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
디바인 생츄어리 (3)
루크의 낫과 제나드의 대검이 정면충돌했다.
힘과 힘의 대결에서 두 사람은 누구 하나 밀리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루크는 씩 웃었다.
“나를 이렇게까지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인물은 결코 흔치 않았는데…… 로인 말고 네가 처음이다!”
“별로 기쁜 말은 아니군.”
제나드는 무표정으로 루크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계속해서 대검과 낫의 충돌이 이어졌다.
두 사람의 거리가 벌어졌을 때, 레이피어를 든 리오나가 루크의 측면을 노렸다.
그러나 루크는 리오나의 검을 보지도 않고 받아 냈다.
“기습을 노린 거 같은데…… 미안하지만 내게 사각지대란 없어, 아가씨.”
“그래? 잘나서 좋겠네.”
리오나는 애초에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당할 녀석이었으면 진작 쓰러졌을 것이다.
레이피어로 낫을 튕겨 낸 리오나는 왼손을 뻗었다.
왼쪽 옷소매에 감춰져 있던 장치의 버튼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러자 작은 화살 세 발이 루크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깟 화살로 나를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
“미안하지만 그거, 평범한 화살이 아니야.”
화살에 각각 불과 얼음이 맺히기 시작했다.
강력한 마법이 걸려 있는 화살이었다.
“……!”
화살 두 개를 쳐 내는 데에는 성공한 루크였으나, 화염 마법이 걸려 있는 화살은 미처 피하지도, 쳐 내지도 못했다.
퍼어엉!
폭발의 여파로 인해 왼쪽 어깨의 반이 날아가 버렸다.
덕분에 왼팔이 너덜너덜해졌다.
빠르게 다시 몸을 복구시키려 했으나, 이번에는 용병계의 이단아, 얀이 루크를 방해했다.
“흐랴아아압!”
얀의 기다란 봉이 루크의 정수리를 노렸다.
루크는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얀의 봉은 타깃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귀찮은 녀석들……!”
루크는 거리를 벌린 뒤 몸을 수복시키려 했다.
그러나 제나드는 루크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리오나와 얀의 공격을 피한 루크에게 바로 일격을 가한 것이다.
낫을 들고 제나드의 공격을 간신히 막는 데에 성공한 루크였으나, 또다시 리오나의 레이피어가 루크의 오른팔로 날아들었다.
한 명의 공격을 막거나 흘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타자가 등장한다.
제아무리 루크라 하더라도 제나드, 리오나, 그리고 얀까지. 셋을 감당할 순 없었다.
제나드 하나만으로도 서로 비등비등한 싸움을 이어가던 루크였다.
여기에 실력자인 리오나와 얀이 가세하니 루크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그는 제나드를 도발하기로 했다.
“이렇게 비겁하게 싸워서 좋아? 응? 싸움이라는 건 말이야, 서로가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형태로 해야지. 이건 싸움도 아니고 일방적인 구타일 뿐이잖아. 안 그래?”
“…….”
제나드는 침묵했다.
그의 반응을 보자마자 루크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제나드를 설득할 수 있다!
……라고 생각했다면 크나큰 착각이다.
“비겁한 게 뭐 어때서?”
“뭐……?”
“잊었나? 우리는 용병이다. 돈을 주면 어떠한 일이라도 하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제나드는 대검의 끝을 루크에게 겨눴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빌어먹을 용병 녀석들!”
말이 통하지 않음을 깨달은 루크는 결국 최후의 선택을 하기로 결심했다.
“좋다! 니들이 이렇게 재미도, 의미도 없는 싸움을 계속 한다면야 나도 어쩔 수 없지. 너희들의 방식에 어울려 주마!”
루크가 택한 방식은 극단적이었다.
허리에서 꺼낸 다수의 칠흑의 조각들을 일제히 삼켰다.
얀은 루크를 가리키면서 리오나에게 물었다.
“쟤, 뭐 하는 거야?”
“보면 몰라? 칠흑의 조각 삼키고 있잖아.”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강해져?”
“……넌 진짜 바보구나.”
칠흑의 조각을 한꺼번에 여러 개를 삼키면, 일순간 강한 힘을 손에 얻을 수 있게 된다.
하나 그 이후에는 머지않아 죽게 된다.
루크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강함을 위해서, 그리고 전투를 통해 얻는 쾌락을 위해서 죽음을 택한 한 남자의 미친 행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좋아, 좋……아, 좋아! 바로 이거야! 이 감각, 이 기분, 이 고통! 아주 마음에 들어!”
루크는 낫을 떨궜다.
더 이상 낫을 들고 싸워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미 루크는 맨손만으로도 충분히 강했기 때문이었다.
“자, 이제 사냥의 시간인가!”
루크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제나드와 리오나는 로인을 통해 이미 들은 바가 있었다.
루크와 같이 칠흑의 조각을 단숨에 여러 개를 삼키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강함을 손에 거머쥐게 된다고.
갑자기 제나드가 리오나에게 물었다.
“리오나, 내가 기억을 잘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확인 차원에서 하나만 묻지.”
“네, 말씀하세요.”
“로인이 우리한테 저걸 말해 줄 때, 검은 심장이 여전히 약점으로 존재한다는 것도 말해 줬나?”
“네. 약점은 변함없다고 했었어요.”
“그렇단 말이지?”
제나드의 눈에 이채가 감돌기 시작했다.
“리오나, 그리고 거기 무식하게 힘만 센 놈.”
“얀이다, 얀! 제대로 이름으로 불러!”
“그래, 얀. 아무튼 너희 둘이 시간을 좀 끌어 줘. 10초…… 아니, 5초면 된다.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해결하마.”
리오나와 얀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 끌기 정도는 어렵지 않다.
리오나는 레이피어에 마나를 집중시켰다.
라크스 공작에게 배운 검기를 날렸다.
물론 라크스 공작의 것에 비교하면 위력은 한참 낮다.
그의 검기는 드래곤의 브레스마처 베어 낼 정도로 강력했으니 말이다.
루크는 리오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리오나에게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갔다.
그때, 얀이 봉을 키워 루크의 발을 노렸다.
일순간 루크의 움직임이 멈췄다.
“귀찮게 구는 녀석들……!”
다시 리오나를 노리려고 할 때였다.
“거기 미친놈, 내가 있다는 걸 벌써 잊었나?”
제나드의 목소리가 바로 코앞에서 들려왔다.
대검을 포기하고 맨손으로 루크의 바로 앞에 마주선 제나드.
“이놈이……!”
루크는 거대한 팔을 휘둘러 제나드를 공격했다.
검은 괴물의 두꺼운 팔에 비하면 빈약해 보이는 제나드의 팔.
그의 왼팔이 루크의 일격으로 인해 잘려 나갔다.
“그래. 왼팔 정도는 너 저승길 가는 데 선물로 주마. 대신…….”
제나드는 오른팔에 모든 힘을 집중시켰다.
“난 대신 네놈의 목숨을 받아 가마!”
푸욱!
조금의 어긋남 없이 제나드의 손이 루크의 심장을 뽑아 들었다.
“네, 네놈……!”
루크가 움직이기 전에 제나드는 그의 심장을 터트렸다.
꽈직!
루크의 몸이 크게 기울었다.
‘쿵!’ 소리와 함께 거대해진 루크의 몸은 다시 초라한 몸뚱이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뒤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허억, 허억……!”
제자리에 주저앉은 제나드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리오나가 다가와 빠르게 지혈을 시도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리셨어요!”
“……걱정 마라. 죽진 않을 테니까.”
“이 정도면 죽는 수준이에요! 거기 무식한 남자!”
“얀이라니까!”
“빨리 파이스를 불러와 줘요. 기억하죠? 성직자이면서 양아치같이 행동하는 용병 말이에요.”
“……알았어! 금방 불러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그래도 행동력 하나는 빠른 얀이었다.
* * *
라스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설마 카이딘, 너와 이런 식으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어.”
“…….”
라스와 카이딘은 둘도 없는 친구 관계다.
가끔 의견 충돌을 일으키긴 했지만,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무기를 겨눈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라스는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좀 더 빠르게 네 상태를 파악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내 불찰이다.”
들릴 리 없는 고해성사를 하는 라스.
잠식당한 카이딘은 롱 소드를 들고 빠르게 라스를 향해 쇄도했다.
릴리안의 마법과 엘라시아의 정령들이 카이딘을 막아섰다.
그러나 카이딘은 검 한 자루로 그녀들이 쏘아 보낸 마법을 전부 튕겨 냈다.
카이딘이 들고 있는 검은 안티 매직이 걸려 있는 레전드급 아이템이었다.
안 그래도 카이딘은 실력도 좋은데 아이템도 고급스러운 걸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카이딘을 적으로 두고 싸우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후웅!
카이딘의 검이 라스의 목을 노렸다.
그러나 라스는 살짝 허리를 숙이면서 카이딘의 공격을 흘려 버렸다.
공격에 실패한 카이딘은 라스에게 빈틈을 보였다.
하나 라스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충분히 반격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직 라스는 망설이고 있었다.
정말로 카이딘에게 공격을 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물론 다른 일행들 역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갈등보다 빠른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엘라시아가 라스에게 외쳤다.
“라스 님! 지금은 인정사정 봐줄 틈이 없어요! 카이딘 님은 라스 님이 적당히 봐주면서 상대할 수 있는 그런 상대가 아니잖아요! 라스 님이 가장 잘 아실 거예요!”
“……그래, 알고 있어.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카이딘의 검이 계속해서 라스를 노렸다.
그때, 릴리안이 속박 마법을 발동시켰다.
평소의 카이딘이었다면 릴리안의 속박 마법을 바로 감지하고 피했을 테지만, 라스에게 정신이 팔린 탓에 미처 릴리안의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엔드라도 릴리안의 속박 마법에 가세했다.
카이딘은 속박 마법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라스!”
힘에 겨워하던 릴리안이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오래 못 버텨! 빨리……!”
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칠흑의 조각에게 한번 잠식되면 보통은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그건 글레드라는 존재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이전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글레드를 가지고 있는 라스라면, 해당 사항이 없었다.
글레드를 꺼내든 라스는 카이딘에게 미리 경고했다.
“많이 아플 테니 참아라.”
글레드를 묻힌 오른손이 카이딘의 가슴에 닿았다.
“으아아아악!”
괴로워하기 시작하는 카이딘.
라스는 점점 더 강하게 글레드의 불길을 주입했다.
그러나 카이딘과 칠흑의 조각은 좀처럼 분리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잠식 단계가 생각보다 너무 높아!’
이미 3단계를 훨씬 뛰어넘은 상황이었다.
루크, 마리의 경우처럼 너무 깊게 융합되었다.
자칫 억지로 떼어 내려고 한다면…….
‘카이딘이 죽을 수도 있어!’
하나 글레드를 이용한 방법 말고 마땅히 다른 수단이 없었다.
라스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 구해 주마! 그러니까 너도 힘내라! 친구야!”
친구라는 외침을 들은 순간, 카이딘의 눈동자에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나에게서 당장 떨어져, 망할 칠흑 녀석아!”
글레드가 카이딘이 육체의 주도권을 되찾게 도와줬다.
“꺼지라고!”
카이딘의 등에서 검은 조각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그것을 보자마자 엘라시아는 검을 들고서 바로 조각을 깨뜨려 버렸다.
거친 호흡을 몰아쉬는 카이딘.
라스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죽다가 살아 돌아온 기분이 어때, 친구?”
카이딘이 라스에게 들려줄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런 기분, 두 번은 사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