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208화 (208/240)

# 208

문제아 콤비 (1)

블루로즈단의 개편.

이 작업을 위해 나는 나울에서 거대한 프로젝트 하나를 추진해야 했다.

그것은 바로 R팀 본부의 확장 공사였다.

나는 라그너와 함께 바우너 그랑트를 찾았다.

마침 바우너는 저택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못 본 사이에 바우너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애들은 빨리 큰다고 하던데 그 말이 참말인가 보다.

“어서 오세요, 형! 오늘은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 거예요?”

나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블루로즈단 용병들을 전부 이곳 나울로 소집하려고. 이제부터 나울을 본거지로 삼을 거야.”

“용병들이 머물 건물이 필요하겠네요.”

“그것 때문에 널 찾아온 거야. R팀 본부 건물을 확장해서 사용하려고. 그러기 위해서 네 동의가 필요한데……. 허락해 줄 거지?”

바우너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 안 해 주면 큰일이죠. 형이 나울을 위해 얼마나 힘을 많이 써 줬는데요. 제가 그런 것 하나 못해 드리겠습니까? 바로 결재할 테니까 작업은 준비되는 대로 시작하시면 돼요.”

“땡큐.”

영주와 알고 지내면 이게 참 편하다.

오래 걸릴 법한 서류 심사도 직접 찾아가서 내가 한마디 하면 금방 통과된다.

바우너는 나와 라그너에게 커피를 대접했다.

“오신 김에 커피나 한잔하고 가세요. 마침 좋은 원두를 구했거든요.”

“설탕은?”

“앞에 있는 게 설탕이에요. 원하는 만큼 넣어서 드시면 됩니다.”

쓴 커피보다는 그래도 단 맛이 감도는 커피가 좋다.

달짝지근한 커피가 취향이었기에 단 맛이 살아나게끔 커피에 설탕을 첨가시켰다.

후르릅.

음, 이제야 마실 맛이 나는군.

바우너는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1년 동안 실종되어 있었는데 다시 돌아오자마자 바쁘게 움직이시고……. 형은 정말 대단하세요.”

원래 나는 이렇게 부지런한 성격이 아니었다.

강제로 부지런해진 것이다.

“세계의 멸망이 걸려 있는데 너 같으면 안 부지런해지겠냐?”

“하하하! 그 말도 맞네요.”

바우너는 이내 진지한 표정을 머금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최대한 지원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만 해 주세요.”

“그래, 알았다.”

나울이라는 도시만 성장한 게 아니었다.

바우너 그랑트도 나울과 같이 성장했다.

처음 바우너를 만났을 때에는 건방진 꼬맹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지금은 바우너도 믿음직한 내 동료로 느껴졌다.

* * *

라그너에게 R팀 본부 확장 공사에 바로 들어가게끔 지시를 내려 뒀다.

R팀은 공사가 완료될 때까지 레드 라인 본부에 잠시 머무르기로 했다.

덕분에 라비, 레비 자매가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진귀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라비! 서류 정리 좀 신경 쓰라고 몇 번이나 말했니? 서로 자료가 섞이면 나중에 분류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나 해?”

“……나는 어느 서류가 어느 팀의 자료인지 다 외우고 있으니까 상관없어. 언니가 문제지.”

“자료를 나만 보는 게 아니잖니. 우리 사무직원도, 거기 레드 라인 사무직원도 다 같이 보는 것들인데 너 혼자만 알아보게 놔두면 우린 어떻게 하라고?”

“어휴…… 언니, 도대체 왜 여기에 온 거야.”

“왜긴, 저쪽이 공사 중이니까 온 거지.”

레비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사단장님, 공사 좀 빨리 끝내게끔 재촉해 주시면 안 돼요?”

“그렇다고 날림 공사할 수는 없잖아. 그리고 네 언니 말이 맞으니까 언니 말대로 해.”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자매다.

나중에 R팀 본부 확장 공사가 끝나면 레드 라인 본부 건물도 확장 공사를 하든지 해야겠다.

내가 없던 사이에 병력들이 확 늘어났기 때문인지 본부가 비좁아 보였다.

R팀 본부 확장 공사 동안에 숙소도 늘려야 하고…… 전부 다 돈이다, 돈.

확장 공사가 다 끝나면 용병들은 이곳에 전부 집결할 것이다.

그 전에 개편안도 미리 다 완성시켜 둬야 한다.

자매 싸움이 더 심해지기 전에 나는 일찌감치 레드 라인 기사단 본부를 나섰다.

괜히 저기에 있으면 나도 중간에 끼어서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바깥을 나오자 한 남자가 말안장에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근처를 해매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파랑새 씨, 거기서 뭐 하세요?”

“오, 대장! ……이 아니라. 이제 단장이라고 불러야 하지? 미안해.”

“아닙니다. 호칭 적응이 덜 된 건 저희 R팀 용병들도 똑같은데요, 뭘. 신경 쓰지 마세요. 그보다 그 짐들은 뭡니까?”

“이거? 내 것들.”

뜬금없이 자기 짐을 왜 가지고 왔대?

내가 물어보려고 하기도 전에 파랑새가 먼저 알아서 답을 들려줬다.

“이곳에 우리 용병들이 앞으로 다 모여서 지내기로 했다며?”

“네, 확장 공사 끝나면 B팀 멤버들도 합류할 겁니다.”

“나도 여기서 머물려고. 괜찮지?”

“네, 상관없습니다.”

파랑새도 우리 블루로즈단의 일원이니까.

이제 B팀만 나울로 오면 된다.

R팀과 S팀 일원들은 나울에 이미 터전을 잡은 상태였다.

모든 용병들이 집결하고 나서부터 블루로즈단은 다시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파랑새는 그때까지 휴업이다.

“그래서 난 어디서 머무르면 되나?”

“확장 공사가 끝날 때까지 임시 숙소에 머무르시면 됩니다.”

“고마워.”

“그리고 파랑새 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다는 걸 깜빡했네요.”

“나한테?”

“예.”

파랑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파랑새 씨 덕분에 카오스 필드에 갔다 다녀올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아, 그거 말이군. 난 그거 때문에 마일한테 잔소리를 엄청 들었는데. 하하!”

나에게 카오스 필드에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다수 묻혀 있다는 정보를 알려 준 사람은 바로 파랑새였다.

마일은 내가 카오스 필드에 가는 걸 절대 반대했다.

그러니 파랑새를 탓할 수밖에 없을 터.

“파랑새 씨가 이해해 주세요. 마일이 나쁜 마음을 가지고 쓴소리한 건 아닐 테니까요.”

“나도 알아. 로인 대장…… 미안해. 호칭이 진짜 적응이 안 되네. 아무튼 로인 단장이 걱정되니까 그런 거라고 나도 알고 있으니까. 마일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해.”

파랑새는 다시 말을 이끌었다.

“그럼 나 먼저 가 보도록 하지. 숙소 위치가 어디라고?”

“이 길을 따라 쭉 가다 보면 블루로즈단 마크가 새겨진 건물이 있을 겁니다. 거기가 숙소에요. 만약 모르겠다 싶으면 그냥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세요. 나울에서 블루로즈단 숙소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알았어. 그럼 당분간 신세 좀 질게.”

파랑새도 참 아까운 인재다.

마일에게 듣자 하니, 파랑새는 한때 유력한 차기 대현자 후보였다고 하던데.

도중에 베르투의 방식이 자신의 일하는 스타일과 영 안 맞는다는 이유로 베르투를 탈퇴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저 사람도 참 자유분방한 사람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마일을 따로 부르려 했다.

마일에게 별도로 줄 임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치유소를 지나치는데 치유소 바깥에서 카이딘이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그냥 지나치면 정 없는 사람처럼 보일 거 같아서 나는 카이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카이딘 씨.”

“…….”

내가 말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카이딘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뭐지?

앉은 채로 잠들었나?

카이딘의 어깨를 살짝 건드리려고 했다.

그 순간.

“허억……!”

카이딘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갑작스런 반응에 나도 놀랐다.

“카, 카이딘 씨? 왜 그러십니까!”

거친 숨결을 토해 내던 카이딘은 내 쪽을 돌아보더니 고개를 거세게 가로저었다.

“아, 아무 것도 아니야. 그냥…… 안 좋은 꿈을 꿔서 그래.”

그런 것치고는 몸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아보였다.

안색이 새파랗고, 옷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파이스를 불러오겠습니다. 가만히 계세요.”

“아니, 정말로 괜찮아. 아무튼 난 멀쩡하니까 사람 부를 필요 없어. 너도 네 갈 길 가면 돼.”

“…….”

“알았지? 그럼 들어간다. 파이스, 그 친구는 정말 안 불러도 돼. 정말이야.”

그렇게 말하고서 정말로 들어가 버렸다.

진짜로 괜찮은가?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아 보였는데.

마치 카오스 필드 2단계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나를 보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카이딘이 사라진 방향을 계속 바라볼 무렵, 파이스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대장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대장이 아니라 단장이다.”

“아, 그랬죠. 죄송합니다. 칭호가 입에 잘 안 붙네요.”

파랑새도 나를 보면서 계속 대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익숙해지려면 꽤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상병에서 병장으로 진급했는데, 후임들이 자꾸 ‘강 상병님, 강 상병님.’이라고 부르는 거.

그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예, 물론이죠.”

나는 파이스를 부르지 않았다.

파이스가 알아서 나를 찾아온 거다.

그러니까 카이딘의 말을 무시한 건 절대 아니다, 어흠!

“카이딘 씨 상태가 영 별로인 거 같은데. 많이 심각해?”

“예? 아니요. 오히려 내일 당장 퇴원해도 괜찮을 정도로 멀쩡합니다만.”

말도 안 된다.

멀쩡한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파이스가 내게 거짓 보고를 할 리는 없었다.

‘도대체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카이딘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 * *

집으로 돌아온 나는 마일을 따로 호출했다.

마일에게 내릴 지시는 두 개였다.

“일단 첫 번째. 케프리한테 가서 이곳, 나울로 오라고 전해 줘. 내가 기다린다는 말을 하면 바로 올 거야.”

“그 칠흑의 조각과 같이 행동하는 소년 말씀하시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어렵지 않죠.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이번 주 내로 로인 님 앞에 얼굴을 비추게끔 하겠습니다.”

“알았어. 그리고 두 번째.”

이 두 번째가 핵심이다.

“레이샤르의 행적을 조사해 봐. 아주 작은 정보라도 좋아. 레이샤르의 행적과 연관이 되어 있다면, 무조건 다 긁어모으도록 해.”

지금으로선 레이샤르가 라스를 죽일 유력한 범인 후보다.

어떻게든 우리가 먼저 찾아내서 레이샤르의 입으로 직접 종적을 감춘 원인에 대해 들어야 한다.

만약 레이샤르가 《델리피나 전기》에 나오는 ‘라스를 죽인 범인’이라면…….

‘레이샤르를 없애야 해!’

지금은 일단 라스를 보호하는 게 최우선이다.

더불어 테이른도 마찬가지다.

글레드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남아 있는 게 좋다.

그럴수록 수월하게 칠흑을 쓰러뜨릴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가장 베스트는 테이른이 《델리피나 전기》를 집필했을 때의 기억을 되찾는 건데, 하지만 본인 말로는 그건 힘들다고 했었다.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들었다.

더 이상 테이른에게 부담을 가중시킬 순 없었다.

그렇다면 이다음부터는 내가 어떻게든 해야 한다.

마일은 미약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힘든 조사가 되겠지만, 그래도 로인 님을 위해서라면 베르투의 전력을 쏟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정보를 얻어 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당분간만 고생 좀 해 줘.”

칠흑으로부터 이 세계를 구해 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힘들어도 참고 견디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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