멀리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아직 성균시에 합격했을 뿐이고 문과에 급제한 것도 아닌데 벌써 상소를 올려서 성리학으로 나를 옭아매려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상소는 지난해부터 머리카락을 짧게 깎은 상태로 유지하는 나의 행태를 꼬집는 것이었다.
그래도 자기 목숨이 귀한 것은 아는지 직접적으로 날 거론한 것은 아니고 홀치와 응양군을 빗대어 옳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그는 무게감이 없었다.
가능하면 세상 경험이 많은 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이색의 스승인 이제현이 떠올랐다.
그는 젊은 시절에 스스로 자청하여 서촉의 아미산과 절강성 그리고 감숙성도 다녀왔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을 알기에 곧 포기했다.
그의 나이가 벌써 미수(美壽, 66세)이기에 그렇게 먼 곳까지 배를 태울 수는 없었다.
아마 그 이야기를 꺼내면 다들 들고 일어나 부당하다고 난리를 칠 것이 분명했다.
그 뒤로도 여러 후보가 있었다.
당연히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이들이 제법 있었으나 아쉽게도 그들은 맡은 일이 있었다.
누구 하나를 빼더라도 계획의 차질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이번에 탄야를 따라나서면 최소 일 년 정도는 걸릴지도 모른다.
결국에 내가 마지막으로 고른 이는 이인복의 동생인 이인임이었다.
‘아직은 흑화되진 않았으니까.’
이 시절의 이인임은 정상적이었다.
비록 그의 형인 이인복은 그를 ‘집안과 나라를 말아먹을 놈’이라고 걱정하고 있으나 가지고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인정해야 했다.
지금까지는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 중하게 쓰진 않았으나 이번에 기회를 줘보기로 했다.
정치적인 감각이나 모든 면을 비교해도 이인복에 비해 크게 뒤처지진 않는 인물이었다.
그 생각이 든 나는 신소봉에게 이인임을 불러오라고 명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왔다.
이인임은 왕명의 출납 등을 맡고 있는 밀직사에 소속된 좌부대언이라 항상 주변에 있었다.
“좌부대언과 긴히 논할 것이 있어서 불렀소.”
“하명하시옵소서.”
“어제 팔관회에 온 사절단 중에 천축국에서 온 이들을 기억하시오?”
“물론이옵니다. 오늘 독대의 자리를 가졌던 이들이라면 기억하고 있사옵니다.”
천축국의 사절단이 온 것은 오랜만이다.
당연히 이인임도 그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둘러서 이야기하지 않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서 사절단 이야기를 꺼냈다.
“과인은 내수사의 장인 한 명과 함께 그대를 사절단으로 보내려 하오. 상당히 길고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했다.
만약에 그가 난색을 보인다면 다른 이에게 기회를 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인임은 자신이 가겠다고 했다.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한 느낌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재차 물었는데 이인임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다른 형제와 너무 비교되기 때문이었다.
형인 이인복은 문과 급제를 한 후에 원나라의 제과에서도 급제를 한 전형적인 천재였다.
더구나 지금은 고려의 2인자라 불릴 정도로 나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문과 급제를 한 것도 아니고 고작 음서제도로 관직을 시작한 자신과는 너무 달랐다.
심지어 나이 차이가 큰 아우인 이인민도 어찌 된 일인지 몰라도 전하와 자주 독대를 하고 있었다.
이인임은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도무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전하의 의중대로 일을 성사시켜서 돌아오겠사옵니다.”
상당히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결단을 치하해주었다. 이인임은 그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더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소신이 무엇을 하면 되옵니까?”
“마두라이의 술탄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고 탄야가 약조를 지키는지 확인하면 되오.”
“무슨 약조인지 여쭤봐도 되옵니까?”
“그들의 땅에서 나는 초석을 가져올 생각이오.”
초석이란 이야기를 듣자.
이인임은 입을 쩍 벌리며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화약의 재료 중에 초석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 역시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에 불과했고 금방 표정 관리를 했다.
“과인은 즉위한 이후부터 줄곧 화포의 개발을 하고 있었소. 그런데 화약을 제조하려면 염초가 필요한데 원나라에서는 구할 수 없지 않소.”
갑작스러운 나의 실토에도 불구하고 이인임은 묵묵하게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가장 놀란 점은 내가 언급한 계정골에서 이인민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천축국도 초석이 있는 것은 확실하옵니까?”
“그건 확실하오. 다만, 탄야의 술탄이 그걸 허락해줄지는 아직 알 수 없기에 그대를 보내는 것이오. 사절단으로 가서 그들의 술탄을 만나서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고 교역을 성사시키시오.”
“성심을 다하겠사옵니다.”
아마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대신 그에게 모든 전권을 주기로 했다.
이번 일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고려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는 선에서 자율적인 판단을 하는 것을 허락해준 것이다. 지금 시대에 연락이 자주 오갈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 정도의 권한은 주어야 뭐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그를 보낼 수는 없었다.
적어도 최소한의 지식 정도는 알려줘야 했다.
모처럼 너튜브에서 방송을 하던 때로 돌아가서 천축국이 어떤 곳이며 그들이 믿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알려줬다.
그 깊이가 깊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가서 실수를 하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거의 한 시진이 지난 후에야 나는 칼칼한 목을 축이며 나머지는 탄야에게 미뤄야 했다.
“자세한 것은 탄야에게 들으면 되오.”
탄야도 고려말이 제법 능숙하니.
현지에서 사는 이에게 물으면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한 뒤에 이인임을 내보냈지만,
뭔가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이인임이 아무리 능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최측근에 두고 일을 시키는 이인복이나 김득배와 같은 이들만큼 믿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게 있어서는 주덕유보다 더 불안한 것이 이인임이었는데 내 시야에서 벗어난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었다.
나를 대신하여 감시할 이가 필요했다.
‘혹시 모르니 이인임에게도 사람은 붙여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