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3
과연 주원장을 찾아낼 수 있을까.
어느 정도 범위를 좁혀주긴 했지만,
정세운이 찾지 못할 가능성도 꽤 컸다.
이 시기의 주원장은 중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심지어 이름도 어릴 때는 주중팔이라고 썼다가 주흥종(朱興宗)과 주덕유(朱德裕)로 바꾸었는데 현재 쓰는 이름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나마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아프거나 힘들 때면 황각사로 종종 돌아갔다고 했으니 시기만 잘 맞춘다면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를 만난 뒤도 문제였다.
정세운이 적당히 구워삶아서 데려와야 했다.
현재 그의 사정은 거렁뱅이나 다를 게 없다.
어지간하면 따라올 것 같았으나 내 신분이 원 황실의 부마라는 것은 오히려 감춰야 했다.
괜히 이름을 주원장으로 지은 것이 아니다.
원 제국을 갈라버리겠다고 마음먹고 이름까지 바꾸게 된 남자이기에 절대 그와 관련된 내용은 미리 밝히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야 했다.
이번 일로 오히려 원 제국의 몰락이 늦춰질 수도 있으나 내가 바라는 것은 중국이 조각난 채로 조금이라도 더 길게 유지되는 것이다.
‘10개쯤으로 쪼개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서너 개의 나라로 나뉘어서 수십 년 정도만 유지될 수만 있어도 지금의 고려에게는 회생을 할 수 있는 상당히 큰 기회가 될 거다.
그와 함께 주원장이 없어진다면 과연 이 드넓은 중원을 누가 차지할지도 상당히 궁금했다.
주원장의 숙적이라 불리던 진우량이 될 수도 있는 일이고 명옥진이나 한사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정세운을 안휘성으로 보내면서.
그에게 준 여비는 상당히 두둑했고 혹시 몰라 저택에서 일하는 고려인 여럿을 함께 보냈다.
아무래도 혼자 찾는 것보다는 여럿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나도록 정세운은 안휘성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가을이 다가왔다.
*
1351년 9월.
여름이 지나 가을이 다가올 무렵.
원나라와 고려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고려에서는 왜구 130여 척이 서북면을 침구해 수많은 이들을 죽이고 민가를 불태웠다.
본격적인 왜구의 준동을 알리는 신호였다.
상황이 그렇게 되다 보니 지금까지의 준비도 부족하다 느껴졌다.
즉위까지 남은 시간이 겨우 보름밖에 남지 않았는데 솔직하게 말하면 꽤 부담됐다.
왕좌에 오르는 순간부터는 실전이다.
무려 450만 명에 달하는 수많은 고려인의 목숨이 내 결정에 좌지우지될 것이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등 뒤에서 지르는 고함에 살짝 고개를 돌리자 열 명쯤 되는 이들이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하나! 두우울! 세에엣! 넷!”
분명히 원나라에 있었지만,
느낌은 현대의 군인 같아 보였다.
그 모든 것은 내가 만든 작품이었다.
지난 6월부터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고려인 몇 명을 데리고 작은 실험을 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그곳에는 환관인 신소봉도 있었는데 나를 지키겠다며 자청해서 고생 중이었다.
‘과연 정예병을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릴까.’
내 관심은 거기에 쏠려 있었다.
앞으로 있을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
거기에 왕권에 도전하려는 세력들까지.
수많은 전쟁이 벌어지게 될 거고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의 피를 보게 될 것이다. 아무리 내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으니 빠르게 정예 병력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동원된 수단이 군대에서 이를 갈며 받았던 P.T 체조와 유격 훈련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군기를 잡는 것은 이것만 한 게 역시 없었다.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전우애.
적어도 이 두 가지는 충족되어야 한다.
그래도 100일 만에 상당히 쓸만해 졌다.
하지만 당장 전투에 내보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직 무예를 가르치지 않은 탓인데 이 시대는 체계적인 정병 육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병사는 농사를 짓다가 병사가 되었고 심지어 자신이 쓸 무기마저 직접 마련해야 했다.
아무래도 싹 다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최근에 개혁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틈틈이 적는 중인데 건드려야 할 곳이 너무나 많았다.
교육부터 시작해서 농사와 정치, 경제까지 아예 나라를 통째로 바꿔야 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대놓고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아직은 원 제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다.
그때 훈련이 끝났는지 신소봉이 비틀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완전히 땀에 젖어 있는 그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대감마님,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러게 왜 사서 고생인가?”
“저도 후회막심입니다. 그런데 마님은 어인 일로 평소 즐기지도 않던 승마(乘馬)와 궁시(弓矢)를 시작하신 건가요?”
“남자라면 그 정도는 해야지.”
나도 운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왕기는 상상 이상으로 정말 문약(文弱)한 스타일이었다. 애초에 서예와 그림에 출중한 실력을 보이던 예술가 타입이긴 했다.
이 시대에 가장 핫하던 매 사냥을 하지 않은 유일한 고려의 왕이 바로 공민왕이었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말도 못 탔다.
훗날 홍건적이 개경으로 쳐들어와서 파천할 때도 말을 타지 못해서 꽤 곤란했다고 한다.
그런 일은 다시 벌어지면 안 되겠지만, 적어도 볼썽사나운 꼴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은 그런 이유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활 쏘는 법이나 말 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때 신소봉이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가 다급하게 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공주 마마님이십니다.”
그가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부다시리 공주가 시중을 드는 겁령구(怯怜口) 몇 명과 함께 말을 몰아서 오고 있었다.
주변에 호위를 맡는 이들이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부다시리 공주는 조심성이 많았다.
어린 시절부터 원 황실에서 벌어지는 암투를 보고 자라서 그런 것 같았다. 권력을 향한 욕구는 상당히 강해서 조카가 백부를 살해하고 군벌이 궁궐 내부를 흔들고 있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성인이 된 황제조차 권력을 잡기 위한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공주는 내 앞에서 말을 멈추더니 몽골의 피가 흐르는 여인답게 능숙하게 말에서 내렸다.
“여름 내내 매일 어딜 가시나 했더니 여기 계셨군요.”
부다시리 공주는 꽤 매력적이었다.
현대적인 미인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앵두 같은 입술이며 하얀 피부에서 생기가 넘쳤다. 어린 시절에는 꽤 말괄량이였다더니 눈가에 장난기가 살짝 남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녀의 장점은 사려 깊고 현명하다는 것이었다.
“날도 더운데 여기까지 어인 일입니까?”
“간단히 요기할 음식을 조금 챙겨왔어요.”
“굳이 안 그러셔도 되는데···”
분명 지난해 결혼한 공주였지만,
아직 왕기와의 관계는 가깝지 않았다.
정략결혼으로 시작한 관계였고 같이 보낸 세월도 짧았다. 아직 후세에 ‘세기의 로맨스’라 알려진 두 사람이라 보기에는 어려웠다.
왕기와 부다시리 공주의 관계가 확실히 진전된 것은 이곳 원나라가 아닌 고려로 돌아간 이후부터였던 것은 아닌가 생각되었다.
‘이런 사료(史料)는 남아 있는 것이 전혀 없으니 알 턱이 있나.’
임진왜란과 호란 그리고 일제 강점기.
거기에 한국 전쟁까지 겪으며 생긴 일이다.
그 탓에 생각보다 고려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조선 시대에 쓰여진 고려사와 고려사절요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쨌든 공주의 호의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신소봉은 눈치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닥에 비단을 깔더니 우리가 먹을 음식을 내려놓고 겁령구를 데리고 고려인 쪽으로 갔다.
그가 먹을 것을 들고 다가서니 고려인들이 내지르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느낌상 먹을 것보다는 미모의 겁령구를 더 반기는 것 같았다.
부다시리는 그런 그들을 보고는 웃었다.
“종종 이렇게 나와야겠습니다.”
“저택에만 있으려니 답답하지요?”
“답답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가끔은 어렸을 때처럼 말을 타고 저 멀리까지 가보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부다시리는 넓은 들판 너머를 바라봤다.
아련한 그녀의 눈빛에는 호기심과 자유를 갈망하는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강단 있는 심성은 역사를 통해 알고 있었으나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새롭게 느껴졌다.
그때 내 시야에 한 뼘도 안되는 그녀의 발이 들어왔다. 이 시기에 황실의 여인 대부분이 그렇듯 부다시리도 전족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가죽신을 신고 있어도 가려지진 않았다.
그나마 그녀는 심한 편은 아니었으나 저절로 눈살이 찡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부다시리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전족이 싫습니까?”
고민할 것도 없이 그렇다고 답을 했다.
‘纏(전)’이라는 글자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얽어맨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발을 변형시키니 내 눈에는 고문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어찌 사람의 발을 이렇게 만든단 말입니까.”
슬쩍 그녀의 표정을 보니 이게 왜 나쁜 건지 쉽게 이해하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그냥 ‘왜’ 그런지 궁금한 눈빛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원 제국에서 전족은 부귀영화의 상징이다.
오히려 황실의 여인이 전족을 하지 않는 게 치욕이라 여겼다. 주원장이 끝까지 저항한 장사성에게 내린 형벌 중의 하나가 여인들의 전족 금지였을 정도다.
“고려에서는 이런 풍습이 없나 봅니다.”
“제가 알기로는 없었습니다. 아니 있더라도 모든 불합리함은 없애버릴 겁니다.”
“원 제국에 반할지라도요?”
공주의 질문에 굳이 답을 하지는 않았다.
괜히 입을 열면 거짓말을 할 것 같았기에 그저 웃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유도 질문에 쉽게 넘어갈 생각은 없었고 그렇다고 벌써 공주에게 내 모든 의중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부다시리 공주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대군은 정말 독특한 것 같습니다.”
“내가 그런가요?”
부다시리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사람이 확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말과 함께 고려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역사는 어느 정도 알아도 고려인의 생활이 어땠는지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내세울 핑계가 있기는 했다.
“고려에서 어릴 때 이곳에 와서 기억나지 않는 게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왜 갑자기 고려가 궁금하신지요?”
“조만간 가볼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황실에서 대감을 고려의 국왕으로 세우려는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저를요?”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했지만,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왕이 교체될 리가 없다.
적어도 황실에서 어떤 것이 더 이득일지에 대해서 깊은 논의를 한 후에 결정했을 거다.
즉위하는 날이 코앞까지 다가왔으니 시기상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대감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폐하의 의중에 따라야지요. 제가 바란다고 될 일도 아니고 거부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자칫 잘못되면 고려에서 폐위당한 대부분의 왕과 비슷한 처지가 되어 유배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나도 그건 잘 알고 있다.
결연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제야 부다시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그녀는 부친인 위왕(魏王)에게 해가 되지 않게 조용하게 살길 바랐던 것 같았다.
토곤 테무르가 즉위하기 전까지 원 황실은 13년 동안 무려 7명의 황제가 번갈아 가며 차지했다. 그 과정에서 황족의 상당수가 그 영향을 받아 죽었으니 충분히 이해는 됐다.
하지만 쉽게 자리를 내줄 생각이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 부다시리 공주만큼은 적어도 내 편이 되어주어야 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중요한 정치적 파트너이자 고려의 문무백관마저 쉽게 볼 수 없는 원 제국의 황실 사람이다.
적어도 수년 이내에 나라 전체를 뒤집는 수준의 개혁을 할 생각인데 그때가 되면 적지 않은 이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들고 일어날 것이 뻔했다. 아마 그중의 일부는 분명히 원나라에 이를 고하고 나를 위험에 빠뜨릴 계략을 세울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그녀에게는 지지를 받고 싶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겨도 당신만은 내 편이 되어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