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20
지난밤의 변란 때문인지.
해가 떠올랐으나 개경은 조용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들조차 없었다.
다들 숨죽여 시간이 지나길 바랄 뿐이었다.
심지어 개경의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런 탓에 성문 밖 개경현에 사는 이들은 지난 밤의 일을 모르기에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게 왜 성문을 안 열고 있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고위 관리의 호통도 있었으나 아예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순군만호부는 꼼짝도 않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뭔가 일이 일어난 것 같은데···”
“에이. 나는 오늘은 그만 돌아가야겠네. 계속 이곳에서 죽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잖여.”
순군만호부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누구도 들여보내거나 내보내지 말라는 엄중한 지시가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개경 내부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밤새 얼마나 치열하게 싸운 건지 거리마자 시신이 즐비했고 검붉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지금도 순군만호부의 병사들은 시신 수습을 하느라 무척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번 일에 관련되어 있는 자를 가리기 위해서 하옥된 이들만 삼백여 명이 넘을 정도였다.
분주한 것은 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
상참이 열리기도 전에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행성이문소(行省理問所)의 관리였다.
다른 이도 아니고 기 황후의 친인척이 모두 몰살을 당했으니 무척이나 당황한 상태였다.
심지어 나한테까지 언성을 높일 정도였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이번 일의 주모자를 규문(糾問)할 수 있도록 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미 반란의 수괴는 모두 목이 베어져 저자거리에 걸렸소. 가서 직접 확인하시오.”
“아니 취조조차 않고 목을 베셨단 말입니까?”
“추포를 하는 과정에서 칼을 들고 과인에게 대항을 했으니 어쩔 수 없지 않소.”
하지만 도의적인 책임은 인정해야 했다.
개경에서 벌어진 참극이었기에 그 부분을 자책하자 이문소의 관리도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아무리 그라도 나를 그 이상으로 추궁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더구나 엄연히 나도 표면상으로는 피해자 중의 하나였다.
내가 머물던 이궁까지 쳐들어왔던 아찔한 순간을 강조하며 계속 한숨을 쉬고 있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문소의 관리는 떠났다.
당장은 그렇게 그를 돌려보냈으나 이게 그렇게 쉽게 끝날 문제는 확실히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도 되었다.
지금은 행성이문소보다 원나라에 있는 기 황후의 화를 잠재우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원나라에서 종친을 담당하는 종정부(宗正府) 상판(常判) 등을 보내와서 조사를 할 것이다.
그전에 이쪽에서 먼저 이번 일을 엄중하게 다루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아무래도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기 황후에게 사람을 보내는 것이었는데 이번 일을 벌이기 전에 이미 누구를 보내야 할지도 정해져 있었다.
다급하게 신소봉을 궐 밖으로 보내서 불러온 이는 기 황후의 외종 오라비인 이공수였다.
문충(文忠) 이공수.
그는 기 황후의 외사촌이지만,
훗날 원나라에서 공민왕을 폐위시킬 때.
원나라에 가서 적극적으로 복위에 힘써주며 덕흥군이 군사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미리 고려에 알려주었던 충신이었다.
편전 안으로 그가 들어오자 나는 우선 이공수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해줬다.
“이번 일로 누구보다 상심이 클 텐데 이렇게 불러내어 미안하오.”
“아니옵니다. 그나마 대부인이 무사하셔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 중이오. 허나 대도에 계신 황후 마마는 어떠실지 걱정이 많소이다. 혹시나 마마의 분노가 고려 전체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면 도무지 감당되지 않을 것이오. ”
이공수는 금방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자신을 따로 부른 이유가 뻔하기는 했다.
아마도 피로 묶여진 기 황후와의 관계 때문인 것 같았으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까지 기철을 비롯한 외종사촌들의 만행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고 경멸하던 그였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깨끗하게 정리된 것이 고려를 위해 오히려 다행이라 여겼다.
“소신에게 기회를 주시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황후 마마의 상심을 달래주고 돌아오겠습니다.”
“외람된 일이지만, 고려를 위해 부탁드리오.”
“심려치 마시옵소서. 그런데 조일신의 식솔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사온지요.”
기 황후가 상황을 물어볼 때.
대답해줄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했다.
당연히 나는 현재 상황과 후속 조치에 대해서 하나도 남김없이 이공수에게 말해주었다.
이미 역도들의 수괴인 조일신 등은 모두 죽임을 당했고 그들의 가족은 옥에 가둔 상태였다.
잔당에 대한 처분은 내가 결정하지 않고 원나라에 넘길 생각이라 말하자 이공수는 곧장 수긍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하신 처사이옵니다.”
“이것은 곧 과인이 발표할 유지(諭旨)요.”
“벌써 이런 것까지 준비하긴 겁니까?”
“지난밤, 참담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아 직접 써봤소이다.”
유지는 신하에게 내리는 글이다.
거기에 쓰인 내용은 이번 일에 대한 도의적 책임과 안타까운 마음이 구구절절하게 담겨 있었다. 도무지 하룻밤 만에 썼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급 문장이 가득한 글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 감찰사 모두와 머리를 맞대고 한 달 가까이 고심해서 써오던 것이다.
거기에 명필이라 불리던 내가 직접 썼으니 흠을 잡을 곳이 전혀 없을 정도의 교서였다.
이공수는 유지를 한 번 읽더니 당장 원나라로 출발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가 나가기 전에 줘야 할 게 있었다.
“과인이 준비한 여비니 아끼지 말고 쓰시오.”
내가 은병이 든 상자를 건네자.
이공수는 거절하지 않고 그걸 받았다.
생각보다 묵직한 느낌에 이공수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어디에 쓰는 용도인지 알아챘다.
원 황실에서 눈이 돌아갈 정도의 재물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환심을 살 정도는 되었다.
당연히 그 안에 든 것은 내수사 같은 곳에서 빼 온 것이 아니라 조일신 집에서 압류한 것이다.
그러니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은 시간을 벌어야 할 때니까.’
기 황후가 화를 참지 못하고 나를 폐위시키려고 하거나 군대를 보낼 수도 있는데 그건 최악의 상황에 해당했고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결정이다.
지금도 원나라의 곳곳에서 일어난 홍건적의 봉기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올해는 백련교의 우두머리인 유복통이 군사를 이끌고 호주(濠州)를 점령하고 30만 명의 토벌군을 물리칠 정도로 기세가 등등한 상태다.
그러니 하루가 지날수록 내게 유리했다.
이공수가 그걸 가지고 밖으로 나서자.
곧장 이인복이 들어와 경과 보고를 했다.
이미 새벽 무렵에 역도들 대부분을 추포할 수 있었는데 살생부에 올라간 이들 중에 상당수가 이번 책략을 통해서 지워졌다. 하지만 고용보는 찾을 수 없었다며 이인복은 상당히 아쉬워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고용보가 지난 세월 동안 원나라와 고려를 오가며 얼마나 만행을 저질렀는지 아시지 않으십니까. 행주 기씨 가문이 오만방자해진 것도 그가 기 황후를 원나라에 궁녀로 들여보내어 생긴 일입니다.”
그건 나도 잘 아는 일이다.
당연히 고용보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원래의 역사에서 고용보는 조일신이 일으킨 변란을 피해서 멀리 해인사까지 도망간다.
그곳에서 10년 동안이나 숨어지내다가 결국 공민왕에게 잡혀서 죽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오랜 기간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평소에 해인사의 승려와 친분이 깊었다고 하니 그쪽으로 병사를 보내어 추포하도록 하시오.”
이인복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내 명령에 곧바로 고개 숙여서 알겠다고 대답을 할 뿐이었다. 물어봤자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체득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그런 그에게 역적들이 축재한 재산의 압류는 어찌 되었냐고 묻자 이인복은 살짝 웃으며 대답을 해줬다.
“숟가락 하나 남김없이 다 수거했습니다. 그런데 그 수가 너무 많아 수레 한두 대로 해결되지 않을 정도였사옵니다.”
“도대체 얼마나 수탈을 했길래 그 정도인가?”
“애초에 조일신의 가문이 돈이 많기로 유명한 가문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더구나 수종공신에 올라 참리가 되자 뇌물을 들고 그의 집을 찾은 이가 셀 수 없이 많았사옵니다.”
“뇌물을 주거나 받는 이들 모두 고려에서 뿌리를 뽑아야 할 것이오.”
내가 하는 말에 이인복도 동의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조일신의 집에서 나온 노비 문서 때문이었다.
무려 백 명이 넘어갈 정도였는데 최화상과 장승량을 비롯해서 이번 일에 관련된 이들까지 합치면 적어도 삼백 명은 되었다.
그중에서 200명은 고려에 돌아온 후에 부당하게 양민을 노비로 만든 정황이 보였다.
그걸 본 나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렇게 쉽게 죽이는 것이 아니었는데! 당장 억울하게 노비가 된 이들에게 양민의 신분으로 돌려놓으시오. 그리고 겸병을 통해 토지를 잃은 이가 있다면 그것 또한 돌려주시오.”
하지만 모든 노비를 풀어줄 생각은 없었다.
그중에 일부는 조일신이 겸병을 하는 데 앞장을 서서 몽둥이를 휘두르던 몹쓸 인간도 많았다.
당연히 그런 이들은 노역에 쓸 생각이었다.
익안현(翼安縣)의 다인 철소 같은 곳은 항상 노역할 이가 부족해서 그곳으로 보내면 된다.
“이제 슬슬 소식이 올 때가 되지 않았소?”
“머지않아 이곳 전법사(典法司) 앞이 가득 메워질 테니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과인은 즐거운 마음으로 한발 물러서 구경할 테니 다 잡은 고기나 놓치지 마시오. 하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오늘을 위해 오랫동안 탄핵을 준비해왔다.
이미 감찰사와 순군만호부에서 탐관오리를 잡기 위해서 개경 곳곳을 뒤지고 있었다.
외부에는 조일신의 변을 계기로 기강이 해이해진 고려의 관리들을 더는 참지 못하고 폭발해서 시작한 일이라 알려질 것이다.
더구나 나에게는 명분 또한 있었다.
대도에서 돌아오기 전에 원나라의 황제가 지시한 시폐(時弊)의 개혁이라는 과제를 주었다.
그걸 내세워 이번에 부패한 관리와 권문 세족도 그냥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전법사로 끌려온 것은 과거 전법총랑 자리에 있었던 고두성이었다.
그는 곧장 전법사 앞마당에 무릎 꿇려졌는데 그쯤 되자 전법판서인 이달충이 앞으로 나섰다.
원래의 역사에서는 이달충이 전리판서였고 백문보가 전법판서였는데 자리를 바꾼 상태다.
백문보가 청렴하고 정직하나 인자한 성격 때문에 중죄를 엄히 다스릴 인물은 아니었다.
여기서는 과감한 성격의 이달충이 적격이었다.
이달충을 보자 고두성은 목청껏 소리쳤다.
“영감! 어찌 나를 이렇게 함부로 대하신다 말이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죄가 있소이까!”
“정녕 죄가 하나도 없단 말이냐. 마지막 기회이니 잘 생각하고 답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전혀 모르겠소이다. 도대체 내 죄가 무엇이오?”
“여봐라! 증좌를 가지고 오거라.”
옆을 흘깃 바라보며 그가 외치자.
몇 명의 사람이 줄을 지어 들어왔다.
상당히 익숙한 얼굴이라고 여기던 고두성은 곧 그들이 누군지 알아보고 안절부절 못했다.
자신이 왜 끌려온 건지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 자신이 억지를 부려 권문 세족의 노비로 전락시킨 이들이었다.
본격적인 탄핵이 시작되자.
증언과 증좌도 끝도 없이 나왔다.
가장 결정적인 증좌는 감찰 어사 서호가 발견한 고두성의 비밀 장부였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주고받은 뇌물과 노비의 목록이 적혀 있었다.
노비를 관리한다는 이가 앞장서서 저런 짓을 벌이고 있었다는 것에 다들 분노하게 만들었다.
고두성은 나름 꼭꼭 숨겼다고 숨긴 것인데 어떻게 찾아낸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거기에 후임인 전법 총랑 정운경의 공술(供述)까지 나오니 도무지 발뺌을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고두성이 죄를 시인하자.
지금까지 불법으로 편취한 땅과 재산 그리고 노예를 모두 돌려주고 장형 스무대와 10년간 관직에 오를 수 없다는 중형이 내려졌다.
하지만 고두성을 더 환장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과 별개로 내려진 벌금형이었다.
죄를 사하여주는 속전(贖錢)도 아닌 것이 지금까지 편취하거나 뇌물로 주고받은 재물의 다섯배나 되는 재물을 납부해야 했다.
만약 그게 불가능한 경우에는 최소 10년에서 30년까지 노역을 하며 갚는 수밖에 없었다.
고두성으로서는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여 벌금을 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다른 탐관오리도 그와 다를 게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선택의 여지조차 없었다.
그날부터 전법사에서는 매일 곡소리가 났지만, 개경의 거리에는 오히려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간신히 노예에서 벗어난 이들은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고 조상에게 물려받은 땅을 되찾은 이들은 서둘러 농사를 지을 준비를 했다.
그렇게 개경 곳곳에 베어져 있던 피비린내는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