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0
가진에게 양해를 구한 뒤.
궁궐 밖으로 나오자 이방실이 보였다.
뒤에는 수십 명의 홀치(忽赤)가 서 있었다.
홀치는 나의 숙위를 담당하는 곳으로 때로는 왕명을 받아 치안 유지 활동을 하는 곳이다.
원래는 4개의 번(番)으로 편성되어 근무했으나 최근에 최영이 소속된 우달치가 흡수되었다.
홀치와 우달치가 하는 일은 비슷했다.
굳이 나눠 놓을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덕분에 홀치는 5개의 번으로 늘어났고 근무와 휴식을 취하는 이들을 제외한 2개의 번은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지시를 내렸다.
오늘은 그들의 훈련을 참관하는 날이었다.
“시간이 없으니 어서 갑시다.”
내가 말을 몰고 서서히 걷기 시작하자.
이방실과 병사들도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홀치의 훈련장은 숙종의 영릉과 대덕산 사이에 있는 눌목리(訥木里) 부근이었다.
수십만 명이 사는 개경 내부에는 훈련을 할 수 있을 만한 장소가 전혀 없었다. 궁궐 부근에 숙위를 서는 이들을 위한 숙소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위치가 참 애매했다.
너무 멀면 만약의 상황에 대한 대처가 늦어지고 그렇다고 가까운데 놔두면 보는 눈이 많았다.
그나마 현재 훈련장으로 쓰고 있는 곳은 30리 정도 떨어진 곳이라 무슨 일이 생겨도 한 시진 이내에 개경까지 도달할 정도의 거리였다.
심지어 말을 타면 훨씬 더 빨랐는데 이방실과 함께 훈련장에 도착하자 병사들이 땀을 흘리며 열심히 훈련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대략 오백 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저들 전부가 홀치는 아니었다.
그중에는 유명무실해진 응양군도 있었다.
원래 응양군은 1천 명이 한 개의 영(領)을 구성하는 것이 정상이나 원나라의 견제에 의해서 명목상의 편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응양군 상장군인 이방실에게 주어진 병사는 고작 백 명에 불과했지만, 홀치까지 겸직으로 맡고 있기에 모두 합치면 천 명 정도였다.
“만호부에서 병사를 차출하는 문제는 어찌 되고 있습니까?”
“전하께서 내리신 교서가 내려갔으니 조만간 백 명씩 차출해서 보내올 것입니다. 허나 최근에 홀치와 응양군이 늘어나는 것을 경계하는 이들도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 않소.”
이마저도 안 통하면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간섭에서 자유로운 게 홀치였다.
이미 전시과체제는 붕괴되어 제대로 녹봉조차 주지 못하고 있었기에 2군 6위는 유명무실했다.
심지어 용호군은 관직에 오른 장수만 있을 뿐이고 병사는 수십 명도 안 되는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내린 나의 선택은 홀치의 수를 늘리는 것이었다. 공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병사를 거느린다는 핑계라도 있었다.
‘차라리 내수사를 이용해서 사병을 키우고 말지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돈을 들여서 군대를 만들어도 소용없었다.
원나라는 호시탐탐 고려의 군사를 징발하려고 노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군대를 아예 해체시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고려에서는 군대를 만들 생각조차 안 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있다면 홀치 하나만큼은 어디 내놔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최정예 무사이자 절대적인 충정을 가지고 있어야 홀치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지금 나에게는 자결을 지시해도 망설이지 않고 시행할 수 있는 이들이 필요했다.
그 덕분에 축출된 홀치도 적지 않았는데 부원배의 친인척인 이들은 일단 제외됐다.
“너희가 태어난 지역과 가문은 모두 잊어라. 우리는 고려의 검으로 오로지 전하에게만 충성을 바치면 된다. 너희의 가족은 함께 피를 흘리며 싸우는 동료가 전부다. 우리는 고려 최강의 무사가 되어야 한다. 전방에 함성 발사!”
홍의를 걸치고 홍전립을 깊게 눌러쓴 이가 소리치자 교육 중이던 병사들이 악을 질렀다.
대부분 목이 상당히 쉬어 있을 정도였다.
현재 병사들 앞에 서 있는 그들은 대도에서부터 나를 호종하여 따라 들어왔던 고려인들이었다.
나한테 배운 체력 단련 코스와 P.T를 활용하고 전파하기 위해 조교 자리에 오른 그들은 모처럼 잡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사력을 다했다.
대도에서 노복에 불과하던 이들이 자신의 말 한 마디에 수백 명이 움직이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무작정 굴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는 중에도 틈틈이 기초적인 제식과 현대식 수신호까지 모두 숙달시키고 있는 중이다.
내가 고려에 돌아온 직후부터 계속 훈련 중이라 홀치와 응양군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심지어 한쪽 구석에는 줄을 타고 벽을 오르는 등의 유격 훈련을 위한 시설도 있었는데 그걸 지켜보고 서 있자 이방실이 슬쩍 귀띔을 해줬다.
“홀치와 응양군에서 요즘 저들에게 홍귀(紅鬼)라는 별칭을 붙였다고 하옵니다.”
“엄살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제가 지켜보니 과장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지독할 정도로 굴리는데 보기 안쓰러울 정도 이옵니다.”
“생각보다 인간의 몸은 강하오.”
죽을 만큼 괴로워도 죽지는 않는다.
홍귀라 불리는 이들을 가르칠 때 내가 가장 조심한 부분이 몸을 망가뜨리지 않는 수준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때 곽충수가 등짐을 진 노비 몇 명과 함께 입구 쪽으로 다가왔다.
늦지 않게 곽충수가 도착하자 나는 훈련장 안으로 말을 몰아서 들어갔다.
그러자 입구에서 보이지 않았던 변안열이 십여 명의 병사와 함께 훈련 중인 모습이 보였다.
아직 무예도감이 세워지지 않았기에 변안열은 혼자 원나라와 고려의 훈련 방식을 재정비해서 아예 새로운 방식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세운 전투 교리는 5인 단위였다.
등패와 짧은 곡도를 쥔 2명.
기다란 환도를 들고 싸우는 2명.
마지막으로 뒤에서 창을 드는 1명.
앞에서 막으면 뒤의 세 명이 공격을 전담하는 방식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척계광의 원앙진을 모티브로 삼아 만들고 싶으나 쉽진 않았다.
다섯 명을 기준으로 삼은 이유도 거기 있었다.
다른 군사와 달리 홀치와 응양군의 전투는 대부분 시가전이기 때문이었다. 개경은 좁은 길이 많아서 소규모 단위의 움직임이 중요했다.
그 무렵에 병사들도 나를 발견했다.
그들은 훈련을 멈추고 부대 단위로 정렬했다.
먼지구름을 뚫고 오와 열을 맞춰서 서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 훈련량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훈련이 헛되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역시 군대는 제식이지.’
괜히 홍귀들을 키운 것이 아니다.
앞으로 홀치는 특전사처럼 키울 거다.
거기에 더불어 일종의 사관 학교의 개념까지 넣을 생각인데 그 부분은 아직 구상 중이었다.
당연히 그러기 위해서는 군기가 상당히 중요했고 정신 교육도 1시진씩 하는 중이다.
“충! 전하를 뵈옵니다.”
변안열이 그들을 대표해서 경례를 올렸다.
현재 그는 응양군의 중랑장이자 이방실이 부재중일 때 홀치의 실질적인 지휘관이었다.
이방실이 앉아있는 응양군의 상장군은 무반을 대표하는 자리라 최고 지휘자 회의인 중방(重房)에서 의장까지 겸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현장에 나오는 것보다 도당에서 정적(政敵)을 상대로 싸우는 일이 훨씬 더 잦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방실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개 사단장을 곧장 참모총장으로 승진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들의 앞에 서서.
지금껏 훈련에 매진한 노고를 치하했다.
그간 힘들게 굴렸으니 이제는 달콤한 보상이 따라야 했다. 지금 이들은 고려의 역사상 유례 없을 정도로 강도가 센 훈련을 하는 중이다.
내가 직접 훈련장까지 와서 일종의 립서비스를 해주자 생각보다 효과는 상당히 컸다.
그게 내가 앉아있는 자리가 주는 효과인지 아니면 전혀 모르던 재주가 개화한 건지 알 수 없으나 시간을 쪼개서 나온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 온 목적은 하나 더 있었다.
“오늘부로 응양군은 변발을 금한다.”
조금 뜬금없는 지시였지만,
생각보다 동요하는 이들은 없었다.
이미 홍귀들은 변발을 잘라내서 멀리서 보면 스님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직 앞머리가 덜 자란 탓인데 내가 규정한 길이는 2치(6cm)였다.
애초에 변발을 하는 이유가 투구를 쓸 때 걸리적거리는 탓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뒷머리만 남기고 싹 밀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앞머리와 옆머리도 완전히 밀면서 뒷머리를 고집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
당연히 나도 이미 변발을 잘라냈다.
원래의 역사에서는 감찰 대부였던 이연종이 간해서 변발을 풀었으나 나는 아예 그걸 잘라내는 과감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머리를 길러본 적이 없기에 씻는 것도 불편하고 가려워 죽을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있다면 고려는 오히려 조선이 비해 씻는 일에 더 열심이라는 것이었다.
“소신의 충심을 전하께 바치옵니다.”
이방실은 자신의 상투를 곧장 잘랐다.
그가 무릎을 꿇은 채 그걸 높이 들어 올리자.
뒤에 나열하고 있던 변안열과 장수들도 하나둘 상투와 변발을 잘라 이방실과 동일하게 외쳤다.
그때부터는 다들 뭐에 홀린 것 같았다.
병사들도 스스로 상투를 잘라 충심을 증명하기 시작했는데 당연히 이 모든 것은 이방실과 변안열 등의 장수들과 함께 연출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변발과 상투를 잘라내지 못한 이들도 드물게 있었다. 뒤늦게 그들을 발견한 이방실은 크게 노했다.
“전하의 명이라면 스스럼없이 목숨도 바쳐야 하는 자들이 그깟 머리카락 한 움큼이 아쉬워 망설이는 건가. 너희는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다. 당장 저들을 쫓아내거라!”
그들이 추방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희생만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슬슬 당근도 줘야 할 때가 되었기에 곽충수에게 신호를 주자 그는 자신이 가지고 온 상자를 가져다가 응양군 앞에 높이 쌓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내가 주문해서 제작한 흑마포로 만든 옷과 검은색의 두툼한 외투가 들어 있었는데 그 외에도 내수사에서 재물을 약간 빼 와야 했다.
얼추 준비가 끝나자 이방실은 열 명의 응양군을 호명하여 앞으로 불러냈고 나는 그들에게 그걸 하사했다.
“이 옷은 응양군에서, 아니 고려에서 가장 용맹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항시 언행을 조심하고 애민(愛民)하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허나 지금 이 의복을 받았다고 자만하지 마라. 이건 최고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언제든 더 좋은 성과를 내는 이가 있다면 넘겨줘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일종의 에이스를 구분하는 유니폼이었다.
내가 의도한 대로 그걸 받아든 이는 자부심을 가졌고 아래서 지켜보는 이는 부러워했다.
경쟁 구도를 만들기 위한 노림수였는데 내 예상보다 잘 통하는 것 같았다.
그쯤 돼서 홀치와 응양군은 해산됐는데 산발이 된 상태로 돌아다닐 수는 없기에 손바닥만 한 가위를 든 홍귀들이 나서야 했다.
그들은 이미 수 차례 자기들끼리 머리카락을 잘라준 경험이 있었고 내가 지시한 스타일을 구현해낼 수 있는 실력도 갖추고 있었다.
‘예쁘게 잘 좀 깎아줘라.’
*
시대를 뛰어넘은 헤어 스타일.
그건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 되었다.
홀치는 자른 상투를 일부러 가리지 않았다.
그들의 짧은 머리카락을 본 개경 사람들 반응은 다들 제각각이었다. 유교적 사상에 물들어 있는 이는 혀를 찼고 누군가는 그들의 모습을 동경해 스스로 상투를 자르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도 스스로 변발을 풀고 그들처럼 짧은 머리카락을 한 상태로 나타나자 이 문제는 궁궐 너머까지 상당히 큰 파장을 일으켰다.
조금 성급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려는 지난 100년 가까이 원나라의 전통을 따라하며 고유의 풍습을 버렸다. 그러나 이제 다시 몽고풍이라 불리던 것들을 버릴 때다.
문화의 고유성을 회복하는 시작 단계였기에 아예 그걸 이용해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로 도약하는 방법을 택했다.
지금 아니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색 등의 유학자가 도당을 가득 채우기 시작할 텐데 솔직하게 말하면 그들의 말발을 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만약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같은 유교적 사상이 깊숙하게 자리 잡았던 조선 시대였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개혁은 시작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