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21
감찰사와 전법사가 손을 잡자.
고려의 관리들은 벌벌 떨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숙청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이건 언제 누가 끌려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실제로 보름 동안에 삭탈관직(削奪官職) 당한 관리만 합쳐도 백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아직 처분을 기다리는 이들도 상당했다.
그 수는 더 늘어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반기를 들 수 있는 이들이 없었다.
이미 기씨 가문과 조일신이 박살 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여기서 자칫 잘못 찍히면 역적으로 지목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도당에는 이 상황을 견제할 수 있는 무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고려를 이끌어 가던 정치 세력의 중심축이 되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모두 사라진 것이다.
당연히 도당은 개혁 세력이 거의 장악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의 세력이라 보긴 어려웠다.
크게 나눠서 보자면 이제현 등의 유학자들이 이끄는 온건 개혁파와 이인복으로 대표되는 급진 개혁파 정도로 볼 수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목소리가 큰 쪽인 급진 개혁이었다.
그의 뒤에는 이방실과 정세운을 비롯한 무관 세력과 유숙과 김득배 등의 측근 세력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든든한 뒷배는 역시 나였는데 현재 감찰사는 공포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비리의 냄새가 나는 이들은 끝까지 쫓아서 어떻게든 죄를 찾아내니 그럴 만도 했다.
심지어 일부 감찰 어사의 경우.
남대가와 개경을 돌며 비리의 제보를 받았다.
벽보를 붙이고 목청 좋은 이들까지 동원해서 관리의 부정을 고발하는 이에게 포상까지 줬다.
종종 무고(誣告)나 참소(讒訴)의 죄를 저지르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들은 대부분 전법사에서 위증의 죄를 물어 곤장을 맞고 풀려났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라 보기는 어려웠다.
‘이제는 유학자와의 길고 긴 싸움이 되겠네.’
이건 선과 악의 싸움이라 불 수 없었다.
급진 개혁을 추구하는 이들도 유학자가 뒤섞여 있기에 저 아래쪽의 밑바닥부터 바꿔야 한다.
사상을 아예 개조해야 하는 문제였다.
인간이란 뭔가에 집착하면 광기를 보인다.
이미 고려에는 불교라는 거대한 집단이 있는데 유교까지 더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뭐든 적당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어쨌든 탐관오리를 때려잡기 시작하자.
부수적으로 들어오는 재물이 제법 많았다.
덩달아 나에 대한 반감과 악명도 높아지고 있으나 백성들의 평가는 관리와 정반대였다.
어찌나 비리를 많이 저질렀는지 한동안 관리들의 녹봉 걱정을 안 해도 될 지경이었다.
당연히 그중의 일부는 내수사에도 들어왔다.
그 때문에 여러 말이 나오긴 했지만,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후에 유일하게 하는 사치는 고기반찬이 전부다. 그 외에 사치품은 관심조차 없어서 눈길도 두지 않고 있었다.
이 무렵의 사치품이라고 해봤자 보석과 귀금속 아니면 앵무새나 공작새 같은 것이 전부였다.
동물원에서 흔하게 보던 새가 아니던가.
그리 놀랍지도 않았고 내가 남자라 그런지 장식품에 눈길이 가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무척 싫어하는 편이었다.
이 시대의 장식품은 인간적으로 너무 무겁다.
가락지도 두께가 상당해서 이걸 어떻게 끼고 다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저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이 시대에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콜라 같은 탄산음료와 매운 고추가루 그리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마트폰 같은 것들이 전부였다.
생각 이상으로 궁궐 생활은 지루했다.
그때 안도치가 곽충수가 왔음을 알려왔다.
내 곁에는 세 명의 환관이 번갈아가며 당번을 서고 있었는데 오늘은 그의 차례였다.
지금쯤 이강달과 신소봉은 홀치가 훈련하는 곳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임진정변 때문에 경각심이 든 것 같았다.
안으로 들여보내라고 말을 하자 곽충수는 상자를 품에 안은 채로 들어왔다. 그게 뭐냐고 묻자 그는 상자를 살포시 내려놓고 대답했다.
“숙옹부(肅雍府)에서 만든 견본품이옵니다.”
숙옹부는 가진이 머무는 궁을 의미했다.
현재 그녀는 개경의 솜씨 좋은 이들을 고용해서 베를 짜는 수공업 공장을 작게 운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숙옹부 안에서 일을 하는 것은 아니고 바로 옆에 빈 건물이 있어서 활용하고 있었다.
“내가 보면 뭘 알겠는가. 전수가 보기에는 품질이 괜찮은 것 같은가?”
“아직 시작 단계인 것을 고려하면 매우 훌륭한 수준이라고 생각되옵니다.”
“사는 사람이 그런 것도 고려해주겠소?”
“그래도 중품(中品)은 충분히 되옵니다.”
그걸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적어도 최상품은 되어야 뭐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겨우 두어 달 정도가 지났을 뿐이다.
한 필의 베를 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적지 않다.
한 사람이 1년 동안에 서너 필을 짜는 것이 보통이니 벌써 실망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공주가 만든 베 짜는 수공업 공장은 조만간에 다른 용도로 바꿀 예정이었다.
이미 판을 뒤집을 패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걸 가져가서 남부 지역에 심으시오.”
나는 상자 하나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곽충수는 그걸 두 손으로 받아서 열어서 안을 봤는데 정체 모를 씨앗이 가득했다.
아무리 봐도 그게 뭔지 알 수 없기에 곽충수는 이게 뭐냐고 내게 물어봐야 했다.
“원나라에서 들여온 목화씨요. 가져가서 남부에 있는 여러 고을로 보내서 심어 보시오.”
“어명을 받들겠사옵니다.”
“고을마다 동일한 수로 나눠주고 가장 많이 수확에 성공하는 곳에 크게 상을 내릴 것이오.”
“그리 알리도록 하겠사옵니다.”
아마 복불복이 될 것이다.
목화씨는 두 가지의 품종이 섞여 있었다.
대도에서 사들인 품종과 정세운이 안휘성에서 가져온 품종이었는데 어떤 게 고려에서 더 잘 자랄지는 아직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조금 더 빨리 준비하고 싶었지만,
재정이 부족해서 조금 뒤로 미뤄둬야 했다.
하지만 벌써 4월에 접어들어 서둘러야 했다.
목화의 생산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이게 있어야 의복 혁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일단 재배에 성공하기만 하면 고려의 의복은 삼베에서 면포로 대전환을 할 것이다.
생산성도 수작업으로 만드는 직물과 차원이 다른데 숙련된 장인이 삼베 한 필을 짤 시간에 면포(綿布)는 다섯 필 정도는 짤 수 있다.
무엇보다 면포의 장점은 보온성이다.
‘누비 솜옷쯤은 있어야지.’
오리털 패딩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적어도 얼어 죽지 않을 정도의 옷은 입혀야 할 텐데 이 시대의 고려인은 대부분 바람조차 제대로 막지 못하는 삼베옷을 입고 다녔다.
두툼한 이불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것만 성공한다면 더는 원나라에서 비싼 돈을 주고 목면을 사 오지 않아도 될 것이고 백성들도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오.”
“이토록 자애로우시니, 백성들에게는 하늘이 내려주신 홍복(洪福)이옵니다.”
“혀를 놀려서 과인을 기쁘게 할 생각 말고 주어진 일에 대한 성과로 보여주시오.”
평소답지 않게 아부를 떨고 있자.
나는 곽충수를 탓하며 실적을 거론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목화의 재배가 잘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목화 시배지에서 첫해에 살아남은 목화는 고작 한 그루였다.
이것도 거짓으로 꾸며진 문익점 이야기에 얹힌 스토리텔링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아직 정확한 재배 방식을 모르는 것은 사실이다.
아마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적어도 5일의 간격을 두고 파종하여 어느 시기가 가장 좋은지 확인하고 구체적인 사항을 빠짐없이 기록해서 올려보내라 하시오.”
대부분 모르는 사실이겠지만,
우리나라에도 이미 목화가 있기는 했다.
대부분 기후와 토양에 맞지 않는 품종이라 유의미한 수준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가져온 씨앗은 중국에서 자라며 동북아 지역에 맞게 개량된 품종이다.
그걸 심으면 우리나라 남부 지역에서는 충분히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이다.
대충 목화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곽충수는 이앙법에 대해서 언급했다.
현재 내수사에서 관리하는 토지 중에 물을 비교적 쉽게 끌어다 쓸 수 있는 토지는 올해 이앙법을 시범 삼아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래 봐야 하등전 십여 결 정도였다.
평수로 따지면 대충 4만 평 정도 되려나.
이앙법은 이미 고려의 강원도 등에서 시행 중인 터라 그 지역에서 경험이 많은 농부 몇 명을 불러서 직파법과의 차이를 비교할 예정이었다.
당연히 나는 그 차이를 대충 알지만,
관리들을 설득하려면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고려가 부강해지려면 인구가 더 많아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식량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출산율이 바닥을 찍었던 내가 살던 시대와 달리 이 무렵에는 먹고 사는 고민만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면 인구는 금방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차질 없이 준비하겠사옵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찾아보라고 했던 흑토는 어찌 되었소?”
“얼마 전에 장야서(掌冶署)에서 보낸 장인이 간성과 익령 그리고 양광도의 진위에서 흑토(黑土, 석탄)를 찾아냈다고 연락이 왔사옵니다.”
이 시대에는 아직 채방사(採訪使)가 없었다.
전문적으로 광물을 탐사하는 능력을 갖춘 이도 없을뿐더러 관련된 일을 전담해야 하는 공부(工部)도 혁파되어 사라지고 없었다.
그나마 야금(冶金)과 공작(工作)에 관한 일을 하는 장야서에 일을 맡길만한 이를 찾았는데 그들은 현재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며 내가 찾으라고 명령한 광물을 찾고 있었다.
그중의 몇 명이 광산을 찾아낸 것이다.
흑토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당연히 연탄이다.
분쇄와 압착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못 만들 것도 없었는데 광산을 찾았으니 이제부터 어떻게 생산할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때였다.
내가 연탄을 써본 적도 없을뿐더러 만드는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도 없었다.
“현재 발견한 흑토는 각각 열 섬 정도 계정골로 보내라고 하시오. 광산을 개발하는 것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소.”
“그리 처리하도록 하겠사옵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은 아니었다.
내가 진짜로 찾는 것은 흑연이었다.
그런데 참 애매한 것이 석탄과 흑연의 차이는 도대체 어떻게 구분하는 걸까. 직접 그 광물을 놓고 비교한 적이 없으니 당연히 알 수 없었다.
내가 내린 결론을 불 속에 넣어 확인하는 것이었다.
“혹시 불에 타지 않는 흑토가 나왔소?”
“간성과 익령에서 발견한 것은 간혹 섞여 있기는 하나 그 수가 많지 않답니다.”
“양광도의 진위도 마찬가지요?”
“아닙니다. 거기는 대부분이 불에 타지 않는다고 하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장야서 장인 가운데 하나가 고향인 진위에서 석묵(石墨)이 많이 있는 지역을 안다고 해서 보내기는 했으나 그리 큰 기대는 않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잭팟이 터진 것이었다.
심지어 동해안도 아니고 거리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싣고 올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내가 흑연을 찾는 이유는 불편함 때문이다.
고려에 와서 뭔가를 쓰려고 할 때마다 먹을 갈고 먹물에 적셔야 한다는 것이 귀찮았다.
더구나 사관이 나를 따라다니며 뭘 쓰려고 할 때마다 상당히 번거로워하고 있었다.
따로 먹물을 갈아서 챙기면 되는 일이기는 해도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볼펜과 샤프 같은 것을 쓰던 내가 곁에서 보자니 답답해서 고구마를 먹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은 바로 연필이었다.
연탄과 연필 그리고 면포.
앞으로 이 세 가지가 나의 무기가 될 것이다.
언제까지 부패한 관리를 때려잡아서 고려의 재정을 충족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개경과 고려에서 나름 좀 산다는 가문의 재물을 어떻게든 뽑아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금방 만들어질 거라 생각지는 않았다.
완성품만 써봤지 그걸 직접 만들어 본 적이 없으니 일단은 시제품을 만들어가며 시행착오를 겪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나눈 뒤.
할 일이 많은 곽충수는 놔줘야 했다.
지금껏 이야기를 한 것만 처리하려 해도 머리가 터질 지경일 것이다. 거기에 별도로 동오를 통해 무역을 지휘하는 가진의 지시도 있는 상태다.
만약에 내수사에 인력을 추가로 충원을 해주지 않았다면 곽충수는 버티지 못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수가 많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더 많은 인원을 내수사에 두려면 적어도 확실한 수익 사업이 있어야 했다.
‘제발 하나만이라도 성공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