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5
내가 손을 들어서 돌격을 명령하자.
병사 몇 명이 호각(號角)을 동시에 불었다.
신호만 기다리고 있던 이방실과 홀치 그리고 응양군은 동시에 왜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왕이 직접 친정(親征)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정포 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모두 막아서니 왜구는 도망갈 곳조차 없었다.
하지만 혼비백산하거나 우왕좌왕하진 않았다.
지금까지 칼을 맞대본 고려군은 모두 별 볼 일이 없었기에 왜구들은 질 거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가장 선두에서 달리는 것은 변안열이었다.
그의 손에는 손잡이가 긴 참마검이 쥐어져 있었는데 한번 휘두를 때마다 왜구의 팔과 다리가 하나씩 잘려 바닥에 뒹굴었다.
그런 그의 뒤에는 홀치가 다섯 명씩 무리를 지어서 뒤따랐다.
비록 홍귀와 변안열에게 훈련받은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원래부터 홀치는 고려 최고의 무사만 차출되는 곳이다.
당연히 갖추고 있는 기본 실력부터 달랐는데 왜구들이 경험한 지방에서 징집된 고려군과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그러다 보니 예상외로 왜구는 그 공세를 쉽게 이겨내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등패병이었다.
오로지 방어만 신경을 쓰고 있는 이들이다.
아무리 왜구라도 그들을 무너트리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쉽지 않았다. 오히려 방패를 이용한 반격이 상상 이상으로 날카로웠다.
간신히 등패병을 뚫고 지나가도 뒤에서 환도와 창을 크게 휘두르는 공격까지 버틸 수는 없었다.
일부 병사가 목숨을 버려가며 활로를 뚫으려 애썼으나 그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개의 열을 지어서 서 있는 탓이었다.
한 개의 조가 완전히 무너지는 경우도 거의 없었으나 만약에 그렇게 되어도 뒤에서 곧장 자리를 채우며 다시 밀어내고 있었다.
심지어 홀치는 교대까지 하면서 체력을 안배하니 왜구가 지쳐서 숨을 거칠게 내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이론과 현실은 다를 수밖에 없지.”
5인 1조의 전투 방식은 오늘이 첫 실전이다.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는데 생각보다 환도의 활약이 그리 크지 않았다. 차라리 환도를 든 이를 줄이고 창을 더 늘리는 게 좋아 보였다.
그래도 처음치고는 기본 실력이 좋아서인지 왜구를 상대로 철벽과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완전히 포위된 왜구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으나 거기에 쐐기를 박은 것은 예상외로 응양군이었다.
“쏘아라!”
이방실이 소리쳐 신호를 보내자.
지붕 위에 올라간 응양군이 화살을 쏘았다.
홀치와 상대하며 왜구들이 정신이 팔린 와중에 응양군의 일부가 초가집 위로 올라간 것이었다.
어차피 장소가 협소하여 싸울 수 있는 공간은 한정적이었으니 아주 좋은 판단이었다.
지붕 위에서 활을 쏘는 병사들 틈에는 황상도 있었는데 그는 갑주를 입은 우두머리만 노렸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화살이 정통으로 꽂혀도 갑주를 꿰뚫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심지어 가면을 맞고 궤적이 바뀌며 빗나가는 경우도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황상은 포기하지 않고 화살을 쐈는데 결국에는 왜구의 눈에 정확하게 꽂아 넣었다.
화살이 사방에서 쏟아지기 시작하니 겨우 2각(30분) 만에 절반에 가까운 왜구가 쓰러졌다.
그걸 본 우키다는 불같이 화를 냈다.
“제길! 이것들은 도대체 뭐야?”
우키다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았다.
고려군은 언제나 굼벵이 같은 존재였다.
매번 뒷북이나 치는 이들이 이렇게 상륙과 동시에 기습을 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노련한 이들이라면 절대 군영이 있는 지역은 침략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이 자리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으나 쉽지 않았다.
그나마 배에 100명이 넘는 동료가 있으나 구원을 해주러 올 거란 생각은 안 들었다.
이미 일부 배는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망할! 의리도 없는 놈들 같으니.”
“대장,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든 도망쳐야지. 당연한 걸 왜 묻고 있나. 길이나 어서 뚫어!”
욕설을 내뱉으며 우키다는 칼을 휘둘렀다.
그나마 자신과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이들은 아직은 뱃머리를 돌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줄지 모르는 일이다.
그들이 변심하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야 하기에 우키다는 남은 이들을 데리고 포구 쪽으로 활로를 찾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포구 방향은 이미 변안열과 최영 그리고 주덕유 등이 철저하게 막고 있었는데 흑마포로 만든 상의와 외투를 걸친 이들은 거의 날아다녔다.
왜구 중에 몇 안 되는 사족(士族) 출신의 무사도 좀처럼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우키다마저 변안열의 칼에 어깨를 길게 베이며 쓰러지자 왜구들의 사기는 완전히 바닥을 쳤는데 그때 바다 쪽에서 굉음이 터졌다.
퍼어어엉! 퍼어엉!
그 소리를 듣고 고개 들어 멀리 바라보자.
왜선(倭船)을 둘러싼 서른 척의 배가 보였다.
가장 선두에 선 세 척의 배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그걸 본 신소봉이 그곳을 가리키며 신난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정포 동북쪽에 있는 수뭇재 고개에 위에서 보이는 그 풍경은 정말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내가 김휘남에게 내린 지시는 벽란도에서 화포와 최무선을 싣고 섬 반대편에서 정박해 있다가 신호를 받으면 달려오라는 것이었다.
“토왜사 김휘남이 당도하였습니다.”
적당한 시기에 잘 맞춰 온 것 같았다.
조금 전에 들린 굉음은 여섯 문의 화포였다.
정박해있던 표적을 향해 쏜 덕분인지 정확도는 절반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심지어 운 좋게도 돛대에 명중한 포환(砲丸)도 있었다.
그 덕분에 왜구는 혼비백산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싸움을 겪어본 그들이지만, 바다 위에서 화포를 쏘는 공격은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다.
‘화포를 이용한 최초의 해전이 되는 건가?’
비록 화포의 수는 적지만,
그래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마 역사가 새로 쓰여진다면 진포해전이 아니라 정포해전 쯤으로 기록이 되겠지.
거의 30년쯤 앞당겨진 쾌거였다.
아마도 지금쯤 김휘선의 배 위에서 최무선은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아직 화약의 대량 생산에 성공하진 않았다.
기존에 보관 중인 화약을 모두 긁어모아서 몇 차례 화포를 쓸 정도만 준비했을 뿐이다.
심지어 화약이 있더라도 화포의 내구도 때문에 몇 번 사용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었다.
만약 화포의 구조가 단순하지 않았다면 벌써 실전에 사용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효과는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배에 타고 있던 왜구 상당수가 배를 버리고 바다에 뛰어내렸을 정도였다. 극히 드물게 활을 들고 싸우려고 하는 이도 있었으나 소용없었다.
스무 척의 배에 백여 명이 남아 있었다.
그걸 나누면 한 척의 배에 대여섯 명이 전부다.
오히려 반항하는 배들은 재장전을 마친 화포로 응징해서 운항 불능 상태까지 만들어놨다.
대장을 잃고 퇴각로까지 사라지자 그제야 왜구 대부분이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했다.
“대승이옵니다. 전하!”
신소봉은 전투 결과에 기뻐했다.
누가 봐도 고려군의 완벽한 승리였다.
상륙한 왜구의 상당수는 죽음을 면치 못했다.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시체들 대부분이 왜구였고 배에서 뛰어내렸다가 이들까지 합치면 포로로 잡은 숫자도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가장 큰 수확은 온전한 상태로 나포한 왜구들의 배였다. 화포 공격을 당한 몇 척을 제외하면 손상된 곳이 없기에 당장 군용이나 수송용으로 써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잘 적고 있는 건가?”
“최선을 다하고 있사옵니다. 전하.”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세세하게 기록하시오.”
“명심하겠사옵니다.”
옆에서 붓을 든 사관에게 지시하자.
그는 허리를 깊게 숙이며 대답을 한 뒤.
곧장 지금까지의 일을 속필(速筆)로 적었다.
왜구가 보인다는 전령이 도착한 후부터 이곳 정포를 포위해서 섬멸하는 데까지 군사의 움직임을 물론이고 결과까지 적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에서는 무관 몇 명이 이번에 처음으로 실전을 겪은 변안열의 전술을 평가하며 장단점을 정리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기록하고 개선한다.’
앞으로 고려는 이 기조(基調)로 갈 것이다.
기록의 힘이 어떤 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작은 것이라도 불편함이 있다면 개선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전통이라고 계속 고수한다면 시대를 역행하는 것과 같았다.
이 시대의 고려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었다.
세계를 놓고 비교해 보더라도 기술적인 면에서 크게 뒤처지거나 그렇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생포한 왜구를 정리하던 이방실이 보고를 하기 위해서 내 곁으로 다가왔다.
“왜선에 있던 왜구까지 포함해서 포로로 잡힌 이가 이백 명이 넘습니다.”
“저들 모두 각지의 관아로 나눠 보내서 노역에 쓰도록 하여라.”
“어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이번 싸움에서 우리 병사 중에 다치거나 죽은 이들은 몇이나 되오?”
“죽은 이의 수는 스물다섯이고, 크고 작게 상한 이가 서른 둘이옵니다.”
그걸 듣고 기뻐하기도 상당히 애매했다.
이번 전투로 죽인 왜구가 사백 명이 넘어가니 확실히 적은 피해지만, 그래도 정예병이라 불리던 이들이 죽은 것은 굉장히 뼈 아팠다.
이방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으나 이번에 그가 보인 지휘 능력은 충분히 만족스러웠기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응양군을 지붕 위로 올려서 활을 쏜 것은 정말 신묘한 책략(策略)이었소. 어서 가서 다친 병사들을 치료해주고 승전을 축하해주시오.”
내 지시가 떨어지자 이방실은 곧장 자신이 거느린 병사들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포의 동남쪽에 있는 특릉골에서 주민들이 하나둘 나왔다.
그들은 최무선이 쏜 화포 소리에 놀란 탓인지 상당히 겁에 질린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내 수없이 죽은 왜구의 시체를 보고 기뻐하며 춤을 추고 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노랫가락 중에는 임금을 칭송하는 것도 있었는데 그때 느껴지는 그 뿌듯함과 민망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평소에 그렇게 당해놓고 이러고 싶을까.’
언제나 피해를 보는 것은 백성이다.
작금의 고려는 그들을 보호하는 것보다.
고혈(膏血)을 빨아먹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먹을 것도 거의 없는 궁핍한 시기임에도 그들은 병사에게 대접하고 싶다며 먹을 것을 내왔다.
하지만 체면이 있지 백성에게 얻어먹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들이 천오백 명이 넘는 병사들 전체를 다 먹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당장 신소봉을 불러 지시를 내렸다.
“당장 사람을 보내서 이곳 사람들에게 나눠줄 군량을 챙겨서 오도록 하거라. 저러다가 마을 주민들이 겨우내 먹을 곳간이 텅텅 비게 생겼다.”
“그리 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만 돌아가자.”
여기에 계속 있어봤자 다들 불편할 거다.
회식 자리에서 상사는 술값만 내고 빠지는 것이 예의라고 하던데 나도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어차피 병사들은 수백 구가 넘는 왜구의 시체를 묻으려면 당분간 이곳에서 머물러야 한다.
저 많은 시신을 바다에 버릴 수도 없고 그냥 놔두면 전염병이 퍼질 것이 분명하였기에 큰 구덩이를 파서 서둘러 매장해야 했다.
가뜩이나 대륙에서 흑사병이 유행하고 있기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겨울에 땅을 파는 일이 쉽진 않다.
화장을 시키는 것이 더 쉬우나 저 많은 시체를 태우려면 나무가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았다.
이방실은 벌써 이번 전투에서 보조 역할에 가까웠던 응양군을 시켜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내가 말에 올라타자 최영과 숙위병 여럿이 피에 젖은 몸으로 서둘러 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이번 싸움에서 최영의 공헌은 적지 않았다.
원래대로면 그는 나의 곁에서 지키는 임무를 맡아야 하나 다른 홀치에게 그걸 맡기고 최영은 전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다.
적어도 전공을 쌓을 기회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내심 그의 실력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기는 했다.
“수고 많으셨소.”
“고려와 전하를 위해서라면 소신은 언제든 검을 뽑고 사지(死地)라도 달려갈 것이옵니다.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오늘의 전투를 잊지 마시오.”
최영은 알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 최영은 북쪽의 홍건적도 막아야 하지만, 남쪽에서 침략하는 왜적도 상대해야 한다.
공민왕의 재위 기간인 20년 동안에 기록된 침략만 무려 100여 회가 넘고 우왕 때는 그보다 더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한 번 막았을 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