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
에필로그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
우선은…… 내가 블루로즈단 단장과 레드 라인 기사단장의 자리에서 내려왔다는 것 정도?
으드득!
“어이구, 허리야.”
기지개를 펴는 순간, 온몸의 뼈마디가 울부짖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건가?
대충 세수를 한 후에 나는 집 밖을 나섰다.
나울은 3년의 시간 동안 계속된 성장을 거듭해 왔다.
이제는 나울보다 큰 도시는 없을 것이다.
나울에 오면 모든 것들을 볼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차원 이동 마법에 관한 것도 포함해서였다.
약속된 3년의 시간이 지났다.
때마침 우리의 소식통, 파랑새가 내게 다가왔다.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에서 보내온 소식이야. 오늘 내로 모든 준비를 끝낼 테니 연구소로 오라고 하더군.”
“고마워요.”
드디어 이날이 오게 되었다.
그전에 나는 그동안 정들었던 곳들을 한 번씩 쭉 훑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오랫동안 내가 몸담아 활동했던 블루로즈단을 방문했다.
아마 블루로즈단이 가장 많은 개편을 이뤘을 것이다.
용병들은 나를 보자마자 예를 표했다.
“로인 님, 오셨군요!”
“지금 단장을 부르러 갔으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새롭게 3대 단장으로 취임한 자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긴 흑발의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 이제는 제법 숙녀 티가 물씬 나는 케프리였다.
“별일이네. 형씨가 여길 다 오고.”
“넌 아직도 나를 형이라고 부르냐?”
“입버릇이 되어서 그래. 그보다 무슨 일인데?”
“아니. 그냥 한번 보고 싶어서.”
“나를?”
“블루로즈단 전체를.”
순간 케프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늘이야?”
“응, 맞아.”
“아니, 그런 거라면 미리 말을 해 줬어야지!”
“말해 줘 봤자 별로 달라질 건 없으니까. 결과는 어차피 똑같잖아?”
“진짜…….”
케프리의 고운 미간이 일그러졌다.
“베라하고 제나드는?”
두 사람의 행방을 물었다.
“베라 언니는 어제 잠깐 하이 엘프 마을에 들렀다가 오겠다고 자리를 비웠고, 제나드 선배는 첸버 아저씨랑 같이 아침 먹으러 갔어.”
“그래? 드레인 선배는?”
“그 아저씨도 가족들이랑 식사. 다 불러올까?”
“아니, 됐어.”
나는 케프리의 호의를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제나드와 첸버, 그리고 드레인은 사이좋게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지금은 평범한 생활을 보내는 중이다.
가르시아나 에나, 파이스, 그리고 베나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각각 부대 하나씩을 맡아 3대 단장인 케프리를 보필하는 중이었다.
블루로즈단은 이걸로 됐고…….
이다음, 나는 레드 라인 기사단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때, 케프리가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뭐야. 왜 따라오는데?”
“나도 마침 레드 라인 기사단에 볼일이 있어서 가는 거야. 절대로 형씨 따라가는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너, 제더필이랑 원수지간이잖아. 그런데 무슨 볼일이 있다고 그러는 거야?”
“……그런 게 있어.”
레드 라인 기사단도 변화를 맞이했다.
난 기사단장 자리를 내려놓은 후에 2대 기사단장으로 제더필을 지목했다.
게럴과 바슬라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제더필을 보필하고 있다.
그리고 레드 라인 기사단원들의 교육을 담당할 새로운 선생님을 모셨다.
“거기! 기합을 내지르라고, 기합을! 사내 녀석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내면 쓰나! 나 땐 말이야! 네 나이 때에 강철도 씹어 먹으면서 지냈다고!”
휴즈의 목소리가 훈련장에 가득 메아리쳤다.
“스승님!”
“음, 로인 아니냐! 네가 여긴 웬일이냐?”
기사단장의 자리를 내려놓은 나는 한동안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괜히 전임 기사단장이었던 내가 자주 들락거리면 차기 기사단장이 눈치 볼 일이 많아질 거 같아서였다.
“잠시 스승님 얼굴 뵙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뜬금없이 왜? 어제도 같이 술 마셨으면서.”
“당분간 스승님과 술잔을 기울일 기회가 없을 거 같습니다.”
“……그래?”
휴즈는 내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인지 알아차린 듯했다.
그는 나에게 상냥한 미소를 보이면서 말했다.
“다음에 꼭 다시 보자꾸나, 내 제자야.”
“예, 스승님.”
그 후에 나는 훈련장을 떠났다.
이제 로그 상단에 들렀다가, 또…….
“……케프리.”
“왜.”
“너, 설마 로그 상단에도 볼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생겼어.”
“너하고 로그 상단하고 접점이 없잖아.”
“말했잖아. 갑자기 볼일이 생겼다고.”
“무슨 볼일?”
“……몰라도 돼.”
귀여운 녀석.
로그 상단에 가서 라그너의 얼굴을 잠시 보고 오기로 했다.
그전에 나는 흰색 용의 모습을 한 모형을 바라봤다.
지식을 탐구하는 자, 레이샤르의 동상이다.
레이샤르는 칠흑과의 전투가 끝난 뒤 나와 함께 라드리치가 남긴 말을 들은 다음에 다시 드래곤의 세계로 돌아갔다.
언젠가 칠흑이 다시 나타나는 날, 백색의 용은 그동안 쌓아 온 지식과 함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등장할 것이다.
로그 상단을 방문했을 때, 라그너는 한창 바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나 왔어, 라그너.”
“로인 님! 케프리 양도 같이 왔군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니. 그냥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어서.”
“……예?”
라그너는 순간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너무 뜬금없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피하기로 했다.
라그너는 눈치가 빠른 녀석이기 때문에 이 이상 말을 섞게 되면 내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한 건지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얼굴 봤으니 됐어. 그럼 업무 수고해.”
“자, 잠깐…… 로인 님!”
나는 강제로 사무실의 문을 닫으면서 라그너에게 작별을 고했다.
어차피…… 영원한 이별은 아닐 테니까.
* * *
바우너 그랑트의 얼굴도 봤고, 웬만한 사람들 얼굴은 다 본 거 같다.
……라고 생각할 무렵이었다.
‘그러고 보니 라스 일행의 얼굴을 못 봤네.’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라스는 지금 릴리안과 함께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생활하고 있을 테니까.
엔드라는 카이딘과 함께 아이템 헌터로 전향했다.
지금쯤이면 여기저기 모험을 다니고 있을 것이다.
엘라시아는 다시 하이 엘프의 마을로 돌아가 차기 족장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중이라고 베라에게 들었다.
이렇게 《델리피나 전기》는 엔딩을 맞이했다.
엔딩 이후의 이야기를 어떻게 꾸며 갈지, 이것은 이제부터 이 세계의 주민들이 해야 할 일이다.
다른 세계 사람인 내가 할 일은 아니다.
내 역할은 어디까지나 칠흑, 그리고 데르킨 백작을 쓰러뜨리는 일까지였다.
‘슬슬 가 볼까?’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그 와중에 케프리는 끝까지 나를 따라왔다.
“나, 이제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로 갈 예정인데, 설마 거기에도 볼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있어.”
“아는 사람 없잖아.”
“없어도 있어.”
고집을 부리는 케프리였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케프리와 함께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로 향했다.
그곳에는 마일과 리오나가 세올라, 프렌과 함께 나란히 서 있었다.
마일은 대현자니까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 알고 있었다 치더라도…….
“리오나는 여기에 어떻게 있는 거야?”
그녀는 더 이상 모험가 복장을 갖춰 입지 않았다.
리오나와 잘 어울리는 붉은 컬러의 드레스를 갖춰 입고 있었다.
“마일한테 들었어. 오늘이라며? 그 소리 듣고 파티장에서 급하게 이쪽으로 넘어왔어.”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들켜 버렸네.”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약속해.”
나는 슬며시 웃었다.
“물론. 아, 그리고 이거…….”
리오나에게 다가가 그녀의 입술에 살짝 키스를 했다.
“3년 전에 너한테 맡아뒀던 키스, 다시 돌려줄게.”
“……갔다 와서 또 해 줘.”
“약속할게.”
리오나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 뒤, 나는 차원 이동 마법 장치 앞에 섰다.
“후우.”
심호흡을 내쉬었다.
“카운트다운 할게요. 준비하세요, 로인 님.”
세올라의 말에 따라 나는 각오를 굳혔다.
“3, 2, 1…… 가동!”
그 말과 동시에…….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평온한 일상을 보내 오던 지구.
그러나 평화의 시간은 어느 한 사건으로 인해 깨어지게 되었다.
하늘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게이트 사이로 검은 연기에 감싸인 짐승들이 낙하했다.
몬스터(Monster).
검은 짐승들은 사람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기 시작했다.
이 현상은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물론 대한민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난리람……!”
평범한 샐러리맨에 불과한 황진수는 미팅에서 돌아오던 길에 갑작스런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늘이 검게 물들고, 그 사이로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
검은 짐승들은 황진수와 주변 사람들을 잡아먹기 위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들고 사정없이 발포를 했으나, 검은 짐승들에게 이들의 개인 화기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후, 후퇴하라!”
“도망치세요. 어서……! 으아악!”
황진수를 도와주려던 군인이 검은 짐승에게 끌려가 사정없이 물어 뜯겼다.
사방으로 튀기는 붉은 피.
황진수는 자신이 꿈을 꾸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이었다.
네 발 달린 검은 짐승 두 마리가 황진수를 향해 뚜벅뚜벅 다가왔다.
그는 무신론자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신의 존재를 믿고 싶었다.
그리고 신께 이렇게 기도하고 싶었다.
“사, 살려 주세요……!”
그때 하늘이 다시 한번 열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몬스터가 아닌 한 명의 젊은 남자가 튀어나왔다.
“푸하!”
남자는 갈증에 휩싸인 모양인지 근처에 굴러다니는 물통을 하나 집어 들어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러는 사이에 검은 짐승들은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황진수는 남자에게 외쳤다.
“뒤, 뒤에……!”
“음? 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남자의 손에 백색의 불꽃이 형성되었다.
그러고서 검은 짐승들에게 인정사정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퍼엉! 펑!
단 두 방으로 검은 짐승들을 날려 보냈다.
백색의 불길에 옮겨 붙은 검은 짐승들은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불타 사라졌다.
남자의 등장에 다른 몬스터들이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남자는 백색 불의 힘으로 오히려 몬스터들을 몰살시켰다.
황진수는 눈을 크게 끔뻑였다.
“누, 누구세요?”
혹시 자신의 기도를 들은 신이 보낸 사자가 아닐까?
그러나 남자는 황진수를 보면서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부장님. 보아하니 작가 미팅 다녀오시는 중이었나 보네요?”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였다.
“설마…… 시언이냐!”
외형은 달라도 목소리는 분명 강시언의 것이었다.
로인…… 아니, 강시언은 씨익 웃었다.
“근처에 기자들 보이면 제가 있는 쪽으로 모여 달라고 하세요. 제 고향 세계 사람들에게 들려줘야 할 말들이 정말 많습니다.”
갑자기 열린 게이트와 함께 등장한 남자, 강시언.
‘최초의 헌터’라 불리게 될 그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눈 떠보니 엑스트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