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6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뒤.
어가의 행렬은 강어귀에서 멈췄다.
이미 날이 어둑해진 상황이라 강을 넘어가는 것은 내일로 미뤄야 했다. 심지어 근처에 도시도 없는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십여 채에 불과한 작은 촌락에서 게르를 치고 야영을 해야 했다.
그걸 지켜보던 최유는 안절부절 못했다.
도대체 뭘 먹은 건지 몰라도 다들 멀쩡한데 자신만 배앓이 중이었다. 이제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라 서둘러 측간부터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 안 되는 측간은 넘치기 직전이었다.
그마저도 사람이 가득해서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최유는 산등성이로 올랐으나 이미 그곳도 비슷한 처지의 이들이 제법 많이 보였다.
수풀이 우거진 곳은 어김없이 사람의 머리가 우뚝 솟아 있었다. 그들을 피해 걷다 보니 마을에서 상당히 멀어졌고 완전히 어두워졌다.
그러다 최유는 간신히 적당한 곳을 찾아냈고 서둘러 하의를 내리고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참은 탓일까.
폭발하듯 쏟아지는 요란한 소리와 정반대로 최유의 표정은 안도와 희열이 교차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대도에서 출발한 후부터 그의 불만은 끊임없이 쌓여가고 있는 중이었다. 어가가 출발하기 직전에 합류했으니 수종공신을 바라진 않았다.
하지만 기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에게 어울릴만한 벼슬은 쥐여줄 거라 기대했으나 아직 언질조차 없었다.
점차 고려에 다가갈수록 이러다가 고생만 하고 얻는 것은 전혀 없을 것 같아 우려되었다.
“제길! 이런 꼴을 보려고 쫓아온 거는 아닌데. 그만 돌아갈까.”
자존심이 꽤 상하는 일이지만,
그쪽이 훨씬 더 현명할 것 같았다.
다른 이들의 시선도 그리 곱진 않았다.
원나라에서 관직에 올라 있는 자신에게 직접 뭐라고 하는 이는 많지 않았으나 기회주의자라 여기는 이들의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때 수풀 너머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과연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깜짝 놀란 최유는 자칫 뒤로 넘어질 뻔했으나 간신히 균형을 잡아서 대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화가 머리까지 치솟은 그는 발끈했다.
“뭐 하는 놈이냐!”
“나를 소개하자면 당신을 저승으로 안내해줄 몸이지. 그러니 곱게 가자고.”
“이런 고얀 놈을 봤나.”
최유는 다급하게 일어서려 했다.
누군지 몰라도 자신을 해치러 온 것 같았다.
그간 쌓은 원한이 적지 않기에 누가 보낸 자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바지춤을 다 올리기도 전에 그는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괴한의 쇠몽둥이가 머리를 후려치니 버틸 수 있는 재간은 없었다. 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최유는 질펀한 오물 위에서 뒹굴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유는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뒤로 발버둥 치며 뒤로 물러섰다.
“그것참 꼴 좋구나.”
주덕유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이렇게 속이 시원한 일은 지금껏 없었다.
수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는 기분마저 들었는데 어가를 따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자만감에 취해서 일을 그르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빠르고 조용하게 없앨 요량으로 그는 재차 쇠 방망이를 휘둘렀다.
아무리 최유가 발버둥을 쳐도 그걸 피할 기량은 없었다.
빠악! 빡!
최유의 머리가 반쯤 으깨지고 난 뒤.
쇠몽둥이를 휘두르던 주덕유는 멈췄다.
고려의 간신이던 최유의 최후치고는 너무 허망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일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기에 주덕유는 서둘러야 했다.
아무도 모르게 시체를 유기(遺棄)해야 했다.
당연히 그럴 만한 장소는 어가가 촌락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와서 살펴둔 상태였다.
주덕유는 피범벅이 된 최유의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 땅에 떨어진 핏자국을 정리한 뒤에 시체를 들쳐메고 산등성이 너머까지 향했다.
비릿한 피 냄새와 함께 지독한 분뇨 냄새가 풍겼음도 그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길거리에서 거렁뱅이 생활을 하면 이쯤 되는 냄새 따위는 저절로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사라지고 한참이 지난 뒤.
주덕유는 의외로 말끔한 상태로 돌아왔다.
최유를 죽이며 튀긴 피는 모두 시냇가에서 씻고 미리 근처에 준비해둔 옷으로 바꿔입었다.
마치 산책이라도 나갔다가 온 것처럼 태연하게 마을로 내려온 그는 신소봉에게 작은 쪽지를 몰래 건네주고 잠을 청하러 사라졌다.
거기에 적힌 것은 단 하나의 글자였다.
[完(완성할 완)]
*
다음날 어가가 다시 출발했지만,
최유가 사라진 것은 아무도 몰랐다.
그에게 따로 수행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은 물론이고 말과 수레까지 있어 행렬의 길이는 생각보다 상당히 길었다.
무리에서 한두 명이 사라진다고 알아차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더구나 호종을 포기하고 중간에 돌아서는 이들도 없진 않았다.
그래서 갑자기 안 보이는 이가 있다면 다들 그냥 돌아간 거라고 그냥 넘어가는 편이었다.
진실은 오직 나와 주덕유만 알고 있었다.
어제 신소봉에게 준 쪽지는 내게 전달되어 확인 후에 태워버렸다. 살인 교사의 죄를 지은 것이었으나 죄책감이 들거나 후회되지는 않았다.
훗날,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사학자들이 폭군이라 불러도 상관하지 않을 거다.
앞으로 나와 고려의 앞날에 방해가 되는 이가 있다면 얼마든지 처단할 생각이었다.
진황도(秦皇島)에서 심양은 멀지 않았다.
어쩌면 몸이 어느 정도 적응한 건지도 몰랐다.
허벅지에 멍이 들고 허리가 쪼개질 것처럼 아팠으나 어느 날부턴가 요령이 조금 생겼다.
심양에 도착해서 가장 놀란 것은 지금까지와 달리 열렬한 환영을 해줬다는 것이다.
비록 심왕(瀋王)이 허울만 남은 자리에 불과하나 고려의 왕이나 왕족이 그 지위를 겸했던 것을 생각하면 일견 납득이 되었다.
‘언젠가 이곳을 다시 수복하리라!’
드넓은 만주의 땅이 너무 탐났다.
과연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이곳을 고려의 영토로 대대손손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려말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을 만났다.
충가(忠可) 변안열(邊安烈).
원나라의 무과에서 장원 급제한 무장이자.
훗날 무수히 많은 전투를 지휘한 명장으로 불굴가를 지어 고려에 대한 충절을 보인 이였다.
고려의 핏줄이나 조상이 원나라에 정착한 경우였는데 원래의 역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를 따라 고려로 가겠다고 합류했다.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가 가장 관심을 보인 것인 생소한 방식으로 훈련을 하고 있는 고려인이었다.
역시 뼛속까지 무인이라 어쩔 수 없었다.
멀리서 견학을 한 그에게 소감을 묻자 그는 곧장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을 짚어냈다.
“아직 싸우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무예부터 시작해서 진법까지 연습해야 정병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정리한 것이 드물기에 이를 정리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평소에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걸까.
그때부터 변안열은 자신이 생각하던 바를 솔직하게 내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또한 고구려는 예로부터 경당(扃堂)을 세워 독서와 습사(習射)·치마(馳馬)·예절·가악(歌樂)·권박(拳博)·검술(劍術) 등을 강습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고려도 그런 체계가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과인 또한 원하는 바요.”
상당히 흡족한 조언이었다.
안 그래도 무예도감을 만들 생각이다.
정병 양성을 위한 연구원 같은 개념이랄까.
조만간 화약을 쓰는 화포의 시대가 열리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기본적으로 병사의 실력이 높아져야 사망자 수를 줄일 수 있을 테고 단병접전(短兵接戰)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시간이 더 흘러 조선시대가 되면 왜구와 검을 맞대서 싸워 이길 수 없으니 점차 궁시를 활용하는 전술만 발전되는 상황까지 생긴다.
그렇게 놔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경당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신라 시대의 화랑도 경당과 비슷한 구조다.
마음 같아서는 도시마다 그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서 인재를 키워내고 싶었으나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는 것부터 먼저 해결해야 했다.
‘언제나 돈이 문제지.’
지금 이 시기의 고려의 재정은 말도 안 될 정도로 파탄이 난 상태다. 왜구의 침탈이 본격화되면 조운선의 운항도 쉽지 않아진다.
거기에 더불어 원 제국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조만간 수탈도 재개되는데 그 탓에 관리들의 녹봉조차 제대로 주지 못하게 될 정도다.
애써 암울한 미래를 지워버린 뒤에 나는 변안열에게 직접 저들을 한 번 맡아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을 해봤다.
“빠르게 정예병(精銳兵)으로 만들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시오.”
“어명을 받들어 성심껏 해보겠나이다.”
“과인이 그와 관련된 지원은 전폭적으로 해주겠소.”
변안열이 할 일은 너무 많았다.
이건 그중의 하나일 뿐이고 즉위를 한 후에 그에게 따로 맡길 일이 산더미 같았다.
그런 이유로 변안열은 나와 함께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점차 많아졌고 나는 미래의 기억을 토대로 갖가지의 착상(着想)을 내놓았다. 온갖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심지어 과거에 여진을 정벌하기 위해 만들었던 별무반을 토대로 군사 제도를 재건하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과연 그 정도의 군대를 만들 수 있을까?’
당시의 별무반이 17만 정도쯤 되었나.
여러모로 당장 실현하기는 어려움이 많았다.
고려의 군사 제도인 2군 6위마저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군대의 개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기 위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어가는 쌍성 총관부의 파사부를 지나 천리장성에 도달했다.
그 너머는 이제 확실한 고려의 땅이었다.
말로만 듣던 천리장성을 앞두고 어가는 잠시 멈춰야 했다.
호위 병력의 교대 때문이었다.
심양에서 출발한 병력은 복귀를 하고 이제부터 서북면 병마사가 차출해서 보낸 고려군이 어가를 호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리장성을 넘어서자 가는 길목마다 고려의 주민이 모두 나와서 어가 행렬을 향해 환호성을 보내주었다.
나란히 곁에서 말을 타고 걸어가던 부다시리 공주는 그들의 모습이 신기하게 바라봤다.
“전하를 이렇게 반겨줄지 몰랐습니다.”
나도 이 정도인 줄 몰랐다.
사료에서 관련된 기록을 보긴 했다.
명덕태후와 시민이 기뻐 날뛰었다고 쓰여 있었는데 당시에 그 내용을 본 나는 조금 과장된 것이 아닌가 의심을 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더 열광적이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리 크지 않았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과 마음 편히 먹고 사는 것이 거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과인의 어깨가 무겁구려.”
“잘 해내실 겁니다.”
“그럼, 그래야지.”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개경에 가까워질수록 함성은 더 커졌다.
역시 하이라이트는 수도인 개경에 들어설 때였는데 다른 지역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곳을 보니 개인적인 호기심이 들끓었다.
개경은 휴전선 너머인 북한의 땅이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던 곳인데 생각보다 이층 건물이 즐비하고 크기도 상당히 컸다.
역시 수십만 명이 거주하는 대도시다웠다.
이 시기의 개경은 거의 40만 명이 살았다고 추정될 정도이니 작은 수는 결코 아니었다.
그걸 보니 고려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드디어 돌아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