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222화 (222/240)

# 222

배신자 (2)

‘클라우드 이튼…… 그게 마일의 이름이었지.’

성은 같다.

하지만 마일이 과연 스타폴을 지탱하는 7개의 가문 중 하나인 클라우드 가문의 사람인지까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져 갈 무렵, 라크스 공작이 다시 한번 나에게 물었다.

“자네는 갈 텐가? 라스는 가겠다고 했으니, 로인 자네만 결정하면 되겠군.”

대답이야 뻔했다.

“가겠습니다.”

스타폴의 힘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무조건 나도 힘을 보태야 한다.

라크스 공작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럼 출발은 내일 하도록 하지.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말이야. 하룻밤 정도 머물 만한 곳은 없나?”

“숙소는 제가 잡아 드리겠습니다. 라비! 와서 라크스 공작님하고 라스 씨를 손님맞이용 숙소로 안내해 드려. 가장 좋은 곳으로.”

라비는 내 말에 알았다고 답하며 이들을 안내했다.

출발은 내일인가…….

하루라도 시간을 벌게 되었으니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회의를 마치자마자 나는 마일을 찾았다.

마일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내 앞에 등장했다.

“부르셨습니까, 로인 님.”

“방금 우리가 여기서 회의하는 거, 다 들었겠지?”

“예.”

“좋아, 너한테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데. 일단 물어볼게.”

이때까지도 나는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스타폴의 클라우드 가문과 너의 클라우드라는 성이 같던데. 관계가 있는 거야?”

대답은 둘 중 하나다.

Yes or No.

마일이 택한 대답은…….

“예, 전 클라우드 가문의 사람입니다.”

Yes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설마 클라우드 가문의 한 사람이 바로 내 곁에서 일하고 있을 줄이야. 전혀 예상 못했다.

“왜 지금까지 정체를 숨겼던 거야?”

“말씀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베르투의 현자가 되는 순간, 이전에 가지고 있던 저의 모든 사회적 지위와 지식을 전부 리셋(Reset)한다고 말입니다.”

속세의 굴레에서 벗어나 베르투의 현자로 새롭게 태어난다.

이런 의미를 가진 과정이었다.

그래서 베르투의 현자들은 자신의 본명을 버린다.

그리고 새롭게 부여 받은 코드 네임으로 활동한다.

하나 이름을 버렸다 하더라도 자신의 본명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기억마저 버리는 건 아니었다.

현자들은 자신의 정체를 다 알고 있다, 그저 말하지 않을 뿐.

나는 마일에게 물었다.

“네가 힘을 써 줄 순 없어? 클라우드 가문의 사람이라면, 우리가 말하는 것보다 네가 말하는 게 더 잘 통할 거 같은데.”

“소용없을 겁니다. 그쪽에선 이미 저를 ‘배신자’ 취급하고 있거든요.”

“배신자라니? 가문을 배신한 적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요. 없습니다.”

“근데 왜 배신자 소리를 듣는 건데?”

“가문을 승계하지 않아서입니다.”

승계할 수 있을 만한 자격이 될 정도라면…….

‘꽤 높은 지위였다는 뜻인데?’

내가 묻기도 전에 마일은 알아서 나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줬다.

“저는 현 클라우드 가문의 가주, 클라우드 자이로의 장남입니다.”

어쩐지, 괜히 승계 이야기가 나온 게 아니었군.

나올 수밖에 없는 위치와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또 한 번 의구심이 들었다.

“왜 가문의 승계를 포기하고 현자가 된 거야?”

스타폴은 강대국 중에서도 강대국이다.

게다가 클라우드 가문은 일곱 가문 중에서도 가장 힘이 센 곳으로 알고 있다.

클라우드가의 가주가 곧 스타폴의 왕이나 다를 바 없다.

45개 연합국의 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마일은 단번에 걷어차 버린 것이다.

마일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대답하기를 거부했다.

마일이 이렇게 대놓고 ‘말 못하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나?

없을 것이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강경한 태도로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람의 과거라는 건 민감한 부분이 많이 들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남들 앞에 당당히 밝힐 수 없는 흑역사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마일의 저 태도를 충분히 이해한다.

누구에게나 말 못 할 과거는 존재하니까.

나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알았어. 이유까지는 묻지 않을게.”

“감사합니다, 로인 님.”

“하지만 스타폴과의 협상에 네가 나와 줬으면 하는 건 변함없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전 클라우드가의 ‘배신자’입니다. 제가 협상 테이블에 참여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 있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잖아. 그리고 내가 아는 한, 너는 클라우드 가문을 대놓고 물 먹이면서 배신할 녀석이 아니야.”

승계하지 않은 속사정이 분명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단, 마일은 그걸 말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난 마일을 믿고 싶었다.

내 믿음 덕분일까?

마일은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스타폴 쪽은 얼씬도 안 하려고 했는데……. 로인 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어쩔 수 없군요.”

결국 마일은 나의 적극적인 설득에 항복 선언을 하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단,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제 합류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알았어.”

이것으로 스타폴 원정대에 마일도 합류하게 되었다.

* * *

나는 라크스 공작에게 마일이 클라우드 가문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렸다.

원래 마일은 자신의 정체를 다른 사람에게 밝히는 걸 극도로 꺼렸다.

하나 칠흑이 언제 델리피나 대륙을 집어 삼킬지 모르는 마당인데 까짓것 그게 뭐가 중요할까?

마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결국 자신의 신분을 오픈하기로 했다.

처음 나에게 마일의 정체를 들었을 때, 라크스 공작의 표정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클라우드 가문의 장남은 죽었다고 들었는데……. 설마 멀쩡히 살아 있을 줄이야. 놀랍군.”

죽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나?

아무튼 마일까지 포함해서 스타폴로 향할 원정 팀이 완성되었다.

나를 비롯해 반드, 마일, 라스, 엘라시아, 라크스 공작, 그리고 라크스의 부관인 에펠톤까지.

총 일곱 명으로 구성되었다.

반드는 가는 도중에 혹시 전투가 벌어질까 봐 전투원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엘라시아는 베라 때문에 나울 근처에 남겨 두기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일부러 원정 팀 멤버로 끼워 넣었다.

평화 사절단에 불과한 원정 팀이지만, 주인공과 라크스 공작, 그리고 나까지 포함된 최강의 전력을 가진 팀이었다.

이 인원으로 칠흑과 싸우러 가는 게 아니라 스타폴의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 간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웃기기도 했다.

‘웃겨도 좋아. 스타폴의 협력만 구할 수 있다면야 뭔들 못 하겠어?’

간 김에 어떻게 해서든 스타폴을 아군으로 끌어들인다는 목표를 달성하고 돌아와야 한다.

나울을 떠나 스타폴까지 지체 없이 달렸다.

시간이 금이다.

언제 칠흑이 이 세계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미 이야기는 《델리피나 전기》와 전혀 다른 흐름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했다.

이제부터 어떻게 행동하느냐는 이제 전적으로 내 판단에만 의지해야 한다.

* * *

스타폴까지 도착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상보다 빨리 걸렸다.

한 3일?

나는 5일 잡고 온 건데…… 우리가 얼마나 다급하게 서둘러서 왔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스타폴의 수도, 히프리스로 향했다.

우리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모양인지 왕궁에는 이미 일곱 가문을 대표하는 가주들이 모여 있었다.

스타폴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알려져 있는 가문은 클라우드다.

나는 클라우드 자이로를 유심히 살폈다.

-클라우드 자이로

-인물 등급 : 단역

-종합 능력 : SSS

-45개국이 연합한 스타폴의 실질적인 지배자. 클라우드 가문의 가주이며,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고집이 매우 강한 남자다.

인물 정보 창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고집이 매우 강하단 말이지……?

라크스 공작이 스타폴의 협력 의사를 구하는데 왜 그리도 애를 먹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한편, 클라우드 자이로는 무신경한 표정으로 우리를 응시했다.

“저번에는 한 명만 오더니. 이제는 단체로 몰려왔군. 와서 시위라도 할 생각인가?”

라크스 공작이 대표로 답했다.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저번과 같소. 우리와 함께 칠흑으로부터 이 세계를 구합시다.”

“그 이야기라면 다른 가문들과 회의를 한 다음에 답을 주겠다고 했을 텐데.”

“회의를 2주 동안 하오? 세계가 언제 칠흑에게 삼켜질지 모르는 다급한 상황에서 왜 그렇게 느긋하게 행동하는지 모르겠구려.”

“스타폴은 스타폴만의 방식이 있다. 아무리 세계의 위험이 도래했다느니 뭐니 해도 우린 우리만의 방식이 있으니 외부인이 왈가왈부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럼 내부인이 왈가왈부하면 괜찮다는 뜻이오?”

“내부인?”

자이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때 마일이 천천히 가면을 벗기 시작했다.

마일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가주들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서, 설마 저자는……!”

“클라우드 이튼 아니오!”

“죽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다른 가주들도 마일이…… 아니, 클라우드 이튼이 죽었다고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이튼은 멀쩡히 살아 돌아왔다.

애초에 죽을 위기도 없었다고 한다.

클라우드 가문이 이튼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서 일부러 거짓 정보를 퍼트린 것이라고 들었다.

다른 가주들이 당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클라우드 자이로는 표정 변화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튼이 언젠가 이곳에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한 반응처럼 보였다.

“평생 안 올 것처럼 하더니, 다시 낯짝을 보게 되었구나.”

“……예, 가주님.”

“날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

“라크스 공작이 말한 그대로입니다. 조만간 칠흑이 군단을 대동하고 델리피나 대륙 전체를 집어삼키려 할 것입니다. 위기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스타폴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 아버님을…… 아니, 가주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헛걸음을 했군. 난 저들에게 협력할 생각이 없다.”

이제야 본심을 드러내는 클라우드 가주였다.

하기야 협력할 의지가 있었다면 회의를 2주 동안 질질 끌지는 않았을 것이다.

협력하기 싫으니까 회의라는 어쭙잖은 핑계를 둘러대면서 시간을 끄는 거겠지.

안 봐도 뻔하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부터가 분수령이 될 거 같다.

나는 마일을 곁눈질로 바라봤다.

때마침 시선이 마주쳤다.

마일의 눈빛은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라고 말이다.

“가주님, 저에게 클라우드가를 이어받으라고 말씀하시면서 내줬던 ‘승계 시험’을 기억하십니까?”

“기억하다마다.”

“기억하고 계시다니 다행이군요. 그럼 모든 가문의 가주들께서 지켜보고 계시니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일의 입에서 폭탄 발언이 튀어나왔다.

“보류해 뒀던 승계 시험을 다시 받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클라우드가의 가주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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