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
전투 준비 (3)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데르킨 백작의 소환수, 드래곤.
놈은 입을 벌리고서 거대한 칠흑탄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펼쳐진 적들의 기습 공격.
벨라시오닉과 레이샤르가 거의 동시에 드래곤의 모습으로 외형을 변경했다.
-어딜…….
“……감히!”
두 드래곤은 마나를 이용해 장막을 펼쳤다.
터어엉!
수십 개의 칠흑탄이 드래곤들의 장막에 여기저기 튕겨 나갔다.
하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튕겨 나간 칠흑탄이 폭발하면서 동시에 나울을 초토화로 만들려고 했다.
내가 어떻게 키운 도시인데!
도시도 도시지만, 데르킨 백작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빤히 보였다.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회장이다.
“레이샤르 님! 회담 장소를 지켜 주세요! 제가 나서서 저 빌어먹을 도마뱀 녀석을 없애 버리고 오겠습니다!”
“부탁하네!”
도움닫기 자세를 취한 뒤 곧장 공중으로 튀어 올라갔다.
드래곤 클로를 발동시켰다.
얀이 했던 것처럼 드래곤 클로를 크게, 크게 키워 갔다.
“일단 이거 한 대 맞고 시작하자!”
후우웅!
드래곤 클로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찌이이익!
검은 드래곤의 한쪽 날개가 찢어졌다.
날개를 잃음과 동시에 검은 드래곤은 균형을 잃고 나울의 방벽을 무너뜨리면서 그대로 낙하했다.
나는 다시 지면에 착지해 녀석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검은 드래곤은 꼬리를 휘두르며 나를 경계했다.
그러나 꼬리 공격은 중간에 합류한 벨라시오닉의 방해로 인해 도중에 방해를 받고 말았다.
벨라시오닉이 검은 드래곤의 꼬리를 물어뜯었다.
검은 드래곤은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애초에 저 녀석은 칠흑의 조각이다.
고통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드래곤 클로로 검은 드래곤의 머리를 잘라 냈다.
툭!
거대한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발버둥을 치기 시작하는 검은 드래곤.
아직 완벽하게 해치운 건 아니다.
검은 심장을 노려야 한다.
심장이 있을 법한 위치를 향해 드래곤 클로를 꽂아 넣었다.
하지만 그 전에 검은 드래곤의 몸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검은 드래곤은 연기의 형태로 돌아가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젠장……!”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열한 번째 칠흑의 조각을 깨뜨릴 수 있었을 텐데!
검은 드래곤이 나타났다는 건…… 다시 말해서 데르킨 백작도 이 근처에 있을 거란 뜻과도 같았다.
소란이 벌어진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레드 라인 기사단과 블루로즈단이 내 쪽으로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드레인이 내게 설명을 요구했다.
“단장! 이게 어찌된 일이야?”
“근처에 데르킨 백작이 있습니다.”
“뭐?”
일일이 모든 사정을 다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용병과 기사들에게 외쳤다.
“주변을 샅샅이 수색해라! 칠흑의 세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추종자와 검은 괴물은 찾는 즉시 바로 제거하도록! 데르킨 백작을 발견할 경우, 나에게 위치만 알려 주고 놈의 발목을 붙잡는 형태로만 전투를 펼쳐라! 놈은 내가 쓰러뜨리겠다!”
“예!”
병력들이 빠른 속도로 주변에 흩어졌다.
벨라시오닉 또한 공중으로 치솟아오르며 데르킨 백작이 어디 있는지 수색에 들어갔다.
레이샤르도 벨라시오닉과 같이 움직이려 했지만, 내가 그를 만류했다.
“레이샤르 님은 나울에 남아 사람들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우리를 밖으로 유인하는 것이 놈들의 작전일지도 모르니까요.”
나울을 비우게 되면, 틈을 노렸다가 나울을 급습해 올 가능성도 있다.
나는 이런 것조차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다.
레이샤르는 단번에 내 의도를 파악한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았다. 하지만 위험할 거 같으면 나에게 바로 알려라. 나도 도와주마.”
“감사합니다, 레이샤르 님!”
나울은 레이샤르에게 맡겨 두면 안심이다.
그리고 회장 안에는 라스 일행도 있다.
레이샤르가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설명해 주면, 라스 일행은 알아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찾아서 하게 될 것이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데르킨 백작, 어디 있냐!’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그러나 녀석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도망친 건가!’
내 생각이 짧았다.
정상회담을 나울에서 진행한다는 사실이 외부로 퍼질 경우, 분명 칠흑 놈들이 공세를 펼쳐올 거란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어야 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나답지 않은 실수였다.
* * *
비록 적들의 공습을 예상 못 했던 크나큰 과오를 저질렀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사상자가 없다는 것이다.
재산 피해는 여기저기 속출하긴 했지만, 그건 웨일 상단과 로그 상단이 무상으로 해결해 주겠다고 나선 덕분에 일단 무마를 시킬 수 있었다.
라크스 공작은 나를 찾아왔다.
“고생했네, 로인. 자네가 아니었으면 칠흑과 제대로 싸워 보기도 전에 모든 게 끝나 버렸을 거야.”
“아닙니다. 그보다 설마 데르킨 백작이 나울까지 노릴 줄은 몰랐습니다. 이것까지 모두 계산했어야 했는데……. 제 잘못입니다.”
“잘못은 자네 한 명만 저지른 게 아니야. 우리 모두가 적이 기습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간과한 거지. 너무 자신을 탓하지 말게.”
나울은 안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깨달은 게 있었다.
이제 델리피나 대륙에 안전한 곳은 없어졌다.
칠흑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기만 하면 언제든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점점 더 상대하기 까다로워지네.’
하긴 상대하기 쉬우면 어찌 그걸 최종 보스전이라고 할 수 있겠나.
그렇다고 우리만 공격받을 순 없다.
어떻게든 칠흑이 있는 곳을 찾아내야 한다.
찾아서…….
‘반드시 없애야 해!’
* * *
나울 공습 사건이 벌어진 후 3일째가 되던 날이었다.
파랑새는 내가 있는 사무실을 찾아왔다.
“단장, 급한 소식이야.”
“뭔데요?”
매번 마일이 하던 일을 파랑새가 하니까 뭔가 굉장히 어색해 보였다.
파랑새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칠흑이 있는 곳을 찾아냈어.”
“어디인가요?”
“디바인 생츄어리. 어디인지 알고 있어?”
“네, 알다마다요.”
벨레너의 13난제 중 마지막 난제.
그것이 바로 디바인 생츄어리다.
‘신이 머물다 간 자리’라 불리는 일종의 성소다.
‘설마 그런 곳에 있을 줄이야.’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
성소에 어둠 그 자체인 칠흑이 있다니.
‘본거지 위치 선정이 참 기가 막히네.’
그래도 반대로 생각하면 머리가 좋은 것일지도 몰랐다.
누가 칠흑이 신의 성소에 터전을 잡을 거라고 생각하겠나.
《델리피나 전기》를 독파한 나조차도 디바인 생츄어리에 칠흑이 숨어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위치는 다른 사람들한데 다 공유해 줬나요?”
“아직. 마일이 단장한테 먼저 물어보라고 하더라고. 물어봐서 단장이 괜찮다고 한다면 이 정보를 모두한테 공유할 거래. 어떻게 할 거야?”
“마일의 말대로 해주세요.”
“공유하는 쪽으로?”
“예. 그리고 디바인 생츄어리에서 가장 가까운 요새에 모든 병력들을 집결시켜 달라는 말도 같이 전해 주세요. 아, 너무 티가 나게 움직여선 안 된다는 말도 꼭 하셔야 합니다. 은밀하게. 최대한 칠흑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군대를 움직여야 해요.”
“오케이. 알았어. 그대로 전해 줄게.”
나는 사무실을 나섰다.
드레인과 게럴을 불러 블루로즈단과 레드 라인 간부들을 소집하게끔 했다.
제나드와 첸버, 리오나, 드레인, 그리고 게럴이 한 자리에 모였다.
나는 이들에게 파랑새로부터 전해 들은 정보를 들려줬다.
“칠흑이 디바인 생츄어리에 있다고 합니다.”
“왜 거기에…….”
“아니, 신의 성소에 칠흑이 있다고?”
“많고 많은 장소 중에 왜 거길 택했대?”
그걸 내가 알 리가 있겠나.
아무튼 중요한 건 칠흑이 그곳에 있다는 것이다.
제나드가 살짝 손을 들더니 나에게 물었다.
“그 정보, 확실한 거야?”
“예, 확실합니다.”
베르투의 정보는 어긋남이 없다.
정보력에 관해서만큼은 베르투를 절대적으로 신용해도 된다.
그다음으로 첸버가 두 번째 질문을 해 왔다.
“그럼 거기가 최후의 격전지가 되겠군?”
“예, 매우 높은 확률로요.”
그래서 나는 이들을 모은 것이다.
“일주일 안으로 모든 출정 준비를 마칩니다. 이것이 최후의 전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각 용병들, 기사들에게 출정에 오르기 전까지 각오 단단히 해 두라고 하세요. 그리고 어쩌면 살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될 수 있으면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라는 말도 하고요.”
“가족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지?”
이번에도 제나드의 질문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개인에게 전적으로 맡기겠습니다.”
내가 단장이긴 하지만 그런 것까지 책임져 주진 않는다.
그리고 가족이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내 가족들은 델리피나 대륙에 없다.
현실 세계에 있다 보니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 * *
회의를 마친 후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였다.
“혼자서 뭐 하게?”
뒤에서 리오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 닦고 잠이나 잘까 생각 중이야.”
“최후의 전투를 앞두고?”
“최후의 전투라고 해 봤자 아직 며칠은 남았으니까. 그보다 너는? 라크스 공작님하고 레미 안 보러 가도 돼?”
“공작님은 지금 누구보다도 바쁘게 움직이고 계실 테니까. 굳이 내가 찾아가 봤자 방해만 될 거야. 그리고 레미도 공작님 따라서 여기저기 다니느라 정신이 없는 거 같고. 만나더라도 디바인 생츄어리에서 만나게 되겠지.”
전장에서 가족들을 만나는 기분은 어떨지 잘 상상이 안 간다.
그래도 서로 적으로 만나는 것도 아니고, 같이 공통된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힘을 합쳐 싸우는 거니까…….
어쩌면 가족과 함께 싸운다는 생각이 리오나에게 더욱 많은 힘을 실어 주게끔 만들지도 모른다.
“넌 칠흑과의 전투가 끝나면 어떻게 할 거야?”
리오나의 직접적인 질문이었다.
칠흑과 전투를 끝낸다.
그리고. 그리고…….
……솔직히 생각해 본 적 없다.
처음에는 무조건 내가 살던 세계로 돌아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움직였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도 흐릿해졌다.
일단 지금 당장 살아남는 일부터 해결하자는 심산으로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현실 세계로의 귀환이라는 걸 금세 깜빡하게 되고 만 것이다.
리오나의 말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전투가 끝나고…….
나는 현실 세계로 돌아가게 되는 걸까?
어차피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 성과만 있으면 나는 언제든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쥐게 될 것이다.
돌아가면…… 델리피나 대륙과 앞으로 볼 일은 없어지겠지.
델리피나 대륙에서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쪽 세계에서 다시 델리피나 대륙으로 넘어오려면 처음에 차원 이동을 할 때 사용했던 마력과 상응하는 마력이 필요하다고, 세올라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살던 현실 세계에는 그런 마력은 없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 문명에 마법 따위는 미신 취급만 받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리오나의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내가 낸 대답은 이거였다.
“일단 끝나고 생각해 볼게.”
지금은 선택이 아닌 보류를 고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