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223화 (223/240)

# 223

지도자의 자격 (1)

클라우드 자이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방금…… 뭐라고 했느냐?”

“승계 시험을 보겠다고 했습니다.”

가주들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승계 시험이 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난리인지 모르겠다.

그냥 ‘왕위를 계승 중입니다, 아버지.’ 같은 멋들어진 말이나 하고 의식 같은 것만 치르면 되는 거 아닌가?

하나 이건 내 착각이었다.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생긴 건가?”

클라우드 자이로의 입에서 ‘목숨’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가문 승계에 목숨까지 바칠 일이 있나?

내가 생각하는 그런 승계 방식이 아닌 것 같다.

마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칠흑에게 삼켜 죽으나, 승계 시험을 보다가 죽으나, 어차피 둘 다 똑같다면 그나마 확률이 높은 쪽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게 마땅치 않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의…… 가주님의 가르침이었고요.”

“잘도 기억하고 있군. 잊었으리라고 생각했건만.”

“잊을 리가 없죠. 가주 자격을 승계받기 위해서 밤낮 가리지 않고 훈련과 교육을 거듭해 왔으니까요.”

그런 과정에서 승계 과정을 포기하고 현자의 길을 택한 건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솔직히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뭐, 개인의 선택은 존중해 주는 게 좋으니까.

취향도 존중해 주는데. 선택이라고 존중 못해 줄까.

가주들은 하나둘씩 동요하기 시작했다.

자이로조차도 동요하고 있는데, 그들이라고 별수 있을까.

결국 여론은 마일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짧은 회의 이후 자이로가 대표로 회의의 결과를 말해 줬다.

“좋다. 너의 승계 시험 도전을 정식으로 인정하겠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무엇입니까?”

“클리어 조건은 심판의 방까지다.”

“…….”

심판의 방은 또 뭐야?

《델리피나 전기》에는 나오지 않았던 내용들이다.

애초에 스타폴이라는 국가 자체도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45개국이 모여 있는 연합국이다 보니 스타폴이 병력을 움직이려면 수많은 이해관계들을 정리하고 나서야 한다.

그러다 보니 스타폴은 군대를 거의 일으킨 적도 없었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도 자주 언급되지 않았던 것이다.

마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도전은 너 혼자 할 텐가?”

“물론입니다.”

잠깐만.

나는 방금의 대화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굳이 혼자 하겠냐는 질문을 할 필요가 있나?

설마 이 도전, 우리도 참가할 수 있는 건가?

내 추측은 여기까지 도달했다.

모르면 뭐다?

물어보면 된다.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어르신들.”

“어, 어르신?”

“저자는 대체 뭔가! 감히 우리를 동네 옆집 할아버지를 본 것처럼 부르고!”

비유 참 적절하네. 안 그래도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역시 가주는 괜히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자이로는 흥분하는 가주들을 진정시켰다.

“자네가 로인인가?”

“예, 어르신……이 아니라……. 가주님.”

여기저기서 가주님, 가주님 그러니까 나도 왠지 가주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뭐…… 사실은 ‘어르신들’이라고 말한 시점부터 이미 다 끝난 거 같지만 말이다.

“할 말이라도 있나 보군.”

“예. 궁금한 게 있어서요.”

“말해 보도록.”

“방금 ‘혼자서 할 텐가?’라고 물어보셨잖아요. 들어 보니까 승계 시험은 굳이 마일 혼자만 봐야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 같은데…… 맞습니까?”

자이로의 눈이 가늘어졌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자로군. 아니면 눈치가 빠른 건가?”

“제 자랑 같이 들릴지도 모르시겠지만, 둘 다입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자이로.

그는 내 물음에 관한 대답을 들려줬다.

“자네 말이 맞다. 승계 시험은 7개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자와 그자를 도와줄 수 있는 동료들이 같이 볼 수 있는 시험이다.”

“인원 제한이 있습니까?”

“없다.”

굉장히 좋은 시스템 같은데?

하나 마일의 표정은 굉장히 굳어 있었다.

일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 가고 있다는 뜻을 나타내는 표정이었다.

왜지?

오히려 나는 의문이 들었다.

혼자 하면 힘들잖아, 다 같이 하면 금방 클리어할 수 있을 텐데.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모르겠다.

한편 자이로는 하지 못한 말들을 마저 이어 갔다.

“동료들의 참가를 허용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승계 시험은 가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를 보는 과정이지. 승계 시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대동하는 것 또한 ‘얼마나 두터운 인망을 가지고 있는가.’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그래서 승계 후보자와 그 후보자를 도와줄 수 있는 동료들의 참가를 무제한으로 허용하고 있지.”

그런 깊은 뜻이 있을 줄이야!

……라고 감탄할 줄 알았나.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승계 시험은 단순히 인원수만 많다고 클리어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확실하다.

만약 인원수로 밀어붙일 수 있는 시험이라면, 참가자 수에 제한을 뒀을 것이다.

인망이니 뭐니 이런 거 없이 그냥 돈으로 사람을 매수해서 ‘제 동료입니다.’라고 속이고 대동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그런 것조차 암묵적으로 허용한다는 건, 인원수가 의미가 없음을 뜻한다.

정말로 도움이 되는 자들을 데려가야 한다.

나는 자이로의 말을 그렇게 해석했다.

“결정은 승계 후보자가 정하도록.”

“…….”

마일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나를 슬쩍 바라봤다.

나는 그저 고개를 무겁게 끄덕여 줄 뿐이었다.

함께 하겠다는 뜻이었다.

마일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인원수는 별도로 꾸린 다음에 오늘 내로 승계 시험장으로 향하겠습니다.”

* * *

승계 시험에 참가하기로 결정된 인원은 나, 라스, 엘라시아, 반드, 그리고 주축인 마일.

이렇게 총 다섯 명이었다.

라크스 공작과 그의 부관은 여기에 남아서 가주들을 설득하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 보겠다고 말을 전했다.

어차피 인원수가 큰 의미가 없는 시험이다.

둘이 빠진다 해도 차이는 없을 것 같았다.

시험장까지 말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외진 곳에 있었다.

“근데 마일, 승계 시험이라는 게 뭐야?”

난 아직도 마일에게 승계 시험에 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마일은 전방을 주시하면서 설명을 이어 갔다.

“각 가문의 가주가 되기 위해선 아시다시피 승계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승계 시험장에 가서 가주의 자격을 증명하는 문신을 몸에 새기고 오면 되죠. 아까 가주분들의 몸에 새겨진 문신들을 보셨을 겁니다. 그것이 가주의 증명입니다.”

“그래? 몰랐네.”

“스타폴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가주의 증명은 두 개의 방을 통과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태양의 방, 그리고 심연의 방. 이렇게 둘이죠.”

“두 개? 간단하네.”

“하지만 사실 두 개가 끝이 아닙니다. 숨겨진 방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게 바로 심판의 방이죠.”

“두 개만 클리어하면 되는 거 아니야? 굳이 세 번째 방까지 도전해야 할 이유가 있나?”

“있습니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죠.”

마일은 고삐를 당기며 말의 속도를 늦췄다.

여기서부터는 험난한 산길이 시작된다.

앞장서던 마일은 아까 마저 하던 말을 이어 갔다.

“세 번째 방을 클리어하는 순간, 7개 가문의 위에 설 수 있는 지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스타폴의 지도자’ 자격을 얻게 되는 거죠.”

보너스 스테이지 같은 느낌이었던 세 번째 방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마일은 과거의 일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받은 교육은 단순히 ‘클라우드가의 승계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세 번째 방을 클리어하기 위한 교육과 훈련을 받아 온 것이었죠.”

아들을 스타폴의 지도자로 키울 생각이었군.

“하지만 아버지는 다른 가주들에게는 이 목적을 숨겨 왔습니다. 당연했죠, 만약 이 사실이 밝혀진다면 다른 가문들에게 많은 견제를 받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단 한 번도 저택 바깥에 나가 보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훈련을 거듭해 왔습니다.”

도중에 엘라시아가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그러면 그 훈련이 힘들어서 가문을 나오게 되었나요?”

“아니요. 훈련 자체는 견딜 만했습니다. 인간이라는 게 아무리 힘든 상황이 와도 조금만 버티면 금세 적응하는 그런 존재 아닙니까? 저도 그 훈련에 적응해 버렸죠.”

현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일이 어째서 이토록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럼 여기서 또 질문.

“버틸 만했다며. 근데 왜 스스로 승계 시험을 포기한 거야?”

잠시 뜸을 들이던 마일은 이렇게 답했다.

“반항기었거든요.”

“반항……기?”

“네, 아버지의 꼭두각시가 되는 게 싫었습니다. 제 인생은 제가 스스로 개척하고 싶었거든요. 거기에 환멸을 느껴서 클라우드가를 빠져나온 겁니다.”

간단한 이유였다.

하지만 동시에 납득이 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누군가의 설계에 따라 고스란히 움직이는 그런 건 나의 삶이 아니다.

마일은 자기 자신의 삶을 위해 떠났던 것이다.

도중에 마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스스로 박차고 나왔던 자리였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 운명이었던 것일지도 모르죠.”

“미안해, 마일.”

나는 마일에게 사과해야만 했다.

“내가 괜히 너를 끌어들이게 만들었어. 이럴 줄 알았으면 널 여기로 데려오지 말걸 그랬는데.”

“괜찮습니다.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제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마일이 이렇게 말해주니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마일은 나를 위해서 성심성의껏 도움을 줬던 캐릭터다.

마지막까지 마일은 날 돕기 위해 움직여 주고 있었다.

그에 대한 보답은 반드시 하리라.

나는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 *

산을 오르고 올랐다.

해가 저문 탓에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산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중간에 몬스터들의 습격이 있었지만, 우리 다섯을 없애려면 적어도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되어 강화된 몬스터 군단 정도는 데려와야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불편한 잠자리를 가진 뒤 우리는 다시 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산 정상에 도달했을 때였다.

엘라시아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 뭔가가 보여요.”

엘프는 인간에 비해 시력이 배로 뛰어나다.

우리보다 먼저 무언가를 발견한 엘라시아.

마일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시험장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각오를 단단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알고 있어.”

아직도 클라우드 자이로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냐고.

마일에게 물었던 말이지만, 마일과 함께 시험에 도전하는 우리들에게도 적용되는 물음이었다.

‘각오는 소설 속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쭉 해 오던 거였어!’

목숨을 걸고 차원을 넘은 적도 있고, 데르킨 백작과 칠흑을 상대로 죽어라 싸웠던 적도 있었다.

이런 경험들 덕분인지 나는 어느새 강심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일행들에게 손짓했다.

“후딱 클리어하고 돌아갑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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