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
문제아 콤비 (3)
똑똑똑.
누군가가 내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
“단장. 저, 베라에요.”
“들어와.”
“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명의 미인 하이 엘프.
그녀의 고운 미간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저 부정한 존재가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케프리와 드레드 콤비를 가리키며 한 말이었다.
드레드가 다시 한번 베라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저 검은 짐승 녀석은 무슨 말 한마디하면 우선 이빨부터 드러내고 보는 성격이구먼.
그러나 베라는 드레드가 위협을 가하는 모습을 보고도 눈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드레드가 저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반응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저자들은 굉장히 위험해요. 단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 잘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이들을 내쫓는 게 좋을 거 같네요.”
“나도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어. 그런데 도중에 계획이 틀어졌어.”
“어떻게 틀어졌다는 거죠?”
“이놈들을 너한테 맡기기로 했거든.”
“……네?”
베라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식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중간 과정이 너무 생략된 거 같은데요. 결과부터 말해 주지 말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말해 주세요. 가능하다면 제가 납득할 수 있도록요.”
“어렵지 않지.”
케프리가 칠흑을 만나고 싶어 해서 나를 찾아왔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블루로즈단에 입단하게 되었다는 사실까지.
나는 케프리와 나눴던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고스란히 들려줬다.
모든 이야기를 가만히 경청하던 베라는 나에게 일침을 날렸다.
“근데 사수가 왜 제가 된 거죠?”
“저 녀석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 존재가 너밖에 없으니까.”
케프리와 드레드 콤비와 일대일로 맞붙어서 실력으로 밀리지 않는 자는 아직까지는 베라밖에 없다.
가르시아가 정령의 힘을 각성시키면 어찌어찌 상대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제나드나 리오나에게 사수 역할을 맡길 수는 없다.
대장급들은 케프리를 담당하는 것보다 더 많은 활약들을 해 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타협안으로 베라를 골랐다.
베라 정도면 케프리와 드레드를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상성이 별로 좋지 않다.
‘이거야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시간이 답이다.
하다가 정 안 되면 케프리를 다시 내보내면 된다.
케프리가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교통 카드가 될지. 아니면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충전식 교통 카드가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베라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녀는 깊은 한숨을 여러 차례 내쉬더니 이렇게 말했다.
“알았어요. 일단 한번 맡아 볼게요. 하지만 갱생 의지가 전혀 안 보인다면, 저자를 블루로즈단에서 쫓아내는 경우도 미리 생각해 두세요.”
“물론이지.”
베라가 말하기 전부터 나는 진작 그럴 생각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케프리와 드레드는 우리가 주고받는 대화에 낄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인지 아까부터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본인들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음에 안 들겠지.
하지만 인생이란 건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다.
* * *
나는 B팀을 제외한 블루로즈단의 단원들을 모두 소집했다.
이들에게 케프리가 우리 용병 팀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케프리를 보자마자 용병들은 기겁을 했다.
“저 녀석……!”
“거, 검은 괴물 놈이잖아!”
스릉!
무기를 꺼내는 이들도 있었다.
드레드도 가만히 있진 못했다.
머리를 드러내고서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케프리에게 눈치를 줬다.
그러자 케프리가 드레드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얌전히 있으라고 했잖아.”
“……빌어먹을!”
그나마 케프리는 말이 통해서 다행이다.
“어흠!”
나는 헛기침을 크게 했다.
용병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너희들도 봐서 알겠지만, 이 녀석을 당분간 우리 용병단 견습생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겨, 견습생이라고요?”
“말도 안 됩니다, 단장님! 저 괴물 녀석이 언제 우리에게 발톱을 세울지 모르지 않습니까! 절대로 동료로 인정할 순 없습니다!”
S팀 용병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이럴 때 필요한 마법의 단어가 있지.
“명령이다. 그래도 불복하겠나? 만약 그렇다면 블루로즈단을 나가도 좋다.”
“…….”
“…….”
블루로즈단은 이제 막 새로운 단장을 맞이했다.
제나드가 아닌 로인 체제로 변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단장으로서의 위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S팀 용병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R팀 용병들은 괜찮다.
애초부터 내 명령에 쭉 따라 왔던 자들이니까.
첸버나 제나드가 와서 S팀 용병을 통제해 주면 더 편하겠지만, 내가 단장이 된 이상 내 힘으로 이들을 통제해야 한다.
첸버나 제나드의 권위에 기대면 중요한 상황에서 내 명령을 듣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R팀에서 늘 해 오던 거니까 딱히 어려울 건 없다.
“라비, 들어온 의뢰 있어?”
“잠시만요…….”
라비는 사무원들과 함께 의뢰서를 빠르게 살피기 시작했다.
“하나 들어와 있어요.”
“뭔데?”
“병력들 중에서 검은 괴물이 숨어들었다는 소문이 돈다고 하더라고요. 병사들이 많이 불안해하는 거 같으니 와서 직접 찾아 달라는 의뢰가 하나 있어요.”
“위치는?”
“홀스틸이라는 요새에요.”
“그 의뢰, 받아들인다고 전해.”
“네, 알았어요. 출전 멤버는요?”
“나, 반드, 에나, 드레인 선배 소대, 그리고…….”
나는 케프리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견습생하고 베라.”
뒤에서 베라가 한숨을 푹 내쉬는 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내 착각은 아니겠지?
* * *
홀스틸은 스타투스라는 소국의 영지에 마련되어 있는 작은 요새다.
계속해서 몰려온 추종자와 검은 괴물들의 공세에 스타투스의 병사들은 하나같이 피곤에 찌든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영웅 라스가 상대방의 중추 세력들을 몰살시킨 덕분에 스타투스와 추종자들과의 끊이지 않던 전투는 마침내 막을 내리게 되었다.
나는 라스가 모든 일을 해결하고 난 이후에 홀스틸을 방문하게 되었다.
우리를 보자마자 갑옷을 차려 입은 30대 후반의 여성이 다가왔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홀스틸을 책임지고 있는 나니나라고 합니다.”
굉장히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었다.
“블루로즈단 2대 단장, 로인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로인 단장의 명성 또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요. 설마 로인 단장이 직접 이곳을 찾아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믿음직스럽군요.”
이제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나 또한 라스만큼 유명 인사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나는 내 유명세를 확인하려고 여기까지 달려온 게 아니다.
의뢰 받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병사들 사이에서 검은 괴물이 몰래 잠복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확실한 겁니까?”
“예. 실제로 검은 괴물에게 잡아먹힌 병사들도 있습니다. 벌써 다섯 명째입니다.”
나니나는 수심이 깊은 얼굴로 나에게 이런저런 정보를 공유했다.
원래라면 전쟁도 끝났으니 수비 병력만 남기고 나머지 병사들은 다시 본국으로 돌려보내면 될 터였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들 중에 검은 괴물이 남아 있으니까.
만약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된 병사를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낸다면, 그 고향에 있는 사람들은 검은 괴물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이런 사태가 우려되었기에 나니나는 일부러 병력들을 이곳에 계속 머무르게 하고 있었다.
나는 나니나에게 협조를 구했다.
“병사들을 한곳에 모아 주세요.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된 병사가 누구인지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가능하신가요?”
“예, 맡겨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오오! 역시! 알겠습니다. 바로 병사들을 소집시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를.”
나니나는 들뜬 걸음으로 어디론가 나아갔다.
그동안 나는 용병들에게 따로 지시를 내렸다.
“검은 괴물이 위기를 느끼면 멋대로 행동을 개시할 수 있어. 더 많은 병사들이 희생당하기 전에 바로 제압해야 한다. 그러니까 병사들이 모이면, 일단 너희도 바로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어. 단, 내가 신호를 줄 때까지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말고.”
“예!”
“특히 케프리.”
나는 노골적으로 케프리를 지목했다.
“드레드한테 주의 단단히 줘. 함부로 날뛰지 말라고.”
“알고 있어.”
“베라, 만약에 드레드가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네 선에서 알아서 제압해 줘.”
“그렇게 할게요.”
자, 그럼 어디…….
숨어 있는 괴물을 찾아볼까?
* * *
경계 근무에 나선 병사들까지 깡그리 다 연병장에 모여들었다.
그동안 경계 근무는 블루로즈단 용병들이 알아서 맡아 주기로 했다.
나는 단상에 올라 병사들을 쭉 훑었다.
인물 정보 창을 보면 누가 검은 괴물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어디 보자…….’
병사들이 많은 관계로 일일이 인물 정보 창을 확인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고, 3시간이 지나고…….
병사들뿐만 아니라 블루로즈단 용병들도 지루함을 느낀 모양인지 하품을 하거나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였다.
나니나가 내 쪽으로 접근해 왔다.
“아직 못 찾았습니까?”
“예. 시간이 좀 걸리는군요.”
“빨리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이대로 가면 해가 저물 거 같아서요.”
“음…….”
고민하는 사이에 갑자기 드레드가 튀어나와 외쳤다.
“지루해서 못 견디겠군! 차라리 내가 찾아 주지!”
저 녀석 봐라.
내 명령이 있기 전까지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고 했건만, 드레드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병사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거, 거, 거, 거, 검은 괴물이잖아!”
“어, 어째서 여기에……!”
내가 이래서 드레드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건데…….
베라가 정령들을 소환해 드레드를 제압했다.
드레드 하나만 놓고 보면 크게 위협적이진 않다.
드레드와 케프리의 융합체가 무서운 거지.
베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완전 고집불통이네요. 한번 말한 건 좀 들으세요.”
그건 내가 베라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다.
타임 그레이브 때의 베라를 생각한다면 참…….
이하 생략하도록 하겠다.
인물 정보 창을 일일이 살피면서 수색하는 내 방식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때 즈음에 다른 수색 방식을 동원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케프리.”
나는 조용히 케프리에게 손짓했다.
“너하고 드레드는 칠흑의 조각이 가진 냄새를 맡을 수 있지?”
“물론.”
“그럼 기회를 줄 테니 찾아봐. 대신, 범인을 찾기만 하고 그 이후부터는 아무것도 하지 마. 명심해.”
“당연하지. 그리고 아까부터 칠흑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사람이 있었거든.”
“누군데?”
케프리는 베라의 정령 속박에서 풀려난 드레드와 함께 병사들 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오히려 병사들을 지나쳤다.
“이 사람이야.”
케프리가 가리킨 인물은 바로…….
나니나였다.
케프리의 지목과 동시에 드레드가 입을 쩍 벌렸다.
“찾았다, 괴물 녀석!”
그러더니…….
아그작!
나니나의 상반신을 크게 베어 물었다.
망할 녀석들!
내가 분명 잠식된 자만 찾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