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227화 (227/240)

# 227

전투 준비 (1)

스타폴의 지도자 자격 증거를 가져온 우리들.

마일은 손등에 박힌 문신을 가주들에게 보여 줬다.

“여기 있습니다.”

“오……!”

“설마 진짜로 해낼 줄이야…….”

여기저기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가주들은 우리가 성공하지 못할 줄 알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이번에 시험장에 도전한 우리 일행들의 스펙을 보라.

소설 속 주인공인 라스뿐만이 아니라 하이 엘프인 엘라시아, 그리고 나까지 있다.

마일하고 반드도 실력이 안 좋은 녀석들은 아니니까.

나는 이번 도전이 당연히 성공할 줄 알았다.

클라우드 자이로는 다른 가주들을 쭉 훑었다.

“새로운 지도자의 탄생이오.”

“규율에 따르는 수밖에.”

“클라우드 이튼, 당신을 우리들의 지도자로 인정하겠소.”

가주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마일에게 예를 표했다.

그러나 마일은 가주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칠흑과의 전투가 끝난 후, 저는 다시 베르투의 대현자, 마일로 돌아갈 겁니다. 그동안 임시로 지도자 역할을 맡을 생각이니, 전투가 끝난 다음에는 다시 가주 여러분들께서 스타폴을 통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지도자의 자격을 가졌는데, 그 자리를 포기하겠다니요!”

가주들은 반발했다.

이런 반발이 나올 거라는 건 이미 우리들도 알고 있었다.

마일은 이들을 바라보면서 딱 한마디를 했다.

“지도자의 명령입니다.”

“…….”

“…….”

가주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입을 닫았다.

‘명령’이다. 이 한 마디가 주는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스타폴의 지도자 자격을 가진 상태에서 이렇게 말하니, 제아무리 힘 있는 가문의 가주라 하더라도 마일에게 뭐라 따질 수가 없었다.

클라우드 자이로는 가주들에게 말했다.

“지도자의 명령은 절대적이오. 우리가 뭐라 반발할 만한 사항은 아닌 것 같소.”

“하지만……!”

“규율을 어길 셈이오?”

“…….”

가주들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지도자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이것은 스타폴의 모든 상위 법안의 위에 놓인 사항이었다.

마일 본인이 스스로 칠흑과의 전투가 끝날 때까지만 스타폴을 지휘하겠다고 그렇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면 아무리 불합리하다 해도 마일의 말대로 해야 한다.

세 번의 시련을 견디면 45개국의 힘을 거느릴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된다.

만약 마일이 아니라 악인이 지도자의 증명을 손에 넣었더라면…….

델리피나 대륙은 큰 전란에 휩싸일 것이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세 번의 시련이 존재하는 것이다.

악인이라면, 혹은 스타폴을 이용해 델리피나 대륙을 차지하려고 하는 자였다면, 이미 태양의 방과 심연의 방에서 걸러졌을 것이다.

마일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기에 심판의 시련까지 무사히 통과를 한 거고 말이다.

‘사실은 내가 강제로 통과시켜 줬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 테지만 말이다.’

자기 자랑이 될 수 있었기에 나는 일부러 입을 다물었다.

결과만 좋으면 된 거 아닌가.

* * *

마일이 당분간 스타폴을 맡게 되어 버린 탓에 문제가 하나 생겨 버렸다.

내 옆에서 정보원 역할을 수행해 줄 사람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그게 신경이 쓰였는지, 마일은 나에게 베르투의 48현자 중 한 명을 붙여 주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믿을 만한 사람을 내 전담으로 임명하고 싶었다.

그 사람은 바로…….

파랑새다.

“나보고 다시 현자를 하라고?”

파랑새는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재차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베르투의 현자로 다시 평생 복귀하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임시로’입니다.”

“그 임시라는 기간이 언제까지인데?”

“클라우드 이튼이 다시 마일로 바뀌는 순간요.”

칠흑과의 전투가 끝날 때까지다.

나울로 돌아온 나는 그간의 일들을 모두 파랑새에게 알려 주려 했다.

하지만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파랑새는 나와 반드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역시 전직 현자였다.

“하, 현자가 싫어서 은퇴를 했던 건데…….”

“부탁드릴게요.”

“왜 하필 나야?”

파랑새는 그게 궁금한 듯했다.

궁금해할 만도 하다.

현역 현자들을 놔두고 은퇴한 파랑새를 지목했으니 말이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믿을 만하니까요.”

나는 파랑새를 전적으로 신뢰한다.

여태껏 파랑새는 나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기밀 정보를 은폐한 적은 있어도 적어도 나에게 거짓 정보를 흘릴 사람은 아니다.

경험을 통한 신뢰를 바탕으로 파랑새를 나의 정담 현자로 임명하고 싶었다.

파랑새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어차피 블루로즈단이 개편되면서 내가 할 일도 현저하게 줄어들었으니까. 안 그래도 ‘혹시 나, 짤리는 거 아닌가?’ 하고 걱정하던 찰나였거든.”

“하하하. 안 짤려요. 단장인 제가 말하는 거니까 믿으셔도 됩니다.”

“오, 그래? 그렇다면 더더욱 로인 단장의 제안을 받아들여야겠네. 원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한테 미리 잘 보여 둬야 하는 법이거든.”

사회에서의 생존 법칙 중 하나다.

이렇게 해서 파랑새는 당분간 현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마일이 여러 가지를 인수인계해 줄 거예요. 당분간 집중 교육을 받으면 됩니다.”

“오케이, 알았어.”

좋아, 현자 문제는 해결했고.

이제 다른 문제를 해결하러 가 볼까.

나는 라스 일행에 모여 있는 숙소로 향했다.

카이딘이 없어진 탓에 현재 라스 일행은 이제 다섯 명이 되었다.

고작 한 명 빠진 것에 불과한데 뭔가가 많이 비어 보였다.

‘카이딘의 존재가 크긴 컸나 보군.’

하기야 이 일행의 분위기 메이커였으니 말이다.

가장 먼저 라스가 반응했다.

“로인 씨, 무슨 일이십니까?”

“엘라시아랑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엘라시아는 내게 물었다.

“둘이서만 할 이야기인가요?”

“아니, 여기 있는 모두가 들어야 할 이야기야.”

굳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장소를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바로 내 목적을 이야기했다.

“이제 베라를 엘라시아와 만나게 해 주려고 합니다.”

“네……?”

라스 일행의 반응은 전부 같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한 반응이었다.

맞다. 이건 말도 안 되는 행위다.

릴리안이 입을 열었다.

“그 엘프 아가씨, 고집이 보통이 아니던데. 만약 엘라시아를 보는 순간 타임 그레이브에서 그랬던 것처럼 엘라시아를 무조건 데려가야겠다고 고집을 피우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릴리안에 이어 엔드라도 의견을 보탰다.

“저도 릴리안 님의 생각과 같습니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안 그래도 한 명 한 명의 전력이 아쉬운 와중에 베라 양까지 잃을 순 없습니다. 차라리 칠흑과의 전투가 끝날 때까지 서로 안 만나게 하심이…….”

“그게 힘들 거 같아서 이런 말을 꺼내는 겁니다.”

나도 그 생각을 안 한 게 아니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엘라시아와 베라는 결국 만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운명이다.

전장에 투입되면 서로가 정신없어진다.

그러다 보면 베라는 엘라시아의 모습을 뒤늦게나마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전투가 한창 벌어질 때 베라가 엘라시아를 데려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더 큰일이지 않은가.

문제가 터질 것 같은 폭탄은 차라리 칠흑과의 전면전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그런 위험성을 제거하는 편이 좋다.

이것이 내가 내린 판단이었다.

잠자코 있던 라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로인 씨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라스 일행은 경악했다.

설마 라스가 내 편을 들어 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엘라시아를 베라와 만나게 해선 안 된다, 만나게 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간에 둘 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긴 하니까.

결정은 엘라시아에게 맡기기로 했다.

엘라시아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베라와 만나겠어요. 하지만 전 베라를 설득할 자신이 없어요. 일단 칠흑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서 다 말해 줄 생각이긴 하지만……. 이건 베라도 다 알고 있는 것들이잖아요?”

“그렇지.”

“베라는 칠흑이 델리피나 대륙을 위협한다는 걸 알면서도 억지로 저를 데려가려고 했어요. 그런 베라가 과연 이제 와서 제 말을 들어 줄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

나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내가 설득할 수 있어.”

“로인 님이요? 어떻게요?”

“나만 믿어.”

지금은 일일이 다 이야기해 줄 시간이 없다.

귀찮기도 하고 말이다.

나를 믿고 안 믿고 또한 엘라시아의 몫이다.

엘라시아는 또 다시 결정을 내렸다.

“좋아요. 가 보죠.”

엘라시아가 결정을 내렸으니…….

베라와 담판을 지을 차례다.

* * *

엘라시아와 나는 블루로즈단 본거지에 있는 내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머지않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로인 단장님, 접니다.”

베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라시아의 몸이 경직되었다.

이마에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베라가 굉장히 무섭게 느껴지나 보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들어와.”

문을 연 순간, 베라의 모든 행동이 정지했다.

“아가씨……!”

“아, 안녕, 베라? 좋은 아침이지?”

‘아침 아니야.’라고 태클을 걸고 싶었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참아 냈다.

베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가씨가 왜 여기 계신 겁니까?”

나는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하기로 했다.

“라스 일행 중 한 명이 엘라시아야.”

“듣지 못했습니다만.”

“아니, 넌 이미 들은 적이 있어.”

“제가요? 들은 적이 있다고요?”

“심지어 만나기까지 했지. 단 타임 그레이브 때, 엘라시아와 만났던 일을 모두 잊게 만들었어. 내가 벨레너에게 부탁했지.”

“어째서 그런 짓을……!”

“지금처럼 반응할까 봐.”

베라가 나를 얼마나 원망할지 다 알고 있다.

알면서도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베라를 속이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다.

진실이다.

그러기 위해선 그동안 베라에게 감춰 왔던 사실을 먼저 오픈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베라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어서 그런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도 예전처럼 무턱대고 엘라시아를 데려가겠다는 생떼를 안 부려서 참 다행이다.

일단 대화는 통할 것 같이 보였다.

“앉아서 이야기 좀 나눠 볼까?”

“……만약 아가씨를 데려가겠다고 한다면 또 저번처럼 제 기억을 지울 건가요?”

“아니, 지금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 벨레너가 죽었으니까.”

이곳은 타임 그레이브가 아닌 데다가 벨레너의 죽음으로 인해 시간 조작으로 베라의 기억을 조종할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즉.

‘이판사판이다!’

여기서 내가 베라를 설득하지 못하면 끝이다.

엘라시아와 베라, 두 하이 엘프의 전력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베라에게 먼저 물었다.

“하고 싶은 말 있어?”

“물론이죠.”

베라는 딱 잘라 말했다.

“엘라시아 아가씨를 데려가겠습니다. 지금 당장.”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 하더라도?”

“네.”

이 완고한 고집은 타임 그레이브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군.

엘라시아가 옆에서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나한테 그 흔들리는 눈빛으로 묻는 듯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다 생각이 있으니까.

“네가 하이 엘프의 마을로 돌아가도 칠흑이 이 세상을 잠식시켜 버리면 끝인데?”

“제 임무는 세계를 지키는 게 아니라 엘라시아 아가씨를 하이 엘프의 마을로 데려가는 겁니다.”

“네가 떠나면 ‘케프리’는 어떻게 하게?”

“……!”

내가 준비한 비장의 무기…… 아니, 인질.

그 정체는 바로 ‘케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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