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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7화 (7/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7

거의 10년 만에 고려에 돌아왔지만,

숨 돌릴 여유도 없이 즉위식이 시작됐다.

왕위는 하루라도 비워 놓을 수 없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 대해서 신경을 쓸 필요는 전혀 없었다. 이미 이제현이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기에 나는 몸만 가면 될 정도였다.

즉위식의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상중에 맞는 즉위가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다.

선왕의 유조(遺詔)는 없으니 건너뛰고 단사관(斷事官) 완자불화(完者不花)가 충정왕에게 거둬들인 국새(國璽)를 받는 것으로 시작됐다.

완자불화는 그걸 건네며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왕위에서 끌어내려 국새를 회수하겠다는 의미였다.

“부디 전하께서는 대도에 계신 폐하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나는 그에게 살포시 미소를 지어줬다.

지금 이 자리에서 화를 낼 필요는 없었다.

앞으로 행동으로 보여주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까부는 것도 오래가진 않을 거야.’

오히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완자불화는 찜찜한 표정으로 물러났는데 국새를 챙겨서 자리에 앉자 즉위식에 참석한 백관의 하례가 시작됐다.

9류관 9장복을 입은 상태라 너무 불편했으나 내 관심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책에서만 보고 연구하던 사람들이 내 앞에 모여 있었다.

그 유명한 최영 장군도 있었다.

아직 그는 우달치(于達赤)에 불과했다.

우달적이라고도 불리는 그 지위는 국왕의 근거리에서 호위를 하는 이들을 의미했다.

최영 외에도 내 앞에 부복해 있는 이들 중에는 백문보와 염제신 그리고 홍언박도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체면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당장 달려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의 대부분은 조선의 건국과 맞물려 있어서 상당히 유명했으나 생각보다 그들의 인생이 자세히 알려지진 않았다.

평소 궁금한 것이 많았기에 며칠 동안 그들을 붙잡고 질문을 하고 싶을 정도였으나 아쉽게도 지금은 그럴만한 때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상당히 불편한 자리였다.

모두가 나의 즉위를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조일신 등의 수종 공신을 제외하면 아직 누구도 내 편이라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더구나 기철과 같은 부원 세력과 반역자로 훗날에 이름을 알리는 이들도 같이 있었다.

그들의 면상을 보니 오래 있고 싶지는 않았다.

틀에 박힌 인사치레를 주고받은 뒤에 정해진 의례를 마치자 임시로 섭정승을 맡았던 이제현과 보평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귀국하는 동안 고려를 이끌었던 그에게 보고를 받겠다는 핑계였다.

면류관을 벗고 의관을 정비한 뒤.

보평청에 들어서자 이제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곧장 자신이 처리한 일을 보고하기 시작했는데 2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그가 나를 대신해서 처리해준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핵심은 충정왕의 권신을 정리한 것과 함께 훗날 문제가 될 왕족의 처리였다.

내가 가장 가려워할 부분을 먼저 긁어준 것이었는데 충혜왕의 얼자(孽子)인 석기는 만덕사로 출가시켰으나 덕흥군은 놓쳤다.

“덕흥군을 놓친 게 아쉽군요.”

비록 최유를 일찍 처단하긴 했지만,

덕흥군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이다.

아무리 그가 가만히 있으려고 하더라도 옆에서 부추기는 이들이 분명히 생길 것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전하의 즉위 소식이 고려에 닿기도 전에 사라졌습니다.”

“경창부원군(충정왕)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강화(江華)로 모셨습니다.”

이제현은 대답을 하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당장 충정왕을 어떻게 하려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것 같았다. 정적을 처단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민심을 잃을까 우려되기 때문이었다.

재위 기간이 불과 3년이라도 선왕이었다.

그간 아버지인 충혜왕처럼 문란한 사생활을 보이지도 않았고 실정(失政)을 하지도 않았다.

비록 상황이 안 좋아서 어쩔 수 없이 밀려난 것이니 악감정이 있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과인이 따로 지시하지 않더라도 재상께서 틈틈이 사람을 보내어 경창부원군에게 부족한 것이 없도록 살펴봐 주시오.”

“명심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지방관에 대한 고과법(考課法)을 시행하셨다고요?”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조금 더 면밀하게 살펴봤습니다. 근무일수가 지켜지지 않는 자나 문제가 있는 자는 징계를 내렸습니다.”

평소 그가 가진 신념이 그러했다.

20년 정도만 좋은 지방관을 선발한다면 백성의 삶을 근본적으로 크게 개선할 수 있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는 이가 바로 이제현이었다.

나도 그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는 바였다.

마음 같아서는 감찰사(監察司)를 게슈타포나 KGB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을 정도였다.

기철과 같은 이들은 내가 직접 상대하면 되나 지방 깊숙한 곳까지 영향력이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다른 게 더 시급했다.

“정승(政丞)께서는 고려에 있는 모든 관직의 명칭을 다 기억하고 계십니까?”

“물론이옵니다. 소인이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오른 것이 반백 년 전의 일입니다. 어지간한 관직은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사이에 바뀐 곳도 참 많겠지요?”

“그래서 새롭게 관직에 오른 이들은 적응을 하는 데 적응이 조금 더딘 편입니다.”

내가 가진 불만이 바로 그거였다.

공민왕 시대를 연구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명칭의 변화가 정말 수없이 이뤄졌다는 거다.

더구나 공민왕은 개혁을 하겠다며 수십 년 동안에 관제를 몇 차례나 바뀌는 탓에 공부하는 입장에서 머리가 빠개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뭐 그렇게 관직의 분류도 세밀한지 한눈에 파악하기도 어렵다는 단점도 있었다.

심지어 임시 기구와 6부와 별개로 움직이는 조직도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이 있었다.

나는 앞으로 그걸 바꾸고 싶었다.

“불편한 것은 바꿔야 정상 아닙니까?”

“예로부터 내려오는 것에는 모두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도 고심 끝에 내린 변화가 아니라 사료(思料)되옵니다.”

“과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이다. 그러니 불필요한 관리는 없애고 체계는 단순화시키는 방안을 마련하여 가지고 오시오.”

머릿속에 어느 정도 계획이 있었지만,

일단은 이제현에게 일을 시켜두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모든 것을 뜯어고치는 것은 무리였고 준비해두는 것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뒤로 미룰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왕실의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창고와 기관은 모두 정리해서 관리할 생각이다.

충선왕이 광흥창과 풍저창 그리고 요물고와 대물고를 개편하였으나 아직 정리할 게 많았다.

왕실의 경비를 주관하는 덕천고와 의성창을 비롯해 재정에 관련된 기관만 여럿 되었다.

구휼을 위해서 설치된 유비창(有備倉).

왕실의 미곡을 관장하는 요물고(料物庫).

관청의 운영경비와 연회, 제사 비용을 비롯해서 성균관 등의 경비를 담당하는 풍저창(豐儲倉).

관료들의 녹봉을 담당하는 광흥창(廣興倉).

거기에 호부와 삼사에서도 재정을 나눠서 관리하니 돈의 흐름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관료와 관청 운영비용에 대한 것은 모두 호부에서 가져가고 왕실에 관련된 것들은 내수사(內需司)로 합치는 방안을 마련하시오.”

“한곳에 힘을 집중하면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청렴한 이를 가려내어 관직에 두는 것도 정승(政丞)과 도당에서 해야 할 일이지요.”

곳간에 든 도적은 잡아야 한다.

그래야 뭐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왕실과 고려의 재정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다.

이제현은 왕실의 재정을 합치는 것까지는 찬성했으나 호부를 지금 시점에서 건드리는 것은 무리라며 생각보다 심하게 반대했다.

현실적인 문제를 따지고 드는 그의 말을 들은 나는 어느 정도 그의 말에 수긍을 했다.

“그럼 이번에는 왕실 재정만 손을 보겠소.”

“알겠사옵니다. 새로 개편할 내수사는 누구에게 맡길지 염두에 두고 계신 이가 있으십니까?”

“재상께서 괜찮은 이로 추천해 주시오.”

이제현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나도 맡기고 싶은 이들이 있긴 했다.

그러나 당장 떠오르는 청렴하기로 유명한 백문보나 염제신은 나이가 많고 창고지기에 두기에는 너무 유능했다. 재추에 이미 오른 이들을 그리 보내면 좌천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필요한 것은 셈에 밝고 사농공상이란 논리에 매몰되어 있지 않은 이였다.

“청주 출신의 곽충수는 어떠하옵니까. 성균시에 합격했고 산학(算學)도 상당히 밝습니다.”

“몇 해 전에 정방에 난입했던 자가 아닌가?”

“그러하옵니다. 다른 거는 몰라도 패기 하나는 알아주는 자이옵니다.”

곽충수라면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권력에 굴하지 않는 똘기로 꽤 유명했다.

가장 유명한 일화가 얼마 후에 내 측근이란 뒷 배경을 가지고 물 만난 고기처럼 도당에서 활개를 치던 조일신을 탄핵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일신은 조만간 정리할 생각이기에 미리 긁어서 부스럼을 낼 필요가 없기에 차라리 곽충수를 미리 데려오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

왕실의 재정을 내수사로 통합한 뒤.

곽충수는 정5품의 전수(典需)로 임명됐다.

아직 이 시대는 그런 관직이 없으나 새로 만들면 그만이었다. 그는 곧장 내 명에 따라 창고를 통폐합하며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중심이 되는 것은 요물고였는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곽충수는 유능했다.

왕실의 재정을 총괄하는 요직에 오른 것을 기뻐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밤낮없이 상당히 성실하게 처리하고 있었다.

그는 얼마 되지 않아 모든 내역을 정리한 기지(記識)를 가져왔는데 그걸 보니 왜 그렇게 빨리 끝낼 수 있었던 건지 알 수 있었다.

“겨우 이것밖에 되지 않는단 말이오?”

“값어치가 비싼 거는 거의 없고 일부 창고는 아예 텅 비어 있었사옵니다.”

“이런 망할···”

원나라에서 충정왕을 끌어 내릴 당시.

완자불화(完者不花)가 왕실의 창고를 모두 봉쇄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성실하게도 많은 왕실의 재물을 슬쩍 털어먹은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놈의 대갈통을 박살 내고 싶을 정도였다.

심지어 금과 은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곡식과 비단 그리고 베와 같은 직물만 조금씩 남아 있었다. 이 정도의 수준이면 남의 땅을 겸병(兼幷)과 탈점(奪占) 하며 빼앗는 썩어빠진 관리보다 왕실이 더 궁핍한 것 같았다.

곽충수는 분개하고 있는 내 표정을 슬쩍 바라보더니 송구하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 역시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좋지?’

이러면 시작부터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적어도 왕실의 재산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왕권 강화를 위한 친위대도 만들고 개혁에 힘을 보탤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더디게 진행될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창고에는 쓰레기가 될 원나라의 보초(寶鈔)가 상당히 많이 있었다. 대도에 있을 때도 문제더니 이곳에서도 다를 것이 없었다.

이 문제를 가볍게 볼 수 없었다.

대도에 있을 때는 처리가 가능했지만,

이미 보초의 가치가 떡락하고 있는 상태다.

여기서 아무리 처분하려 하더라도 일개 상인 한두 명이 소화할 수 있는 양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게 휴지 조각이 되면 왕실부터 시작해 권문세족의 정치적 몰락까지 여파가 미친다.

그러니 하루빨리 모든 것을 처분해야 했다.

잠시 턱을 괴고 고민을 하던 나는 당장 갈 곳이 있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할만한 곳은 역시 그곳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벽란도로 미복잠행(微服潛行)을 나갈 테니 준비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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