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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1화 (1/202)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내 역사에 조선은 없다 -1

싸늘한 바람이 창가를 두드렸다.

덜컹거리는 소리에 슬쩍 고개를 돌리자.

씨알 굵은 함박눈이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내린 건지 모르겠으나 퇴근길이 상당히 막힐 거란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내게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

애초에 출퇴근이란 것이 없는 삶이었다.

“이 생활도 이제는 조금 지치네.”

거의 1년간 집에 처박혀 있었다.

갑자기 전 세계로 퍼진 전염병 때문이었다.

중국 사람은 정말이지 대단했는데 다른 거는 몰라도 전염병을 만드는 재주는 알아줘야 했다.

이미 그들은 14세기부터 흑사병을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까지 수출(?)한 전력이 있었다.

누군가는 중국이 아닌 몽골이라 말하겠지만,

몽골이 세운 원나라의 역사마저 자신들 거라 우기는 중국이 할 말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내 인생도 꼬였다.

전염병이 퍼지기 직전에 석사 논문을 마쳤으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취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취직이 쉽지 않은 전공이었다.

집안에 돈이 있으면 그냥 공부라도 더 할 텐데 군대에 있을 무렵에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갑자기 돌아가신 탓에 비빌 곳도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역사 너튜브였다.

[역사에 남은 그날]

내가 만드는 콘텐츠는 간단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을 설명하는 것.

사학과라는 전공을 최대한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잘 되어서 벌써 5만 명 정도가 구독하는 채널이 됐다.

많게는 수십만 회의 조회수를 올릴 정도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너튜브는 큰돈이 되지 않았는데 영상 하나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관련 사진과 영상을 준비한 뒤.

내레이션에 쓸 대사를 쓰고 녹음하면 열흘에 하나 올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자료 조사도 쉽게 볼 수 없었다.

구독자가 많아지니 역덕의 비중도 높아져서 작은 오류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요즘 들어 학교 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사료를 뒤지고 있었는데 그래도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 했다.

그나마 이번 영상은 쉬운 편이었다.

석사 논문을 썼던 주제와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지던 시기는 고려의 공민왕이었는데 어린 시절 별명 때문이었다.

하필 아버지가 내게 고민완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덕분에 학창 시절 내내 별명은 공민왕과 고민왕으로 거의 고정되어 있었다.

당연히 나는 공민왕이 더 마음에 들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왕이라니 멋졌다.

“그렇게 공민왕은 자신이 만든 자제위(子弟衛)의 홍륜에게 살해를 당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흥왕사의 난에서 공민왕을 지키기 위해서 최후까지 항거하다가 숨을 거둔 충신 홍언박의 손자인 것을 생각하면 인생이란 정말 묘한 것 같습니다.”

미리 써놨던 대사를 모두 녹음한 후.

정지 버튼을 누르고 잠시 의자의 등을 기댔다.

논문을 준비할 때도 그랬지만, 공민왕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다. 즉위 초기와 말기의 행동은 정말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정치적인 판단이 민첩하고 과감할뿐더러 때로는 치밀하고 교활한 모습까지 보이던 그가 노국대장공주의 죽음으로 순식간에 무너졌다.

도대체 무슨 사랑을 어떻게 한 걸까.

연이은 개혁에 지쳐서 번아웃한 걸까.

아니면 믿었던 신하들의 배반 때문일까.

표독한 기황후에게 완전히 질려버린 걸까.

수없이 생각해본 문제였다.

하지만 정답은 나올 수가 없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사료라도 풍부했다면 추측이라도 해볼 수 있었을 텐데 임진왜란 등으로 인해 소멸했다.

혼자서 이런저런 망상을 하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일어나서는 곧장 냉장고로 향했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생각해 보니 오늘 먹은 게 전혀 없었다.

그런데 막상 뭘 먹으려고 해도 마땅한 게 안 보였다. 비축해놨던 라면도 다 떨어졌고 있는 거라고는 즉석 햇반 몇 개 정도가 전부였다.

창밖에 쌓인 눈을 보니 온라인으로 마트에 주문해 놓은 것도 배송 지연이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계속 굶을 수도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잠시 나갔다가 와야 할 것 같았다.

“미리 좀 사놓을걸. 귀찮게···”

마스크를 쓰고 현관문을 열자.

눈보라가 밀려와 싸대기를 때렸다.

이런 눈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마스크를 콧등까지 올리니 하얀 김이 치솟으며 대뜸 시야를 가렸다. 콧잔등을 살포시 누르며 현관문 밖으로 나서자 발목까지 눈에 잠겼다.

뽀드득거리는 소리와 감촉보다 발목뼈가 애릴 정도로 시린 느낌이 더 먼저 밀려왔다.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 길지 않은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도로 너머에 있는 작은 슈퍼 하나가 보였다.

나이가 지긋하신 아주머니가 하시는 가게인데 은둔 생활을 하기 전에는 종종 가던 곳이다.

어차피 음식을 하는 것도 아니기에 평소에 사는 물건이라고는 인스턴트가 전부였다.

그때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이쪽 방향은 대로변에서 빠져나와 언덕위로 올라가는 쪽이라 신호 대기가 꽤 길다.

당연히 다음 신호까지 기다릴 생각은 없기에 뛰기 시작했다. 초록 불이 깜빡이기 전에 도로 저편으로 건너려고 했으나 쉽진 않았다.

쿠웅!

눈 위로 차들이 지나다닌 탓일까.

몇 발자국 걷지도 못하고 미끄러졌다.

갑자기 도로 한가운데서 혼자 크게 엉덩방아를 찧으니 길을 걷고 있던 사람들 몇 명이 키득거렸다. 서둘러 일어나려고 했으나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들자.

언덕 위에서 트럭이 내려오는 게 보였다.

그런데 운전석에 앉은 이의 표정이 상당히 심각했는데 나를 보고도 트럭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제어를 못 하고 있었다.

바퀴가 미끄러지며 쭉쭉 밀려왔다.

그걸 보자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몸이 내 마음 같지 않았다.

다시 두어 차례 발이 미끄러지며 피할 겨를도 없이 트럭에 부딪혔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죽을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가볍게 툭 뒤로 밀린 수준이라 재수 없으면 골절상 정도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쿠우웅! 쿵!

2m 정도 대로변으로 떠밀리자.

마침 앞을 지나던 버스가 덮쳤다.

그렇게 뒤로 튕겨 오른 나는 가로수에 정통으로 머리가 부딪친 후에야 바닥에 떨어졌다.

하얀 눈을 붉게 물들이는 피가 보였다.

이렇게 죽다니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정말 어이가 없었다.

‘씨발··· 이렇게 죽는다고?’

*

죽음 뒤에는 뭐가 있을까.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였다.

설마 이렇게 젊은 나이에 죽을지 몰랐다.

과연 천국과 지옥이란 게 있다면 나는 도대체 둘 중의 어느 곳으로 가게 되는 걸까.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겼다.

누군가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고향을 떠나 머나먼 곳으로 오던 길.

낯선 땅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던 고난.

모든 것이 내가 직접 겪은 것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나를 심란하게 하는 것은 그 기억의 주인이 누군지 알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건 고려의 31대 공민왕의 이야기였다.

‘내가 설마 공민왕의 환생이었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아직 놀라기는 조금 이른 것 같았다.

한참을 기억의 편린 속에서 헤매던 중에 갑자기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급하게 손을 올려서 얼굴을 가리자 그제야 생소한 실내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빛이 도는 기둥과 장식품.

인테리어가 중세의 중국과 흡사했다.

기억에 의하면 이곳은 훗날 공민왕이 되는 강릉부원대군 왕기가 뚤루게라 불리는 독로화(禿魯花, 인질)생활을 하는 저택이었다.

그때부터 머리가 너무 아팠다.

도대체 어떤 기억이 진짜인 걸까.

현대에 살던 고민완은 정말 존재했을까.

혹시라도 오랜 꿈을 꾸었다가 일어난 것인가.

뭔가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것 같아 어떤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됐다.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두 시대의 기억 모두가 생생하게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혹시나 공민왕이 그토록 사랑했다던 원나라의 노국대장공주인가 싶어서 기대되었으나 정작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변발을 한 남자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고려에서부터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왕기의 곁에서 호종(護從)하며 같이 생활을 하고 있는 환관 신소봉이었다.

“대감마님, 기침(起枕)하셨습니까.”

신소봉은 폭이 넓은 그릇을 들고 있었다.

하얀 김이 나는 것을 보니 뜨거운 물인 것 같았는데 세수를 하라고 가져온 것 같았다.

침소에서 일어나 팔을 걷자 한기가 밀려왔다.

기억을 떠올려 보니 지금은 신묘년(辛卯年) 정월 초이레다. 대충 내가 고민완으로 살던 시기의 날짜와 엇비슷한 것 같았다.

다만 그때와 한가지 다른 게 있다면 지금은 670년 전의 고려 시대라는 것이었다.

정신도 차릴 겸 세안을 마치자.

신소봉이 얼굴을 닦을 수건을 건넸다.

모시 재질 같아 보였는데 얼굴에 남은 물기를 말끔하게 닦아낸 뒤에 아까부터 궁금한 부다시리 공주의 행방을 그에게 물었다. 아무리 정략결혼이라도 신혼인데 이른 아침부터 보이지 않았다.

“공주는 아침부터 어딜 갔지.”

“아침 일찍 불경 드리러 나가신다고 어제 말씀드리지 않으셨나요?”

“그랬군. 깜빡 잊었어.”

“진지는 바로 준비해드릴까요?”

그렇게 해달라고 대답하자.

신소봉은 곧장 다시 방 밖으로 나섰다.

그가 열은 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저택의 크기가 생각보다 상당히 커 보였다.

잠시 탁자 앞에 앉아서 상황을 정리해보기 시작했는데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았다.

다른 왕도 아니고 왜 하필 공민왕일까.

그나마 역사상 최악의 강간마라 불리던 충혜왕이 아닌 게 다행이지만, 이 시대는 정말 뭐하나 이뤄내기 쉬운 게 없었다.

원나라에서는 기황후가 활개 치고,

고려에서는 부원배가 기득권을 차지했다.

근래 들어 고려의 왕은 즉위와 폐위를 거듭하며 왕권과 위신조차 가지고 있지 못했다.

더구나 신묘년(1351년)이 올해이니 머지않아 홍건적이 난을 일으킬 게 뻔했다.

거기에 전례 없는 왜구의 침략까지 시작된다.

작금의 고려는 발이라도 한 번 삐끗하면 칼날 위로 떨어지는 줄타기 중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도 분명히 있다.

적어도 이 시대의 역사는 잘 알고 있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대의 어떤 누구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 있는 거다.

안 그래도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 며칠 동안 공민왕의 생애에 대해서 몇 번이고 확인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곧장 벼루를 꺼냈다.

나도 사람인지라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기억하고 있는 것을 잊을 게 분명했다.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게 뭘까.

역시 이거겠지.

[살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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