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218화 (218/240)

# 218

혼돈을 추구하는 자 (2)

여태껏 실종되었던 레이샤르가 갑자기 등장했다.

혹여나 잘못 봤을까 봐 레이샤르의 인물 정보까지 확인했다.

-레이샤르

-인물 등급 : 조연

-종합 능력 : 알 수 없음

-지식을 탐구하는 드래곤, 레이샤르. 주인공 일행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맡고 있다.

틀림없다.

내가 알고 있는 그 레이샤르가 맞다!

‘여태껏 어디 숨어 있다가 튀어나온 거야!’

묻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다.

그러나 레이샤르는 해명 대신 브레스를 뿜으며 라우르시스와 칠흑을 견제했다.

레이샤르의 브레스는 칠흑의 검은 연기에 가로막혀 무용지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저 둘을 없애기 위해서 브레스를 발사한 느낌이 아니었다.

시간을 벌기 위함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레이샤르가 등장하자 라우르시스의 미간을 사정없이 일그러뜨렸다.

“기어코 여기까지 쫓아왔군, 레이샤르!”

“네놈이 한 짓을 생각한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널 쫓아갈 것이다.”

라우르시스가 레이샤르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나?

그간의 사정을 통 모르니 이야기를 쫓아갈 수가 없었다.

칠흑은 라우르시스를 응시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어떻게 하긴……!”

라우르시스는 칠흑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힘을 다오. 내가 놈들을 깡그리 쓸어버리겠다!”

“좋은 선택이야.”

검은 연기가 라우르시스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려고 한다.

‘서로 융합하게 해선 안 돼!’

안 그래도 라우르시스는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존재다.

여기에 칠흑한테 잠식당하기라도 하면 상대하기 더 까다로워질 게 뻔하다.

라크스나 제나드, 베라 등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라우르시스와 칠흑에게 일제히 덤벼들었다.

레이샤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칠흑과 라우르시스를 중심으로 강하게 형성된 검은 돌풍 탓에 접근하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칠흑의 모습이 희미해졌다.

검은 연기는 마침내 라우르시스에게 전부 흡수되었다.

라우르시스의 노란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이게 바로 혼돈의 힘인가……! 어마어마하군!”

콧김을 뿜어내는 라우르시스.

“그래, 이 힘이다! 이것만 있다면 내가 ‘신’이 될 수 있어!”

라우르시스는 자기 자신을 신격화시키는 단계에 이르렀다.

저것이 칠흑과 손을 잡은 목적인가?

하나 라우르시스의 목적은 달성되자마자 바로 무산이 되고 말았다.

-어림없지.

칠흑의 목소리가 타임 그레이브 전역을 가득 채웠다.

동시에 검은 연기가 라우르시스를 옭아맸다.

“칠흑, 네놈!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

라우르시스가 칠흑에게 외쳤다.

그러나 칠흑은 라우르시스의 안일함을 비웃었다.

-내가 너에게 힘을 빌려줬다고 생각했나? 천만에! 넌 내 힘에 잡아먹힌 것에 불과하다!

라우르시스의 몸이 크게 떨렸다.

그러더니 잠시 후, 녀석의 입에서 칠흑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역시 드래곤만 한 육체가 없군.”

이제 저 드래곤은 더 이상 라우르시스라 불리는 존재가 아니게 되어 버렸다.

칠흑이다.

벨라시오닉을 잠식시켰던 바로 그 존재!

라우르시스와 융합한 칠흑은 입을 벌리며 다시 한번 브레스를 발동시켰다.

그러나 이번 브레스는 아까에 비해 차원이 달랐다.

크기도, 파괴력도 이전의 브레스를 훨씬 웃돌았다.

레이샤르가 우리에게 다시 경고했다.

“죽기 싫다면 저놈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게 좋을 거다, 인간들이여!”

우리도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검은 돌풍 때문에 제대로 서 있기조차 쉽지 않았다.

이 와중에 브레스의 공격 범위까지 피하기는 힘들었다.

‘어쩔 수 없지. 이건 최후에 최후의 순간까지 아껴 두려고 했는데!’

화르르르륵!

양손에 글레드를 소환했다.

글레드를 이용해 용의 숨결로 놈의 브레스를 맞받아쳤다.

퍼어어어엉!

폭발 이후에 굉음이 우리의 귀를 강타했다.

첫 번째 공격은 어찌어찌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은 좀 힘들다.

나 혼자라면 괜찮지만,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어쩌지?’

여기서 글레드의 힘을 모조리 쏟아 부울 순 없었다.

만약 그랬다가 라스와 같은 신세가 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질 무렵이었다.

칠흑의 두 번째 브레스가 발사되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칠흑의 몸이 그대로 멈췄다.

경직 마법이라도 걸린 건가?

아니었다.

칠흑의 주변에 일렁이던 검은 연기도, 날리는 이파리들조차도 그 위치 그대로 굳어 버렸다.

본 적이 있는 스킬이었다.

‘시간 정지! 설마……!’

나는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저 멀리서 벨레너의 모습이 들어왔다.

벨레너는 우리를 향해 다급히 외쳤다.

“얼마 못 버틴다! 우선 여기를 벗어나도록 해! 어서!”

라크스 공작은 눈을 흘기며 벨레너를 바라봤다.

“저 남자, 혹시……!”

시간이 없다.

나는 벨레너를 대신해서 라크스 공작의 의문을 빠르게 해소시켜 줬다.

“공작님이 생각하시는 그 사람이 맞습니다.”

“용병왕 벨레너! 설마 살아 있을 줄이야!”

“타임 그레이브의 영향 때문이에요. 그보다 어서 군대를 물리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언제 칠흑의 시간이 정상으로 돌아올지 모르니까요!”

“그러는 게 좋겠군. 일단 후퇴한다! 장소를 이탈하라! 어서!”

지금 당장의 급한 위기는 넘겼다.

하지만.

‘위기는 이제 시작이야.’

잠시 미뤄 뒀을 뿐.

해결이 된 건 아니었다.

* * *

우리는 벨레너와 함께 그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 근처로 향했다.

타임 그레이브를 완전히 벗어나려 했으나, 주변에 칠흑의 잔당들이 우리를 포위한 상태였다.

전투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타임 그레이브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칠흑의 잔당과 전투를 벌였다가 시간을 지체하게 되면 칠흑에게 따라잡힐 우려가 있다.

지금 전력으론 칠흑을 감당할 수 없다.

적어도 라스 일행이 이곳에 있어야 한다.

주인공도 없는데 최종 보스와 맞붙는다는 건 자살 행위나 다를 바 없다.

병력들을 잠시 대기시킨 다음에 나는 제나드, 리오나, 첸버, 게럴과 함께 벨레너와 레이샤르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블루로즈단, 레드 라인 기사단뿐만 아니라 각 조직의 대장급들도 한 곳에 모였다.

레이샤르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외형을 바꿨다.

페나트의 모습이었다.

리오나는 페나트를 보자마자 헛숨을 삼켰다.

“저 사람이…… 드래곤이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지금은 사소한 것에 일일이 대답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빠르게 진행시켜야 한다.

우선 라크스가 대표로 먼저 벨레너와 레이샤르에게 질문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드래곤은 누구인지, 그리고 레이샤르 님은 그동안 왜 행방불명이 되었던 건지, 또 용병왕이 어째서 여기에 머무르고 있는지……. 가급적이면 짧게 대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신, 저희가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벨레너가 여기에 머무르는 이유와 칠흑에게 삼켜진 드래곤이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난 이미 알고 있었다.

하나 레이샤르가 자취를 감췄던 이유까진 알지 못했다.

벨레너와 레이샤르가 차례로 돌아가면서 라크스 공작이 던진 질문에 답했다.

“타임 그레이브의 영향 덕분에 아직 이렇게 살아 있게 되었네. 다들 알겠지만 타임 그레이브는 바깥세상보다 시간이 2배로 느리게 흘러가는 지역이지. 물론…… 타임 그레이브를 벗어나는 순간 바로 죽겠지만 말이야. 그래서 본의 아니게 여기서 계속 살고 있지.”

결국 살고 싶으면 타임 그레이브 안에서만 계속 머물러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다음은 레이샤르의 차례였다.

“우선 저 드래곤이 누구인지부터 알려 줘야겠군. 뭐…… 로인, 자네는 알고 있는 거 같지만 말이야.”

눈치가 참 빠르다.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고 있습니다.”

“베르투에서 알려 준 건가?”

“그런 셈이죠.”

인물 정보 창에 대한 걸 설명하려면 내가 어쩌다가 이 세계로 넘어오게 되었는지부터 전부 다 이야기해 줘야 한다.

그게 귀찮아서 나는 대충 베르투 핑계를 둘러대기로 했다.

운이 좋게도 잘 속여 넘겼다.

레이샤르는 라우르시스에 대한 정보를 이들에게 들려줬다.

혼돈을 추구하는 드래곤으로, 생명체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기운을 먹으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라우르시스의 이런 성향은 공교롭게도 칠흑과 일맥상통하게 되었지. 칠흑의 목적 또한 혼돈을 통한 세계의 재정립이니까.”

그건 데르킨 백작의 목적이기도 하다.

말이 혼돈을 통한 세계의 재정립이지, 사실은 이 세계를 그냥 멸망시키고 싶은 것에 지나지 않다.

그냥 듣기 좋은 말들을 가져다 붙인 것에 지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나는 레이샤르에게 물었다.

“그동안 모습을 감춘 이유에 대해서 꼭 들려주셨으면 좋겠군요.”

나는 이것 때문에 레이샤르를 ‘라스를 죽일지도 모르는 범인’ 후보로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레이샤르가 어떤 말을 할지에 따라 이 생각은 달라질 수도, 계속 고정될 수도 있다.

레이샤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라우르시스를 막기 위해서였다. 녀석은 우리 동족 몇몇을 속여 칠흑에게 넘기려 했었지. 난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라우르시스를 견제하기 위해 다시 드래곤의 세계로 돌아가야만 했다. 제2의 벨라시오닉이 나타나지 않도록 막고 싶었거든. 하지만…… 실패했군.”

결국 라우르시스 본인이 칠흑의 양분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레이샤르의 계획은 실패했다.

하지만 난 이걸 ‘실패’라고 보지 않는다.

절반의 성공이다.

칠흑과 결탁한 라우르시스를 그대로 방치했더라면 한 마리가 아닌 수십 마리의 드래곤이 칠흑에게 잠식되었을지도 모른다.

레이샤르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우리 동족들 중에서도 아직까지 칠흑의 존재에 대해 잘 모르는 녀석들이 태반이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나는 동족들을 모아 지금 인간계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이 세계에 어떤 위기가 들이닥치게 되었는지 모든 걸 다 설명했지.”

“드래곤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첸버가 질문했다.

이 질문에는 많은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혹시 드래곤들이 나서서 이 사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건가?”

“…….”

첸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들이 가세한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가 보다.

하지만 난 다르게 생각한다.

“드래곤들이 단체로 나서 봤자 의미가 없다. 오히려 학살만 당할 거야. 왜냐하면 라우르시스와 융합한 지금의 칠흑은…… 아무도 못 막아설 테니까.”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레이샤르조차 저렇게 말할 정도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칠흑을 막을 방법은 있습니다.”

내 말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드래곤 부대가 와도 칠흑을 막아서진 못한다.

그러나 내겐 방법이 있다.

“글레드가 있다면 칠흑과 어떻게든 비벼 볼 만할 겁니다.”

작은 흰색 불씨 하나에 우리 모두의 운명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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