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238화 (238/240)

# 238

최후의 전투 (2)

데르킨, 저자의 행동을 절대로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나는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막을 거다.”

데르킨 백작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이해가 안 되는군.”

“뭐가?”

“너의 세계도 아닌데 왜 그리도 목숨을 걸고 이곳을 지키려고 하는 거지? 델리피나 대륙을 구하지 못하면 너도 죽을 거 같아서? 그래서 내가 너에게 제안하지 않았나,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심연의 방에서 데르킨 백작이 내게 했던 말과 같았다.

그렇다면 그건 내 사념이 실체화되었던 게 아니란 말인가?

정말로 데르킨 백작이 내게 와서 그런 제안을 했던 거였다.

하나 이번에도 나는 녀석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 세계가 마음에 들어 버렸거든.”

“나에게 맡긴다면 더 마음에 드는 세계를 만들 수 있지.”

“심연의 방에서 미처 너한테 하지 못한 말이 있었는데.”

나는 데르킨 백작을 향해 한 글자씩 또박또박 발음했다.

잘 새겨들으라는 뜻이었다.

“이 세계의 일은 이곳 사람들에게 맡겨라. 우리 같은 외부인이 그들이 사는 세계를 가로채 마음대로 휘저을 자격 따윈 없어.”

《델리피나 전기》의 이야기가 해피 엔딩이 될지, 베드 엔딩이 될지…… 그것은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

이곳 세계의 주민들이 정할 일이다.

우리는 그저 다른 힘에 의해 이곳으로 소환된 이방인일 뿐.

데르킨 백작은 눈을 흘겼다.

“타협의 여지는 더 이상 없는 것 같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없었어.”

“그런가? 아쉽군.”

데르킨 백작은 지면에 꽂혀 있던 칠흑의 검을 꺼내 들었다.

“그렇다면 내 손에 죽어라.”

“한번 그렇게 해 보시지!”

델리피나 대륙의 운명이 걸린 최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데르킨 백작의 검이 정확히 내 목을 노렸다.

내가 아무리 용신단의 능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머리가 잘려 나가면 그대로 죽는다.

난 칠흑 같은 재생 능력은 가지고 있지 못했으니 말이다.

데르킨 백작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나는 라크스 공작이 보여 줬던 동작을 선보였다.

회피 이후에 반격!

주먹을 휘둘러 데르킨 백작의 옆구리에 꽂아 넣었다.

녀석의 몸이 크게 휘청거리더니 공중에 붕 떠 수십 미터를 나가떨어졌다.

살아 있는 생명체였더라면 심각한 내상으로 인해 그 자리에서 바로 즉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데르킨 백작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힘을 지닌 자가 되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흙먼지가 아래로 흩어졌다.

“대단하군.”

녀석은 뜬금없이 나를 칭찬했다.

“칠흑과 싸우느라 힘을 전부 소진했을 터인데, 아직도 그런 힘이 남아 있을 줄이야. 어찌하면 그렇게 강해질 수 있지? 비결은 역시 용신단인가?”

“아니.”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주인공이라서 강한 거다.”

난 더 이상 엑스트라가 아니다.

《델리피나 전기》의 주인공, 로인이다!

주인공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소설 속 세계를 파괴시키려는 자를 없애는 것!

나는 라스로부터 이어받은 주인공의 의지를 떠올렸다.

“하아아아아압!”

있는 힘을 다해서 데르킨 백작의 안면에 주먹질을 먹였다.

뻐어어억!

경쾌한 타격 음이 울려 퍼졌다.

데르킨 백작의 얼굴이 등 뒤로 돌아갔다.

목뼈가 부러져 죽었어야 했지만, 데르킨 백작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 있었다.

그는 대미지를 입을수록 신체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설마 네가 이렇게까지 강해질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다. 역시…… 처음 봤을 때 없애 버렸어야 했어.”

데르킨 백작은 나를 보자마자 내 정체가 강시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역시 인물 정보 창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르킨 백작은 나를 일부러 살려 뒀다.

이유야 뻔했다.

자신을 대신해서 칠흑을 없애도록 만들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날 살려 둔 게 너의 치명적인 실수다, 데르킨!”

나는 다시 한번 녀석의 안면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데르킨의 얼굴 가운데가 크게 함몰되었다.

여기서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바로 놈의 가슴팍을 뻥! 차 버렸다.

뼈란 뼈는 전부 다 으스러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데르킨 백작은 빠르게 자신의 몸을 회복시켰다.

“흡!”

데르킨 백작이 들고 있던 검에서 연기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거기에 맞춰 나 또한 글레드를 꺼내 들었다.

화르륵!

순백의 불결이 검은 연기들을 물러서게 만들었다.

데르킨 백작은 글레드를 보면서 황홀에 빠진 사람의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멋진 불이군. 하지만 그 불은 나를 택하지 않았지.”

“네가 칠흑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야.”

“후후, 말 되는군.”

글레드는 최대한 아껴야 한다.

칠흑과의 전투에서 글레드를 너무 많이 소진해 버렸다.

그래도 나는 나은 편이었다.

라스는 자신의 능력을 장작으로 삼아 글레드의 불을 활활 태운 나머지 모든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만약 나도 라스처럼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칠흑의 퇴치에 모든 힘을 쏟았다면,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데르킨 백작에게 유리하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글레드가 다 소진되기 전에 데르킨을 없애야 해!’

시간은 내 편이 아니다.

오히려 데르킨의 편이다.

데르킨 백작의 심장 대신 자리 잡은 검은 태양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강해질 것이다.

그러기 전에 나는 어떻게든 놈을 처리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앞으로 세 번밖에 사용하지 못할 거 같은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한편 데르킨 백작은 나의 현재 상황을 대략으로나마 알아차리고 있는 모양인지 내게 이런 도발을 해 왔다.

“글레드를 더는 못 쓰는 건가? 아쉽군. 내 소환수들이 이 세계를 잠식시키기 전까지 심심풀이로 널 가지고 놀다가 죽이려고 했는데……. 벌써 게임이 끝나 버리면 아쉽지. 안 그런가?”

“네놈만 아쉽겠지.”

“여전히 입만 살았군.”

“입만 살았는지, 아니면 내 주먹도 살아 있는지 한번 직접 받아 보시지!”

있는 힘을 다해서 데르킨 백작의 앞까지 달려 나갔다.

오른 주먹에 글레드를 묻혔다.

그러나 데르킨 백작은 이번에는 내 공격을 흘려 넘겼다.

이전까지는 그냥 맞아 준 거였나?

어이가 없었다.

‘남은 횟수는 두 번!’

또다시 글레드를 꺼내 뒀다.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글레드 없이 데르킨 백작을 쓰러뜨릴 순 없었다.

어떻게든 글레드로 놈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해야 한다.

하지만 데르킨 백작은 영리하다.

녀석은 씨익 웃었다.

“글레드의 화력을 보아하니 이제 얼마 안 남았군.”

망할 녀석.

놈은 일부러 내가 글레드를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을 유도하고 있었다.

내게서 희망을 전부 앗아갈 속셈일 것이다.

알고 있다.

하지만 알면서도 방법이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주인공 보정이 기적을 일으켜 주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글레드의 숨결을 발동시켰다.

거대한 글레드의 불길이 데르킨 백작을 덮쳤다.

데르킨 백작은 자신의 검을 들어 글레드의 불길을 정면으로 응수했다.

얼마 안 남은 글레드를 최대한 끌어 모았다.

‘이제 정말 한 번뿐이야!’

데르킨 백작의 검이 글레드 앞에 재가 되어 사라졌을 때를 노렸다.

사력을 다해 데르킨 백작을 향해 몸을 날렸다.

“슬슬 좀 꺼져라, 데르킨!”

계속 치고받고 싸우고.

지겹지도 않나!

그러나 데르킨은 씨익 웃었다.

“사라지는 건 내가 아니라 너다, 로인. 아니, 강시언!”

데르킨 백작의 양손에 검은 불길이 형성되었다.

‘설마……!’

틀림없다.

저 녀석…….

‘칠흑의 불까지 사용할 줄이야!’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망했다!

나는 이번이 마지막 공격이다.

하나 데르킨 백작은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의 비장의 무기를 아껴 두고 있었다.

글레드 VS 칠흑의 불길.

하나 내가 지닌 글레드의 불길은 너무나도 약했다.

화르르르륵!

칠흑의 불길이 나를 덮쳤다.

“큭!”

남은 글레드로 공격이 아닌 방어를 택해야만 했다.

희망이…… 사라졌다.

설마 데르킨 백작이 ‘불’을 사용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줄은 몰랐다.

검은 불꽃은 백색의 불꽃을 점점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이대로 녀석에게 당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 녀석을 없애야 한다!

그것이…….

‘주인공의 사명이니까!’

-주인공 보정 효과가 발동합니다.

순간 데르킨 백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지?”

낸들 알겠나!

나조차도 어리둥절해하던 찰나였다.

갑자기 내 주변에 강렬한 화기가 형성되었다.

붉은 화기는 검은 불을 모조리 튕겨 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등장한 붉은 용.

나는 용의 이름을 있는 힘껏 외쳤다.

“벨라시오닉!”

-내 불을 사용해라, 로인! 내가 네 불의 장작이 되어 주겠다!

벨라시오닉의 몸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흰 불도, 검은 불도 아니다.

벨라시오닉의 붉은 불!

벨라시오닉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서까지 내게 마지막 힘을 줬다.

-불의 심장을 삼키겠습니까?

“물론!”

벨라시오닉이 나에게 남긴 마지막 보물이다.

불의 심장은 내가 삼키기 좋게 알약 형태로 변했다.

나는 이것을 힘 있게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꿀꺽 삼켰다.

-‘벨라시오닉의 불’을 획득했습니다.

-효과 : 타깃을 지정합니다, 그 타깃을 소멸시킵니다(단 한 번만 사용 가능합니다).

글레드가 생명의 불, 칠흑의 불길이 혼돈의 불이라면, 벨라시오닉의 불은 적을 영원히 멸하는 심판의 불이다!

오른손에 붉디붉은 화염이 형성되었다.

칠흑의 불길조차 집어삼킬 심판의 불이 내 손에 피어올랐다.

데르킨 백작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외쳤다.

“글레드를 뛰어넘는 불이라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것을 어떻게……!”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데르킨.”

나는 놈에게 이렇게 말해 줬다.

“주인공에게 불가능이 어디 있다고!”

심판의 불을 던졌다.

붉은 불은 데르킨 백작에게 옮겨 붙으며 녀석의 존재 자체를 지워 버리기 시작했다.

“로이이이인!”

데르킨 백작은 내 이름을 울부짖었다.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정립하고 자신이 원하는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했던 남자, 데르킨.

아니, 최백현.

그의 야망은 붉은 불에 의해 그대로 재가 되어 사라졌다.

* * *

모든 것이 끝났다.

데르킨 백작이 소멸됨과 동시에 이 세계를 잠식시켜 가던 칠흑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검은 구체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발을 들어 올려 검은 구체를 그대로 밟아 버렸다.

꽈직!

검은 구체는 연기로 변해 바람에 흩날려 사라졌다.

이것으로 칠흑은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칠흑은 살아 있는 생명체의 부정적인 감정을 먹으며 자라나는 존재다.

생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상, 칠흑은 언젠가 다시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시 칠흑과 싸우게 되더라도 괜찮다.

어둠과 마주해도 상관없다.

위기와 시련을 극복해 갈수록 우리는 계속해서 강해질 테니까.

그건 그렇고.

“……피곤하네.”

집에 가서 샤워하고 푹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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