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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2화 (2/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2

그날 이후의 일상은 단순했다.

나라를 팔아먹을 부원배의 명단부터.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모두 기록했다.

당연히 그중에는 예민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딱히 걱정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모든 내용은 거의 100년 후에 세종대왕님이 만들 예정인 한글로 기록해놨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해석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어릴 때 서예를 배우기는 했어도 감히 내가 썼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글씨가 수려했다.

공민왕이 서예와 미술에 상당한 실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한글로 그것도 직접 그걸 구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다.

하지만 거기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다.

볼모로 원나라까지 와 있지만, 놀고먹는 몸은 아니었다. 일종의 정치 자문 역할도 겸하기에 언제 황제가 부를지 몰라 대기도 해야했다.

덕분이 이런 저택에서 살 수 있는 거였다.

솔직히 고려에서는 아무것도 바랄 수 없다.

이미 국내에서 왕기는 끈 떨어진 연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왕이 될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다.

첫 번째 기회는 충혜왕이 죽었을 때였는데 당시 충목왕의 나이는 불과 8세에 불과했고 국내외로 무척이나 혼란한 상황이었다. 고려 내에서는 다들 왕기가 왕이 되었으면 했었으나 아쉽게도 그 기회는 충목왕에게 돌아갔다.

그때는 어느 정도 그러려니 했었다.

하지만 충목왕이 2년 전쯤에 죽었을 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여러 일들이 생겼다.

그 무렵의 왕기는 황제에게 왕위 계승 명령을 받고 본국으로 떠날 준비까지 했었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황제는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고 겨우 12세에 불과한 충정왕에게 약 2년 전에 습위를 명령했다.

정말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노국공주와의 결혼도 그래서 했겠지.’

원 황실은 계속해서 고려의 왕을 부마로 삼아 어떻게든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확실히 원 황실과 혈연을 맺은 보람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이내에 공민왕은 조카인 충정왕을 밀어내고 마침내 고려의 왕이 된다.

하지만 현재의 왕기는 별 볼 일이 없는 한낱 고려의 왕족 중의 한 명일 뿐이었다.

두 차례나 왕이 될 기회를 놓치자.

이곳까지 따라와 호종(護從)하던 상당수가 왕기의 곁을 떠나서 충목왕과 충정왕 또는 원 황실로 각자 부와 명예를 좇아서 떠났다.

남은 이들도 도박을 하는 심정일 것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에 고려의 왕이 원에 의해서 몇 차례나 폐위와 복위를 하고 있으니 또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자 한 발자국 뒤에서 걷고 있던 신소봉이 주의를 줬다.

“대감마님, 조금 돌아가더라도 다른 길로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이 앞쪽의 골목에서 어제 전염병으로 사람이 죽어 나갔다고 합니다. 괜히 불결한 기운이 묻을까 심려되옵니다.”

“그러도록 하지. 앞장서거라.”

고개를 들어서 살펴보니.

천으로 얼굴을 가린 이들이 보였다.

원 제국도 전염병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거리에는 시체를 싣는 수레가 가득했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곳곳에서 보였다.

벌써 이 전염병이 시작된 지 수년째였다.

‘참 얄궂은 운명이네.’

코로나를 벗어나니 흑사병이 기다렸다.

오히려 암울하다고 느꼈던 그 시절이 그리울 정도로 현재 중국 전역은 죽음이 만연했다.

비록 이 병의 시작은 13세기였으나 아직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 기아까지 만연해서 중국의 인구는 백 년도 안 되는 사이에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라고 다를까.

어린 충목왕이 즉위 5년만에 병사했다.

정확하게 어떤 병이었는지 알려지진 않았으나 흑사병이지 않을까 다들 추측하고 있었다.

전염병은 왕후장상의 씨를 가리지 않으니 만인에게 평등했다. 그러니 나도 저들과 똑같은 꼴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렇게 한참 돌아서 저택에 도착하자.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 같았다.

일단 신소봉에게 물을 떠 오게 해서 손을 씻자 노복(奴僕)이 정세운이 와있다고 알려줬다.

물기가 남은 손을 털며 안으로 향하니 차를 음미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정세운은 스승처럼 여기는 유숙 선생과 함께 앞으로 측근에 두고 써야 하는 사람이다. 부족한 점도 분명히 있으나 지금은 내 수족처럼 움직일 사람 한 명이 무척 아쉬운 상황이었다.

곧장 안으로 들어서자 정세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맞이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벌써 와계셨군요. 일단 앉으시죠.”

“그런데 어인 일로 소인을 찾으셨는지요.”

“지난번에 부탁드린 일은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분부대로 하고 있습니다만, 혹시 만권당(萬卷堂)이라도 다시 세우실 생각이신지요.”

충선왕은 왕위에서 물러난 뒤.

대도에 만권당이란 작은 도서관을 세웠다.

고금의 진서(珍書)를 모아서 원나라 학자는 물론이고 성리학의 선구자라 알려진 백이정과 이제현 등을 불러 성리학을 연구하던 곳이다.

그 성과가 다음 세대까지 이어져서 조선이 성리학의 나라가 된 것을 생각하면 만권당이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곳이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정세운은 내가 본국으로 돌아갈 생각마저 접고 이곳에서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전혀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금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얼마 후면 원나라가 망하게 되니 그들이 쓰는 화폐인 보초(寶鈔)를 최대한 빨리 써야 했다.

그때가 되면 지금 유통되는 그들의 화폐는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쓰레기가 된다.

아직 시간은 꽤 남아있으나 어차피 계속해서 황실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돈이 들어오니 그전에 가진 것을 모조리 써야 했다.

잠시 어떤 답도 없이 애매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더니 정세운은 상당히 답답해했다.

‘야망이 없어 보이려나.’

오히려 그렇게 보이면 다행이었다.

아직 고려를 다스리는 충정왕이 있다.

괜히 정치적인 행보를 보여줘서 현재 기득권을 잡고 있는 이들에게 경각심을 줄 필요는 없다.

더구나 이번 기회에 훗날 나를 호종했다는 이유로 연저수종공신(燕邸隨從功臣)에 이름을 올렸던 일부는 떨궈버릴 생각이었다.

심지어 그들 중에 일부는 이미 내가 작성한 살생부에 이름을 올린 이들마저 있었다.

즉위 초기에 생긴 가장 큰 문제가 이곳에서 호종한 측근 세력과 개혁 세력이 부딪히며 개혁 자체가 지지부진해졌다는 것이다.

“이번에 사들인 서적은 어떤 게 있습니까?”

“산학서인 상해구장산법(詳解九章算法), 익고연단(益古演段)을 비롯해서 의약서인 산거사요(山居四要), 천금방(千金方)은 구했습니다. 하지만 농업 서적인 농상의식촬요(農桑衣食撮要)는 아직입니다.”

“심괄이 쓴 몽계필담(夢溪筆談)은요?”

“아직 다 모으지는 못했습니다.”

충분히 이해할만했다.

몽계필담은 거의 30권에 달한다.

북송 시대에 만들어진 그 책은 백과사전에 가깝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정말 폭넓은 분야를 다루고 있다. 천문학과 수학을 비롯해서 지질, 약학, 군사, 생물까지 다루고 있을 정도였다.

지어진 지는 꽤 오래되었으나 뭐라도 하나 건질 수 있다면 돈이 그리 아깝지는 않았다.

하지만 계속 그 일을 맡길 생각은 없었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김득배에게 맡기라고 하자 정세운은 갑자기 왜 그러냐며 물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네? 어떤 일이죠?”

“안휘성으로 가서 찾아야 할 게 있습니다.”

정세운은 조금 뜬금없다는 표정이었다.

이 도시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안휘성이다.

이천 오백 리(里)가 넘는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곳인데 말을 타고 이동해도 최소 한 달 이상은 잡아야 다녀올 수 있는 상당히 먼 곳이다.

하지만 그밖에 이 일을 맡길 사람이 없었다.

강중경이나 김득배는 문신이라 자신의 몸 하나 지키는 것도 힘들 것 같았다. 슬쩍 그런 이유를 말해주자 정세운은 상당히 기뻐하며 당장이라도 출발할 기세였다.

“제가 가서 뭘 찾으면 되는 겁니까?”

“우선 목화씨를 가져오십시오.”

“목화씨요? 그런 거라면 이곳 대도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텐데요.”

“강남 지역의 다년생이어야 합니다.”

문익점이 씨앗을 들고 온 게 언제더라.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몇 년 후에 있을 일이다. 왜 그런 이야기가 생긴 건지 알 수는 없으나 목화씨가 원나라에서 반출이 불가능한 금수품(禁輸品)은 아니다.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이유도 없었다.

더구나 문익점은 훗날 덕흥군 편에 서서 공민왕을 끌어내리려 했던 반역자 무리 중의 한 명이기 때문에 그를 배려할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어떤 품종이 고려의 땅에서 더 잘 자랄지는 알 수 없기에 다양하게 챙길 생각이었다.

“그런 거라면 차라리 이곳을 드나드는 강남 상인에게 돈을 주고 시키는 게 빠를 겁니다.”

“아니요. 그건 부수적인 거고 꼭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습니다. 안휘성 저주시로 가서 사람 하나를 꼭 찾아와야 합니다.”

“사람이요?”

“봉양현이란 마을에 있는 황각사(皇覺寺)라는 작은 절에서 탁발승을 하고 있는 남자인데 그곳에 없다면 회서(淮西) 지역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나이는 약관(弱冠)과 이립(而立)의 중간쯤이고요.”

이 시대의 탁발승은 걸인이나 마찬가지다.

왜 굳이 그렇게 먼 곳까지 가서 그런 사람을 찾아와야 하는지 의아한 표정을 잠시 지었으나 정세운은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내 눈치를 살피더니 이 지시가 상당히 중요한 일임을 눈치챈 것 같았다.

“혹시 이름은 모르십니까?”

당연히 이름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이 시대를 연구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이름이자 어떤 제국보다 컸던 원 제국을 멸망시킨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남자이기에 개명한 이름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쓰던 본명도 알고 있다.

과연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알 수 없으나 본래 기록되었던 역사상으로 보면 상당히 큰 파문이 일어날 것이다.

“주덕유(주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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