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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엑스트라-211화 (211/240)

# 211

문제아 콤비 (4)

설마 했는데 역시나 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분명 내가 정체만 알아내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건만 망할 짐승 녀석은 포식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나니나를 물어뜯어 버리고 말았다.

상반신이 반쯤 먹혔음에도 불구하고 나니나는 죽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검은 연기의 힘으로 빠르게 재생되었다.

“설마 이렇게 어이없게 들킬 줄이야……!”

나니나는 재생 중인 오른손 대신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에서 신호탄 같은 것이 터졌다.

동시에 사방에서 매복해 있던 검은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모여 있던 병사들은 놀라 우왕좌왕했다.

“으아아아악!”

“저, 전투태세를 갖춰라!”

일이 복잡하게 되어 버렸다.

어쩔 수 없지.

“선배! 용병들을 통제해 주세요! 그리고 반드, 에나, 베라! 너희들도 도와!”

반드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크크큭…… 단장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날뛰어 주지! 다칠지도 모르니까 조. 심. 하. 라. 구?”

그래, 조심할 테니까 제발 좀 빨리 움직여 주면 안 되겠니?

우리 용병단은 검은 괴물들을 숱하게 상대해 온 덕분에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착착 전투를 진행해 가기 시작했다.

그보다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추종자들이 나를 이곳으로 유인하기 위해 만든 함정인가?’

내가 살아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함정을 파다니, 지독한 놈들이다.

한편 나니나는 반드만큼 음흉한 미소를 흘리면서 검은 괴물의 모습으로 외형을 바꿨다.

“설마 이렇게 빨리 들켜 버릴 줄이야. 하지만 오히려 잘됐어. 이 자리에서 모두 다 쓸어버려 주마!”

“쓸리는 건 우리가 아니라 너희라고, 멍청아.”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왔다.

그 와중에 케프리가 나에게 물었다.

“단장 형씨, 나는 이제 뭐 하면 돼?”

“몰라서 묻냐?”

“아니, 사실 알아.”

“그러면 알아서 움직여.”

“옛설.”

케프리와 드레드가 융합했다.

융합한 케프리의 등에서 다수의 촉수가 튀어나와 검은 괴물 다수의 심장을 꿰뚫어 버렸다.

강하긴 참 강하다.

문제는 내 말을 더럽게 안 듣는다는 거지만.

말만 잘 들으면 나름 괜찮은 전력일 텐데 그게 많이 아쉽다.

‘나울로 돌아가면 특단의 조치를 취하든가 해야겠어.’

그전에 일단은 이놈들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나를 없애기 위해 나름대로 함정을 파긴 했지만, 추종자들이 계산하지 못한 게 있었다.

우리는 저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해졌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니나에게 다가갔다.

“거짓 의뢰서를 꾸미느라 수고 많았다. 하지만 다음부터 이런 함정을 파려면, 적어도 데르킨 백작 정도는 데려와야 할 거야. 잡졸들만으로 나를 막을 순 없으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나니나의 검은 심장을 발로 짓밟아 터트려 버렸다.

뒤에 서 있던 반드가 나에게 박수를 보내왔다.

“역시 단장이군. 그대의 당차고 멋진 포부에 아낌없는 찬사를.”

“…….”

화법을 바꾸는 연습 좀 해 둬야겠다.

딱히 위기라 생각할 만한 순간은 없었다.

부상자도 아무도 없고.

단,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케프리.”

“응? 나?”

“여기서 ‘케프리’라는 이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너 말고 또 있겠냐. 내가 말했지? 범인을 ‘발견만 하라’고. 그 이후의 행동은 허락한 적 없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내가 한 게 아니라 드레드가 한 거야.”

“너와 드레드는 한 몸이잖아. 내가 너에게 좋은 말을 알려 주지 ‘연대 책임’이라는 거, 아냐?”

“글쎄.”

“전우의 실수가 곧 나의 실수, 전우의 잘못이 곧 나의 잘못이다. 그러니까 거기에 따른 벌도 같이 받는 거지.”

“……별로 마음에 안 드는 말이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군대에 입대하게 되면 마음에 안 들어도 따르게 될 거야.”

케프리라는 카드를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일단 정신 상태를 좀 가다듬어 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베라.”

나는 베라를 따로 불렀다.

그녀는 내가 왜 불렀는지 감을 잡은 듯했다.

“저보고 이 부정한 것을 교화시키라는 거죠?”

“응.”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한숨을 푹 내쉬는 베라.

“당분간 너는 의뢰 수행 명단에서 제외할게. 대신 이 말 안 듣는 꼬맹이 좀 잘 교육시켜 줘.”

“알았어요. 하지만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갱생의 여지가 안 보이면 전 바로 손 뗄 거예요. 기억하세요.”

황소고집 엘프녀가 문제아 콤비를 얼마나 맡아 줄 수 있을지 한번 지켜봐야겠다.

* * *

베라는 나울로 돌아오자마자 케프리를 이끌고 어디론가로 향했다.

“이게 뭐야?”

케프리의 물음에 베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정신 수양을 할 때 사용하는 폭포수입니다. 저 아래에서 정좌를 하고 떨어지는 물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사념을 없애는 훈련을 하는 거죠.”

“그런 훈련이 나한테 필요한 거야?”

“정신이 강해지면 몸도 강해지는 법입니다.”

“난 이미 충분히 강한데?”

“그럼 저를 이길 수 있습니까?”

“한번 붙어 볼까? 만약 누나가 나보다 강하다면, 누나 말에 얌전히 따르도록 할게.”

“나쁘지 않네요.”

어차피 한 번쯤은 이런 과정을 거쳐야 했다.

힘만 믿고 덤비는 자에겐 힘으로 굴복시키는 게 특효약이다.

그녀의 주변에 상급 정령들이 소환되었다.

“당신이 자랑하는 그 힘, 제 힘으로 직접 눌러 줄게요.”

“어림도 없는 소리!”

드레드와 융합한 케프리는 베라를 향해 전력을 다해 돌진했다.

검은 괴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였다.

그러나 베라는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케프리의 움직임을 눈으로 끝까지 쫓았다.

“자세가 완전히 무너졌군요. 보아하니 무술이라는 걸 전혀 배워 본 적도 없는 거 같고. 상태가 많이 심각하네요.”

“내가 보기에는 누나 마인드가 훨씬 심각한 거 같은데?”

케프리가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두꺼운 팔을 휘둘러 베라를 위협했다.

그러나 베라는 오히려 케프리의 공격을 가느다란 팔로 받아 냈다.

“막았어……?”

“왜요. 당신의 공격이 막힌 게 이번이 처음이라도 되나요?”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케프리는 블루로즈단에서 로인을 제외하고 자신이 제일 강할 줄 알았다.

하이 엘프라는 종족 자체가 강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은 케프리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케프리는 설마 자신의 공격을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정면으로 받아 낼 정도의 강한 존재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간 보기로 가한 공격도 아니었다.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다는 것이 더 큰 충격을 선사했다.

케프리의 양손에 가시들이 튀어나왔다.

“다쳐도 책임 안 져.”

“그건 오히려 제가 당신한테 하고 싶은 말이네요.”

케프리가 다시 한번 베라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고 했다.

케프리가 서 있던 땅이 갑자기 아래로 푹 꺼졌다.

“엇?”

무게중심을 잃은 케프리.

그 순간 강한 중력이 케프리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뭐야……!”

“정령술입니다. 대지의 정령이 당신의 움직임을 봉인하고 바람의 정령으로 당신을 짓누르는 중이죠. 지금의 중압감 정도로도 못 빠져나오는 겁니까? 그러면 실망이 클 거 같네요. 로인 단장한테 들었을 때에는 꽤 강한 녀석이라고 했는데 말이죠.”

“……누나, 나를 더 이상 화나게 하지 마. 그러다가 정말로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까.”

“부디 그렇게 해 주시길.”

순간 케프리와 드레드가 분리되었다.

케프리의 몸에서 빠져나온 드레드는 검은 짐승의 머리가 되어 베라를 노렸다.

깜짝 전략이었다.

그러나 베라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잔머리를 굴리긴 했어도 전부 다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공격 패턴이네요.”

드레드의 앞에 화염의 벽이 형성되었다.

불의 상급 정령이 소환한 벽이었다.

드레드는 옆으로 돌아가 베라를 노렸지만, 이미 측면에는 대지의 상급 정령이 베라를 보호하기 위해 벽을 친 상태였다.

“겁쟁이 녀석! 싸우지 않고 뭐하는 짓이냐!”

“무조건 치고 박고 싸워야만 반드시 승리를 쟁취하는 법은 아니에요. 이러고 있는 사이에 당신의 파트너가 곤죽이 될지도 모르는데. 안 도와줘도 되나요?”

“……!”

케프리가 바람의 정령에게 짓눌리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드레드.

그는 황급히 케프리의 몸속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제야 케프리는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케프리를 내려다보던 베라는 상급 정령들을 다시 되돌려 보냈다.

“켁켁……!”

케프리는 한동안 기침을 토해냈다.

하나 베라는 여전히 감정 없는 눈빛으로 케프리를 바라봤다.

“이제 제 말을 들을 생각이 좀 생기나요?”

“……무진장 생기네.”

베라한테 잘못 덤비면 큰일이라는 사실을 케프리는 여실히 깨달았다.

하기야 타임 그레이브에서 엘라시아를 데려가겠다고 혼자서 로인과 라스, 제나드 연합과도 비등한 기세를 뽐내던 베라 아닌가.

그런 그녀가 고작 케프리, 드레드 콤비 따위에게 겁먹을 일은 평생 없을 것이었다.

기왕 로인에게 케프리를 부탁받은 거, 베라는 케프리의 마음속에 있는 의욕이라는 불을 지피기 위해 장작을 던져 주기로 했다.

“칠흑을 없애고 싶다고 했죠?”

“어, 맞아.”

“그러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라는 대로만 하세요.”

“……알았어.”

이것이 베라가 케프리를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로인에게서 들은 팁이 유용하게 작용했다.

폭포수 아래에서 명상에 잠기는 케프리.

드레드는 그런 케프리에게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앗, 차가! 왜 이딴 짓을 하고 있는 거냐!”

“하이 엘프 누나한테 혼나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해.”

“마음에 드는 게 단 한 개도 없군! 젠장!”

* * *

폭포수 아래에서 정신 수양을 끝낸 뒤, 장소를 옮겨 넓은 강당 한가운데에 혼자 앉아 또 다시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이렇게 하면 정말 강해지는 거 맞아?”

케프리는 결국 참다 못해 베라에게 따지고 들었다.

그러자 베라는 대답 대신 들고 있던 목도로 케프리의 어깨를 강하게 내려졌다.

“으악! 아프잖아!”

“어차피 칠흑의 조각과 융합했으니 이런 걸로 안 다치잖아요. 엄살 부리지 마세요.”

다시 목도를 회수한 베라는 케프리의 주변을 빙빙 돌면서 말했다.

“당신이 강한 건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세상은 강함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아요. 강할수록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이어 베라는 케프리에게 해주고 싶은 핵심적인 말을 들려줬다.

“힘에 휘둘리지 마세요. 그리고 힘에 너무 의존하지 마세요. 그 강함에 먹혀 버리기 전에 먼저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스스로를 끊임없이 갈고닦으세요. 이게 당신, 그리고 당신 속에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부정한 것이 해야 할 일이에요.”

“감히 나를 부정한 것이라고 했겠다!”

드레드가 튀어나와 베라를 위협했다.

베라의 주변에 속성별로 상급 정령들이 튀어나와 드레드를 견제했다.

정령들과 드레드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베라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동시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앞으로 이런 부탁을 또 해 온다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야겠어.’

베라는 속으로 수차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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