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
어둠의 징조 (1)
나울을 향해 다가오는 다수의 용병들.
나는 일찌감치 입구로 나와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리오나가 B팀 용병들을 이끌고 나울로 복귀했다.
“어서 와. 살기 좋은 도시, 나울에 온 걸 환영해.”
“처음 오는 것도 아닌데, 뭘. 그보다 여기서 계속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장으로서 이 정도는 해야지. 안 그래?”
“글쎄, 제나드 단장은 안 했던 거 같은데. 아무튼 고생했어. 시설들은 다 완공된 거지?”
“어. 일단 숙소에 들러서 짐부터 풀고 나머지는 가르시아한테 안내받으면 돼.”
나와 함께 나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르시아는 리오나에게 가볍게 예를 표했다.
조직 개편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리오나가 가르시아와 같은 등급의 대장이 되었다 하더라도 예우는 확실하게 갖춰야 함을 강조했다.
조직 내에선 리오나가 가르시아보다 선배이기도 하니까.
가르시아도 내 말에 군말 없이 따르기로 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가르시아는 B팀에 파견을 나가 있는 동안 리오나와 어느 정도 친분을 쌓아 뒀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리오나 소대 용병들은 모든 소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인원 수를 자랑한다.
이 정도 인원을 통솔할 수 있는 사람은 리오나뿐이다.
물론 첸버도 가능하지만, 첸버는 제나드와 함께 구 S팀 용병들을 이끌어야 한다.
숙소에 도착하자 리오나는 용병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짐 다 풀고 편히 쉬도록 해.”
“예, 대장님!”
리오나의 명령을 듣자마자 바로 칼 같이 행동에 임했다.
그런 뒤에 리오나는 나에게 제나드와 첸버의 현재 몸 상태에 물었다.
“두 분 상태는 좀 어때?”
“많이 괜찮아졌어. 첸버는 진작 다 나았고, 제나드 대장은 재활 훈련 중이야.”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까지 나았다면 걱정할 단계는 아닌가 보네. 그러고 보니 치유소에 한 명 더 입원해 있지 않았어? 라스 씨 일행 중에 한 명이 제나드 대장하고 첸버 씨랑 같이 입원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카이딘 씨 말하는 거지?”
“맞아, 그 사람.”
카이딘은 칠흑 세력과 전투를 벌이던 도중에 부상을 입은 탓에 이곳 나울에서 치유를 받고 있었다.
“내일이면 퇴원할 거야.”
“큰 부상은 아니었나 보네.”
“그건 두고 봐야지.”
“두고 본다고? 무슨 뜻이야?”
나는 리오나에게 내가 한 말을 대충 둘러댔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잊어버려. 너도 가서 짐 풀어야지? 도와줄까?”
“아니, 됐어. 나 혼자 할 수 있으니까 굳이 친절 베풀지 않아도 돼.”
리오나는 자신의 짐을 가지고 여성용 숙소로 향했다.
그러던 와중에 리오나는 순간 경직된 자세를 취했다.
여성 전용 숙소에서 막 나오는 한 사람 때문이었다.
“저 사람 뭐야? 남자가 왜 여성 숙소에서 나와?”
리오나는 나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케프리 때문이었다.
“아, 그게 어찌된 일이냐 하면…….”
난 아주 간단하게 압축해서 설명했다.
“쟤, 여자야.”
“……뭐어?”
리오나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럴 만도 하다.
나도 마일한테 케프리의 성별을 처음 들었을 때 같은 반응이었으니까.
한편 케프리는 리오나의 반응에 불만족스러운 모양인지 볼멘소리를 냈다.
“왜. 내가 여자인 게 불만이야?”
“남자인 줄 알았는데…….”
“난 내 입으로 단 한 번도 남자라고 말했던 적 없어.”
“하지만 ‘형씨’라든지 ‘누나’ 같은 호칭은 말한 적 있었잖아.”
“이유가 있거든.”
난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마일이 준 정보에 의해서 알게 된 게 아니었다.
케프리가 직접 실토했다.
이슬런 전투가 끝난 후 베라가 입원한 동안 나는 케프리를 따로 불렀다.
면담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나는 케프리에게 성별이 여자인지 물었다.
케프리는 딱히 숨길 생각이 없었던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당연히 나는 이렇게 물었다.
‘여태껏 왜 남자인 척했어?’
호칭의 문제도 같이 거론했다.
물론 여자가 연상의 남자한테 ‘어이, 형씨!’라고 말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오히려 충분히 말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게 있으니까.
하지만 케프리는 나를 포함해서 베라까지 자신이 ‘소년’인 것처럼 철저하게 호칭을 통일해 사용했다.
나는 이게 궁금했던 것이다.
케프리는 내게 이렇게 대답했다.
-어린 소녀가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니까. 그래서 남자인 척해 왔던 거야.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된 말이었다.
케프리는 무시받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자기 자신을 그나마 강하게 포장하기 위해서 일부러 남자인 척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언행까지 완벽하게 소년의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이게 케프리가 여태껏 소년처럼 행동해 왔던 이유였다.
리오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래도 이제 와서 여자애 취급을 하기에는…….”
“그럼 치마라도 입고 다닐까?”
케프리의 도발에 리오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러기를 잠시 뒤, 무거운 한숨을 내뱉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됐어. 이제부터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지.”
“앞으로 잘 부탁해.”
케프리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리오나는 케프리의 손을 가볍게 잡아 줬다.
그러자 케프리의 등 뒤에서 드레드가 튀어나왔다.
“흥! 어디서 암컷 냄새가 난다 싶더니, B팀인지 뭐시긴지 하던 그 조직의 대장이었군.”
리오나는 케프리에게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저것’도 여자는 아니겠지?”
“저것이라고? 감히 나를 그딴 식으로 지칭하다니!”
드레드는 여전히 화가 많은 녀석이었다.
녀석을 진정시키는 일은 늘 케프리의 몫이었다.
“그만해. 그리고 누나, 칠흑에겐 성별이 없어. 물론 칠흑의 조각도 마찬가지지.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도대체 뭘 보고 안심하라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네 파트너가 갑자기 열 받아서 간밤에 아군을 습격하는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그건 나도 보장한다.
드레드가 아무리 속으로 화를 많이 품고 있는 기생충……이 아니라, 칠흑의 조각이라 하더라도 케프리와 같은 편을 든 사람을 갑자기 습격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이 기숙사에는 베라도 같이 산다.
케프리는 베라를 굉장히 따른다.
처음에는 티격태격했으나, 이제는 베라의 뒤를 졸졸 따라다닐 정도였다.
가끔은 자매 같아 보일 때도 있었으니까.
물론, 아직도 의견 충돌을 보일 때가 있긴 했다.
‘그래도 첫 만남을 생각한다면, 많이 발전하긴 했지.’
베라와 관계가 진척된 덕분에 케프리는 용병단에도 비교적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로서 나는 케프리라는 강력한 전력을 얻게 되었다.
블루로즈단 재정비도 얼추 마무리 되었고.
‘이제 내가 신경 써야 할 일은 대충 다 끝난 건가?’
……라고 생각을 했으나, 아직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
“단장님!”
용병 한 명이 나에게 급하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혹시 또 이슬런 전투 같은 상황이 벌어졌나 싶었다.
그러나 그건 아니었다.
“엔드라라는 분이 찾아왔습니다. 카이딘 님이 완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데리러 왔다고 합니다.”
“흠…… 그래?”
아직 카이딘 쪽 일이 남았다.
* * *
라스와 함께 델리피나 대륙 각지를 누리면서 칠흑과 그의 추종자들과 전투를 벌이는 동료, 엔드라.
그가 이곳 나울까지 직접 찾아왔다.
“오랜만입니다.”
나는 엔드라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엔드라는 내가 내민 손을 꼭 잡았다.
그러고서 참으로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다.
“1년 동안 행방불명되었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로인 님이 다시 돌아왔다는 말도 듣긴 했는데, 그래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라스 님이 걱정을 가장 많이 하더군요.”
라스라면 그럴 만도 하다.
칠흑을 쓰러뜨리려면 글레드를 조금이라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라스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선 아마 내가 유일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는 테이른까지 포함해서 셋이다.
하지만 라스는 카인의 정체가 아직 자신의 아버지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라스에게 말해 주고 싶어도 테이른에게 함구당해 버렸기 때문에 말해 줄 수 없었다.
칠흑과의 전투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갑자기 테이른에 관련된 소식을 들으면 많이 심란해질 것이다.
그래서 테이른은 일부러 내게 자신의 정체를 말해 주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었다.
모든 사정을 다 알고 있는 나로선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뭐…… 어찌하겠나.
나는 엔드라에게 최대한 밝은 미소를 보였다.
“지금은 이렇게 멀쩡히 있으니 라스 씨한테 가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꼭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카이딘 님은 어디 계십니까? 다 완치되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습니다만…….”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나는 엔드라를 카이딘이 있는 치유소로 안내했다.
카이딘은 마침 치유소 밖에 나와서 몸을 풀고 있었다.
“어? 엔드라잖아?”
“오랜만입니다, 카이딘 님.”
“그러게. 이게 얼마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지?”
“정신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요즘 칠흑 녀석들이 하도 날뛰어서 말이죠.”
“고생이 많네.”
“마치 남 일처럼 말씀하시는데 이 고생, 이제 카이딘 님도 같이 겪어야 합니다. 잊으신 건 아니죠?”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카이딘은 쓴웃음을 지었다.
치유소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해 왔던 카이딘이지만, 이제 다시 바쁘게 움직여야 할 때가 오게 된 것이다.
카이딘이 짐을 챙기는 동안, 나는 엔드라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실 예정입니까?”
“발롱으로 갈 겁니다. 그곳에 라스 님하고 일행 분들이 다 계시거든요.”
“발롱이라……. 소식은 들었습니다. 전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 중 하나라고 하던데. 고생이 많겠네요.”
“세계가 멸망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보다 차라리 이렇게 고생을 하는 편이 훨씬 나으니까요. 로인 님도 같은 생각이지 않습니까?”
“하하, 그렇죠.”
그 생각에는 나도 깊게 공감한다.
라스보다 내가 더 바쁘게 움직였으니까.
카이딘이 짐을 거의 다 꾸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고마워, 로인. 덕분에 편하게 치료받으면서 쉴 수 있었어. 이 은혜는 나중에 꼭 보답할게.”
“은혜랄 것도 없습니다. 칠흑으로부터 세계를 구하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노력하시는 분들에게 이 정도 편의 제공은 당연한 일이죠. 나중에 제 도움이 필요하실 때가 있을 겁니다. 그때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믿음직스럽네. 고마워. 그럼 나중에 또 보자!”
“네, 조심해서 가세요.”
카이딘과 엔드라는 곧장 나울을 벗어났다.
잠시 뒤…….
“마일.”
나는 조용히 마일을 불렀다.
그늘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마일에게 나는 임무를 하나 부여했다.
“카이딘에게 현자를 붙여서 24시간 동안 감시해.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보일 기미가 발견된다면 나에게 바로 보고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