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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1화 (11/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1

개혁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장수들이 승리를 위해서 전쟁터에서 싸운다면 내가 싸우는 곳은 궁궐 내의 도당이었다.

사람의 혀로 내뱉는 말에 형체가 있다면 그곳은 유혈이 낭자할 정도로 매우 치열했다.

고려도 아일(衙日)이 있는데 이 시기는 육아일이라 하여 한 달에 여섯 번 조참을 했다.

오늘은 두 가지의 아일 중에 종 5품 이상의 참상관이 모이는 상참(常參)이 열리는 날이었다.

‘무슨 하루 일정이 7시부터 시작되는 거야.’

그나마 지금은 겨울이라 이 정도다.

옛사람들은 아침잠도 없는 건지 조회를 동이 트는 시간인 평명(平明)에 하기 때문이었다.

여름이면 저절로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이 세계에서 1년 정도 있으니 한편으로는 이해가 조금 되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는데 아직 전기나 석유 같은 것도 없기에 밤이면 저절로 활동량이 줄어든다.

초와 등잔은 유지비가 상당히 비싸서 왕실이나 돈이 많은 이들만 쓸 수 있으니 괜히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사자성어가 생긴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신소봉과 함께 안으로 들어서자.

참상관들이 허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올렸다.

예상보다 상참은 빨리 끝났으나 그 뒤에 이어지는 조계(朝啓)에선 열기가 꽤 뜨거웠다.

최근 며칠간 펼쳐진 나의 행보 때문이었다.

다들 할 말이 많아 보였는데 그중에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내가 잘라낸 변발이었다.

그런 내 행동에 반발이 가장 심한 것은 당연히 유학에 심취한 이들이었고 그들을 대표하는 자가 바로 이제현이었다.

“전하! 몽고풍을 멀리하시는 것은 좋으나 신체와 터럭은 함부로 다루지 않음이 효도의 시작이라 하였사옵니다. 그런데 어찌···”

“그대에게 묻겠소이다. 상투나 수염을 정리하기 위해서 잘라는 것은 불효한 게 아니오?”

“일부 전모(顚毛)를 잘라내는 이들이 있기는 하오나 잘라낸 것을 소중히 보관하고 정해진 날에 태웁니다.”

“나 역시 그렇게 할 것이오. 더구나 상국(上國)에서 유행하는 변발과 과인의 다른 점은 뒷머리를 잘라낸 것뿐인데 그런 논리라면 변발을 하는 모두가 불효한 겁니까?”

내 질문에 이제현은 쉽게 답을 못했다.

변발을 하는 이들 중에 황제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자칫 말을 잘못 했다가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문 전체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참상관 중에는 기철처럼 원 황실과 긴밀하게 지내는 이도 있었다. 나는 잠시 그들의 분위기를 살피다가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효는 글자 속에 없으며, 머리로 행하는 게 아니오. 그런 걸 따질 시간에 몸소 실천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오.”

그 뒤로도 간언이 이어졌지만,

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귀를 닫았다.

여기서 쉽게 물러설 거면 시도도 안 했다.

전투력 향상과 실용성을 무기로 나는 그들의 논리를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박살 냈다.

어차피 단발령이 나라 전체에 내려진 것도 아니고 홀치와 응양군이 전부였다. 결국에는 가장 큰 문제가 나에 대한 것인데 필살기인 ‘무엄하오’가 전가의 보도처럼 진가를 발휘했다.

이게 가능한 이유가 있었다.

현재의 도당에는 세 개의 세력이 있다.

기철의 부원 세력과 이제현의 개혁 세력 그리고 조일신 등의 측근 세력이 나뉘어 있었다.

재미있게도 이번에는 부원배와 측근들이 내 편을 들었는데 새롭게 부상하는 이제현의 개혁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노림수인 것 같았다.

덕분에 이제현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같은 개혁 세력이라도 차이가 분명 있었다.

이제현은 급격한 변화를 감당하지 못해서 온건 개혁을 주장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왜 그렇게 바뀐 건지 이해가 되기는 했다. 몇 년 전에 정치 도감을 통해 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였으나 기씨 일가에 의해 완전하게 꺾여버린 탓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제4의 세력이 있었다.

원나라에서 함께 돌아온 유숙과 김득배 등이 일궈낸 파벌이었는데 아직 규모는 작아도 내가 밟아가는 행보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목적은 왕권 강화와 국력의 회복이었기에 이제현의 온건 개혁 세력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왕족과 봉훈을 받은 이들에 대한 간언이 하나 올라왔다.

“여러 군(君)들이 한가로이 지내면서 녹만 먹고 있으니, 청컨대 녹봉을 정지하소서”

“그렇게 하시오.”

망설일 이유도 없이 암낙(頷諾)했다.

쓸데없는 지출을 막는 거라면 대환영이었다.

다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는지 곧장 다음 간언이 이어졌는데 전라도에 침략한 왜구에 관련된 것이었다.

“얼마 전에 전라도 만호 유탁이 순천부의 동쪽으로 60리 떨어진 장생포에서 왜적을 토벌하는 성과를 올렸사옵니다.”

“장하오!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만덕사 등이 침탈 당하였으나 유 만호가 기병을 이끌고 추격하여 왜구가 끌고 가려던 백성들을 모두 풀어주었다고 하옵니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이 무렵에 유탁은 곡(曲)을 하나 지었다.

그리고 그걸 악부(樂府)에 올렸는데 도망치는 왜구를 보고 군사들이 ‘동동’ 북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하여 만들어진 고려 가요인 ‘여수 장생포 동동(動動)’가다.

어쨌든 상당히 흡족한 소식이었다.

좌부대언인 이인임에게 지시를 내려 유탁에게 옷과 술을 보내도록 한 뒤에 왜적의 침구(侵寇)가 잦으니 5도 양계에 대비하도록 지시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제발 다들 일 좀 해라.’

내가 볼 때는 관리가 가장 한가했다.

이른 새벽부터 궁궐에 들어오는 것은 알고 있으나 그 이후부터는 그다지 하는 일이 없었다.

녹봉도 많이 받아 가는 것들이 제일 게으르니 매번 이렇게 조회를 할 때마다 욕이 목구멍까지 솟구쳤다. 어쨌든 평소보다 상당히 길었던 조계(朝啓)가 끝나자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의 일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신소봉을 시켜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후에 나는 다시 감찰 대부 이인복과 감찰사에 소속된 이들을 모두 태평전으로 불렀다.

원래 감찰 대부는 이인복의 몫이 아니었다.

기존의 역사대로면 이연종이 차지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그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 무렵의 이연종은 권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바른말만 해서 철석간장(鐵石肝腸)이라 불렸다.

그러나 정작 감찰집의 김두가 조일신을 탄핵하자 이연종은 애매한 자세를 취했다.

어쩌면 공민왕 때문에 그렇게 된 건지 알 수 없으나 그런 변수를 두고 볼 수 없었다.

앞으로 감찰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내관들과 함께 태평전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이인복을 비롯한 감찰사에 소속된 십여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전녹생과 서호 그리고 김속명도 있었다.

홀치가 적의 살을 베고 뼈를 취하는 칼이라면 이들은 보이지 않는 칼로 부원 세력을 난도질하여 밑바닥으로 끌어내릴 이들이었다.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리에 앉자 이인복은 우선 첫 번째 탄핵을 요청하였다.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전윤장은 금품 수수 협의로 수감당하게 되자 상국으로 도망갔던 죄인이옵니다. 어찌 어가(御駕)를 호종(扈從)하였다 하여 삼재(三宰)에 제배(除拜)하옵니까. 그를 재보의 자리에서 물리시고 벌하여 주시옵소서!”

이건 원래의 역사에서도 나오는 탄핵이다.

그때는 이연종이 올린 것이었는데 공민왕은 이걸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묻어 버렸다.

정말 측근들은 끔찍하게도 아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역사 속의 공민왕처럼 몸을 사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인복이 탄핵을 시작하길 기다리던 입장이었다.

“증좌(證佐)는 확실해야 할 것이오?”

확실한 거냐고 내가 되물었음에도 이인복은 입 밖으로 꺼낸 탄핵을 철회하지 않았다.

이 시대의 탄핵은 쉽지 않았는데 상대의 목을 치지 못하면 내가 당하니 목숨이 걸린 문제였다.

나는 그런 분위기를 바꿀 생각이다.

고려가 안정되기 전까지는 서슬 퍼런 감찰이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까지 고려에 뿌리 깊게 파고든 부정부패와 비리가 사라질 것이다.

관직을 사고파는 것도 공공연하게 이뤄지는데 그걸 부끄럽다고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럼 진행하시오.”

내 허가가 떨어지자 이인복과 그의 휘하에 있는 이들은 눈에 띄게 기뻐하고 있었다.

아마 조일신과 김용 등의 호종 세력을 중요한 자리에 앉혀놔서 앞으로 측근 정치를 하려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던 것 같았다. 그들에게 충성을 바라듯 나도 확신을 줘야 했다.

“머지않아 전민추쇄도감과 정치도감을 다시 설치하여 ‘부정삼한(復正三韓)’을 이루고자 했던 선왕의 의지를 이어갈 생각이오. 더는 가렴주구(苛斂誅求)한 이들이 활개 치는 모습을 좌시하지 않겠소.”

“하오나 전하, 정치도감이 폐지된 이유를 아시지 않으시옵니까.”

“기씨 일가의 친족이 옥사한 것 때문이지.”

기삼만의 옥사는 치명적이었다.

당시에 꽤 많은 이들이 장형(杖刑)에 처해졌다.

그때를 떠올리자 다들 분개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자리에 있는 전녹생과 서호가 바로 그때 기만삼의 죄를 다스리던 교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보다는 독기가 가득한 상태였다.

“황제 폐하께서 시폐(時弊)의 개혁을 과인에게 직접 명하셨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소이다. 이제 그대들에게 고려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아마 많은 피가 묻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원망도 들을 거다.

그걸 버텨내야 썩어빠진 고려를 완전히 뜯어서 고쳐내고 오백 년의 역사를 넘어 천 년의 역사를 이룩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해주자 이인복과 감찰사 관리 모두가 상당히 격앙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대신 이것 한 가지를 확실히 해야 했다.

“그대들에게 권한을 주는 대신에 여기 있는 이들 중에서 부정한 이가 나오면 몇 배는 더 엄격한 벌을 내릴 것이오.”

자신이 없는 자는 지금이라도 물러나라고 말했지만, 자리를 뜨는 이들은 없었다.

하긴 지금 ‘나는 못 하겠습니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것도 정신 나간 인물일 것이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된 나는 이제부터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알려줬다.

다년간 송사를 지체한 관리.

노비를 담당하는 전법도관의 비리.

부원 세력의 주축이 되는 이들의 위법 행위.

권력을 이용해 반강제로 고리대금업을 하는 자.

하나의 땅을 놓고 자신의 조업전이라며 서로 겸병을 하려고 다투거나 그런 전력이 있는 땅.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하오나 권력을 가진 이를 탄핵하는 일은 생각보다 지난(至難)한 일이옵니다. 그 모든 것을 단기간 내에 하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증인을 보호할 방안이 필요하오. 기껏 용기를 내어 나섰는데 오히려 피해를 본다면 누가 증언하려 하겠소.”

권력자가 쌓은 관계망은 무시할 수 없다.

그걸 가볍게 보는 순간에 문제가 생긴다.

제보자를 주변에 그냥 놔두는 것은 죽으라는 말과 같았기에 적어도 다른 지역으로 옮겨서 숨겨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와 함께 적절한 보상도 있어야 할 것이오.”

이인복은 그 부분에서 살짝 망설였다.

현실적으로 보상을 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하지만 그런 표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죄를 지은 자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나눠주면 그만이니 지출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고려의 재정은 늘어나고 탐관오리는 척결되며 제보자의 인생은 단숨에 역전된다.

이게 바로 일석삼조 아닌가.

“그리고 당분간 탄핵에 대한 내용은 과인에게만 보고하고 도당에 절대 알리지 마시오.”

“경각심을 주려면 서둘러야 하옵니다.”

“송나라의 어사 왕공진이 승상 두연의 일당을 잡았던 것처럼 한 번에 일망타진(一網打盡)하려면 완벽한 기회를 기다려야 하오. 이번에 반드시 고려를 좀 먹는 이들을 제거해야 하오.”

“설마, 전하께서 목표로 하는 것이···”

나는 그쯤에서 이인복의 말을 가로막았다.

굳이 입에서 꺼낼 이유도 없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꺼내지 않아야 하는 말이었다.

적어도 군권을 장악하여 왕권을 확실하게 강화한 뒤에 원나라의 영향력이 줄어들 때까지 알려져 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깊숙하게 숨겨 놓는 비리를 캐내는 이들답게 그들은 쉽게 내 의중을 금방 알아차렸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3월까지 모든 준비를 끝내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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