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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엑스트라-213화 (213/240)

# 213

문제아 콤비 (6)

솔직히 말해서 좀 놀랐다, 베라가 케프리에 대해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으니가.

아니면…….

“약점 잡을 게 필요해서 조사해 달라는 거야?”

“전 인간들처럼 그렇게 악독한 존재가 아니에요.”

인간을 별로 안 좋아하는 베라다운 발언이었다.

“그럼 왜?”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요. 방금 전에 있던 일인데…….”

베라는 나에게 모든 일들을 설명했다

파이스가 데리고 나온 아이들에게 케프리가 잔뜩 뿔이 난 언행을 보였다는 것까지.

듣고 보니 좀 이상했다.

“애들을 별로 안 좋아하는 건가?”

“그럴 리가요. 무슨 사연이 있는 거겠죠. 단장님이라면 쉽게 조사할 수 있죠? 그 하얀 가면 쓰고 다니는 이상한 현자한테 정보를 많이 받고 있잖아요.”

마일이 들으면 상처받을 법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베라였다.

이 자리에 마일이 없어서 다행이군.

마일 녀석, 은근히 자기가 쓰고 다니는 가면에 자부심을 많이 가지고 있던데.

“알았어. 마일한테 조사해 보라고 할게.”

“고마워요.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내 경험에 의하면, 마일이 인물을 한 명 조사하는 데 보통 반나절 정도니까 하루 정도 기다리면 넉넉할 거야. 내일 바로 이야기해 줄게.”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은혜라고 할 것도 없는데, 뭘. 아무튼 뒷일은 나한테 맡기고 조심해서 들어가.”

베라는 나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에 사무실 밖을 나섰다.

그걸 확인한 나는 바로 마일을 소환했다.

순간 이동 마법진을 통해 내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내는 마일.

그의 목소리는 묘하게 날이 서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로인 님.”

“기분이 언짢아 보이네.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니요. 별거 없습니다. 그저 어디 사는 모 하이 엘프가 저의 가면을 폄하한 것을 빼면 평소와 같은 하루였습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평소 같은 하루가 아닌 거 같은데?

그보다 다 듣고 있었구먼.

하여튼 마일, 저놈은 귀도 밝다.

“베라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내가 무슨 부탁을 할지도 알고 있겠네.”

“예. 케프리라는 소년에 대해 조사하면 됩니까?”

“어. 그래 주면 좋겠어.”

“범위는 어디까지로 할까요?”

“일단 다 조사해 봐. 베라한테 자료 넘기는 건 내가 따로 추릴게.”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좋은 밤 보내시길.”

마일이 사라진 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 서류들을 보고도 좋은 밤 보내라는 말이 잘도 나오네.”

* * *

이른 아침부터 사무실로 출근한 나는 마일에게 건네받은 케프리의 정보를 빠르게 훑었다.

“……그랬군.”

나도 몰랐던 정보가 담겨 있었다.

케프리가 왜 칠흑에게 이토록 분노하는지도 잘 알 것 같았다.

케프리도 라스와 같았다.

칠흑에게 자신의 부모와 친누나를 잃고 혼자서 살아남았다.

소년은 칠흑에 대한 분노를 불태웠다.

하지만 라스와 같은 힘이 없었다.

소년의 마음속에서 타오르던 분노의 불꽃은 시간이 갈수록 활활 타올랐다.

이 분노의 불꽃은 칠흑의 조각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드레드와 만나게 되었고, 서로는 칠흑을 없애고 싶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약속하고 손을 잡은 것이다.

그렇게 지금의 문제아 콤비가 탄생하게 되었다.

“케프리가 애들을 보고 속이 상했을 법도 해.”

케프리에 관한 신상 정보를 쭉 확인하던 도중이었다.

“……으음?”

도중에 내가 뭔가 잘못 본 거 같은데.

나는 급하게 마일을 불렀다.

그리고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가리켜 물었다.

“이거, 잘못된 정보 아니야?”

“아니요. 확실한 정보입니다.”

“정말로?”

“예, 로인 님이 여태껏 잘못 알고 있었던 정보일 뿐입니다.”

“왜 말 안 해 줬어?”

“물어보시지 않았으니까요.”

“…….”

할 말이 없다.

하긴 내가 케프리의 개인사에 관심이 없기는 했지.

애초에 신경도 안 썼고 말이다.

그나저나 이거…… 반전인데?

설마 케프리한테 이런 비밀이 있었을 줄이야.

이건 나중에 베라에게 꼭 말해 줘야겠다.

만약 베라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감탄을 금치 못하는 와중에 또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저예요. 단장님.”

라비의 목소리였다.

“들어와.”

라비의 표정에 다급함이 느껴졌다.

“급하게 들어온 의뢰가 있어요!”

“무슨 의뢰인데?”

“추종자들이 이슬런이라는 도시를 갑자기 침공했다고 해요. 지금 사방으로 SOS 신호를 보내는 중인데, 저희한테도 도움 요청이 왔어요.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사람이 죽어 가는데 못 본 척할 수 있겠나.

“출동해야지! 용병들 소집시켜. 지금 당장!”

* * *

레드 라인 기사단, 그리고 가르시아 소대와 함께 나는 이슬런으로 향했다.

원래는 이들만 데려갈까 하다가 베라와 케프리까지 데려가기로 했다.

혹시 데르킨 백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나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다.

라스와 라크스 공작은 우리가 있는 곳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활약 중이고, 테이른과 휴즈는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레이샤르라는 불안 요소가 존재한다.

이제부터는 어딜 가더라도 신변은 확실하게 보호하고 다녀야 할 판이다.

이슬런에 도착하자마자 추종자와 검은 괴물들이 우리를 반겼다.

가르시아와 게럴이 나란히 검을 빼들었다.

“전군! 돌격하라!”

“민간인부터 먼저 보호해라! 어서!”

확실히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의 숫자가 많다 보니 내가 많이 편하다.

빠르게 이슬런 안으로 진입한 나에게 검은 괴물 두 마리가 달려들었다.

“Paquva(터져라)!”

퍼어엉!

검은 괴물들은 공중에서 폭사와 함께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분명 이 습격을 주도하는 대장급이 있을 터.

……찾았다!

“루크!”

나는 놈의 이름을 외쳤다.

죄 없는 민간인 두 명의 머리를 낫으로 막 잘라 낸 루크는 나를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네가 올 줄 알고 있었다, 로인.”

루크는 낫의 끝을 내 쪽으로 겨눴다.

“우리끼리 승부를 가려야지! 안 그래?”

승부는 개뿔.

루크와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어울려 줄 생각은 없었다.

이번 기회에 녀석을 《델리피나 전기》에서 탈락시킨다!

나는 그럴 심산으로 드래곤 클로를 발동시켰다.

루크는 전투에 들어가기 직전에 부사관으로 추정되는 자에게 별도로 명령을 내렸다.

“아르터, 사로잡은 놈들은 칠흑의 조각으로 잠식시켜라. 우리들을 위한 꼭두각시로 만들어.”

“예, 루크님.”

아르터라 불린 남자는 추종자, 검은 괴물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나는 베라와 케프리에게 외쳤다.

“저놈들이 사람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 줘! 나는 루크를 상대할 테니까!”

“알았어요!”

“맡겨 줘. 형씨!”

내 말을 듣고 베라와 케프리는 빠른 속도로 아르터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저 둘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지!

* * *

아르터는 몸의 반쪽을 검은 괴물 형태로 변형시켰다.

“귀찮은 녀석들!”

뒤따라오는 베라와 케프리를 향해 팔을 뻗었다.

팔에서 새어 나온 검은 연기들을 작은 탄으로 응고시켰다.

검은 탄들이 매섭게 날아들었다.

베라는 바람의 상급 정령을 소환해 날아드는 탄들의 속도를 급격하게 낮췄다.

그러자 드레드와 융합한 케프리가 입을 벌려 검은 탄들을 그대로 꿀꺽 삼켰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래도 베라와 케프리는 같이 어울려 다니면서 파트너십이라는 것이 생겼다.

이 파트너십 덕분에 나올 수 있는 협공이었다.

베라가 소환한 화염의 상급 정령이 아르터를 향해 다수의 불덩이를 날렸다.

아르터는 오른손으로 불덩이들을 쳐 냈다.

그러는 사이에 케프리가 아르터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케프리의 오른손에 날카로운 발톱이 형성되었다.

촤아아아악!

케프리의 발톱은 아르터의 왼쪽 옆구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잡종 주제에……!”

케프리와 융합한 드레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잡종’한테 잡아먹히는 굴욕을 안겨 주마!”

입을 크게 벌린 드레드는 아르터를 통째로 삼키려 했다.

그러나 아르터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몸을 재빨리 뒤로 빼면서 드레드의 공격 범위를 빠르게 벗어났다.

하나 케프리의 공격만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베라가 소환한 상급 정령들이 아르터의 움직임을 봉쇄한 것이다.

그 사이에 베라는 단검을 꺼내 들어 아르터의 검은 심장을 노렸다.

푸욱!

그녀의 검은 정확히 심장을 꿰뚫었다.

아르터는 침음을 흘렸다.

팔을 거칠게 휘두르며 베라를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심장은 검은 괴물에게 있어서 힘의 원천임과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이다.

심장에 상처를 입은 것만으로도 아르터는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어쩔 수 없지. 죽는 것보다야…… 이게 낫겠어!”

아르터는 주머니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러더니 그 안에 있는 내용물들을 전부 입안으로 털어 넘겼다.

칠흑의 조각들이었다.

순식간에 10여 개에 달하는 칠흑의 조각을 삼킨 아르터.

그의 몸에서 다량의 사기(邪氣)가 뿜어져 나왔다.

“으그그그그극!”

넘치는 힘을 스스로도 주체할 수가 없는 듯싶었다.

한편 케프리는 칠흑의 조각을 다량으로 삼킨 아르터를 보면서 짧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미쳤네.”

칠흑의 조각을 여러 개 다룰 수 있는 존재는 칠흑, 혹은 선택받은 일부만 가능한 일이었다.

불행하게도 아르터는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네놈들은 이 자리에서 없애고 죽겠다!”

아르터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남은 목숨을 전부 끌어다 쓴 격이었다.

그리고 아르터는 그만큼 강력한 힘을 손에 거머쥐었다.

아르터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었다.

너무 빨리 움직인 탓에 사라진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르터의 붉은 눈은 베라의 바로 앞에서 번쩍였다.

“이런……!”

베라는 뒤늦게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엘프는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라!”

그대로 베라를 쳐 냈다.

아르터의 공격으로 인해 베라는 수십 미터 이상을 나가 떨어졌다.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은 아르터는 케프리와 드레드 콤비를 노려봤다.

“각오해라, 잡종.”

“…….”

케프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매번 기세등등하던 드레드조차도 별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칠흑의 조각은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다.

케프리가 가진 칠흑의 조각은 하나뿐이다.

반면, 아르터는 13개의 칠흑의 조각을 삼켰다.

힘의 차이가 극명하다.

아르터의 온몸에 가시가 형성되었다.

가시들은 사방으로 발사되었다.

케프리는 몸을 숙여 가시를 피하려 했다.

그 순간 미처 대피하지 못한 일가족들이 케프리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젠자앙!”

절규하듯 외친 케프리는 엄폐를 포기하고 일가족이 있는 곳을 향해 미친 듯이 뛰었다.

그곳에는 아버지로 보이는 자가 아내와 어린아이 둘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을 감쌌다.

그래 봤자 아르터의 가시 공세 앞에선 무용지물일 게 뻔했다.

가시들이 일가족을 급습하기 일보직전.

푸욱! 푹푹!

케프리가 온몸으로 아르터의 가시 공격을 받아 냈다.

“으윽!”

고통이 밀려왔다.

아르터는 그런 케프리를 바라보면서 비웃음을 흘렸다.

“웃기는군. 검은 괴물이 인간 따위를 지키겠다는 건가?”

“……그래서 뭐 어쩌라고. 마음에 안 드냐? 그러면 죽이든가.”

그렇게 말하고서 케프리는 일가족들을 향해 외쳤다.

“얼마 못 버티니까 빨리 도망치기나 해. 어서!”

케프리는 시간을 벌기 위해 아르터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르터는 케프리의 양 팔과 다리를 절단시켰다.

“끄아아아악!”

고통에 울부짖는 케프리의 머리를 붙잡아 그대로 들어올렸다.

기묘한 미소를 지은 아르터는 짧게 말했다.

“죽어라.”

이대로 머리를 터트릴 심산이었다.

하나.

“누구 마음대로 제 부사수를 죽이려는 거죠? 그 더러운 손 치우세요.”

아르터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그런 뒤에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아르터를 날려 버린 베라는 케프리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요? 다친 곳은…… 굉장히 많네요.”

케프리는 있는 힘을 쥐어짜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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