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214화 (214/240)

# 214

문제아 콤비 (7)

아무리 첫 만남이 안 좋았다고 하더라도 케프리는 베라의 부사수 관계다.

그런 케프리가 사지가 절단된 채로 있으니, 아무래도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당신, 이대로 죽거나 하진 않을 거죠?”

“……안 죽어. 걱정하지 마. 하지만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 날 보호하려고 드레드가 희생한 덕분에 회복되는 속도가 너무 느려. 드레드도 의식을 잃은 상태고. 그동안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 줄게요. 그러면 되는 거죠?”

“아니, 시간을 벌라는 뜻이 아니라…….”

고개를 힘겹게 좌우로 흔든 케프리는 필사적으로 말했다.

“……도망쳐야 해. 누나도 저 괴물은 감당하기 힘들 테니까.”

어차피 시간은 베라와 케프리의 편이다.

일시적으로 큰 힘을 손에 얻은 아르터지만, 그 부작용으로 조만간 죽고 말 것이다.

그때까지 도망만 잘 치고 다니면 된다.

베라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대신, 혼자서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베라는 케프리의 남은 상반신을 들어올렸다.

“꼭 붙어 있어요. 살고 싶다면 말이죠.”

“……알았어.”

케프리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서…….

자신의 가족들을 죽인 칠흑에게 복수해야 한다.

베라가 빠르게 현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나 아르터는 이들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

건물 잔해를 밀어내며 천천히 일어서는 아르터.

그의 붉은 눈동자가 또 다시 번뜩였다.

“죽을 때 죽더라도, 너희들을 길동무로 삼으며 죽겠다고!”

다시 한번 아르터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는 이미 베라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어느 틈에……!”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엘프. 그리고 잡종!”

아르터의 몸에서 다시금 가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케프리가 다급하게 경고했다.

“놈의 가시를 조심해! 맞으면 바로 지옥행이야!”

“확 와닿는 충고, 정말 눈물 나게 고맙네요!”

베라는 바람의 상급 정령과 대지의 상급 정령으로 이중 방어벽을 쳤다.

그러나 아르터의 가시는 바람의 장벽과 대지의 벽을 차례차례 격파했다.

가시 일부가 베라의 왼쪽 어깨와 오른쪽 허벅지를 스쳤다.

“큭!”

짧은 신음을 토해 내는 베라.

그녀의 미간이 고통으로 인해 일그러졌다.

칠흑의 조각 13개의 위력은 확실히 강했다.

베라조차도 감당하기 쉽지가 않았다.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은 잘 안다.

하지만 아르터는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갈 기세로 베라와 케프리에게 집착을 보였다.

아르터의 등에 커다란 가시 두 개가 형성되었다.

등쪽으로 손을 뻗은 아르터는 가시들을 뽑아냈다.

“슬슬 결판을 지어 볼까?”

거대한 가시 두 개의 끝을 베라에게 겨눈 채 달려들기 시작했다.

베라는 정령술을 발동시키며 아르터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바람, 불, 대지, 물, 얼음, 전격…… 각종 속성 공격을 날려 봤지만, 아르터는 그 모든 것들을 온몸으로 받아 내면서 베라와 케프리에게 한걸음씩 다가왔다.

케프리가 있는 힘껏 외쳤다.

“드레드! 언제까지 기절해 있을 거야!”

그의 외침에 반응하듯, 왼쪽 팔의 절단면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팔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팔은 드레드의 머리로 변모했다.

“쉬지도 못하게 만드는군!”

“저 녀석 쓰러뜨리지 못하면 평생 쉬게 될지도 모른다고!”

“알고 있다!”

드레드는 아르터를 물어뜯을 기세로 돌격했다.

베라의 정령들도 드레드를 도왔다.

평상시였더라면 서로 으르렁거렸던 사이였을지 모르지만, 살기 위해서라면 힘을 합치는 수밖에 없었다.

케프리와 베라처럼 말이다.

아르터는 가시 창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런 뒤.

“처박혀 있어라, 잡종 녀석!”

드레드의 머리를 꿰뚫어 버렸다.

그러고는 드레드의 머리를 꿴 채로 가시 창날을 지면에 박아 버렸다.

드레드의 움직임을 봉쇄시킨 아르터는 다시 한번 베라와 케프리를 제거하기 위해 앞을 향해 돌진해 왔다.

“…….”

베라는 갑자기 케프리의 상체를 저 멀리 던져 버렸다.

“뭐, 뭐하는 거야!”

“잘 들으세요, 케프리.”

베라는 단도 두 자루를 천천히 꺼내 들었다.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그녀는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힘에 지배당하지 마세요. 당신이 힘을 지배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으세요. 제가 알려준 대로 한다면, 당신은 한층 더 강해질 수 있을 겁니다.”

“누나, 설마……!”

베라는 뒤를 돌아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케프리에게 처음 보이는 미소였다.

그 미소는 아름다웠으며…….

동시에 슬픔을 머금고 있었다.

“부디 당신만큼은 끝까지 살아남기를…….”

“그, 그만 둬! ……누나!”

케프리는 절규했다.

더 이상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부모, 그리고 자신에게 한없이 상냥했던 친누나.

그녀의 모습이 지금의 베라와 겹쳐 보였다.

그때도 지금과 상황은 같았다.

하나 남은 혈육인 케프리를 지키기 위해서 아무런 힘도 없던 그의 친누나는 스스로를 희생했다.

케프리는 늘 누군가의 도움만 받아오며 목숨을 연명해 왔다.

그건 케프리에게 있어서 비극이었다.

그 비극이 다시 한번 반복되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아르터의 몸이 크게 뭉개졌다.

뭉개지고, 또 뭉개졌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납작해졌다.

그 위로 한 남자가 가볍게 착지했다.

“내가 너무 타이밍 좋게 등장했나?”

블루로즈단의 단장, 로인의 등장이다.

* * *

낫을 들고 나에게 덤비던 루크는 뒤늦게 나의 변화를 눈치챘다.

예전의 나였더라면 간신히 루크를 상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달랐다.

루크의 공격이 훤히 보였다.

여유가 넘치는 내 얼굴을 보더니 루크는 이내 낫을 거둬들였다.

“너, 어떻게 된 거지?”

루크의 얼굴에 장난기가 사라졌다.

반대로 이번에는 내가 장난스럽게 반응했다.

“뭐?”

어깨를 으쓱였다.

내 모습에 루크는 이를 악물었다.

“뭔가 재수가 없군. 마치 농락당하는 기분이야.”

감이 참 좋은 녀석이다.

나는 내 힘의 절반의 절반도 발휘하지 않고 있었다.

루크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고 해석하는 편이 더 잘 어울릴 것이다.

루크는 내가 일부러 공격을 흘리거나 피해만 다닌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나는 루크를 바라보면서 씨익 웃었다.

“힘의 차이가 느껴지는가?”

반드가 들었으면 환장할 법한 대사를 읊었다.

반면, 루크는 똥 씹은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과연 언제까지 그딴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

루크의 낫에 검은 연기가 마구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검은 불꽃이 붙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오른손을 뻗었다.

준비 시간도 필요 없이 용의 숨결을 바로 발동시켰다.

빛의 기둥이 번쩍였다.

루크의 몸 왼쪽이 순식간에 증발되었다.

아직 멀었다.

녀석이 몸을 다시 재생시키기 전에 나는 글레드로 놈의 상처 부위를 지졌다.

“아아아아아악!”

고통을 쾌락으로 승화시키던 녀석조차 정화의 불길 앞에서는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으나, 도중에 방해꾼들이 난입했다.

검은 괴물들이 루크를 지키기 위해 달려든 것이다.

한눈에 봐도 족히 30여 마리는 넘을 것으로 추측된다.

“흥.”

나는 짧게 코웃음을 쳤다.

글레드의 불씨를 내 발밑으로 있는 힘껏 던졌다.

터어엉!

글레드는 나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크게 펼쳐졌다.

검은 괴물들은 글레드의 화기에 닿자마자 가루가 되어 즉시 소멸되었다.

글레드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응용해 사용해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용신단 만렙 효과 덕분에 이런 힘도 얻게 되었다.

나쁘지 않네.

“자, 이제 루크 녀석을 마무리하러 가 보…….”

……려고 했으나.

놈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뭐야, 어디 갔어?”

주변을 살피는 동안 벨라시오닉의 혼이 갑자기 불쑥 튀어나왔다.

-녀석이라면 이미 도망쳤다.

“아니, 그러면 저한테 알려 주셨어야죠. 왜 가만히 있었어요?”

-지금 알려 줬잖아.

“…….”

이 드래곤은 ‘빨리’라는 단어를 모르는 건가?

하여튼 벨라시오닉은 너무 느긋해서 탈이다.

아쉽지만 루크 건은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아직 남은 추종자, 검은 괴물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고 있었다.

이 녀석들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바로 행동에 나서려고 하던 찰나였다.

누군가의 외침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이 목소리…… 케프리의 것인가?”

나는 지체 없이 케프리와 베라가 향한 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마침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아르터가 베라를 노리기 직전에 나는 용언으로 놈을 뭉개버렸다.

마무리로 검은 심장을 밟아 터트렸다.

“이것으로 끝?”

나는 베라와 케프리에게 물었다.

둘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이 분위기는.

“혹시 내가 뭐 잘못했어?”

뒤늦게 정신을 차린 베라가 겨우 입을 열었다.

“방금 단장님이 해치운 그 검은 괴물, 칠흑의 조각을 13개나 삼켰었는데…….”

아, 그래? 몰랐다.

“근데 그게 어때서?”

13개든 30개든 100개든 결국 ‘조각’에 불과하다.

나는 칠흑 본체와 대등하게 맞붙을 수 있을 정도로 힘을 길렀다.

그런데 고작 조각의 갯수가 문제겠나.

베라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제가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 * *

살면서 나는 베라가 나울의 치유소 신세를 지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

하루에서 이틀 정도 입원하면서 치료만 받으면 괜찮아질 거라는 게 파이스의 의견이었다.

병문안은 조용히 다녀가려고 했건만 나보다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베라의 병실을 찾은 손님의 정체는 케프리였다.

“누나한테 못한 말이 있어서.”

“뭐죠?”

“그게…….”

뭔가를 굉장히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보니까 얼굴도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사랑 고백이라도 할 생각인가?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 왜냐하면 케프리는…….

“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

“저한테요?”

“날 구해 줬으니까…….”

케프리가 저렇게까지 부끄러워하면서 말하는 건 처음 본다.

이슬런 원정 이후 처음 보는 것투성이네.

“아, 아무튼 고맙다고 말했으니까 이제 난 간다! 빨리 퇴원이나 하라고!”

‘츤데레’ 같은 면모를 보인 케프리는 도망치듯이 병실을 나섰다.

나는 케프리가 보이지 않게 살짝 몸을 숨겼다.

케프리가 치유소를 완전히 떠났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베라가 입원한 병실로 들어섰다.

“해가 서쪽에서 떴나? 케프리가 너한테 고맙다는 말을 다 하고.”

“들으셨군요.”

“어쩌다 보니. 몸은 좀 어때? 괜찮아?”

“네, 애초에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닌데요, 뭘.”

“케프리는? 가르칠 맛은 좀 나? 아니면 중도 포기?”

나는 베라에게 그간의 성과를 물었다.

베라는 슬며시 웃었다.

“겉으로 봤을 때에는 많이 툭툭거라고 문제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속은 좋은 아이에요. 계속 가르치다 보면 분명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때까지 제가 곁에서 도와줘야죠.”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케프리를 ‘부정한 것’이라고 했던 베라.

하지만 지금은 인식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런 베라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자, 이거 저번에 네가 의뢰했던 정보.”

케프리의 개인사가 적혀 있는 종이들을 건넸다.

그러나 베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양할게요.”

“이거 필요한 게 아니었어?”

“굳이 볼 이유가 없어졌거든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둘의 유대감이 훨씬 더 깊어진 듯한 느낌이다.

“그럼 이 정보 하나만 알려줄게.”

나는 베라에게 깜짝 정보를 공개했다.

“사실 케프리…… 여자야.”

“……네에?”

“할 말 끝났으니 난 간다.”

“자, 잠깐만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여, 여자라고요? 케프리가? 어디 가세요! 방금 했던 말, 끝까지 해명해 주고 가세요! 로인 단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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